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54)
시혈곡 마지막 관문이 있기 전, 곡주 이지염이 했던 말이다.
당시에 누가 수석패를 전부 얻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목경운은 한 가지 사실만을 물었었다.
[수석패를 전부 얻은 자는 무슨 혜택이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회주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이 대답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회주의 가르침을 받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인가요?]의아해하던 목경운의 호기심을 모하랑이 풀어줬었다.
[회주께서는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우는 육천의 일인이야. 다른 걸 다 떠나서 천하에서 제일 강하다고 하는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건······.]그녀는 뒷말조차 잇지 못했다.
그만큼 육천(六天)의 위명은 가히 중원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대단한 존재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누군들 목숨을 걸지 않겠는가.
하나 시혈곡이 시행된 이래 그런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인가?’
목경운과 눈이 마주치고 있는 이 사내.
회주의 첫째 제자, 대공자 나율량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목경운 역시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를 알려준 게 암종주였다.
[둘째 제자인 장능악 공자도 셋째 제자인 위소연 아가씨도 천부적인 무재를 지녔다. 하나 대공자 나율량과 비교하면 그들조차 부족하다 할 수 있지.] [그 정도입니까?] [그래. 이렇게 얘기하면 더욱 와 닿겠구나.] [무슨?] [대공자는 시혈곡 시행 이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관문의 수석패를 얻고서 회주의 제자가 되었다.]‘!?’
시혈곡 관문의 모든 수석패를 얻어서 제자가 되었다고?
시혈곡주 이지염이 말했던 그 유일한 한 사람이 바로 대공자였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둘째 공자도 셋째 아가씨도 재능에 의해 발탁되었다면 대공자는 밑바닥부터 위로 올라와 스스로 지금의 위치에 선 자이지.] [······멋지군요.] [그래. 독기도 있고 멋지지. 한데 그보다는 참으로 무서운 자이기도 하다.] [무서운 자?]암종주는 대공자를 무서운 자라고 평했다.
둘째 공자인 장능악에 대해서는 간교함과 포악함이 있으니 조심해야 할 자라고 평한 것에 비해 대공자에 대해서는 상당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었다.
왜 그런 것일까?
의아해하는데 암종주가 말했다.
[사실 문무(文武)의 재능만 놓고 본다면 단연 차기 회주의 자리는 대공자가 맡아놨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지.] [과언은 아닌데 왜 제자 분들이 후계자 자리를 다투고 있는 겁니까?]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자라면 굳이 경쟁을 시킬 필요가 있는 걸까?
지지 세력도 제자들 중 가장 많았고 문무에서도 탁월할 만큼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회주는 병상에 누워있다면서 아직도 그를 후계자로 삼지 않은 것일까?
그런 목경운의 물음에 암종주가 뜻밖의 말을 했다.
[······회주도 놈을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이건 또 무슨 소리지?
천하에서 제일 강하다고 알려진 육천(六天)의 일인인 천지회의 회주가 자신의 첫째 제자를 경계하고 있다고?
뭔가 이상하다.
[······굳이 경계할 이유가 있나요? 재능 때문이라면 차기 후계자이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보통이라면 그렇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유라면 이유일 테지.] [그게 뭐죠?] [시혈곡의 모든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할 정도로 압도적인 무재를 지녔고 문무에 통달할 만큼 뛰어난데 어째서 지지하는 자들이 4할에 불과할까?] [음?]그러고 보니 그랬다.
암종주에게 듣기 전까지는 후계자 경쟁을 한다기에 셋 모두가 뛰어나거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 결정되지 않았나 보다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4할씩이나 라고 생각했는데, 암종주의 말대로 그 정도로 압도적인 인물인데다 회주의 대제자라고 한다면 4할이 아니라 8할, 9할의 지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는 건 한 가지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그 모든 걸 뒤집을 만한 결격 사유가 있는 건가요?]결정적으로 흠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는 한 회주가 후계자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암종주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보통 사람과 다르다.] [다르다는 게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다. 대공자는 보통 사람들과 생각하는 기준도 사고도 감정도 많이 다르다.] [······.] [태생적으로 무언가가 결여된 것인지 아니면 환경적인 요인으로 그리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다름이 회주로 하여금 확신을 내리지 못 하게 한 것 같구나.] [다름······.]어떤 부분에서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걸까?
확실한 것은 이런 다름으로 인해 대공자를 꺼리는 자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제자 장능악, 셋째 제자 위소연을 따르는 이들이나 중립을 지키는 자들이 아마 그런 자들이리라.
* * *
“어찌 안 것이냐?”
한쪽 눈의 동공은 검은색, 또 다른 눈동자는 회백색의 동공을 하고 있는 대공자 나율량의 물음에 목경운은 암종주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보통 사람과 다르다.]‘흐음.’
목경운의 입술이 살짝 실룩거렸다.
암종주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한 건지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동질감이었다.
‘신기하네.’
난생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목경운만이 아니었다.
나율량 역시도 목경운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호오.”
보통 사람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기묘한 느낌.
그것이 이 녀석에게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았으면서도 눈이 마주쳤는데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에서 나율량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재밌군.”
“무슨 말씀이신지?”
“너··· 동류로구나.”
이런 나율량의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자도 자신과 같은 느낌을 받은 건가?
동질감, 동류.
[쿨럭쿨럭······ 약조해라.] [무엇을 말입니까?] [절대로 네 본성을··· 드러내지··· 않겠다고···.]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경고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본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이다.
할아버지가 곁에 있을 때는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피를 보게 되면서 억눌러왔던 본성이 깨어났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두고서 살성(殺性)이라고 했지만 목경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갇혀있는 자신의 해방이었다.
‘다르다라.’
이래서 나율량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한 것이라면 자신 또한 그 범주에 포함되는 것인가?
참으로 흥미롭다.
그러는데 나율량이 목경운에게 말했다.
“볼모로 정파로 잡혀 온 녀석이 왜 본 회에 투항했는지 궁금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구나.”
“······.”
“네놈은 정의니 뭐니 그런 고리타분한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군.”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본심을 드러내려다 이내 대답을 선회했다.
“그저 천지회가 저와 더 맞았을 뿐입니다.”
동질감을 받은 것과 별개로 입장의 차가 있었다.
상대는 회주의 첫째 제자인 대공자다.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위치도 그렇고 무위도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었다.
-슥!
그때 나율량이 뒷짐을 지고서 목경운의 주위를 빙그레 돌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훑으면서 살피고 있었다.
동류를 떠나서 관찰당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네 기운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참으로 기이하군. 이런 수법은 어디서 배웠느냐?”
직접적인 물음에 목경운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암종주께 배웠습니다.”
“암종주?”
“네.”
“희한하군. 암종주의 기운이 여타의 것과 달리 음기(陰氣)의 성향이 짙다고는 하나, 그것이 스스로를 완전히 통제해서 숨길 수준은 아니다.”
“······.”
나율량의 말투를 보면 마치 그 자신이 암종주 보다 한 수 위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한데 이를 마냥 부정하기도 힘든 것이 나율량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단전 한 곳으로 강하게 응집되어 있었다.
응집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곳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기운은 당장에라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강하다.’
어느 정도로 강한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지금 봐서는 오히려 오왕(五王) 급에 비견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암종주가 둘째 제자 장능악, 셋째 제자 위소연보다 더 뛰어나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는데 나율량이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
“벌써부터 숨기려 드는구나.”
“아닙니다. 제가 어찌 대공자께 그러겠습니까?”
“그래?”
“그렇습니다.”
“좋아. 이 정도는 무인으로서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 처음이니까 그냥 넘어가겠다. 뭐 내 진짜 볼 일은 그게 아니니까.”
그 말과 함께 나율량이 갑자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고민하는 것처럼 목경운을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는 어찌 안 것이냐?”
“아까라면?”
“본 공자가 누군지 어찌 알았지? 목소리도 변조했고 나와 마주친 적도 없을 터인데 말이다.”
정보나 기물을 담당하는 암종주의 제자로 들어갔으니 외양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는 있다고 치지만 보지도 않았는데 알아맞췄다.
나율량은 그 의문을 풀고 싶었다.
이런 그의 물음에 목경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림짐작이었습니다.”
“짐작?”
“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짐작만으로 본 공자가 누군지 맞췄다라······.”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닙니다.”
“아니라고?”
“섬독왕 어른께 유일하게 방문하지 않은 것이 대공자이셨고 제게 접촉하려고 했던 둘째 공자와 셋째 아가씨의 심복들을 기절시킨 것이 걸려서 그리 짐작했습니다.”
이런 목경운의 말에 나율량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셋째 사제의 제자를 기절시킨 건 몰라도 둘째 사제의 심복이 어디 있다는 거지?”
이에 목경운이 손으로 담벼락 모퉁이를 가리켰다.
그곳은 풍겨져 나오던 기운이 일순간 줄어들었던 곳이었다.
“둘째 공자의 수하인 초연단의 단주 서혜인을 기절시키지 않았습니까?”
‘!?’
이 말에 나율량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기감으로 누군가 몰래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보다 그게 누군지 맞춘 것에 놀라워서였다.
“네 녀석······ 기감이 매우 예민하구나.”
“그럴 리가요. 대공자께서 있는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런 목경운의 말에 나율량이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찌 보면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모습이 잘 어울리는 그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들을 기절시켜서 그리 짐작했다고?”
“네. 굳이 저와 접촉하여 산하로 끌어들이려는 자들을 주군인 둘째 공자나 셋째 아가씨께서 느닷없이 기절시킬 리도 없고···.”
“설령 다른 간부들이라면 그들을 기절시킬 이유도 더더욱 없을 테니까 말이냐?”
“네.”
이런 목경운의 대답에 나율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위만 제법인 줄 알았더니, 머리도 그럭저럭 잘 굴리는구나.”
“······과찬이십니다.”
“사제들에게 넘긴다면 그럭저럭 겨루는 재미는 있었겠지만 이렇게 직접 보고 나니 그러지 못하겠구나.”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은 생각했다.
역시 대공자도 자신을 산하로 끌어들이려 하는 건가?
한데 그의 입에서 예상과 다른 말이 나왔다.
“너도 너 자신이 본 공자와 비슷한 동류임을 느꼈겠지?”
“······.”
“그래서 말인데 생각이 바뀌었다. 너 같은 녀석은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거나 그런 게 아니면 지금 당장 죽이는 게 좋을 듯하구나.”
-솨아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공자 나율량의 검결지에 푸른 예기가 결집했다.
그것은 검강(劍罡)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