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29)
참으로 공교롭기 그지없었다.
준 제자들 중 대제자인 환윤명을 비롯해 둘째 명탁, 셋째 용수까지 성욕에 눈을 뜨고 나서는 거세를 하고픈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그들 모두가 거세를 시켜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세를 하여 정식 제자가 되지 않는다면 평생 악귀 같은 놈의 밑에서 시달려야 할지도 몰랐다.
“사부님 제발 거세시켜주십시오!”
애원하는 이들의 모습에 목경운이 속으로 혀를 찼다.
저들의 속내가 빤히 보였다.
여태까지는 성욕 때문에 생식기를 제거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이라는 정식 제자가 나타났으니 자리가 위태로워졌다고 여겼으리라.
힘으로 어찌 해보려했는데 상대도 되지 않으니 이들에게 남은 방도는 하나였다.
거세하여 정식 제자가 되는 것.
‘쓸데없는 잔머리.’
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이들에게는 옳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한데 느닷없이 이런 몰골을 해서 거세시켜달라고 한다면 과연 받아줄까?
하고 의문을 가졌는데,
“후회들은 하지 않겠느냐?”
암종주의 이 물음에 셋 모두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목경운을 힐끔 쳐다보며 의식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후회할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환윤명은 더욱 그랬다.
안 그래도 사제들이 정식 제자가 되지 못하게 수를 쓴 것도 제 입으로 밝힌 것도 있었고, 오른팔을 잃은 마당에 누가 자신을 받아주겠는가?
환윤명은 간절한 눈빛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때 암종주가 입을 손으로 가리고는 기쁘다는 듯이 웃어댔다.
“오호호. 좋아. 스스로 선택했으니 당연히 들어줘야지.”
“아아아!”
“감사합니다!”
이런 그의 대답에 준 제자들이 하나 같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 광경을 보는 목경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같이 특수한 경우도 아니고,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정식 제자가 되는 것을 포기한 이들이었다.
한데 어째서 받아주는 것일까?
의아해하고 있는데 환윤명과 용수가 자신을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흠.’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거세를 하면서 이제 입장이 동등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목경운보다도 자신들이 먼저 입문했으니 다시 상황은 역전되었다.
동문 사형인 자신들에게 더는 해코지를 하지 못······.
“경운.”
그때 암종주가 목경운을 불렀다.
“네.”
“이제 말을 편하게 해도 되겠죠?”
“네.”
“오호호. 들어오자마자 세 사제들이 생겼으니 행운아로구나. 대사형으로서 잘 챙겨주도록 하렴.”
‘!!!!!!’
이런 암종주의 말에 순식간에 세 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어째서 목경운 저놈이 대사형이 되는 거지?
환윤명이 이를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사, 사부님. 가장 늦게 입문한 자가 어찌 대사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더냐?”
“네?”
“경운이 가장 빨리 정식 제자가 되었으니 너희들의 대사형이 맞지 않느냐.”
이런 암종주의 말에 환윤명은 똥이라도 씹은 것 마냥 오만상을 찌푸렸다.
정식 제자가 되었으니 적어도 이놈보다는 위 서열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이럴 수는 없었다.
그러는데 명탁이 목경운에게 포권지례를 했다.
“목경운 대사형께 사제 명탁이 인사 올립니다.”
“······.”
누구보다 빠른 태세 전환.
이를 바라보는 환윤명과 용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명탁은 이런 그들의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대세는 기울었다.
사부님조차도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경위조차 들어보지 않고서 목경운을 대사형으로 정했다.
그게 무슨 의미겠는가?
‘차기 암종주는 이 녀석이다.’
이제 살아남으려면 잘 보여야 할 대상은 자신들의 뒤통수를 친 환윤명 따위가 아니었다.
* * *
부상을 당한 환윤명, 용수, 그리고 명탁 등을 내성 의약당으로 보내고 단 둘이 남게 되자 암종주가 목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 것도 묻질 않는구나.”
“어떤 것을 말이죠?”
“안에서 벌어진 일의 경위를 왜 묻지 않는지······. 그리고 가장 늦게 들어온 너를 왜 대사형으로 내세웠는지 같은 걸 말이다.”
“사부님께서 염두에 두신 바가 있으실 텐데, 제자가 불경스럽게 굳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암종주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의문조차 보이지 않기에 물었는데 이런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다니.
하나 이것은 이 아이의 본심이 아니다.
시혈곡 종관식까지 지켜본 결과 이 아이는 영악하다 못해 통제하기 힘든 유형이었다.
그런 아이가 불경을 따진다라.
“오호호호. 제자로서는 훌륭한 답변이긴 하다만 내 앞에서 굳이 본심을 숨길 필요는 없단다.”
“······.”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
이런 암종주의 물음에 목경운이 이내 입술을 뗐다.
그런데 그 질문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알고 계신데도 정식 제자로 받은 것은 정 때문인가요?”
암종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아이 봐라.
설마 이런 식으로 물을 줄은 몰랐다.
“이거 안에서 생각보다 많은 대화가 있었나보구나. 그런 식으로 묻는 것을 보니 말이지.”
이런 암종주의 짐작과 달리 대화는 없었다.
그저 악즉검의 요기에 사로잡힌 환윤명이 주절주절 자신의 욕망을 이야기한 덕분에 이들의 사제 관계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알았을 뿐이었다.
“대화라면 대화라 할 수 있겠죠.”
“오호호.”
“불편하신 거면 굳이 답해주시진 않아도 됩니다.”
“그렇진 않단다. 굳이 대답한다면 정일 수도 있겠지. 하나 그것과 별개로 가끔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있단다.”
‘음?’
목경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합리를 중시하는 목경운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암종주는 환윤명으로 인해 들어오는 사제들 전부가 거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정보를 주관하는 암종의 수장이니 말이다.
“무언가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다.”
“······.”
암종주가 입을 가리며 말했다.
“오호호. 너도 좀 더 세월의 풍파를 맞고 한 단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란다.”
“······명심하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미리 저 아이들에게 언질을 하지 않아 이 사달을 만든 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을 텐데, 오늘은 숙소를 마련해줄 터이니 쉬면서···.”
“외웠습니다.”
“뭐?”
“귀영조법의 구결을 말씀하시는 거면 전부 외웠습니다.”
이런 목경운의 말에 암종주가 정말 그게 맞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고에 의하면 자신이 종관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세 사람이 이곳에 들이닥쳤다고 들었다.
아무리 명석해도 구결을 그 짧은 시간 안에 외우긴 힘들다.
그런데,
“조원경하 역운혁세 지순지경 오석무훈······.”
‘!?’
목경운의 입에서 나오는 귀영조법의 구결에 암종주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시혈곡 마지막 관문을 지켜봤었기 때문에 목경운의 무재가 범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다.
‘······이 정도였나?’
이건 예상을 넘어섰다.
뛰어난 제자를 맞이하면 감격을 금할 수 없다는 옛 성인의 말에 새삼 공감이 갔다.
이 아이를 알면 알수록 정말 아쉽다.
출신만 천지회 산하였다면 더욱 탄탄대로를 걸을 텐데 말이다.
아직은 인식의 개선부터 해야 한다는 게 안타깝지만 향후 재목으로 키워나갈 가치가 있었다.
“칭찬을 아끼고 싶어도 아끼기 힘들구나. 잘했다.”
“아닙니다.”
“오호호.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가르침을 진행하고 싶지만, 아직 아까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오늘은 힘들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내총관에게 일러두었으니 네 숙소로 안내해줄 것이다. 그동안 시혈곡의 관문을 치르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오늘은 푹 쉬도록 하거라.”
“네.”
“그럼 내일 보도록···.”
“아. 송구한데 혹시 이 근방에 산책을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산책?”
“네. 계속 오랫동안 산에만 있었더니 가볍게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싶군요.”
그 말에 암종주의 눈빛이 작게 반짝였다.
그러나 이를 내색하지 않고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성내를 구경하고 싶나보구나.”
“네. 괜찮다면요.”
“오호호. 그런 거라면 사람을 붙여주마.”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속으로 혀를 찼다.
정식 제자로 받았고 말투도 더욱 부드럽고 친근하게 대하고 있으나 역시 암종주는 자신에 대한 경계를 조금도 풀지 않았다.
근방을 다녀온다고 했는데 사람을 붙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성가시지만 별수 없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 * *
그렇게 목경운은 암종주가 붙여준 호위무사 한 사람을 대동하고서 암종의 장원을 나왔다.
“속하는 신경쓰지 마시고 돌아다니시면 됩니다. 공자.”
“네. 배려 감사합니다.”
사실 따라오지 않는 게 더욱 배려였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호오.”
목경운이 장원 밖의 주위를 둘러보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이곳으로 오면서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기는 했으나 확실히 넓었다.
아니 광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성 자체도 크군.’
이곳을 전부 둘러보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듯했다.
차라리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본다면 대충 이곳의 지리를 전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당장에 그건 힘들 것 같다.
호위무사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으니 말이다.
-뭐 하러 밖으로 나온 거냐? 차라리 오늘은 그 고자 중생의 말대로 쉬는 편이 나아보이는데 말이다.
그때 청령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느껴져서요.
-느껴져? 무엇이 말이더냐?
-멀지 않은 곳에 고찬의 영기가 느껴지네요.
-뭐? 그 암살자 계집의 몸에 들어갔던 녀석 말이더냐?
-네.
목경운이 밖으로 나온 이유는 다름 아닌 호위 고찬 때문이었다.
연을 맺게 되면서 원혼만이 주인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목경운 역시도 식신의 위치를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멀지 않아.’
적어도 반경 100여 장 이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기운이 굉장히 멀리 있다면 희미해서 알아차리기 힘든데, 이 정도로 가까우니 확실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것 같다.
‘북서쪽.’
그곳으로 향하면 만날 수 있을 듯했다.
-그놈도 대단하구나. 하긴 식신 주제에 도망치지도 못할 테니 따라붙는 게 당연하긴 하지. 한데 가까이 오지 않았다는 건······.
-빙의한 육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하! 육신을 가진 채 이곳에 잠입했다는 것이냐?
-네. 지금으로선 그렇네요.
-육신이 제법 쓸 만해 보이긴 했다만, 이곳 내성까지 몰래 들어올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실력이 있나보구나.
-살수 출신이었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랬을 수도 있고요.
-뭐 어찌 되었든 써먹을 수 있는 패는 많을수록 좋겠지. 식신이라면 배신의 위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청령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호위 고찬을 찾는 것이기도 했다.
이곳까지 잘 따라와 잠입한 걸 보니 전보다 활용 가치가 높아진 것 같다.
그렇게 목경운은 암종의 호위무사를 대동하고서 내성의 북서쪽 길로 향했다.
삼십여 장 정도 이동했을 때였다.
맞은 편 쪽에서 한 무리의 일행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이십 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화사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목경운의 눈동자에 청년의 넘실거리는 기운이 보였다.
그런데 그 기운의 크기가 놀랍게도 명도왕 손윤에게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누구지?’
저 정도면 간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데 외양만으로는 누군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목경운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
곱슬머리 청년의 뒤쪽에 일행으로 보이는 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른 한팔로는 젊고 고혹적인 외모를 지닌 여인의 허리를 휘감고 있었는데,
-저거······ 혹시 그놈 아니냐?
청령의 그 말에 목경운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보일 정도로 파여 있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저 여인은 바로,
-······맞는 것 같네요.
하채린에게 빙의한 호위 고찬이 틀림없었다.
한데 고찬이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예상한 것과 다른 방법으로 천지회 내부로 잠입한 듯했다.
‘아아아, 젠장.’
마찬가지로 단번에 주인인 목경운을 알아차린 호위 고찬이 순간 쪽팔렸는지 얼굴을 들질 못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