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90)
백 년도 전.
이제는 언제인지조차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과거.
그녀가 연무장에서 검결지를 쥐고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물었다.
[뭘 하는 거지?]사내의 앞으로 검이 둥둥 떠 있었다.
사내는 이렇게 떠 있는 검을 움직이며 좀 더 자연스럽게 다뤄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허공을 떠다니던 검이 진기의 통제에서 벗어나며 휘릭하고 날아가 연무장 한편에 떨어지고 말았다.
-찰캉!
[역시 어렵군.] [당연히 힘들지. 몸 밖으로 나간 진기의 연결이 조금이라도 끊어지는 순간 허공섭물이 풀릴 테니까.] [그래, 그래서 힘들군. 한데 만약 그 진기를 더욱 원활하게 다뤄 검을 살아있는 말처럼 부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검을 말처럼 부린다고?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체내의 진기를 체화시킨 것이 단전의 내공이다.
내공은 내가 기운으로써 몸을 강하게 만들어 주지만 이것이 몸을 벗어나는 순간, 기운은 자연스레 흩어져버린다.
그렇기에 체외로 내보낸 진기를 유지할 정도가 되려면 그만큼 방대하고 깊은 내공과 이를 흩어지지 않게 집중시킬 수 있는 깨달음이 필요했다.
이런 청령의 말에 뒷짐을 진 사내가 말했다.
[그래. 불가능할지도 모르지. 하나 구무림에서 명성을 떨쳤던 검의 대종사들은 그것이 가능했다더군.] [구무림······.]구무림.
무인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게 된 지금과 달리 과거 무(武)가 꽃을 피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구전이나 기록들을 보면 허황되기마저 할 정도의 비술들이 넘쳐났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내가 말하는 이것인 듯했다.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너만큼 구무림에 집착이 많은 자도 없을 거야.] [집착이 아니라 나는 다시 구무림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것뿐이야.] [네네, 그러시겠죠. 해서 구무림에서는 진기로 말을 부리듯이 검을 다루는 걸 뭐라고 하는데?] [그건······.]* * *
부회주의 아들 몽무약의 앞에서 멈췄다고 저절로 검집에서 뽑혀 날아오는 검(劍).
목각인형 안에 있었지만 이를 본 청령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검술!’
그것은 바로 어검술(馭劍術)이었다.
이게 실제로 가능한 것이었나?
이를 보고서 경악한 그녀가 목경운에게 경고하듯이 소리쳤다.
-어검술이다!
‘어검술?’
그녀의 외침에 경계를 하고 있던 목경운이 빠르게 옆으로 신형을 틀며 쇄도해오는 검을 피했다.
그런데,
-촥!
검을 피했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마치 누군가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방향을 틀어 목경운의 목을 베어버리려고 했다.
이에 목경운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악즉검을 뽑았다.
-챙!
-촤르르르르!
검이 부딪치는 순간 신형이 뒤로 다섯 보 가까이 밀려나 버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렬한 검격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누군가 검을 직접 잡고 있는 것도 아닌데, 도중에 방향을 튼 검에 이 정도의 진기가 실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슉!
밀려난 목경운의 양미간을 향해 검이 순식간에 찔러 들어왔다.
이를 본 목경운이 황급히 검을 위로 쳐올렸다.
-채앵!
한데 검을 위로 쳐낸 목경운의 검이 오히려 밑으로 튕겨 나갔다.
‘!?’
검에 실려 있는 힘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전보다 더 커졌다.
목경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회주가 있는 본관 건물이기에 만약을 위해 초절정 극(極) 정도 수준에 맞춰서 공력을 조절하고 있지만 이걸로는 막기 힘들 듯했다.
-맞서지 말고 피해!
청령이 황급히 소리쳤다.
이런 그녀의 외침에 목경운이 다급히 경신법을 펼쳤다.
펼치는 경신법은 암종주에게 배운 귀음영보(鬼陰影步)였다.
-타타타타타탁!
변화를 중요시하는 귀음영보는 발의 움직임이 갈대처럼 유연하기 그지없었다.
검을 피하는 것과 함께 목경운이 전음으로 물었다.
-이게 대체 뭐죠? 진기가 마치 살아있는 검객처럼 검을 다루고 있어요.
-어검술이다.
-어검술?
-기로서 검을 부리는 수법이다.
-검을 부린다고요?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다루는 게 가능한 건가요?
-본좌도 실제로 이걸 보는 건 처음······. 조심해!
-촥!
청령의 경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검이 보법을 펼치는 목경운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목경운이 용천혈에 기운을 집중하고서 바닥을 박찼다.
-팍!
순식간에 뒤로 여섯 보가 넘게 거리를 벌린 목경운이 방향을 틀려고 하는 검을 향해 예기를 날렸다.
-촤촤촥!
연거푸 날아가는 예기.
날카로운 기운들에 검이 잠시 막히는가 했다.
-촤촤촹!
그러나 어검술에 실려 있는 진기가 어찌나 강한지 오히려 예기가 갈라지고 말았다.
저걸 막으려면 그냥 예기로는 소용없을 듯했다.
적어도,
-채앙!
그 순간 무언가가 전광석화처럼 날아와 검을 쳐냈다.
그는 다름 아닌 본관 제 삼 호위대주 섭춘이었다.
푸른빛의 강기(罡氣)가 실린 광무도에 의해 저 혼자 움직이며 날뛰던 검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챙강!
‘강기보단 약하구나.’
검에 실려 있는 기운은 예기 이상 강기 이하였다.
“후우, 이봐 괜찮아?”
섭춘이 왼손을 흔들며 목경운에게 물었다.
이대로 방관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도중에 끼어든 그였다.
이런 그의 도움에 목경운이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이내 소리쳤다.
“도움······뒤를 봐요!”
-흠칫!
목경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섭춘이 본능적으로 날카로운 기운을 감지하고서 도초를 펼쳤다.
‘접무도법 제 이 초식 회원접경(回圓蝶警)!’
섭춘이 도를 휘두르며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광무도에 실려 있는 푸른 빛 도강에 의해 강기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저놈도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청령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섭춘이 펼치는 도초는 초상승 도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났다.
아무리 어검술이라고 해도 저 도초를 뚫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슉!
검이 위로 솟구쳤다.
그러더니 이내 도초를 펼치며 회전하고 있는 섭춘의 위에서 찔러 들어갔다.
‘아닛?’
섭춘의 눈이 커졌다.
마치 태풍의 눈은 고요한 것처럼 회원접경의 유일한 빈틈은 바로 초식이 펼쳐지는 바로 그 위였는데, 그것을 단번에 꿰뚫은 것이었다.
이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섭춘이 초식의 궤도를 틀어 변초를 펼쳤다.
‘접무도법 제 팔 초식 접무만개(蝶舞滿開)!’
-촤촤촤촤촤!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광무도의 도식이 수많은 잔상을 일으키며 섭춘의 정수리를 찔러오던 검을 한순간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채채채채채챙!
접무도의 도초에 갇힌 검이 마구 튕겨 나가며 그 힘을 잃어갔다.
이를 본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현란하기 그지없는 도초가 만들어내는 망(網)을 보니, 섭춘이 얼마나 뛰어난 전투 감각을 지녔는지 알 것 같았다.
검에 진기가 이어지는 것 자체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끊은 건가?’
이제 더 이상 저 검으로 어쩌지 못할 것이다.
라고 목경운과 마찬가지로 검을 도초로 가두고 있는 섭춘도 그리 확신했다.
그런데,
‘!?’
목경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기가 끊기기는 했으나, 누가 대체 어떤 식으로 어검술을 펼쳤는지 알아내기 위해 오른쪽 눈동자로 삼안의 요력을 개방했다.
‘이게 대체······.’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검을 연결하는 진기의 흔적이 남아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진기의 흔적이 없었다.
-왜 그러느냐?
-검에 진기가 연결된 흔적이 없군요.
-뭐?
검에 진기가 연결되었다면 이 눈에 그 흔적이 남아있어야 했다.
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누가 검을 조종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검이 정말로 저 혼자 움직이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의아해하는데 청령이 혀를 내두르며 탄성을 내뱉었다.
-검아일체(劍我一體). 검 자체를 기운의 매개체로 한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죠?
-검에 진기를 보내 연결한 것이 아니라 검 자체로 하여금 기운을 모아 부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검을 자유로이 부릴 수 있는 것이다. 하!
그녀는 진심으로 이를 감탄스러워했다.
어검술이라는 게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의문마저 가졌었다.
그런데 그 해답을 지금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알게 되었다.
-중생. 이건 벽을 넘어서는 것 정도로 할 수 있는 그런 수법이 아니다.
-하면?
-주변의 기운과 스스로를 동화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하다. 적어도 화경의 극(極)······. 혹은 벽의 벽을 넘어서야 행할 수 있다.
-그 말은······.
-그래. 지금 이곳에서 이 정도의 신기가 가능한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
-······회주군요.
목경운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벽을 넘어선 목경운조차 삼안의 요력을 개방한 눈으로 보아도 기(氣)의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른 자.
그자는 이곳 천지회의 정점이자 육천(六天)의 일인인 회주뿐이었다.
청령이 사뭇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산 넘어 산이로구나.
벽의 벽을 넘어선 현경의 경지에 이르렀을지 모른다고 짐작하기는 했다.
한데 이렇게 확실하게 알게 되니 복수의 길이 여전히 요원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목경운 역시도 자신과 비슷한 심경일지도 몰랐다.
그때 목경운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려왔다.
‘이놈?’
설마 벽을 맛본 건가?
이 녀석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청령이 내심 이해가 갔다.
‘끝을 알 수 없는 역량을 가진 존재와 부딪치게 되면 경외심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역시 중생 네놈도 인간은 인간······.’
실룩실룩!
‘!?’
청령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깨를 더욱 들썩이던 목경운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설마 웃는 건가?’
벽에 막혀 두려움을 느낀 게 아니었나?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온다고?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었는데 목경운의 입꼬리는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중생 너 정말 웃고 있는 거냐?
-아? 제가 웃었나요?
-뭐? 지금 본인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게냐?
-아아아. 실수할 뻔했군요.
-실수? 대체 왜 웃은 거냐?
-그냥요.
-그냥?
-네, 무(武)라는 게 생각한 것 이상으로 더 파고들 여지가 있는 것 같아서요.
이런 목경운의 대답에 청령의 내심 놀라워했다.
중생 이놈에게 있어서 무공은 그저 복수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데 더욱 고차원적인 무(武)를 직면하고 나서 벽에 막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
이 녀석 알고 있을까?
본인이 사고관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말이다.
하나 이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러던 찰나였다.
-챙강!
“아닛?”
접무만개의 초식을 연달아 펼치며 검의 기운을 완전히 끊었다고 확신한 섭춘이 이를 멈추려고 했는데, 그 순간 검이 되살아나 그의 어깨를 찔러 들어왔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챙그랑!
어깨를 찌르려던 검이 갑자기 힘을 잃고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응?’
무슨 영문이지?
설마 검을 움직였던 자가 연결되어있던 진기를 푼 것인가?
의아해하던 섭춘이 일단 뒤로 신형을 날리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연무장의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검을 진기로 움직였던 자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서였다.
그러나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누구지?’
기감 상 주변에는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스륵!
어느새 연무장의 한 가운데 뒷짐을 지고 선 채, 얼굴을 붕대 같은 천으로 둘둘 감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섭춘이 두 눈이 커지더니 이내,
-팍! 쿵!
한쪽 무릎을 꿇은 그가 두 손을 모으고서 고개를 숙여 외쳤다.
“본관 제 삼 호위대주 섭춘이 대 천지회의 회주님을 배알하나이다!”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몽무약 또한 화들짝 놀라서 한쪽 무릎을 꿇고서 섭춘과 마찬가지로 예를 갖췄다.
“회주를 배알하나이다!”
‘회주? 이 자가?’
목경운의 오른쪽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려왔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모두의 눈에는 이것이 보일까?
체내에 갈무리되어 있는 저 기운은 여태껏 자신이 보았던 어떠한 기운도 상대가 되지 못할 만큼 강렬하고 전율적이었다.
저것이 폭사되어 나오는 순간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이게 바로 천지회의 정점인가?
놀라워하고 있던 차였다.
“경운!”
본관 제 삼 호위대주 섭춘이 황급히 목경운을 불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주님이 앞에 계시는데 저렇게 멀뚱히 서 있는 것은 예에 벗어났다.
이에 목경운이 이들을 따라서 한쪽 무릎을 꿇고서 예를 갖췄다.
섭춘이 그것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저벅저벅!
발걸음이 들려오며 그의 바로 앞에 회주가 다리가 보였다.
섭춘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럭쿨럭. 어찌한 것이냐?”
‘아!’
그런 그의 목소리에 섭춘이 눈동자가 떨려왔다.
혹시 하기는 했는데 방금 전에 검이 저절로 움직이는 이 신기는 회주께서 자신들을 시험한 것이란 말인가?
이곳에 왜 불렀나 싶었는데 그게 이런 일일 줄은 몰랐다.
-파르르르!
‘역시 시험이 맞았어.’
섭춘이 영광이라는 듯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잘 것 없는 실력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아니. 너 말고.”
“네?”
이에 당황한 섭춘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그런데 얼굴을 붕대로 둘둘 감고서 가린 회주의 시선이 목경운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대체 왜?’
회주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회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검에 실린 진기를 어떻게 흩어지게 한 것이냐?”
‘뭐?’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