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75)
-족자라니? 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
이런 눈알의 대답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연히 눈알이 그 삼안(三眼)이라 확신했기에 시혈곡 비고의 괴물 너구리를 봉했었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정작 이 눈알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다는 건,
‘······이놈이 아니라는 거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하면 대체 누가 그 괴물 너구리를 그곳에 봉했다는 거지?
분명 눈 세 개를 가진 방사라고 했었다.
그때 눈알이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혈곡의 비고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간 적이 없다고요?”
-그래.
미간을 찡그리던 목경운이 눈알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너구리같이 생긴 이매망량을 정말 모르나요?”
-너구리같은···이매망량?
“네.”
그때 눈알이 심하게 떨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흡사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갑자기 이 눈알이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지?
의아해하는데,
-호···혹시 시해왕(弑海王) 구환천구(拘貛天狗)를 말하는 것이냐?
“구환천구?”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목경운이 반문했다.
설마 그 괴물 너구리의 이름인 건가?
그러는데 아까 전의 일로 쑥스러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여수린이 갑자기 놀란 얼굴로 관심을 보였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네?”
“혹시 구환천구라고 했나요?”
목경운이 여수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알고 있나요?”
“알다마다요. 스승님께서 알려주셨는걸요.”
“스승님이라면 그······.?”
“네. 그분요.”
적미노선(赤眉老仙).
여수린의 스승이자 방원육십사각 중 가장 신비롭다고 알려진 두 각 중 하나인 해선각(諧仙閣)의 각주이다.
여수린이 눈을 반짝이며 흥미롭다는 듯이 대답했다.
“스승님께서 알려주셨었거든요.
“그게 뭐죠?”
“응? 설마 상고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여섯 영수의 우두머리를 모르시는 건가요?”
“여섯 영수의 우두머리?”
당연히 알 리가 만무했다.
이런 목경운의 반응에 여수린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 정말 방술을 배운 방사가 맞는 건가?
그러는데 눈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들은 이매망량들의 정점에 계신 분들이시다. 인간 계집 네가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이매망량들의 정점? 혹시 신수인가요?”
외우고 있는 산해경괴이초서(山海經怪異初書)에 이르기를 괴이는 그 위험도와 힘에 따라 여섯 등급으로 나뉜다고 알려져 있었다.
가장 낮은 등급이 흉수(凶獸).
목경운이 처음 보게 되었던 여아산의 이매망량 구여가 바로 가장 격이 낮은 흉수였다.
물론 격이 낮다고 해도 어지간한 원혼들보다도 강하다.
그다음 사 등급이라 불리는 게 바로 괴수(怪獸)다.
시혈곡의 관문 도중에 만났던 그 돼지울음 소리를 냈던 늑대 형태의 괴물이 바로 괴수라 불리는 갈저였다.
그다음 삼 등급이 요수(妖獸)로 지금 목경운의 손에 날개가 붙잡혀 바둥거리고 있는 곤륜산의 이매망량 흠원이 여기에 속해있었다.
이다음은 이 등급인 마수(魔獸)인데, 여기서부터는 명성이 높은 방사들조차도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면서 움직이는 재앙이라 불린다.
그리고 한 마리만 나타나도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 불리는 이매망량들이 있는데 그들을 영수(靈獸)라 부른다고 했다.
이 영수는 수백 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한 존재들인데, 그중에 하나만 나타나도 성 하나가 초토화될 만큼 재해의 영역에 있는 이매망량들이었다.
‘신수.’
마지막 신수(神獸).
산해경에 이르길 신수는 수천 년에 한 번 나타날지도 모를 존재로 이것은 인간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천기(天氣)나 신벌의 영역이기에 한 나라가 멸망하고 인간의 씨가 마를 수도 있는 대재앙(大災殃)이라 하였다.
해서 목경운은 이매망량들의 정점이라기에 신수인 건가 싶었다.
그런데,
-신수? 애초에 그건 현세에 있을 수 없다. 요력이 그 정도 영역에 이르면 순리(順理)를 벗어난다.
“순리?”
-순리가 뭔지 모르는 거냐?
“그게 뭐죠?”
-이 세계를 지탱하는 것이 순리다. 하긴 인간이 그것을 알기는 어렵지.
“모호하게 말씀하시네요.”
-순리는 순리다. 그 영역을 벗어나게 되면 순리로 인해 경계의 저편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경계의 저편?”
의아해하는데 여수린이 끼어들었다.
“등선(登仙)을 말하는 거예요.”
“등선?”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청령에게 검(劍)과 무공을 배울 때 들은 적이 있었다.
[무공의 기원인 내공은 도가의 토납법에서 비롯되었다. 도가는 호흡법을 통해 내기를 다스리고 그로 인해 육신을 진화시킨다.] [육신의 진화? 혹 강해지는 걸 말하는 건가요?] [그것도 맞지만 도가에서 말하는 진화는 육신의 벽을 깨부수고 천기의 흐름을 깨달아 영적인 각성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인 각성?] [그래. 그걸 두고서 등선 혹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고 한다.] [우화등선?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가는 걸 말하나요?] [그래. 무공을 익히는 자라면 당연히 무로서 깨달음을 얻어 등선을 목표로 한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퇴색되어 그저 무(武)란 힘을 상징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타인을 죽이는 도구로 전락하긴 했지.] [호오. 한데 그게 사실이지 않나요?] [그래. 무의 본질은 애초에 도를 닦는 게 아니라 손쉽게 타인을 죽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나 더 높은 경지를 원한다면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있다.]이것이 청령의 가르침이었다.
그녀는 무를 익히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를 거라면 등선을 목표로 하라 하였다.
물론 목경운은 그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선인이 되는 것보다 복수를 위한 힘을 가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하나 궁금해서 묻기는 했었다.
[한데 청령. 실제로 등선을 한 자가 있기는 한가요?] [있다.] [중원 무종의 시초라 불리는 보리달마 대사와 무당파를 개파한 장삼봉 진인, 천둔으로 용의 목을 베었다고 알려진 검선이 있다.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기인이사들도 당연히 있겠지.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실제로 등선을 한 자가 있긴 있었군요?] [당연히 있으니 그걸 목표로 하는 게다.]청령이 말한 우화등선이 눈알이 이야기한 경계의 저편으로 넘어간 것을 의미하는 거라면, 인간 역시도 무(武)를 갈고 닦으면 산해경에서 말하는 신수(神獸)와 같은 영역에 이를 수 있다는 게 되는 건가?
뭔가 방술의 세계도 그렇고 무림도 그렇고 묘하게 끝으로 갈수록 이어지는 느낌이다.
생각이 깊어지는데 눈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인간들은 순리로 인해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등선이라 불렀던 것 같다.
“흐음. 그럼 당신이 말한 그 여섯 이매망량들이······.”
-육마.
“네?”
-지성을 깨우친 이매망량들은 그분들을 육마(六魔) 혹은 육마왕이라 부른다.
눈알의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기형의 이물이라 여겼는데, 이걸로 눈알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았다.
놈 스스로도 자신을 이매망량. 즉, 괴이의 존재라 인식하고 있었다.
하긴 이 정도 요력과 자의를 가진 존재가 그저 단순한 기형의 부산물로 치부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육마왕? 되게 거창한 칭호네요?”
“와···이건 저도 처음 알게 됐어요.”
여수린이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는 이매망량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지성이 있는 이매망량을 만나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그렇기에 이매망량의 입장에서 스승님께 들었던 여섯 영수의 우두머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눈깔. 더 이야기 해봐. 너희들이 말하는 육마랑 내가 알고 있는 여섯 영수의 우두머리가 같은지 알고 싶어.”
-······.
이런 그녀의 보챔에 눈알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이놈인데, 이 계집에게까지 이런 것을 알려줘야 하나 싶었다.
그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호칭이야 뭐라 부르든 상관없는데, 여튼 그 괴물 너구리를 구환천구라고 부른다는 거네요.”
-시해왕이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목소리.
이 반응만 봐도 눈알은 괴물 너구리에게 상당한 경외심을 느끼는 듯했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봉인되어서 힘이 그 정도로 약화되었는데도 엄청난 요력을 지녔던 괴물 너구리였다.
눈알이 두려워할 만도 했다.
“뭐 어쨌거나 시해왕이든 구환천구든 간에 그 정도 되는 괴물들이 여섯이나 있다는 거네요?”
-그래.
“그 존재들을 전부 알고 있나요?”
-모를 리가 있겠느냐.
이런 눈알의 말에 목경운이 잠시 고민했다.
굳이 그 존재들을 알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혹 모를 일이었다.
그 괴물 너구리 아니 구환천구 역시도 시혈곡의 비고에 봉인되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어느 정도 이런 존재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훗날을 위해 나쁘지 않았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하얀 소 영수는 뭐라고 불러?”
그때 여수린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에 목경운이 그녀를 귀찮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입술을 삐죽내밀며 말했다.
“저도 도와줬는데 이 정돈 물어볼 수 있잖아요.”
“······.”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에 여수린이 신이 난다는 얼굴로 히죽거리며 물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이가 수백 장에 이르는 그 하얀 소 영수를 뭐라고 해?”
-······대력왕(大力王)이다.
“대력왕? 오오. 이매망량들은 그 커다란 소 영수를 그렇게 부르네. 그럼 그 승천하지 못하고 타락했다는 교룡은?
-교마왕(蛟魔王)이다.
“북해의 그 날개가 하얗게 셌다는 붕새 영수는?”
-백붕마왕(白鵬魔王)이다.
“말 그대로네. 그럼 검은 날개를 가지고 날카로운 가시 갈기를 가졌다는 사자의 모습을 한 영수는?
-사타왕(獅拕王)이다.
‘흐음.’
여수린의 질문과 눈알의 대답 덕분에 목경운은 자연스럽게 영수들의 생김새와 그들의 칭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부러 그녀가 질문하게 내버려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데 여수린이 이어서 물었다.
“그 오지산(五指山)에 갇혔었다는 돌원······.”
-아니.
“응? 내가 뭘 물을 줄 알고 아니라고 하는 거야?”
-네가 말한 그 존재는 이미 오래 전에 순리로 인해 사라졌다. 더는 육마(六魔)에 속하지 않는다.
“아···스승님이 얘기한 것과는 좀 다르네.”
이런 여수린의 말에 눈알이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물었다.
-네년···대체 그 스승이라는 자가 누구지? 어떻게 오래 전의 육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지?
“헤에. 그러고 보니 눈깔 너 방사 행세를 했으니까 우리 스승님이 누군지 알겠네?”
-뭐?
“적미노선 들어봤지?”
-······설마 육방신 중 한 사람인 해선각의 각주?
눈알은 이름을 듣자마자 단번에 어느 각의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방일 조태청과 육신을 공유했기에 명성이 두터운 방사들의 존재는 당연히 숙지하고 있었다.
이매망량인 눈알에게 있어서는 숙적이니 말이다.
여수린이 의기양양 해하며 목경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봤죠? 이 기형의 요물도 스승님을 알고 있잖아요.”
“네네.”
무미건조한 목경운의 답변에 여수린의 입술이 오리처럼 삐쭉 나왔다.
이 사람 정말 방사가 맞긴 한 걸까?
자신의 스승님이 얼마나 명성이 높고 유명한데 이렇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거지?
보통 방사들이라면 어떻게든 연줄을 이어보려고 난리인데 말이다.
속으로 혀를 차던 여수린이 다시 눈알에게 물었다.
“아니. 오지산에 갇혔었다던 그 영수가 아니라면, 대체 남은 하나의 육마(六魔)는 대체 뭐야?”
-백면왕(百面王)이다.
“백면왕?”
-그래.
“백 개의 얼굴? 처음 들어보는데······.그 영수는 대체 뭐야?”
이런 여수린의 질문에 목경운의 손에 쥐어져 있는 눈알이 파르르 떨렸다.
시해왕 구환천구를 이야기할 때보다 더 심했다.
눈알이 쪼그라들면서 말문을 뗐다.
-육마 중에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대력왕보다도 더 최악이라 불리는 존재다. 그 존재는 악의(惡意) 그 자체이면서 모든 것을 멸망으로 이끈다.
“······멸망으로 이끈다고?”
-그 존재로 인해 상고시대부터 은, 주 등. 여러 나라가 멸망했지.
“은, 주? 설마 눈깔 네가 얘기하는 그 영수······.”
여수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알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빛 털에 아홉 꼬리를 가진 여우. 금모구미(金毛九尾)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