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39)
불과 한 시진하고도 삼각 전,
횃불로 둘러싸여 밝아진 창문의 문풍지를 보며 목경운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한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목경운이 자신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두루마리를 보았다.
이것은 암종주의 호위인 벽(碧)에게 빙의해 있는 마승이 그 몰래 가져온 것이었다.
매일 같이 같은 시각에 암종주는 반복적으로 이것을 읽었다.
[흠. 아무래도 지금 읽어놔야 겠네요.]-그래야겠구나.
상황을 보아하니 이걸 여유롭게 살펴볼 수는 없을 듯했다.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다가 방을 수색당하기라도 한다면 일이 더 커질 것이다.
이에 목경운은 말려있던 두루마리를 폈다.
-스르륵!
얼마나 손을 탔는지 많이 낡았다.
그렇게 반쯤 펴진 두루마리.
이를 본 벽에게 빙의한 마승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마승 역시도 이것을 보는 모습만 보았지 안에 내용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거······ 우리 말이 아니구나.
놀랍게도 두루마리 안에는 한어(漢語)가 아닌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글이 적혀 있었다.
청령 역시도 이것을 처음 보는지 곰방대를 물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꼬불꼬불한 글씨는 암어로 보기에는 규칙성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다는 건 중원의 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데······.
[호오. 이거 파사국의 언어 같군요.]-뭐?
청령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파사국(波斯國), 혹은 파랄사국(波剌斯國)이라 불리는 나라는 중원이 아닌 서역 너머 북쪽 해안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 곳이었다.
-중생 너 이걸 읽을 줄 아느냐?
[대충은요.]-뭐라고?
아니 이 녀석이 이걸 어떻게 읽을 수 있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목경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주셨어요.]-할아버지?
[네. 한어 이외에도 몇 가지 언어를 가르쳐줬어요. 서역의 약학(藥學)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하······.
고작 약학을 가르치려고 평생 쓰지 않을지도 모를 파사국의 언어를 알려줬다고?
참으로 중생 녀석의 조부라는 작자가 어떤 자인지 궁금해진다.
한데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뭐라고 적혀 있느냐?
[글쎄요. 뭔가 시 같은 구결이 적혀 있는 것 같네요. 이 한 몸 성스러운 불에 불사르니 생(生)과 사(死)에 미련 없네. 가고자 하는 길에 있어 광명을 밝히니······.]-그만.
[네?]-······뭔지 알겠구나.
[알겠다고요?]-그래. 무공 구결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이건 경문이다.
[경문(經文)?]경문이라 하면 불경과 같이 종교적으로 기도할 때 쓰이는 문구가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경문이라는 거지?
의아해하는 목경운에게 청령이 혀를 차며 말했다.
-참으로 가관도 아니구나. 회에서 기밀과 정보 부처의 수장이라는 작자가 불을 숭배하는 자라니.
[불을 숭배?]고개를 갸웃거리던 목경운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암종주가 외총관과 나누던 대화에서 언급했던 배화(拜火)라는 말이었다.
배화는 말 그대로 불에 절을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는 건 이 불을 숭배한다는 경문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숭배······ 배화······.]-응? 네가 어찌 배화교를 아느냐?
[배화교? 그게 뭐죠?]-이 경문 말이다. 아무래도 배화교의 경문인 듯하구나.
[배화교요?]“아······.”
반문하는 목경운과 달리 마승 역시도 무언가를 아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의아해하는 목경운에게 청령이 곰방대를 뻑뻑 피며 말했다.
-곧 밖에서 밀고 들어올 듯하니 간단하게 말해주마. 배화교는 말 그대로 불을 숭상하는 교단이다. 말이 그렇고 듣도 보도 못한 서역의 신을 숭상하지.
[서역의 신?]-그래. 일종의 불순한 이단이지. 뭐 그런 건 논해봐야 피곤하고 한때 이 불을 숭상한다는 배화교가 중원에 들어와 민초(民草)를 중심으로 퍼진 적이 있었다.
[흐음.]대부분의 종교가 그러했다.
시작은 가장 아래층인 민생으로부터 출발한다.
가장 의지할 곳이 없고 빈곤한 이들은 무언가를 붙잡고서 일어서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퍼져나간 배화교의 교리는 어느 순간 급격히 커졌고, 불가와 도가, 유자의 도리를 근간으로 여기는 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위협?’
위협보다는 달갑지 않게 여기지 않았을까?
새로운 것은 어떤 식으로든 배척되기 마련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썩 좋은 결과가 있진 않았겠네요.]-그래. 혹세무민(惑世誣民)을 한다고 하여 대대적인 탄압이 벌어졌지. 그때가 어언 백 년 전이다. 한데 아직도 배화교를 믿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을뿐더러 그런 자가 천지회에서 정보와 기밀을 담당하는 자일 줄이야.
청령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걸 보면 그녀 역시도 배화교를 썩 좋게 보지 않는 듯했다.
죽은 원혼인 그녀가 이럴 진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교단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어찌 생각하고 있을지가 짐작이 갔다.
그때 밖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는 들어라. 당장 투항하지 않는다면 사살할 것이다.
이에 목경운이 다시 두루마리를 돌돌 말려고 했다.
그러는데 그 사이에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빠져서 바닥에 떨어지려 했다.
그걸 도중에 낚아채듯이 잡아냈다.
-탁!
‘음?’
이게 뭘까?
[اهریمن]이라는 말과 함께 밑에는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교리라기보다는 이것은 마치 강한 경고를 하고 있는 듯했다.
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목경운이 이내 다시 두루마리에 그것이 적혀 있던 종이를 끼워서 마승에게 넘겼다.
* * *
다시 현재.
암종주가 도병을 쥐고서 힘을 가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한데 말이죠. 제 목을 베게 되면 사부님께서 불을 숭배하는 자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될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
그 말에 암종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런 그의 반응에 목경운의 눈에 작게 이채가 띠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경문을 외운다는 말에 청령이 그가 불을 숭배하는 교인, 즉 배화교를 믿는 자일 거라고 했다.
-팍!
그 순간 암종주가 목경운의 멱살을 움켜쥐고서 거칠게 벽에 밀어붙였다.
-쾅!
한없이 가벼워 보이던 특유의 기색은 완전히 사라졌고,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 대체 그런 유언비어를 어디서 들은 것이냐?”
“유언비어요?”
-팍!
도날이 목경운의 목을 살짝 파고들었다.
여기서 그어버리면 목이 베인다.
이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유언비어라면 웃고 넘기시면 될 일을 왜 이렇게 과민반응하는 걸까요?”
“네놈이······.”
-푹!
도날이 목경운의 목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암종주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당장에 목이 날아갈 위기에 처해있는데 목경운은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베지 않을 거라 확신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마치 목숨 자체에 아무런 미련이 없거나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녀석은 정말 처음 본다.
“두렵지 않은 것이냐?”
“무엇이 말이죠?”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죽으면 죽는 것이고 살면 사는 것인데 거기서 뭘 더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게 있나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암종주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잠시 목경운을 노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을 죽이면 전부 알게 될 거라고 했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 사실을 말한 것이더냐?”
이렇게 묻는 암종주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미 다른 누군가가 알고 있을까 봐 우려하는 그였다.
이에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알 만한 이들은 알고 있으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퍽!
“흡!”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암종주의 손이 목경운의 복부를 울렸다.
단순한 일격처럼 보였지만 그 파동이 속으로 퍼져나가는데, 그것이 오장육부 전체에 고통을 주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팍!
암종주가 다섯 손가락으로 복부를 붙잡고 돌리듯이 비틀었다.
근육이 비틀리면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당장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
말을 하던 암종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이 수법은 고문의 대가인 그가 직접 창안한 것으로 내경으로 체내에 통증을 일으킨 후에 근육을 비틀어 고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근착골에 비견될 만큼 고통스러운 수법이었다.
그런데 목경운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 녀석?’
내경을 일으키던 그 순간 잠시 호흡을 멈췄던 것을 제외하고는 이 엄청난 고통 속에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주르르륵!
그때 목경운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내상을 입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운데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을 만큼의 독종이라.
알면 알수록 이놈은 정말 남다른 면이 많다.
무재도 그렇고 모든 게 말이다.
하나 아깝기는 하나 이 비밀을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되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말했는지 이야기해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그러시면 안 되죠.”
“뭐?”
“누구에게 말했는지 알게 되면 그 자도 죽이고 저도 죽이셔야죠. 그래야 비밀이라는 게 사라지지 않을까요?”
-꽈아아악!
암종주가 목경운의 복부 근육을 더욱 비틀었다.
그리고 작게 다그쳤다.
“누굴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살려준다는 하도 뻔한 거짓말을 하기에 그냥 말씀드린 겁니다.”
“너······.”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비꼬아?
상대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는 상황에서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해도 도가 지나······
그때였다.
“이 한 몸 성스러운 불에 불사르니 생과 사에 미련 없네. 가고자 하는 길에 있어 광명을 밝히니,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한낱 먼지로 남으리. 근심 많은 중생 가련하도다.”
‘!!!!!!’
목경운의 입에서 나온 경문에 암종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체 이놈이 어찌 배화교의 교리인 경문을 알고 있는 것인가?
암종주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설마 자신의 경문서를 보았을 리가 만무했다.
설령 보았다고 해도 배화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파사국의 언어로 적혀 있기에 천지회 내 뿐만 아니라 중원에서도 읽을 수 있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탄압 끝에 겨우 맥을 이어온 배화교의 몇 안 되는 교인들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을 이놈이 어찌 읽는단 말인가?
그건 절대 아니었다.
한데 어떻게 경문의 내용을 이리도 유창하고 정확하게 읊을 수 있는 거지?
이미 알고 있지 않는 한······.
-팍!
암종주가 황급히 목경운의 복부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서 말했다.
“너······ 설마 본교의 교인인 것이냐?”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