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89)
반 시진 전.
암종주 환야선이 다소 긴장한 눈빛으로 회주전 침소 입구 앞에 섰다.
‘이게 얼마만인 거지?’
병환이 깊어진 후로 상당히 오랫동안 그 얼굴을 보지 못했던 회주였다.
기밀을 담당하는 암종의 수장인 자신에게조차 부회주를 통해서 지령을 내렸을 만큼 회주를 보지 못했던 그였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호출했다.
그렇기에 내심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짐작 가는 것이 한 가지 있기는 했다.
‘······설마 부회주 쪽에서 알아낸 건가?’
그런 거라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간 회주에게 그 정보가 가지 못하도록 얼마나 신경을 썼던가.
부디 자신이 우려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랐다.
-끼이이익!
그때 처소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자는 다름 아닌 부회주 몽서천이었다.
-탁!
암종주가 표정 관리를 하며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모아 포권지례를 했다.
“오호호. 부회주께 인사올립니다.”
그런 그의 인사에 부회주 몽서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묘한 표정으로 암종주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제자 분은 어찌 데려오지 않은 것이오?”
“제자는 잠시 제 심부름으로 출타 중이라 아랫사람을 보내 데려오도록······.”
“하면 들어오시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부회주 몽서천이 몸을 돌리며 손짓을 했다.
평소보다 상당히 냉담해 보이는 모습에 암종주 환야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거 아무래도 우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곤란한데.’
아직 정확한 위치와 완벽한 퇴로를 확보하지 못했기에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회주가 그것을 알아낸다면 상황이 제대로 꼬인다.
그리된다면······.
‘······.’
환야선이 작게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입을 가리며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등불 몇 개가 켜져 있는 회주의 처소는 몇 번이나 온 적이 있었지만, 오늘따라 실내 전체가 무겁고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병환 중인 사람의 처소 공기가 차가울 리는 없었고 아마도 긴장이 커져서이리라.
-저벅저벅!
걸음이 무겁다.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상대는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육천(六天)의 일인인 천지회의 회주였다.
그를 대면하는 일은 아무리 그라고 해도 거북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넓은 처소의 벽면에 붙어있는 커다란 침상.
그런 침상에는 얇은 천으로 이루어진 발이 처져 있어서 희미하게 그 안이 보였다.
-슥!
부회주가 두 손을 모으며 앞에 서서 말했다.
“암종주가 왔습니다.”
“쿨럭쿨럭.”
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부회주의 뒤에 선 암종주 환야선이 황급히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회주를 배알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환야선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회주의 상세가 어느 정도 차도가 있는지 궁금했던 차였다.
그런데 기침 소리에 섞인 긁는 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병세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졌다.
‘희한하군.’
회주 정도 되는 내가고수가 어째서 이렇게 병환이 오래가는 걸까?
‘그자에게 회생할 수 없는 내상을 입은 게 확실한가?’
회에서도 이를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렇게 극소수만 아는 이유는 당연히 회주의 내상이 예상보다 심한 것도 있었고, 그자와의 대결에서 끝내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너무 길긴 했다.
회주 정도로 심후한 내공을 지닌 내가고수라면, 이쯤 되면 스스로 내상을 치료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의아해하게 여기던 찰나였다.
“암종주.”
오랜만에 듣게 되는 회주의 목소리였다.
“네, 말씀하십시오.”
“혹 본좌에게 할 말이 없나?”
“······.”
순간 암종주 환야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 부른 연유에 대한 이야기가 사전에 있을 거라 여겼는데, 다짜고짜 이런 식으로 확 치고 들어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나 환야선은 이런 일에 쉽게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아아아. 병세는 좀 괜찮으······.”
“황궁.”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단 한 마디를 꺼내는데 환야선은 목이 막혀왔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나 부회주 측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게 정보를 교란했는데, 역시 막지 못한 모양이다.
‘무리였군.’
황궁만 아니었다면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 기회를 놓친 듯하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빠르게 고민하던 차였다.
앞에 있던 부회주 몽서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본인이 알아낸 걸 본 회의 정보부처인 암종에서 모른다는 겐가?”
“······.”
이런.
회피할 여지가 없었다.
이미 알아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떠본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시험이었다.
회주는 그런 자였다.
이렇게 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암종주 환야선이 고개를 들고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호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속하 역시도 황궁에 그자가 억류되었다는 정보를 취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회주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한데 어찌하여 보고를 올리지 않은 거요?”
“이거 참 곤란하게 하시는군요.”
“곤란?”
“부회주께서는 마치 제가 일부러 숨기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환야선이 의심받은 것에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부회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면 여태껏 그자가 황궁의 금옥에 구금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뭐요?”
‘아아아.’
이런 식으로 나온다라.
심문하듯이 몰아세우는 걸 보니 역시 의심 때문에 부른 건가?
이젠 별수 없었다.
환야선이 침착함을 잃지 않고서 말했다.
“설마 그게 사실이라 확신하십니까?”
“뭐요?”
부회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만약 그것이 황궁 쪽에서 배화교의 잔당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풀어놓은 정보라면 어쩌실 겁니까?”
“······.”
이런 암종주 환야선의 말에 순간 부회주의 말문이 막혔다.
이것은 환야선에게도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짜 배화교의 잔당인 그의 입장에서는 배화교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나았으나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회주가 자신을 더욱 몰아붙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직 정보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군.’
부회주가 확실한 정보를 얻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황궁의 금옥에 그분이 억류되어 있다는 정보만 얻은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밀어붙여도 될 것 같다.
“정보부처의 수장으로서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올리게 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당연히 신중하게 진위여부를······.”
“진위여부는 필요 없다.”
말을 자른 자는 다름 아닌 회주였다.
이에 환야선이 황급히 송구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오나 회주······.”
“쿨럭쿨럭. 더는 시간이 많지 않다.”
“네?”
방금 그건 대체 무슨 소리지?
더는 시간이 많지 않다니?
바로 그때였다.
“본좌를 보아라.”
-촥!
얇은 발이 걷어지며 침상에서 회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올려 회주를 본 환야선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이게 대체?’
* * *
다시 반 시진 후,
본관 내 비벽(秘壁)의 연무장.
“돼지보다 느리면 버러지인가요?”
‘이놈!’
놀란 것도 잠시였고 자신을 모독하는 목경운의 이죽거림에 몽무약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하나 몽무약은 먼저 시비를 건 것과는 다르게 매우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인지 짧은 찰나에 목경운을 분석했다.
‘기감으로 느껴지던 기운은 절정 수준에 불과했다. 한데 지금 이 움직임도 그렇고 검병의 끝을 누르는 힘 역시 그 이상이다.’
그렇다는 것은 기운을 갈무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깨닫자 몽무약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듣기로 시혈곡 관문에서 수석으로 나왔다고는 하나 17세에 불과했고 여태까지의 시혈곡 후기지수들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완숙한 절정에서 절정의 극 정도로 예상했다.
그런데 자신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정도 수준이라면,
‘그 이상도 감안해야 겠군.’
-파팍!
목경운이 예상보다 더 높은 무위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몽무약이 이내 보법으로 뒤로 발을 옮기며 중심을 치우쳐지게 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검병의 끝을 누르고 있던 목경운의 몸도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 순간,
-팍!
몽무약이 기울어지는 목경운의 목을 향해 쾌속하게 발차기를 날렸다.
시야가 좁은 녀석이라면 이걸 맞을 테고, 그 이상이라면 발차기를 피하고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검병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꽉!
그 예상이 벗어났다.
검병의 끝을 손바닥으로 누르던 목경운이 그것을 움켜쥐더니,
-파악!
그대로 잡아채서 휘둘러버렸다.
그 덕분에,
‘큭.’
검병을 잡은 채 발차기를 날리던 몽무약의 몸이 옆으로 휘청거리며 강제로 틀어지고 말았다.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몽무약이 이에 대항하기 위해 공력을 끌어올렸는데.
-파아아악!
‘이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무약의 몸이 더욱 강하게 휘둘러지며 이내,
-파아아아아악!
검병을 잡은 손을 놓치는 것과 함께 그대로 여덟 보 가까이 날아가 버렸다.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공중에서 신형을 틀어 자세를 바로 잡았지만,
-촤르르르르르르!
목경운의 공력을 해소하지 못해 일곱 보 가까이 바닥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를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던 본관 제 삼 호위대주 섭춘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쳤다.
-짝짝짝!
“으하하하핫! 좋아! 아주 좋아!”
내심 사달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목경운이 피해를 볼 거라 여겼던 그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몽무약은 부회주 몽서천의 아들이자 은퇴해 장로단에 들어간 해검왕 몽우종의 손자였다.
은퇴한 전대와 당대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절세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은 데다, 천부적인 검재를 지녔다고 알려진 그가 같은 오호(五虎)도 아닌 약관도 안 된 신진에게 밀리는 걸 보니 괜히 신이 난 그였다.
-으득!
물론 이런 섭춘의 환호성은 몽무약의 자존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분명 먼저 시비를 건 입장이기는 했으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목경운이 검을 모독했다고 여겨서였다.
암종주의 제자이면 분명 검수가 아닌 도수일 텐데, 구야자라는 명장이 만든 저 대단한 검을 관상용처럼 들고 다니는 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서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라고 한 것이었다.
한데 꼴이 우습게 되었다.
검수로서 한 수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몽무약이 목경운을 노려보았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정말로 이 망신이 굳어지게 될 거다.
이에.
-슥!
검결지를 움켜쥔 몽무약이 예기를 일으켰다.
“좋아. 제대로 겨뤄보······”
“그 전에 이건 도로 가져가시죠.”
‘!?’
그 순간 목경운이 무언가를 투창하듯이 집어던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몽무약에게서 빼앗은 검이었다.
-파아앙! 촤아아아악!
검이 순식간에 그의 앞까지 날아들었다.
이놈 대체 공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앞까지 날아든 거지?
속도만 봐도 그 위력을 짐작할 만했다.
한데,
-팍!
날아오던 검이 갑자기 허공에서 멈춰 섰다.
-둥둥!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진 검을 보며 섭춘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저걸 진기로 막아내?’
검에 실린 공력이 보통이 아닌 듯했는데, 피해야 할 텐데 싶었는데 설마 진기만으로 저걸 막아낼 줄은 몰랐다.
몽무약이 내공 수위가 이전보다 훨씬 두터워진 것 같았다.
이에 섭춘이 탄성과 함께 몽무약에게 소리쳤다.
“핫! 몽무약! 수백 년 묵은 하수오라도 먹은 거냐?”
그런데,
“······내가 아니야.”
몽무약이 당혹스럽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말했다.
섭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본인이 아니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지금 검을 멈춘 거 내가 아니란 말이다!”
“뭐?”
이에 섭춘이 설마 하며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응?’
한데 목경운이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공중에 떠 있는 몽무약의 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도 아니라고?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지?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찰나였다.
-스릉!
‘엇? 검이?’
그때 허공에 떠 있던, 몽무약의 검집에서 저절로 빠져나온 검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목경운을 향해 쇄도했다.
-촤아아아아아!
이를 바라보는 목경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날아오는 검에 실려 있는 이 기운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진기가 마치 살아 숨 쉬는 절세검객처럼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지?
하는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청령의 외침이 귓가에 꽂혔다.
-어검술(馭劍術)이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