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67)
원래 위소연은 천지회 산하에 있는 명문 무가 출신이었다.
영창위가(英槍潿家).
창을 다루는 무가의 차녀로 태어난 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병약하여 늘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처지였다.
위가의 가주는 타고난 무재가 낮아 그 무위가 완숙한 절정에 불과했기에 차녀인 위소연이 그저 평범한 절맥증에 걸려서 몸이 약하다고만 여겼다.
해서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고 평범하게 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가의 피를 이어받은 그녀는 다른 남매들과 마찬가지로 가문의 무공을 배우고 싶어 했다.
마냥 침상에 누워서 지켜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친이나 가족들이 모르게 무공을 연마했다.
하나 천음절맥을 타고난 그녀가 자의로 무공을 익히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천음절맥이 폭주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아아아악!]폭주하는 그녀의 기운을 제어할 수 없었던 위가의 가주 위현은 조부 시절에 공로로 받은 증패를 가지고 내성으로 위소연을 데려갔다.
오직 내성에 있는 의원이나 간부들만이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여기서 공교로운 일이 벌어졌다.
[회, 회주를 배알합니다!] [아아아. 예는 됐네.]내성에서 진료를 받고 있던 회주가 찾아온 것이었다.
부친조차 한 번도 존안을 뵌 적이 없다는 회주가 자신을 찾아오다니······.
그런 회주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역시인가?]뭐가 역시라는 거지?
고통 속에서도 그 말이 의아했는데, 회주의 입에서 더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이 아이를 살리고 싶나?] [그. 그렇습니다.] [하면 이 아이를 본좌에게 넘기게.] [네?] [못 들었나? 본좌에게 넘기라고.]그렇게 회주의 눈에 띈 그녀는 그 자리에서 제자로 거둬지게 되었다.
천음절맥이라는 진기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기이한 절맥증에 관심이 있었던 회주는 그녀를 제자로 받아 이를 고쳐보려고 했다.
그러나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육천(六天)의 일인인 그조차도 결국 천음절맥을 완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절맥의 경로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운기법으로 폭주하려 하는 기운을 억누르는 것만이 한계였다.
회주의 창안한 이 금문요결의 운기법은 매우 탁월하고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강해져 가는 천음절맥의 폭주로 인해 그녀는 주기적으로 전신의 혈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아아악!]이 고통의 주기는 해가 갈수록 짧아져 갔다.
처음에는 몇 달에 한 번, 그러다 두 해가 지나자 두어 달에 한 번, 또 한 해가 지나자 한 달에 한 번 폭주가 일어났다.
위소연은 점점 직감하고 있었다.
이 주기가 더 짧아지게 된다면 언젠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거라 말이다.
‘정말 천음절맥의 저주는 고칠 수가 없는 것인가?’
이렇게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아니 애초에 운명은 스무 해도 넘기기 힘들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스무 해를 넘겼다.
이것도 사부님이 창안한 금문요결 때문이리라.
폭주의 주기가 짧아질수록 끝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위소연은 갈수록 차가워지고 웃음마저 잃어갔다.
삶에 특별한 의욕이 사라져간다는 것이 맞을 거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죽게 된다면 과연 자신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떠나게 될 것인가?
‘······무의미한 죽음이 되는 건가.’
겨우 생명을 연장하다 죽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그녀는 결심하게 되었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자고 말이다.
그 하나의 목표가 바로 천지회의 정점인 회주였다.
[쿨럭쿨럭. 네게도 기회를 달라고?] [네.]위소연은 병상 중인 사부를 찾아가 청을 했다.
되든 안 되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해보기로 한 그녀였기에 밑질 것 없는 일이었다.
[제 몸조차 아직 어찌하지 못하면서 회주가 되고 싶다고?] [······네.]역시 안 되는 건가?
한데,
[하하하하하하핫. 쿨럭쿨럭······참으로 재미있구나. 당장에라도 세상 끝날 것처럼 죽은 눈빛만 하던 녀석이 느닷없이 회주라······역시 말씀대로 닮았······쿨럭쿨럭.] [네?] [아니. 좋다. 좋을 대로 하거라. 자질이 있다면 누구라도 회주의 자격이 있는 법. 한 번 후계자에 도전해 보거라.]그렇게 회주는 공언을 했다.
세 제자들 모두가 후계자의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그로 인해 본격적으로 세 제자들 간에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삶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이 경쟁에 모든 것을 걸고 불태울 작정이었다.
그것이 태어나 자신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무언가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쿵! 쿵! 쿵!
포기했던 삶에 기적이 일어났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 덕분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던 인생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리게 되었다.
‘심장이 왜 이러는 거지?’
목경운을 바라보는데 부끄러운 감정보다도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얼굴이 뜨겁게 느껴질 만큼 화끈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일까?
도저히 익숙하지 않다.
목경운의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자신도 모르게 목경운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슥!
그 덕분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목경운이 이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순간 당황한 위소연이 안절부절못했다.
이런 그녀를 목경운이 빤히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자 위소연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왜······왜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그렇게 쳐다보면 너무······.’
나신으로 있어서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눈빛이 부담돼서 그런 건지 더욱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런 그녀와 달리 목경운의 사고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쩌지?’
원래의 목적과는 틀어졌다.
청령의 기운이 왜 떨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빙의가 되지 않은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성공할지 아닐지를 알기 어려웠다.
‘빙의가 안 된다면 괜한 짓거리를 한 셈이네.’
차라리 그녀의 기운이 폭주해서 죽게 내버려 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위소연보다 둘째 제자인 장능악을 먼저 찾았어야 했다.
둘 다 빙의시킨 후에 두 세력을 규합하려고 했던 계획이 첫 수부터 틀어진 셈이었다.
목경운이 위소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죽일 수도 없고.’
당장에 죽이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회주에게서 단서를 얻어야 하기에 그를 지금 적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 상대할 수도 없고 말이다.
‘계획을 바꿔야겠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빙의가 안 된다면 차라리 위소연을 육인강령술로 생시귀로 만들까?
한데 그게 가능할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몸 속에 막혔던 기운을 뚫고 나서 위소연의 불안정했던 기운이 가라앉고 오히려 전보다 훨씬 무위가 상승했다.
육인강령술이 통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위소연을 통제할 방법이 필요한데 어찌하면 좋을지······.
그때였다.
목경운의 뺨에 손을 갖다 대던 위소연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야, 약조 지킬 수 있다.”
‘!?’
약조?
무슨 약조를 한 게 있던가?
하던 목경운은 그녀가 했던 말을 되짚다가 마침 그것을 떠올렸다.
[날 가지고 싶나? 그럼 이 저주받은 힘도 꺾어봐라.]‘응?’
지금 그걸 얘기하는 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위소연이 새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서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넌 내 목숨의 은인이다.”
“은인요?”
“그······그래.”
“······.”
목경운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무 빤히 쳐다보자 목경운의 심경을 알 수 없었던 위소연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안 그래도 이 말을 하기까지 너무 부끄러웠는데, 왜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만 보는 것인가?
본인 입으로 자신을 가지고 싶다고 했고 목숨까지 걸고서 이렇게 천음절맥까지 극복하게 해주지 않았는가.
해서 인정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뜸 들이는 거지?
아니면 설마 다른 말이라도 원하는 건가?
안절부절못하던 위소연이 이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나······나도 네가······싫진 않은 것······같다.”
“······.”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눈빛이 묘해졌다.
목경운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이 감정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여자 이제 자신을 남자로 보고 있었다.
‘감정······.’
아직은 낯선 영역이다.
그러나 이 감정은 충분히 다뤄볼 가치가 있었다.
단순히 말로 얽매이는 충성과는 좀 더 다른 개념의 것이니 말이다.
목경운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그러더니,
“싫지 않다면 좋다는 말과 같군요.”
“뭐? 아,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바로 그때였다.
목경운이 그녀의 가녀린 등허리를 한 손으로 휘어 감았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와락 끌어당겼다.
그로 인해 나신으로 있던 두 사람의 살결이 완전히 맞닿았다.
“히익!”
위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갑자기 목경운의 행동에 당황한 것도 당황한 것이지만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했다.
기옥련을 비롯해 주변인들로부터 남녀 관계에 대해서 흘러가듯이 듣기는 했으나, 시한부 인생의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그렇게 흘려들었던 말들이 새삼 갑자기 떠오른다.
‘······감당이 안 되잖아.’
위소연은 얼굴이 타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목경운이 속삭였다.
“그럼 제 여자가 될 건가요?”
“네······네 여자?”
그 말에 위소연의 눈빛이 떨려왔다.
누군가 여자가 된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목경운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이런 말까지 들으니 얼굴이 뜨겁다 못해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죠?”
“······.”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걸로······.”
-슥!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이 허리를 감싸던 손에 힘을 풀려고 했다.
그러자 위소연이 황급히 두 손으로 목경운을 목을 감싸 안으며 쑥스러움이 극에 달해서 말했다.
“누, 누가 싫다고 했느냐? 그······그저 너무 빠르구나. 아직 우린 서로를······.”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겠군요.”
“뭐?”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악!”
아래에서부터 느껴보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감각에 위소연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그녀가 허리를 움찔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드······들어왔어.’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절맥의 고통을 오랫동안 겪어왔던 그녀에게 이것은 전혀 고통 축에 속하진 않았다.
다만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들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좀 더 부드럽게 하는 과정을 겪게 될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거침없이 들어오다니.
“하아······하아······너······너무 갑자기······.”
“서로를 알아보자면서요.”
-화끈!
이런 목경운의 말에 위소연이 움찔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다 목경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녀석이 보기보다 왜 이렇게 직설적이고 짐승 같은 거지?
너무 부끄러웠다.
주변에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은 자신들뿐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마당 한가운데서 느닷없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왜 그러시는 거죠? 설마 부끄러운 건가요? 어차피 저희 둘뿐이잖아요.”
-슥!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이 허리를 움직였다.
“흐윽.”
예고도 없는 목경운의 움직임에 위소연이 얼굴을 파르르 떨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너······너 정말······.”
이 나쁜 놈.
자신을 허락한다고 했지만 왜 이렇게 몰아붙이는 거지?
위소연이 애원을 하듯이 속삭였다.
“제발 안으로······.”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그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위소연을 끌어안은 채 본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얼마 있지 않아 본당 안에서 격한 교성이 터져 나왔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