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30)
불과 얼마 전,
외성 동쪽 외곽에 자리한 홍혜방.
구하기 힘든 고급 술에 예악이 뛰어난 미녀들만 있다고 명성이 자자한 홍혜방에서 가장 큰 규모에 화려한 귀빈방이 있다.
그 이름은 모약(慕約).
귀빈방 모약은 말 그대로 귀빈만 받는 곳으로 천지회 내부에서도 명성이 두터운 문파, 방파의 손님이거나 천지회 내에서도 대주 급 이상만을 접대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홍혜방의 기녀들은 하나 같이 모약으로 가서 귀빈들을 접대해 연을 맺고 싶어했다.
정실은 아니더라도 모약을 통해 후실로 들어간 이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독 경쟁이 심하다.
그것은 오랜만에 천지회에서도 단주 급의 귀빈이 예약을 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후우.]하채린에게 빙의해 있는 고찬은 어떻게 겨우 이 접대 인원에 포함될 수 있었다.
기녀들과 기싸움 때문에 방법을 바꾸고 싶었었다.
여기서 포기하고 가기에는 그간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다.
-슥
고찬은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
모약에서도 가장 특별한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귀빈을 두고서 기녀들이 한 명씩 예악이나 자신의 재주를 뽐내는 자리였다.
-띵~! 띵~!
지금 한 기녀가 귀빈 앞에서 펄럭이는 긴 소매로 춤을 추며 자신의 기예를 보이고 있었다.
고찬의 손에는 호금이 들려 있었다.
홍혜방에 들어올 때 호금을 켜서 합격했기에 이번에도 이를 하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벌써 누군가 호금을 켰다.
‘젠장.’
앞서 호금을 켠 기녀의 솜씨는 솔직히 말해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애초에 그는 살수 출신이지 악공이 아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데.’
단주 급이면 천지회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직위라 알고 있었다.
그런 자를 통해서라면 천지회 안으로 출입이 가능할 것이다.
한데 고찬만이 아니라 다른 기녀들도 이 높으신 귀빈의 눈에 들기 위해 필사적이라는 것이었다.
‘기녀들과 이런 걸 겨뤄야 하는 팔자라니.’
아니. 팔자라 하기도 힘들다.
죽어서 원혼이 된 마당에 무슨 팔자인가.
식신의 기구한 운명이었다.
그때 안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그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안에서 춤을 차고 있던 기녀가 실망에 얼굴로 나왔다.
나름 귀빈을 꼬드기기 위해 노력한 것 같은데 실패해서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기녀가 벌써 여섯 번째였다.
‘이상하군.’
본래라면 아무리 귀빈 전용인 모약이라고 해도 정해진 인원만큼의 기녀 외에는 추가로 차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데 대기 중인 기녀만 자신을 포함해 10명이었다.
16명의 기녀가 귀빈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자신 또한 무탈하게 그 인원에 포함될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로 높은 직위에 있기에 여행수가 이렇게 공을 들이는 걸까?
[제 차례군요.]그때 한 기녀가 나섰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고찬에게 싸움을 걸었던 기녀였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여행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고찬이 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빙의된 육신인 하채린이 독순술(讀脣術)을 익히고 있어서 입술 모양만으로 어느 정도 말을 짐작할 수 있는 그였다.
‘!?’
여행수의 말에 고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당히 신경 쓰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 저 안에 있는 게 그냥 단주 급도 아니고 천지회의 상위 간부라 불리는 오왕(五王)의 제자라고?
고찬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왕……’
천지회의 오왕이라면 정사를 떠나서 무림을 통틀어 강자로 꼽히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자의 제자가 여기에 있다고?
이거 괜찮을지 모르겠다.
‘하채린의 비전만으로 들키지 않을까?’
비살염객은 사대 살수라는 칭호답게 자신의 기운을 숨길 수 있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비전은 완벽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혈 자리 몇 군데에 침을 박아서 기문을 막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고찬은 비전으로 이류 정도 수준까지 기운을 낮추었다.
완전히 기문을 막으면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 때 대처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난감하네.’
단주 급도 높은데 오왕의 제자와 잘못 엮였다가 이 육신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칫!]앞서 들어갔던 기녀가 퉁퉁 달아올라 들어오는 게 보였다.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다음이라고 한 모양이었다.
[어린 계집이 좋다 이거지.]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튕겨진 것 같다.
여행수가 이런 그녀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다 고찬에게 손짓을 했다.
벌써 차례가 온 것이었다.
[심기를 너무 불편하게 하지 말고 심기가 불편해보이면 당장 나오렴.] [……그러지요.]계획을 바꾸기에는 늦은 듯 했다.
고찬이 다소 긴장한 얼굴로 귀빈실인 모약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짧은 수염에 삼십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다소 투박한 느낌을 가진 사내가 편한 자세로 앉아서 병나발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벌컥벌컥!
남성미가 넘치는 사내가 다 마신 병을 탁자에 내려놓더니 고찬을 쳐다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는 눈빛.
순간 고찬은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마치 품평을 하듯이 몸 전체를 훑는 모습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뻔 했다.
‘빌어먹을. 기분 더럽네.’
이윽고 사내의 입 꼬리가 살짝 실룩거리는 게 보였다.
아마도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얼굴은 제법 반반하구나. 하면 가진 재주를 한 번 보이거라.]‘으으으.’
고찬이 겨우 속내를 가라앉히며 차분히 답했다.
[네. 나으리.]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는데도 닭살이 가라앉지 않는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주인의 곁으로 가려면 천지회의 내성으로 들어가야 하니 말이다.
-치잉!
고찬이 의자에 앉아 활대로 호금의 줄에 갖다댔다.
제대로 켜지도 않았는데 사내가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이내 손을 휙휙 저으며 치우라는 표시를 했다.
‘아니 이놈 뭐야?’
젊은 녀석이 생긴 거랑 다르게 왜 이렇게 까다롭지?
호탕할 것 같은 외모와 다르게 가리는 게 많은 성격의 소유자인 듯 했다.
그때 여행수가 대나무 발을 치고 나와 말했다.
[송구합니다. 바로 다음 아이로 준비…..] [아니. 나가 있어라.] [네?] [이 아이에게 다른 것을 보고 싶어서 그렇다.] […….알겠습니다.]의아해하던 여행수가 다시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예악을 보이려고 했는데 싫다고 한 놈이 뭘 볼 게 있다고 자신더러 남으라 한 거지?
하는데 사내가 말했다.
[계집. 보아하니 무공을 익혔구나.]‘…….이거 였나.’
역시 오왕의 제자가 아니랄까봐 무공을 익힌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일부러 이류 정도 수준으로 드러나게 기문을 막아뒀으니 상위 실력자라면 당연히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나 고찬은 이 자의 실력을 알기 어려웠다.
적어도 절정 이상의 고수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재미있구나. 한낱 기녀가 무공을 익히다니 말이야.]이런 그의 말에 고찬이 미리 생각해두었던 대사를 말했다.
[돌아가신 부친께 배운 작은 재주일뿐입니다. 고작 부랑배로부터 일신의 몸을 지킬 수준에 불과하오니, 그리 높게 보지 마시옵소서.] [돌아가신 아비에게 배웠다?] [제 아비는 회의 말단 무사이셨습니다.] [호오. 그래?]이런 고찬의 말에 사내가 흥미를 보였다.
천지회 내에는 삼류와 이류 수준의 무인들은 넘쳐났기에 그리 신기할 일은 아니었지만 기녀가 무공을 익힌 것은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말단이라고 해도 대 천지회 무인의 자식이 고작 이런 곳에서 기녀로 생활을 하다니 참으로 기구하구나.] [……..]여기서 눈물이라도 글썽이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이 상황 자체가 거북하기에 그런 연기까지는 하기 힘든 고찬이었다.
그러는데 사내가 피식하고 웃더니 말했다.
[……라고 위안이라도 해주리라 생각했더냐? 세상에 힘든 자들은 넘쳐난다. 기녀가 된 것은 네 선택이니 위안 따위를 바라는 것도 웃기지 않느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괜히 연기를 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런데 사내가 갑자기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하나 인생에는 몇 번의 행운이 온다고 하지.] […….] [네 알량한 무공으로 본 공자에게 흥미를 준다면 내 너를 내 사람으로 받아주마.] [내 사람이면?] [안 그래도 호위라는 것들이 전부 칙칙한 남정네뿐이라 적적했는데. 너 같이 반반한 계집이 하나 있다면 눈요기라도 되지 않겠느냐?]‘이거 봐라?’
첩실도 아니고 호위로 데려가겠다고?
말투는 투박하고 위안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놈이 희한한 방식으로 씀씀이를 보인다.
생각보다 그릇이 옹졸한 놈은 아닌 듯 했다.
차라리 잘됐다.
안 그래도 첩실로 들어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던 차에 오히려 이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한데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나으리. 재주를 보이기 전에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성함?] [소…..으녀를 받아주실 수도 있다고 하는데, 존함조차 몰라서야 되겠습니까?]이런 고찬의 물음에 사내가 술병 하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말했다.
[나 말이냐? 하하하핫.]-탁!
호탕하게 웃은 사내가 이내 바닥에 놓여 있던 무언가를 쥐고는 가볍게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끼?’
장작을 패는 그런 도끼가 아니라 사람을 단 번에 쪼개버릴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도끼였다.
이를 보자 고찬의 머릿속에 오왕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파부왕(破斧王) 호태강.’
도끼 하나로 수많은 정파 고수들을 일도양단했다고 알려진 초고수였다.
그리고 무림 최고의 고수라 불리는 팔성(八星)의 일인이었다.
그의 스승이 누군지 알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는 그에게 사내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부멸단의 대단주 호종혁이다.]* * *
‘젠장.’
하채린의 몸에 빙의해있는 호위 고찬.
고찬은 너무 쪽팔린 나머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암기를 던지는 재주를 보여서 홍혜방의 귀빈으로 온 이 사내, 부멸단의 대단주 호종혁의 호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명목은 호위인데 이 녀석은 거의 자신을 첩실처럼 대하고 있었다.
이런 가슴이 드러나는 옷을 입히질 않나.
옆에 차고서 종일 술시중을 들게 하질 않나.
‘돌겠네.’
주인인 목경운을 찾을 때까지만 참자는 식으로 녀석의 장단에 맞춰주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쪽팔리는 모습을 보이게 되다니.
당장 허리를 휘어감고 있는 호종혁의 팔을 치우고 싶었다.
-깔깔깔깔. 저놈 속은 남정네가 아니더냐. 하는 꼴이 완전히 계집이 다 됐구나.
청령이 이런 고찬의 모습에 깔깔대며 웃어댔다.
목경운도 다소 의외라고 여겼지만 사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보다 저 곱슬머리에 화사한 외모의 청년과 그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시선이 갔다.
그들 전부가 하나 같이 보통이 아닌 실력자들이었다.
그때 암종주가 붙여둔 호위무사가 황급히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 빨리 인사를 올려야 합니다. 저기 맨 앞에 계신 분은 회주님의 둘째 제자이신 장능악 공자이십니다.”
‘장능악?’
아아. 저 곱슬머리가 천지회의 수장인 회주의 세 제자 중 한 사람인 장능악인가?
시혈곡주 이지염에게 들었었다.
[대제자 나율량 공자를 제외하고는 둘째, 셋째 제자 분들은 속하가 보지 못해서 외양은 알려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하나 소문에 둘째 공자의 경우는 만나시게 되면 조심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소문이 그리 좋지 않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뭐든지 가져야 하는 포악한 성정이라 했던가.
겉보기만 봐서는 딱히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에는 이 자와 부딪쳐서 좋을 것은 없기에 목경운은 두 손을 모아 포권 지례를 하며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장능악 공자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는데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장능악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이 목경운과 호위 무사를 지나치려고 했다.
‘다행인건가.’
차라리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다만 조금 골치 아프게 되었다.
하필 고찬이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의 일행과 함께 있어서 당장에 데려가기는 힘들 듯 했다.
해서 전음으로 같이 있는 자가 누군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탁!
그때 지나쳐갔던 장능악이 멈췄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방금 너……처음 보는 것 같은데 누구지?”
‘……..’
지나쳐가길 바랐는데 멈춰서서 물어볼 줄이야.
목경운은 몸을 돌려 포권 지례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답했다.
“암종주의 제자 목경운입니다.”
“암종주?”
“네.”
“암종주의 제자 중에 목경운이라는 녀석이 있더냐?”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암종주의 밑에…..어? 공자 이 녀석이 그 녀석 아닙니까?”
‘그 녀석?’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스륵!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목경운의 눈에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두 다리가 보였다.
“호오. 네가 그 녀석이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장능악이었다.
드러나는 방대한 기운에 어느 정도 강하다고 예측은 했지만 움직임이 굉장히 빨랐다.
어느새 자신의 바로 앞에 서있으니 말이다.
“너…….이번에 시혈곡 관문에 수석으로 통과한 그 정파의 볼모 맞지?”
그의 질문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혈곡의 종관식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자가 어떻게 자신에 관한 것을 벌써 알고 있는 거지?
그러고 있는데,
-탁! 스윽!
장능악이 손에 들고 있던 부채로 목경운의 턱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입 꼬리를 이죽거리며 말했다.
“고작 절정 초입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데,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시혈곡 관문에서 수석을 한 걸까?”
여기서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대한 숙여라. 아직은 실력으로도 세력으로도 부딪칠 때가 아니야.
상대는 회주의 둘째 제자다.
차기 회주를 노리는 만큼 이곳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괜히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는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발목을 붙잡힐 수 있었다.
목경운도 그 정도 눈치는 당연히 있었다.
이에,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장능악의 검지와 중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목경운의 두 눈을 찌르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목경운은 판단했다.
‘시험.’
이것은 분명 시험이었다.
장능악은 자신의 무위가 절정 초입 정도로 여기고 있었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지금 자신을 상대로 진짜 실력을 드러내게 시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목경운의 선택은 간단했다.
“웃.”
목경운이 눈을 찔끔하고 감으며 몸만 살짝 움찔하고 움직였다.
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테고, 눈을 뜨고 있으면 그것대로 이상하게 여길 터이니 최대한 하수인척 하기 위함이었다.
-팍!
눈을 감은 목경운의 앞에서 간발의 차로 장능악의 두 손가락이 멈췄다.
그렇게 손가락을 멈춘 장능악이 피식하고 웃었다.
일행들 중 한 명인 붉은 옷을 입은 이십대 초반의 두꺼운 입술의 여인이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소문만큼은 아닌가 봅니다. 공자.”
“그런가 보구나.”
장능악도 비슷한 의견이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을 거둬들였다.
다행히 잘 속여넘긴 모양이었다.
-잘했다. 중생.
청령도 목경운이 이번 만큼은 처신을 잘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놀라서 움찔하는 것치고 심장 뛰는 소리가 평이하기 그지없습니다. 공자.”
“뭐?”
장능악이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두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는 긴 머리카락의 중년인이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고요한 기운을 지닌 자였다.
맑은 호수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설마 눈이 먼 장님인 건가?
하고 있는데,
“속하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앞에 있는 그 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공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고?”
그 말과 함께 장능악이 고개를 돌리며 목경운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이에 목경운이 작게 입맛을 다셨다.
나름 연기를 충실하게 했는데 아무래도 일이 성가셔지고 있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