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87)
“히힛.”
결국은 본인의 뜻대로 여자인 사악(四岳) 초연단의 단주 서혜인의 몸에 빙의하게 된 규소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히죽거렸다.
그런 규소하를 보며 청령이 혀를 찼다.
-쯧쯧. 저리 좋아하면서 뭐가 본인이 남자라고 우겨대는지 모르겠구나.
-그렇네요.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규소하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패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 거냐?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중생 네놈이 의도한 대로 둘째 제자인 장능악과 막내 제자 위소연 일파를 네 손아귀에 넣은 셈이긴 하구나.
-아직 완전히는 아니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제대로 된 전력들까지 움직일 수 있어야 두 집단을 합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죠.
이런 목경운의 말에 청령이 제법이라는 듯이 말했다.
-호오? 그래?
-이게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요?
-그래. 그 말이 옳다. 애송이 심복들이야 제 주인들의 말을 따를지 모르나 진짜배기들은 다르지.
청령이 말하는 진짜배기.
그것은 두 후계자의 심복들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심복들의 대다수는 차세대를 책임지게 될 후기지수들이었으나, 현재는 그들의 뒤에 있는 간부들이 진짜 실세였다.
-두 세력을 급격하게 합치려 한다면, 그 배후인 간부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그렇겠죠.
장능악이나 위소연을 따르는 심복들은 비슷한 연배의 후기지수들이다.
그런 그들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주군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령의 말대로 간부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利)에 벗어나게 된다면 다르게 나올 확률이 높았다.
-그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둔 게 있느냐?
-글쎄요.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청령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진심으로 묻는 거냐?
-네.
-······중생 너 본좌에게 조언을 구하는 거냐?
-네, 그런데요.
-하?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기껏 해주는 조언은 듣지도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녀석이 말이다.
-조직을 다루는 건 청령이 저보다 더 익숙해 보여서요.
-······
-아닌가요?
-······흥. 괜한 소리를 하는구나.
-좋은 방안이 있으면 알려주시죠. 대공자 나율량이 깨어나 제 목을 노리기 전에 준비는 해둬야죠.
이런 목경운의 말에 청령이 의외라는 듯이 목각인형 속에서 바라보았다.
하는 행동을 보면 끝까지 제멋대로 할지도 모르겠구나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조언을 조금씩 차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렇게 조직을 다루는 일에는 말이다.
‘이 녀석······. 수장으로서도 자질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의외의 면이었다.
여태껏 지켜봐 왔던 목경운은 타인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 독고(獨孤)에 가까웠다.
그런데 조직을 갖춘 적을 상대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판단력과 통찰력이 그에 걸맞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두머리로서의 자질이었다.
우두머리는 그저 위압이나 고집만으로 조직을 끌어가는 게 아니라, 넓은 시야로 상황을 관조하고 통찰하여 적재적소에 인재들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목경운은 점차 그것을 본능적으로 행해가고 있었다.
‘무공만 성장하는 게 아닌 건가?’
참으로 묘한 녀석이다.
하나가 특출나면 다른 하나는 부족하기 마련일 텐데, 여러 방면으로 성장하는 게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내심 기특하게 여기고 있는 그녀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별다른 방안이 없다면······.
-사람들을 움직여라.
-사람들을 움직이라고요?
-그래.
-어떻게 말이죠?
-너 혼자서 백날 뛰어봐야 배후의 간부들까지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나 사람들을 움직인다면 좀 더 수월해지겠지.
-······.
-와 닿지 않나보구나. 이에 관련하여 좋은 예가 있지.
-어떤?
-섬독왕 그 늙은 중생이 주변을 정리하고 암종주와 현 상황을 이야기하고 동맹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너는 어떻게 했느냐?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 늙은 중생에게 그걸 맡기고 네 할 일을 하지 않았느냐?
-그렇죠.
-그 늙은 중생은 네 식신도 아니고 약점을 붙잡은 것도 아닌데, 왜 그걸 아무렇지 않게 맡겼느냐?
-그건······.
목경운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것은 청령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청령이 사람을 움직이라 한 것은 단순한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한 말의 진짜 의미는,
‘······믿으라는 건가?’
목경운은 타인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형수가 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누구도 믿지 않고 혼자 움직였다.
하나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혼자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에 봉착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원수라 여기던 자가 무림인이 아니었거나, 천지회 같은 거대한 조직과 연관된 자가 아니라면 여전히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거대한 조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패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믿는다라······.’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다양한 패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기에 식신들을 조금씩 늘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원혼을 식신으로 만들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식신을 무한정으로 늘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라? 하나가 더 있었군요.]하석에 있었던 무인 중에 원혼 하나만 탄생하는 줄 알았더니, 그때 두 개체가 만들어지려 했다.
그래서 목경운은 그 하나의 원혼 역시도 식신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연(緣)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로구나.] [역시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연은 말 그대로 운명(運命)을 강제로 잇는 것이나 다름없다. 운명은 필연적이고 법칙의 굴레나 다름없는데 이것을 애초에 무한정 늘려나간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한계가 있는 걸까요?] [-연이 무한하게 이어진다면 그거야 말로 오히려 필연을 해치는 거겠지.]목경운은 죽지 않았기에 죽은 자의 깨달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식신을 늘리는 행위 자체는 필연과 법칙을 어기는 것에 가깝기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식신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식신을 늘려서 활용할 수 있는 패를 늘리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별수 없나?’
청령의 말대로 패를 늘리기 위해서는 적당히 그 ‘믿음’이라는 게 필요할지도 몰랐다.
이를 생각하던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누군가를 절대로 믿지 못하는 자신이 활용할 패를 늘리기 위해 타인에 대한 믿음을 고찰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청령이 그런 목경운에게 말했다.
-중생 네놈도 참 특이하구나.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녀석이 정작 사람을 믿지 못한다니 말이야.
-모순이려나요?
-모순(矛盾)······. 그래 네게 딱 어울리는 말이구나. 한데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무엇이요?
-중생 너는 어찌해서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글쎄요. 굳이 믿어야 하나요?
이런 목경운의 무미건조한 되물음에 청령이 속으로 혀를 찼다.
‘특이한 녀석.’
자신처럼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다면 모를까.
고작해야 약관의 세월도 살지 못한 녀석이 이렇게까지 타인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저 보통 사람들과 궤를 달리하는 사고를 지녀서?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녀석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변칙성과 의외성 투성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게 다가 아닐 것 같았다.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녀석이 궁극적으로 행하려는 것은 복수였다.
그 복수의 과정을 지켜본다면 목경운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사람을 믿지 못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그전까지는,
-뭐 누군가를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다만. 하나의 조직을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게다.
-그리 말씀하니 명심하죠. 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둘째 제자 장능악 쪽에서 가장 중요한 패는 무엇일 것 같으냐?
-호종혁의 사부겠죠.
부멸단의 대단주 호종혁의 부친이 상위 간부인 오왕(五王)의 일인이자 현 중원 무림의 최고수라 꼽히는 팔성(八星)의 일인인 파부왕 호태강이었다.
-그래. 그 자가 장능악을 지지하는 세력의 주축이겠지.
-그를 움직인다면 다른 자들도 자연히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겠군요.
-맞다. 하니 파부왕은 호종혁으로 움직여라.
-일리가 있군요.
호종혁에게는 위맹천이 빙의해 있었다.
식신인 위맹천은 목경운의 명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에 그 육신의 부친인 파부왕 호태강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장능악 파벌 쪽이 아니라 위소연 파벌 쪽이다.
-······그렇겠군요.
-위소연 파벌의 가장 큰 지지자이자 주축은 너를 좋아하려고 해도 좋아할 수 없겠구나.
위소연 파벌의 가장 큰 지지자.
그는 오왕의 일인인 명도왕 손윤이었다.
청령의 말대로 천지회에 들어와서 가장 관계가 꼬인 것이 명도왕이었다.
제자로 받아준다고 한 것도 거절했었고, 그의 제자들인 우호랑, 엽위선과의 관계도 거의 악연에 가까웠다.
심지어 명도왕 손윤이 새로이 받은 제자 목유천도 그랬다.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만사가 형통할 순 없으니까요.
-곧 죽어도 본인의 파놓은 무덤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구나.
-이미 벌어진 일을 따져봐야 의미가 있나요?
-쯧쯧. 하여간.
청령이 혀를 찼다.
그리고는 이내 말했다.
-어차피 그쪽은 네가 움직여봐야 관계가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니, 다른 사람을 움직여라.
-제자들 쪽은 이미 그른 것 같은데요.
우호랑도 그렇고 엽위선도 목경운을 위해 움직일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위소연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으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더더욱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차라리 암종주나 섬독왕을 통해 구슬리는 편이 낫겠구나.
-암종주나 섬독왕을 통해서요?
-그래. 같은 간부가 움직이는 편이 설득하기 용이하겠지. 하나 암종주보단 섬독왕이 나을 게다. 왜 그러는지는 중생 네놈이 잘 알겠지?
이런 청령의 말에 목경운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암종주 역시도 시혈곡 종관식에서 목경운을 얻기 위해 명도왕 손윤과 대립각을 세웠었다.
그런 그가 나서서 두 파벌이 힘을 합치는데, 일조해달라고 한다면 과연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그럼 빠르게 움직여야겠군요.
밤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공자 나율량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빠르게 연합 체계를 구축해야 했다.
* * *
장능악의 거처를 나온 목경운은 서둘러 섬독왕 백사하의 장원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에 헐레벌떡 달려오는 한 암종의 무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공자! 여기 계셨군요.”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암종주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사부님께서요?”
“네, 매우 시급한 일이니 당장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시급한 일?’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런 거지?
혹시 섬독왕 백사하가 대공자 나율량과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동맹을 맺자고 한 것 때문에 그런 건가?
한데 지금은 백사하를 찾아가 먼저 명도왕 손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에 목경운이 말했다.
“알겠어요. 일단 잠시······.”
“지금 당장 가셔야 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먼저······.”
목경운의 말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암종의 무인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안 됩니다. 지금 당장 가셔야 합니다.”
“아아, 이것 참 난감하게 하시네요. 암종으로 금방 돌아······.”
“암종이 아닙니다.”
“네?”
“지금 암종주께서는 내성 본관에서 회주님을 알현하고 계십니다.”
‘!?’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의 표정이 바뀌었다.
암종주가 천지회 회주를 알현하고 있는데 급히 자신을 불렀다고?
이 말은 결국······.
‘그 자와 만날 수 있는 건가?’
회주와 접촉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후계자들의 산하로 들어가려 했던 목경운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만남의 기회가 찾아왔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