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00)
“이제 임무를 속행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겠군요.”
‘이, 이런!’
순간 몽무약의 표정이 굳어졌다.
잘린 팔의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고 내심 감격스러워했던 그였다.
그런데 미처 잊고 있던 게 있었다.
이렇게 되면 꼼짝없이 목경운과 기밀 임무를 수행하러 가야 했다.
‘빌어먹을!’
부상을 명분 삼아 당장 천지회로 돌아가 부친인 부회주에게 이놈의 위험함에 대해 고해야 하는데, 그 계획이 모두 틀어지게 생겼다.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목경운이 깜빡했다며 말했다.
“아! 그리고 당신에게 줄 선물 하나가 더 있어요.”
‘선물?’
심란한 마당에 목경운이 뭔가를 준다고 하자 몽무약이 의구심에 가득 찬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목경운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사슬로 만들어진 팔찌였다.
‘응?’
진짜로 선물을 주는 건가?
의아해하는 몽무약에게 목경운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이걸 찼으면 좋겠군요.”
* * *
-쏴아아아아!
폭우가 쏟아지는 늦은 오후.
우거진 숲으로 콧수염이 삐쭉 난 한 관졸이 앞장서서 누군가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죽우의와 함께 머리에는 죽립을 쓰고 있었고, 한 손에는 새까맣게 탄 것처럼 보이는 흑색 검을 들고 있었다.
이런 정체불명의 사내를 힐끔거리며 쳐다본 관졸이 혀를 내둘렀다.
한 시진이 넘게 폭우로 질퍽거리는 산행 속에서 조금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무인은 다르구만.’
“하아······하아······.”
반면 자신은 이곳 토박이 출신임에도 지쳐서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날씨도 쌀쌀해서 입김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날에 산행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놈의 돈이 웬수였다.
‘은전이 얼마여.’
사내가 보인 주머니 속에 담긴 은전은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관졸의 녹봉이라고 해봐야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 수준에 불과했기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 거절하기에 너무 큰 돈이었다.
게다가,
‘겨우 장소 하나 알려주고 이만한 돈 받는데 못할 것도 없지.’
그렇게 일각 가량을 더 숲속으로 들어가던 차였다.
관졸이 여러 나무에 묶여 있는 붉은 천 조각을 보고서 말했다.
“여깁니다, 나으리.”
관졸이 붉은 천 조각이 묶여 있는 나무 사이에 풀 하나 자라지 않은 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참으로 기묘한 곳이었다.
땅의 색깔이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사방이 으스스했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지만 이렇게 폭우가 내릴 만큼 어두울 때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때 사내가 말했다.
“땅을 파게.”
“네? 땅을 파라굽쇼?”
“그렇네.”
“허어, 저는 그저 죽은 죄수들이 묻힌 곳까지······.”
“삯은 더 쳐주지.”
이런 사내의 말에 관졸이 빗물에 젖어 진흙처럼 뭉친 땅을 보았다.
마른 땅보다 젖은 땅이 더 파기 힘들었다.
게다가 시체가 묻혀 있는 땅을 혼자서 파기에는 께름칙한 것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에라 모르겠다.’
은전의 유혹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 시진 가량 관졸은 땅을 팠다.
관아에서 죄수들의 시체를 묻는 곳으로 지정된 장소라 근처에 곡괭이 같은 것들이 있어 맨손으로 하진 않아도 됐다.
‘시부럴.’
진짜 너무하다.
은전을 받고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혼자 하면 한참 시간이 걸릴 터이니, 조금은 도와줄 거라 여겼던 관졸이었다.
그런데 팔짱만 끼고서 지켜보는 게 다였다.
결국 혼자서 다 했다.
-팍!
‘아!’
곡괭이를 내리친 관졸의 마른 침을 삼켰다.
방금 이 느낌은 흙이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여러 구의 시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욱.”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비까지 내려서 그런지 시체 썩은 내가 더욱 진동했다.
‘아니, 시체가 이렇게 썩어서야 뭘 알아볼 수나 있나?’
하는데, 이윽고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죽립의 사내가 다가와 썩어가고 있는 시체들을 살폈다.
관에 들어있다면 그나마 부패가 덜했을 텐데, 죄수들인지라 그냥 흙에 묻어서 상태가 알아보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다.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계속해서 시신들을 살폈다.
그러다 한 구의 시신에서 멈춰 섰다.
다른 시신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머리통만 있는 시신이었다.
역시나 얼굴이 썩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죽립인이 이를 보며 물었다.
“이 시신은 왜 머리뿐이오?”
“아······.”
시신을 본 관졸이 이걸 어찌해야 망설였다.
저것은 현령의 명으로 함구된 시신이었다.
자신이 부탁받은 것은 어차피 이곳까지의 안내와 흙을 파는 일이었으니 굳이 함구해야 할 비밀까지 알려줄 의무는 없었다.
“송구하오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몇 년이 된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한 달하고도 며칠 사이 있었던 일이네. 그걸 기억 못 한다라······.”
“정말 모릅니다. 말단 관졸에 불과한 쇤네가······.”
-슥!
“헉!”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목에 흑색 검이 닿았다.
조금만 찔러도 목에 구멍이 생길 판국이었다.
이에 당황한 관졸이 황급히 말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목에 구멍이 뚫려 봤나?”
“혀······현령께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그렇군. 한데 나는 들어야겠다. 하니 말하게.”
“관인을 이리 협박하면······.”
“죄수들의 시신 사이에 네 시신 하나가 섞인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을 듯하구나.”
그 말과 함께 흘러나오는 살기.
‘히익!’
그 말에 공포심에 질린 관졸이 이내 사실을 고했다.
“마, 말하겠습니다요.”
“해라.”
“사······사형수 중에 겸살귀라고 불리는 악질적인 놈이 들어왔었습니다.”
그 말에 죽립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드디어 찾았다.
놈의 흔적을 말이다.
주변에 친인척이 없고 돈을 먹일 만한 관졸을 찾는다고 꽤나 시간을 허비했던 것 같다.
죽립인이 관졸에게 말했다.
“그래서?”
“했는데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금옥에서 사고가 터졌습니다.”
“사고?”
“네.”
“무슨 사고지?”
“겸살귀 놈에게 원한을 가진 자의 소행이었는지, 간밤에 목이 잘려서 죽어있었습니다.”
“······죽어있었다고?”
“네, 한데 그때 머리통 말고 몸통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요.”
그 말에 죽립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갑자기 관의 금옥에 들어와 사형수를 누군가 죽였다.
그런데 그 사형수의 머리를 제외하고 몸이 사라져 있었다고?
이건 그냥 흘려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데 관아에서는 왜 이걸 그냥 넘어간 거지?”
“어, 어차피 사형당할 자였고 이게 괜히 알려졌다가······.”
“아아.”
죽립인이 손을 휘저었다.
굳이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를 책임지는 현령의 입지가 곤란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금옥에 누군가 침입해 그런 짓을 벌인 사실을 함구시켰을 것이다.
어차피 이런 정보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중요한 건,
‘머리를 가져간 것도 아니고 몸통을 가져갔다. 그렇다는 건······.’
역시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다.
이제 연목검장만 조사하면 이 의구심에 답이 나올 것이다.
그때 겁에 질려있던 관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으, 은전은 원래 주시기로 했던 것만 주셔도 되니까 부디······.”
“아아. 삯말인가?”
“네.”
“그래, 줘야지.”
“아아!”
관졸의 얼굴이 환해졌다.
혹시 삯을 떼먹고 그냥 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런데,
-푹!
“컥!”
흑색 검이 관졸의 목을 꿰뚫었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검이 뽑히자, 비틀거리던 관졸이 괴로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쓰러졌다.
-풍덩!
구덩이 속은 빗물이 고여 흙탕물로 가득했는데, 어느새 그것이 붉게 물들어갔다.
“저승길 노잣돈 정도는 주지.”
-팅!
죽립인이 은전 하나를 튕겨 구덩이에 빠뜨렸다.
그리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 * *
-쏴아아아아!
시야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빗줄기가 거셌다.
그야말로 폭우 그 자체였다.
이런 빗줄기를 뚫고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세 명의 사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목경운과 천지회 본관 제 삼 호위대주 섭춘. 그리고 부회주의 아들인 몽무약이었다.
그제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벌써 사흘째 이어졌다.
이런 폭우 속에서는 아무리 무림의 고수들이라고 해도 이동이 쉽지는 않았다.
가장 후미에서 경공을 펼치고 있는 몽무약이 부목을 한 자신의 왼팔을 힐끔 쳐다보았다.
서서히 감각이 돌아와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였다.
‘후우.’
그러나 이제는 이것이 딱히 기쁘지가 않았다.
어찌 보면 병 주고 약을 주는 꼴이기도 했고, 잘린 팔이 낫게 되면서 그는 꼼짝없이 임무를 속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젠장.’
차라리 팔이 잘린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돌아가서 이 모든 사실을 아버지인 부회주에게 고했을 것이다.
이놈은 자신이 보았던 어떤 인간보다 무서웠다.
인간 같지 않은 면모도 그렇지만 무공 이외에 온갖 신묘한 재주들도 익히고 있어서 더욱 두려웠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슥!
이 오른 손목에 차고 있는 이 사슬 팔찌였다.
[이왕 충성하기로 했으니 이 사슬을 팔에 차고서 제게 맹세를 해줬으면 좋겠군요.]그때는 뭔가 께름칙하기는 했으나 팔찌 하나를 찬다고 문제 될 게 있겠나 싶어, 일단 그 말에 따랐었다.
그런데 그 맹세를 하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목경운의 말에 어떠한 것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간에 한 번 도주를 시도할까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먹는 순간 사슬이 살을 파고드는 바람에 하마터면 오른팔을 잃을 뻔했다.
그로 인해 몽무약은 불순한 마음조차 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젠 꼼짝없이 이놈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나오는 것은 오직 욕뿐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 때였다.
폭우를 뚫고서 앞으로 전진하던 선두의 목경운과 섭춘이 갑자기 자리에서 멈춰 섰다.
왜 그러나 싶어서 앞을 보았는데,
“아!”
몽무약의 입에서 당혹감이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앞에 폭우로 범람한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쏴아아아아! 콰르르르르!
섭춘이 난감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이거······. 강을 건너기가 힘들겠는데요.”
강의 물살을 보니 무공을 익혔다고 헤엄을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헤엄으로 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말이다.
강의 규모가 장강만큼 광활한 수준은 아니었기에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지만 않았다면 나룻배나 뗏목을 빌려서 건널 수 있는 거리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살에 휩쓸려 자칫하다가 사고가 날 판국이었다.
“비가 많이 와서 우려하긴 했는데, 당장 강을 건너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섭춘의 이 말에 목경운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무림의 고수도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일단 주군 저기 보이는 인근 마을에서 쉬면서 비가 그치길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섭춘의 이 말에 몽무약이 끼어들었다.
“이봐. 벌써 잊었나?”
“응?”
“이번 임무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접선지까지 기일을 맞추는 거다. 하루만 지체해도 접선지까지 기일을 맞추기 힘들어진다.”
이 말에 섭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무슨 수로 범람한 강을 건너겠다는 거냐?”
홍수나 강의 범람은 인재가 아닌 천재(天災)였다.
애초에 인력으로 어찌해볼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건널 방도를 찾아야 한다.”
몽무약의 고집은 확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남성 안낙까지 주어진 기일은 열흘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열흘 안에 갈 수 없지만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인 그들이라면 최소한의 휴식 이외에 부지런히 경공을 펼친다면 겨우 가능한 거리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무슨 수로?”
“으음, 그건······.”
-슥!
몽무약이 이내 강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근 마을을 바라보았다.
보통 강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에 사는 자들의 주업은 강과 관련된 것이기는 했다.
그곳을 빤히 쳐다보던 목경운이 말했다.
“마을 어귀 쪽에 정박시켜놓은 나룻배들이 보이긴 하군요. 그리고 저기 저 배는······.”
범람한 강가 쪽에 정박되어 있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보였다.
저건 나룻배 수준의 크기가 아니었다.
“꽤 커 보이네요. 저 정도 배라면 강을 건널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몽무약이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폭우로 물살이 워낙 세서 작은 나룻배나 뗏목으로는 도저히 건너갈 방법이 없어 보였지만, 저 정도 큰 배라면 물살을 따라서 하류로 밀려나는 식으로라도 건널 수 있어 보였다.
한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를 섭춘이 제기했다.
“한데, 주군. 저 정도 크기의 배라면 뱃사공과 인부들이 없이는 조종할 수 없을 듯합니다.”
평범한 뗏목 정도라면 사공들만큼 능숙하게는 힘들어도 노를 저어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저 배는 그들의 힘으로 조종하기 어려울 듯했다.
결국 저 배의 주인이 될 사공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날씨에 배 주인이 저 배를 띄워줄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벌려고 저런 배를 가지고 있을 테니, 뱃삯을 충분히 쳐준다면 띄우겠지.”
“글쎄······.”
몽무약의 말에 섭춘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여비는 넉넉하게 챙겨와 뱃삯으로 줄 돈은 충분했다.
하나 강이 범람할 만큼 빗줄기가 너무 거세고 물살이 빨라서 운이 없으면 배가 뒤집혀 난파될 수 있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도박을 쉽게 하려 할까?”
이런 섭춘의 의문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할 거예요.”
“네?”
주군은 왜 이렇게 확신하는 거지?
의아해하는데,
“거절해서 목이 베여 죽는 것보단 나을 테니 배를 띄우겠죠.”
“·········.”
이미 협박을 전제로 배를 띄울 생각인 목경운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