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47)
-뚝! 뚝!
목경운의 손바닥에서 떨어지고 있는 짙은 핏방울.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던 섬독왕 백사하가 입을 열었다.
“애송아. 지금 네놈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아느냐?”
“글쎄요.”
“네놈의 피가 독이라는 것은 곧 네놈이 노부조차 오르지 못한 경지에 올랐다는 게 된다. 그게 말이 된다고 보느냐?”
고작 17세.
청년이라 부르기에도 아직 이른 나이다.
평생토록 독공을 익힌 그조차도 이르지 못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는 건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명색이 독공의 일인자라고 하시는 분이 고작 제 피를 먹는 것이 그리 힘드신가 봐요? 이리 구구절절 부정하시는 걸 보면 말이죠.”
“뭐라? 이놈이 지금 누구더러···.”
“하면 맛을 보시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섬독왕 백사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놈의 피가 정말로 독 그 자체라면 그로서는 정말로 충격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백사하가 이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목경운의 손목을 움켜쥐고서 잡아당긴 후에 손바닥에 흐르는 피를 입안으로 떨어뜨렸다.
-툭툭툭!
혓바닥을 적시는 목경운의 피.
이것이 혀에 닿는 순간 섬독왕 백사하의 눈이 커졌다.
‘!?’
평생 독과 함께 살아왔던 그였다.
피를 맛보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독이 틀림없었다.
혓바닥에 닿는 순간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퍼져나가는 복잡한 맛
하나이면서도 수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이 맛은 그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그런 유의 독이었다.
‘이게 대체···.’
백사하의 독에 대한 감별력은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무슨 독인지 감별해낼 수가 없었다.
그 말은 중독되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피 자체가 독이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하······.”
백사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파마독경으로 체내에 독을 보존하고 있는 그조차 피 자체가 독이 될 순 없었다.
그러나 목경운은 정말로 피가 독 그 자체였다.
그렇다는 것은,
“······독인.”
목경운은 정말로 독인(毒人)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백사하는 충격받은 눈으로 목경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이놈은 뭐지?
수십여 년간 독공을 익힌 자신조차도 이루지 못한 독인의 경지에 고작 이런 애송이가 어떻게 도달한 거지?
이해의 영역을 넘어섰기에 의문으로 가득해졌다.
한참을 말문이 막혀 있던 백사하가 이내 겨우 입술을 뗐다.
“어찌······ 어찌 독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냐?”
“독인이라는 게 대체 뭐죠?”
“······독인이 뭐냐고?”
“네.”
목경운의 물음에 백사하는 뒷골이 당겨왔다.
이놈은 자신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노부와 농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농이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겁니다만.”
“하······.”
“제 피가 독이라서 그런 건가요?”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백사하가 혀를 차다 대답했다.
“그래. 사람 자체가 독이 되는 것. 그게 바로 독인의 경지이다.”
“아아. 그런 건가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답하는 목경운의 태도에 백사하는 내심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시기심이 생겨났다.
자신은 죽을 듯이 노력해도 이루지 못한 것을 이런 애송이가 어찌 이리 쉽게 이룩했단 말인가?
‘허무하기 그지없구나.’
독공을 익히지도, 아니 독을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하는 애송이가 독인의 경지에 오르다니.
그간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걸려있는 걸 발견한 기분이다.
“······좋아. 질문을 바꾸마. 어떻게 피에 독기가 서리게 된 것이냐? 이것에 대해선 스스로 답을 알겠지.”
“뭐. 그렇지요.”
“하면 가르쳐다오.”
“방법을 말인가요?”
“그래.”
이런 그의 대답에 목경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의 신음을 흘렸다.
“흐음.”
“가르쳐주기 싫은 게냐?”
“들어보니 굉장히 원하시는 것 같아서요.”
“원하다마다일까? 이건 노부에게서 있어서 숙원이다.”
“그런가요?”
“그래. 하니 네놈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다오. 그리 해준다면 네놈이 그 독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독공을 전수해주마.”
“나쁘지 않은 조건이군요.”
“하! 나쁘지 않은 조건? 이놈아. 노부에게서 독공을 배우게 된다면 네놈은 후기지수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 불리게 될 게다.”
“그 정도인가요?”
“그렇다마다.”
이미 독인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목경운이다.
가르치기만 한다면 파마독경의 제 8층까지도 오를 만한 자질이 충분했다.
그런데 목경운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조건을 조금 바꿔도 될까요?”
“뭐라고?”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에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백사하가 또다시 혀를 찼다.
아쉬운 쪽이 이쪽이다 싶으니까 이젠 자신과 거래를 하려 드는 게 참으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녀석이다.
“······무엇을 원하는 게냐?”
“별로 어렵진 않습니다. 그저 어르신께서 제가 알고 싶은 것을 알려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컥.”
그때 백사하가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두 눈이 충혈이 돼서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이··· 이게··· 대체······.’
백사하가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가슴에서부터 타들어갈 듯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백사하는 이 고통이 무엇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단번에 알아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것은 독에 중독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백사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독공으로 경지에 오른 그는 체내에 지니고 있는 수백여 가지의 독으로 체내에 침투하는 다른 독을 중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쿨럭··· 쿨럭······.”
그런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백사하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찌 이런······.”
황당할 정도였다.
섬독왕이라 불리는 그가 중화시킬 수 없는 독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지독이요? 이게요?]순간 백사하는 목경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의 파독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해서 불쾌감을 줬었다.
한데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독기에 백사하는 깨닫게 되었다.
‘이놈······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나?’
자신을 자극하기 위한 허세가 아니었다.
백사하는 황급히 파마독경을 운기하며 오장육부로 침투하여 더욱 퍼져나가는 목경운의 독을 중화시키려 했다.
-스스스스스!
그의 어깨에서 검붉은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독을 해소시키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심후한 내공을 지닌 그였기에 늦었지만 어떻게든 독을 배출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파각!
“컥!”
운기를 하던 백사하가 자신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어르신?”
“끄으으으.”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독공의 대가라고 자신의 독을 스스로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가? 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뒷목을 움켜쥔 백사하의 눈빛이 탁해지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된 듯했다.
‘흐음.’
이에 목경운은 상태를 살피기 위해 백사하를 눕혀보려고 했다.
그런데,
-두드드득!
‘응?’
가부좌를 틀고 있는 다리가 풀리지 않는다.
아니 그냥 풀리지 않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이 자세가 고정되어 있었는지, 하체의 뼈와 근육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목경운이 그곳의 혈자리로 손을 갖다 대보았다.
‘······이래서 계속 앉아있었던 건가?’
혈자리를 만지며 목경운은 백사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의 하반신의 혈자리가 역류하는 독기와 체내 진기가 부딪치면서 흐름이 막혀버리면서 마비 현상이 일어난 듯했다.
‘독기가 역류하는 걸 진기로 계속 막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계속 앉아만 있었던 것 같았다.
목경운은 천천히 백사하의 혈자리를 위로 훑어서 올라갔다.
진기가 움직이는 경로의 주요 혈자리들로 독이 역류하면서 기어이 뇌에까지 도달한 듯 했다.
원인은 아무래도,
‘내 피인가?’
목경운의 피, 즉 새로운 독을 해소시키기 위해 체내의 진기를 더욱 분산시키다가 독기의 역류를 막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걸 어쩐다라.’
가만히 놔두면 백사하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때 진기를 불어넣어 역류하는 독기를 막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어느 정도 가망성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문제는,
‘사기로 될까?’
자신의 사기(死氣)는 진기를 오히려 흩어지게 만든다.
오히려 역효과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그의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월명단 갖고 있지?
-네?
-천지단이라 부르던 그거 말이다.
-아 그거요? 갖고 다니고 있죠.
양생의 기운을 익힌 것이 아니기에 먹어도 효과를 볼 수 없었던 목경운은 이를 그냥 주머니에 싸서 들고 다니고 있었다.
-그래. 늙은 중생 놈의 입에 월명단을 넣어주고 뇌의 혈까지 올라온 독기만 어떻게 막아봐라.
-뇌로 올라온 독기를요?
목경운이 백사하의 뒷목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뒷목을 잡고 있던 손을 치우고서 뇌와 연결되는 혈자리로 손가락을 갖다댔다.
-슥!
그리고는 이내 착(着)의 식(式)을 펼쳤다.
손가락 하나로 집중된 착의 식을 통해 올라오던 독기가 한 점으로 집중되더니, 이내 목경운의 손가락을 타고 들어왔다.
“쿨럭.”
그 순간 의식을 잃었던 백사하가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리셨나요?”
“너··· 너 어떻게?”
영문을 몰라하는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그보다 직접 도움 드리긴 힘들 것 같고, 이걸로 어떻게 해보시죠.”
“뭐?”
-쏙!
목경운이 백사하의 입에 이내 천지단을 집어넣었다.
‘이건?’
이를 입에 물게 된 백사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영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목경운의 독을 해소하면서 진기의 흐름이 깨져서 역류하는 독기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뭔가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백사하는,
-꿀꺽!
그대로 천지단을 삼켰다.
확실히 천지회가 자랑하는 영약답게 삼키는 순간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데, 뜨거운 기운이 점차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라면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써야 했으나,
‘밀어낸다.’
백사하는 역류하는 독기를 다시 밀어내는데 영약의 기운을 활용해야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하반신의 마비로 끝나지 않고 전신이 마비되어 식물인간이 될지도 몰랐다.
-스스스스!
그렇게 백사하가 영약의 기운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목경운이 중얼거렸다.
“희한하네요. 왜 독이랑 싸우는지 모르겠군요. 그냥 받아들이면 될 텐데.”
‘!?’
그 순간 백사하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 * *
50여 년 전.
젊은 백사하가 무릎을 꿇고서 향을 붙이는 중년의 사내에게 물었다.
[파마독경(波魔毒經)의 제 팔층에 오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답을 해주시지 않을 겁니까? 아버님.]중년의 사내는 다름 아닌 백사하의 부친이자 백가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만독주(萬毒主) 백유였다.
독으로는 사천당가와 구양가문을 이길 수 없다는 무림의 정설을 뒤집은 사내였다.
그의 손에 당대 사천당가의 가주 화천독수(花千毒手) 당연종이 죽게 되면서 중원 무림은 백유를 새로운 독공의 대종사로 인정했다.
파마독경(波魔毒經)은 이런 백가의 시조 백유가 창안한 독공으로 당가의 만천화경독공, 구양가의 합마공과 명성을 나란히 하는 절기가 되었다.
하나 이 파마독경은 그 익히는 과정이 쉽지 않고 한 층씩 올라갈수록 깨달음을 얻기가 난해해져 창안자인 백유를 제외하고는 그 아들들 중에서 누구도 극성이라 불리는 8층의 경지에 오른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차남이었으나 장남이 된 백사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파마독경의 제 팔층은 아버님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대답이 없는 백유.
그가 이러는 이유는 이곳이 장남의 위패를 두고 있는 사당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마독경의 제 8층을 연마하던 장남 백성하는 독이 역류하는 현상으로 뇌의 혈류가 막혀 전신이 마비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말씀해주십시오. 아버님.] [······.] [이대로 저 또한 팔층을 익히려다 형님처럼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닙니까?]젊은 백사하는 형을 잃고 난 후 파마독경을 익히는데 회의감이 생겨났다.
장남은 목숨을 잃고 셋째 아우는 하반신이 마비가 되었다.
그나마 멀쩡한 것은 자신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파마독경은 창시자인 아버지 백유 이외에는 누구도 익힐 수 없는 무공이었다.
[파마독경은 독인으로 가는 길이다.] [또 그 소리이십니까?] [독공의 극의는 스스로가 독이 되어야 한다.] [무슨 수로 말입니까? 독공을 익힌 순간부터 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긴장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사람이 독이 된다는 겁니까?] [순응하면 된다.] [······대체 그 순응이란 게 무엇입니까?] [지금은 이해할 수 없고 이 애비에게 불만이 많은 것은 안다. 하나 그것은 네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 [······.]‘순응··· 순응··· 그 놈의 순응······.’
아들에게조차 너무나 모호한 조언.
그로 인해 아들 하나는 죽고 또 다른 아들 하나는 불구가 되었는데 이런 식인 건가.
백사하는 그날 후로 다짐했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무리한 짓을 할 바에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로 말이다.
그로부터 33년 후.
[하아··· 하아···.]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백사하.
근 십여 년 만에 누군가와의 일대일 승부에서 부상을 입게 된 그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천지회 최고의 고수라 불리는 회주와는 애초에 겨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팔성의 칭호를 받은 오왕의 한 사람이자 벽을 넘어선 파부왕 호태강과는 친선으로 직접 비무를 겨룬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어느 정도의 격차를 느끼긴 했어도 이만큼의 무력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벽을 넘어선 파부왕마저도 자신의 독기를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했었다.
그만큼 독이라는 힘의 위험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는 자신과 정면으로 부딪쳤고,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독의 운무를 전부 흘려보냈다.
닿지 않는 독은 그 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독기마저 가볍게 흘려보낼 정도의 고차원적인 이화접목(移花接木)의 묘리.’
그것은 진기를 숨 쉬는 것처럼 다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귀검(鬼劍)······.’
놈은 정말로 괴물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대결로 인해 백사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이 자처럼 진기를 세밀하게 다룰 수 없다면 더 이상 위로 나아갈 수 없음을 말이다.
그렇게 그는 다시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진기를 미세하게 다뤄 숨 쉬는 것처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포기했던 파마독경 제 8층의 경지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런 그의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었다.
진기를 숨 쉬듯이 세밀하게 다룰 수 있다고 확신한 백사하는 파마독경 제 8층의 경지에 도전하게 되었다.
오직 시조이자 부친인 백유만이 성공했던 제 8층의 경지.
이번만큼은 성공하리라 자부했다.
하지만,
[끄으으으으.]백사하는 제 8층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진기를 세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기에 독기와의 조화를 이뤄보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독기가 역류하는 현상에 하반신이 마비가 되고 말았다.
셋째 아우와 같아진 것이었다.
‘······파마독경의 극성은 역시 불가능한 것인가?’
애초에 독인의 경지는 대종사였던 아버지 이외에는 불가능한 영역이었을 지도 몰랐다.
하반신이 마비된 백사하는 삼년상을 명분 삼아 칩거에 들어갔다.
파마독경의 제 8층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역류하는 독기를 억눌러 마비된 하반신을 원래대로 돌려놓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렇게 반신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점점 지쳐만 가던 그였었다.
그런데,
[희한하네요. 왜 독이랑 싸우는지 모르겠군요. 그냥 받아들이면 될 텐데.]목경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부친 백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순응하면 된다.]‘순응?’
그 말을 떠올리는 바로 그 찰나였다.
백사하는 지금까지 역류하던 독기와 이를 막아내던 진기를 풀었다.
그리고 이를 분리해서 생각하던 모든 것을 버렸다.
그러자,
-고오오오오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던 백사하의 진기와 독기가 서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쩌적! 쩌저저적!
백사하의 피부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 현상은 바로,
-늙은 중생 놈이 운이 좋구나. 환골탈태를 하게 되다니.
이는 청령의 말대로였다.
환골탈태(換骨奪胎).
그의 몸이 새로이 깨달음에 맞춰서 변이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바라오던 파마독경(波魔毒經) 제 8층의 경지에 어울리는 몸으로 말이다.
그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백사하의 몸은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저 그것을 억지로 막고 있었을 뿐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