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76)
“은, 주? 설마 눈깔 네가 얘기하는 그 영수······.”
-그래. 금빛 털을 가진 아홉 꼬리의 여우 이매망량. 금모구미(金毛九尾)다.
‘!!!!!!!’
이런 눈알의 의미심장한 말에 여수린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금모구미? 여우의 모습을 한 이매망량인가 보죠?”
반면 목경운은 이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에 다른 육마(六魔)를 이야기했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였다.
“하···백면금모구미호······.”
“백면금모구미호?”
“들어본 적 없나요?”
“네.”
다른 영수의 우두머리들도 모르는 판국에 어떻게 알겠는가? 이런 목경운을 보며 여수린이 조금 전과 다르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느 이매망량들과 다른 존재에요.”
“다른 존재라뇨?”
“이매망량들이 보통 인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건 그들의 대다수가 인간 세상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흐음 그래요?”
“그런데 이것은 달라요.”
“다르다면 어떤 점이 말이죠? 그저 오래되고 강한 이매망량이 아닌가요?”
“산해경괴이초서(山海經怪異初書)와 같은 방사들이 보는 서적에는 당연히 괴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기록들이 서술되어 있죠. 한데 금모구미는 옛 고서와 심지어 사기(史記-역사)에마저도 그 기록이 남아있어요.”
“사기에 까지요?”
사기라면 나라에서 편찬한 정사나 다름없었다.
무림조차 기록에 남기기를 꺼리는 사가들이 그것을 남겼다니 이건 꽤 흥미롭다.
이에 묵경운이 말했다.
“사기에 관련된 서적들을 꽤 많이 읽었지만, 여우 이매망량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걸요.”
“최초의 기록은 은나라 주왕 시절이에요.”
“은나라······. 되게 오래됐군요.”
“네, 그때 사기에 적혀 있죠. 주왕의 첩인 수양을 잡아먹고 그녀로 둔갑한 여우 괴이가 왕을 타락시켜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정원을 만들어 향락을 즐기게 하고, 수많은 폭정을 일으키게 했다고. 그로 인해 은나라는 주나라 무왕의 손에 멸망해요.”
“아······. 얼핏 들어본 것 같네요. 달기라는 첩에게 빠져 나라를 망하게 만든 왕의 이야기. 한데 제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이게 진짜 사기의 진본이니까요.”
진본.
사기의 원본이라고도 한다.
원본의 사기에는 저자가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진실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은나라의 달기, 주나라의 포사, 천축국(天竺國)의 화양부인, 동영국(東瀛國)의 약조(若藻), 옥조전(玉藻前)······. 수많은 모습과 이름으로 나타나 한 나라의 국운과 역사를 좌지우지했어요.”
이런 여수린의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듣고 있다 보니 이 금모구미라는 이매망량은 여타의 괴이들과는 달랐다.
그녀의 말대로 인세에 많은 관여를 하고 있었다.
보통의 이매망량들이라면 인간을 먹이 그 이상 이하로도 잘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이 곤충이나 동물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 괴이 생각 이상으로 인간에게 관심이 많군요.”
“맞아요. 기이할 정도로 그래요. 그러니 인간들 사이로 스며들어 온갖 짓을 벌였겠죠.”
“왜 백면(百面)이라 불리는지 알겠군요.”
백면왕(百面王) 금모구미(金毛九尾).
이 오래된 대여우 이매망량은 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작게는 한 마을, 크게는 한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백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인간에게 관심이 많은 이매망량이라······.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성가신 존재네요.”
“성가신 정도를 넘어서 최악의 이매망량이에요. 스승님께서도 금모구미는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파고들어 타락시킬 수 있기에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타락······.”
감정을 파고들어 타락시킨다라.
참으로 기이한 이매망량이다.
왜 그런 짓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인간을 가지고 놀았다면 그 존재만큼 인간을 잘 알고 있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반복해왔다라······.
둘 중 하나같다.
‘유희(遊戲) 혹은······.’
“잠깐 생각해보니까 눈깔 너도 금모 구미호나 다를 바가 없잖아!”
그때 한참 금모구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여수린이 목경운의 손가락에 붙잡혀 있는 눈알을 흘겨보며 말했다.
이에 눈알이 파르르 몸을 떨며 애원했다.
-더, 더 이상 인간들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을 거다. 하니 부디 살려만 다오.
“네놈이 죽인 인간들이 몇인데 살려달라고 하기는. 목 공자, 그냥 콱 죽여버려요.”
여수린이 눈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그으며 혀를 내밀어 죽는 시늉을 했다.
“꽥.”
‘이런 개 같은 년!’
눈알이 속으로 여수린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그러다 목경운에게 애원했다.
어차피 선택권자는 이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알려달라는 걸 모두 알려주지 않았느냐? 제발 살려다오.
“아아. 그 전에 하나 더 물어볼 게 있네요.”
-무엇이든 물어봐라. 내가 아는 선에선 다 알려주겠다.
“당신 말고도 있죠?”
-······뭐?
눈알의 반문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눈알을 들어 올려 자신의 눈과 마주치며 말했다.
“좀 대답이 느렸네요.”
-아니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
“당신 말고 삼안이 또 있냐고요.”
-······.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반응을 보인 것은 오히려 여수린이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삼안이 더 있냐는 말은 대체?”
“시혈곡에 봉인된 목함 하나가 있어요. 그 목함 속에 봉인되어 있는 이매망량이 자신을 가둔 자가 방사 복장을 한 삼안(三眼)이라고 하더군요.”
“방사 복장을 한 삼안? 그럼 이 눈깔이잖아요?”
“저도 그럴 줄 알았죠. 한데 전혀 모르고 있어요. 안 그래요?”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좀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천지회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가······.
“목함에 뭐가 봉인된 줄 아나요?”
-······.
눈알이 입을 다물었다.
“안다면 얘기하시면 돼요.”
-······.
급격히 말수가 없어진 눈알의 모습에 여수린이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스승님이 말한 삼안은 이 눈깔이 틀림없었다.
두 요수(妖獸)를 식신으로 부리는 방사의 모습을 한 존재.
이놈이 아니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럴 리가요? 목 공자가 뭔가를 잘못 아시는 거 아니에요? 스승님께서는 천지회에 있는 삼안이 천기를······. 아!”
그러고 보니 스승님은 누군가를 지칭한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했다.
[가서 지켜보거라. 천지회에 세 번째 눈을 가진 자가 나타나 천기를 어지럽히겠구나.]“······그럼 이 눈깔 녀석은 대체 뭐죠?”
“삼안이죠.”
“하지만······.”
“다른 삼안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죠. 안 그런가요? 눈알 씨.”
이런 목경운의 말에 눈알이 멈칫하다 말했다.
-나는······정말······모른다.
“단순하네요.”
-뭐?
“육마니 뭐니 이런 얘기할 때는 두려워하면서도 잘도 지껄이더니, 또 다른 삼안 얘기를 하니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용을 쓰시네요?”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인간 나는 정말 모른다. 그래.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나 같은 존재가 더는 없겠느냐? 하나 나는 네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전혀.
-꾸욱!
-끄아아악!
“지금 여기서 죽는 것보단 얘기하는 편이 나을 텐데요.”
-끄아아아. 정말, 정말 모른다.
“제가 하는 말이 거짓 같다면 계속 그렇게 버티던가요.”
목경운이 더욱 손가락에 힘을 주자 눈알은 정말 짜부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금방이라도 터져서 흰 액체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자 눈알이 황급히 뭔가를 말하려 했다.
-마, 말하면 죽는다.
“네?”
-금술이 걸려있다.
“금술요?”
-그래.
“어떤 금술이죠?”
-모르겠다. 기억의 일부가 통으로 날아가 있는데, 이걸 억지로 떠올리려 할 때마다 술식이 발동해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흐음.”
목경운이 수인을 맺으려 했다.
-하, 하지 마라. 나 역시도 억지로 금술을 해(解)하려다 몸이 터질 뻔했다.
“그래요?”
-널리 알려진 여든여섯 개의 해식과 비술식 열세 개로도 소용없었다. 나도 알려주고 싶지만, 목숨이 달려 있기에 이것만은 어쩔 수 없다. 제발 살려······.
“아, 그럼 더는 볼일이 없군요.”
-뭐?
“보내드리죠.”
-아!
자신을 살려주는 건가?
한참 긴장했던 눈알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쏙!
‘!?’
그 순간 주위가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와 함께 무언가에 의해 눈알은 그대로 으깨 지고 말았다.
-우적우적!
-끄겍!
“히익!”
여수린이 목경운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 미쳤어요?”
-우물우물!
목경운이 눈알을 꼭꼭 씹다가 이내 그것을 삼키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매망량의 눈알은 이런 맛이었군요.”
“네?”
“짜고 텁텁하네요.”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런 목경운의 말에 여수린은 진심으로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눈알을 먹었어도 비위가 상할 판국인데, 이형의 기물이라 불리는 삼안을 냅다 먹어버리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와! 이거 진짜 상또라이네.’
이런 놈은 처음 본다.
자신도 스승님과 사형들에게 독특한 세계관을 지녔다고 들었지만, 이 남자는 진심으로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다.
뭔가 묘한 광기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어?”
멀쩡하던 목경운의 눈이 갑자기 하얗게 뒤집히더니 파르르 떨려왔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설마 삼안 그 눈알을 먹고 탈이라도 난 건가?
“저기요? 괜찮아요?”
여수린이 목경운에게 다가가려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붙들린 날개를 뿌리치려 하는 요수 흠원 때문에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끼워어어어어!
“하필 지금!”
여수린이 황급히 허리춤에서 부적을 꺼내 들며 왼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아까 전에는 운이 좋아 요수 토루를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애초에 요수 급에 이르는 이매망량은 방일에 가까운 자신이라 해도 쉽게 상대할 수가 없었다.
-팍!
그때 흠원의 날개 한쪽이 풀려났다.
아무래도 목경운의 상태가 좋지 않아져 손힘이 약해져 풀려난 것 같다.
‘아니. 뭐 하러 그딴 걸 먹어가지고.’
이렇게 곤란한 상황을 만든 거지?
이 남자 정말 피곤하다.
-팍! 팍! 팍! 팍!
‘열(裂)! 재(在)! 진(陣)! 개(皆)!’
지장인에서 일륜인, 그리고 이어지는 내박인과 외박인.
육인지박술(六人止搏術)의 수인이었다.
그와 동시에 부적은 일순간 요기를 약하게 만들어주는 수호신의 염이 담겨 있었다.
-펄럭펄럭!
요수 흠원이 거대한 날개를 활짝 폈다.
날개를 펴자 그 속에는 기이한 문양이 보였는데, 마치 거대한 두 눈의 형태라 그런지 섬찟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요력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방사들은 다리가 후들거릴 수준이었다.
여수린이 이를 악물었다.
“덤벼. 이렇게 보여도 방신 적미노선의 수제자라고.”
그와 함께 여수린이 요수 흠원을 향해 수인인 개(皆)를 가리키며 육인지박술을 펼치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만.”
그 외침이 들리기 무섭게였다.
두 날개를 활짝 펴 공격하려 들던 요수 흠원이 이내 날개를 접었다.
그러더니 마치 굴복하는 것처럼 머리와 상체를 아래로 낮추는 것이 아닌가.
그 대상은 놀랍게도,
“어?”
목경운이었다.
여수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요수 흠원이 왜 목경운의 명령을 듣는 거지?
잠깐만 생각해보니 그것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목경운이 삼안의 눈알을 씹어서 삼켰으니 그 주인을 잃은 식신들은 당연히 연(緣)이 끊어지면서 소멸되거나 죽어야 한다.
그런데 요수 흠원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이지?
그녀로서는 어찌 된 일인지 정말로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를 그나마 이해하는 것은 목경운의 품속 목각인형에 있는 청령 뿐이었다.
-하! 이게 되는구나.
-네. 이게 되네요.
식신으로서 연을 맺고 있는 삼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목경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이것을 먹어버렸다.
여태껏 원혼의 그릇이나 매개체를 먹어 식신으로 만든 전적이 있기에 혹시 했는데, 그것은 정말로 성공했다.
식신의 연이 옮겨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이한 일이 벌어졌는데,
‘눈이······.’
삼안을 먹고 나서 그 요력을 흡수했는데, 그것이 유독 오른쪽 눈으로 집중되었다.
이를 귀안을 개방할 때의 감각처럼 삼안의 요력을 해방했더니 놀랍게도 기운의 흐름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고오오오오!
‘이것 봐라?’
심지어 아까 전 자신이 휘둘렀던 검의 경로가 잔여 사념으로 변해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진기에 흔적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력이 술법으로 변해가는 형태마저도 잔여 사념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이에 목경운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이거 쓸 만한데?’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