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02)
“협박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한데 알려드릴까요?”
뒤에서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범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찰나의 순간 인지하지도 못했는데, 자신의 뒤를 점할 수 있을 정도의 경공 실력이라면 절대로 하수가 아니었다.
‘허어.’
분명 기감 상으로는 절정의 경지였다.
한데 이렇게 자신의 감각을 속였다는 것은 기운을 갈무리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라는 의미였다.
‘…….믿을 수가 없다.’
범 노인이 내심 이를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고수이려면 오직 벽을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자는 고작해야 17세에서 18세에 불과하지 않던가.
이런 어린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래. 그럴 리가 없다. 특별한 경신법을 익혔을 확률이 더 높다.’
육십 년 가까이 무공을 연마한 자신도 오르지 못한 경지다.
이런 애송이가 벽을 넘어섰을 리가 없었다.
이를 확신한 범 노인이 이내 땅을 박찼다.
-팟!
일단은 놈과 떨어져야 한다.
앞으로 신형을 날린 범 노인이 회색 도포를 펄럭이며 몸을 회전시켰다.
‘이극비연수(二極備聯手)!’
그가 몸을 회전시키는 순간 도포의 소매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예기를 발했다.
그러더니 세차게 내려치는 빗줄기를 일순간 반경 다섯 장 가까이 베어버렸다.
-촤아아아악!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범 노인은 바닥을 향해 발을 내려찍었다.
‘일보탄산경(一步彈散勁)!’
고여 있던 빗물을 향해 진각을 밟는 순간, 튀어오르는 빗방울들이 진기를 머금고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암기가 되었다.
그 범위가 어찌나 넓었는지,
“이런!”
“막아!”
-스릉!
섭춘과 몽무약이 동시에 도검을 뽑아 날아드는 빗방울을 막아냈다.
-채채채채채채챙!
진기가 실린 빗방울의 위력은 도검을 잡고 있는 손이 저릴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이를 막아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초절정의 극에 오른 것도 그렇지만 노인의 내공 수위는 이미 그 이상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채앵! 파르르르!
이 정도 내공이라면 거의 상위 간부라 할 수 있는 오왕(五王) 급에도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진기가 실린 빗방울을 막아내며 밀려나는 그들을 본 범 노인이 눈을 굴리며 목경운을 찾았다.
놈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제법 고강한 초식을 펼쳤다.
둘 다 위력이 제법이지만 내공 소모가 상당히 큰 수법이었다.
하나 이 정도는 되어야 놈을 자신의 뒤에서 확실히 떼어놓을 수 있다고 여긴 그였다.
‘어디냐? 대체 어디 있는 거냐?’
빗줄기가 워낙 거세서 단번에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재미있는 수법이군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범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연히 거리는 벌렸을 거라 여겼던 그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거리를 벌리지 못했다고?’
범 노인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전방위를 공격할 수 있는 대인 공격 초식을 펼쳤는데, 거리를 벌리기는커녕 여전히 뒤를 빼앗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으득!
범 노인이 이를 악물었다.
어찌 자신이 이런 어린 놈에게 연달아 뒤를 빼앗길 수 있단 말인가?
“건방진 놈!”
범 노인이 방식을 바꿨다.
거리를 벌리기보다 독문 보법인 오순보(五順步)를 밟아 방향을 틀며 동시에 이극비연수를 펼쳐 목경운을 공격하려 들었다.
이번엔 거리를 벌린 게 아니기에 이극비연수를 막거나 피하려면 뒤를 점하는 짓거리를 하진 못할 것이다.
-촤악!
그와 함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잡았다!’
범 노인이 검은 그림자를 향해 조법의 초식을 펼쳤다.
‘이극호연조(二極號聯爪) 복조양(覆操攘)!
-파파파파팍!
포효하는 범이 먹잇감을 향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신형을 날리는 듯한 기세였다.
신형을 잡았다 싶을 때 승부를 내려는 범 노인이었다.
그런데,
-파아아아악!
‘아닛?’
그 순간 그의 조법을 펼치던 두 손이 그림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더니 이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느리네요.”
“이놈!”
범 노인이 뒤로 일조를 휘둘렀다.
-파악!
그런데 손에 닿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조롱에 가까운 목경운의 목소리만 귓가로 들려오고 있었다.
“이래서야 제 얼굴을 볼 수 있겠어요?”
‘노부를 가지고 노는 것이냐!’
-파파파파팍!
그런 조롱에 노기가 치솟은 범 노인이 이내 무차별적으로 조법을 펼치려 했다.
어떻게든 이놈을 자신의 앞에 둬야 직성이 풀릴 듯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퍽!
그 순간 우측다리를 관통하는 통증과 함께 범 노인의 신형이 그대로 빗물에 미끄러지며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려 했다.
당황한 범 노인이 황급히 손을 뻗어 넘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퍽!
“억!”
신형이 무너진 그의 왼쪽 갈비뼈를 내려찍는 발차기에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쾅!
“끄으으으으.”
바닥에 넘어진 범 노인이 갈비뼈를 붙들고 신음성을 흘렸다.
방금 전 그 일격으로 뼈가 부러진 듯 했다.
숨을 쉬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 범 노인의 귓가로 목경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살이 심하시네요.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이 정도 아픔은 견디기 힘드신 건가요?”
“쿨럭쿨럭.”
범 노인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뒷짐을 진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목경운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굴욕적으로 바닥에 쓰러져서 이놈의 얼굴을 보게 되다니.
범 노인은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로 벽을 넘어선 거였나.’
너무도 확연한 격차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은 정말 화경의 고수였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녀석이 이런 엄청난 경지에 오르다니.’
정말 괴물이었다.
대체 어느 문파 출신인 거지?
이런 무위라면 당연히 무림에 그 위명이 알려졌어야 정상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그곳’ 출신이라고 해도 무림에서 명성이 두터운 자들은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이에 범 노인이 힘겹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하아….하아…..자네 이름이 뭔가?”
“그건 알아서 뭐하시려고요?”
“하아……별다른 뜻은 없네. 그저 자네의 무위에 감탄하여 그 위명이 궁금했을 뿐이네.”
“그럼 계속 궁금하시면 되겠군요.”
“……..”
알려줄 의사가 없다는 의미였다.
범 노인이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상황이 공교롭게 되었다.
아가씨의 성화에 못 이겨 건드린 자가 화경의 고수라니.
이 어찌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제대로 잘못 건드렸다.
‘…….노부의 실책이다.’
사실 이건 실책이라 보긴 힘들었다.
기감을 완전히 속일 수 있는 절세고수와 만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약관에 이르지 않은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를 만나는 일 역시도 말이다.
그저 불운의 영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하아…..하아…..”
범 노인이 몸을 똑바로 앉히며 말했다.
“알겠네. 위명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냥 소형제라 부르겠네.”
-팍!
범 노인이 두 손을 모아 포권 지례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범 모가 소형제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겠네.”
“사죄?”
“그렇네. 이번 일에 관해서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은 없지만, 노부는 정말로 해코지를 가할 생각은 없었네. 하나 뭐가 되었든 간에 분명 자네들에게 위협을 느끼게 한 것은 확실하네. 이에 대해 사과하고 노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을 해줄 터이니, 이번만큼은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시게.”
범 노인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곳과 달리 무림은 힘의 논리이기에 그에 맞춰서 자존심을 버리고 사과한 것이었다.
하나 말로만 이런다면 전혀 안 먹힐 수도 있으니,
-슥!
범 노인이 품 속에서 사각으로 만들어진 옥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목경운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건 서평전장에서 발급한 일급 옥패일세.”
“서평전장?”
“그렇네. 그 옥패는 금전 백(百)을 일시에 발급 받을 수 있는 패이네.”
“금전 백?”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금전 백(百)이면 은전 만(萬)이나 다름없었다.
굉장한 거금이었고 이 정도면 상당한 규모를 가진 문파가 일 년가량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보상이라 여겼다.
“호오. 그런가요? 감사히 받도록 하죠.”
목경운이 옥패를 받았다.
이런 그의 모습에 범 노인이 역시하고 생각했다.
무림인도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런 엄청난 거금에 눈이 돌아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급 받은 여비의 절반이라 아깝긴 했으나 괜히 일이 커지는 것보단 이 편이 나았다.
“고맙네.”
그렇게 범 노인이 포권을 풀고서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할 때였다.
목경운이 품 속에서 사각 옥패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보상은 보상이고 하던 얘기는 계속해볼까요?”
“뭐?”
범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금전 백을 한 번에 지급받을 수 있는 서평전장의 옥패를 받아놓고서 이게 무슨 소린가?
“이보게.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
“마무리는 아니죠. 돈으로 무마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거든요.”
“아니. 그 정도 거금을 받고 지금 그런 말이 나오는가?”
“나오죠. 어르신이 저보다 강했다면 이렇게 돈을 줄 일도 없고 비굴하게 사과할 일도 없었겠죠.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뤘을 테니까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범 노인의 입이 다물어졌다.
부정하기에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힘으로 이들을 압박해서 아가씨에게 데려가려 했던 그였다.
실제로 그렇게 말을 했기에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힘들었다.
이에 범 노인이 최대한 완곡하게 목경운을 달래려 했다.
“소형제. 자네들의 심경은 십분 이해하네. 혹 돈으로 무마하려 한 것 같다면…..”
“뭘 이해한다는 거죠?”
“그건……”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요?”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노부는 그저…..”
“말보다 직접 경험해보는 게 가장 빠르지 않겠나요?”
“경험?”
“네. 그렇지 않아도 협박과 협조가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 자 설마?
이런 목경운의 말에 범 노인의 눈매가 순간 날카로워졌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이 녀석의 일행들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와장창!
-무, 무엄하다!
‘!?’
객잔 쪽에서 들려오는 굉음 소리와 익숙한 목소리의 외침에 범 노인의 두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이, 이놈!’
-팟!
범 노인이 이내 일그러진 얼굴로 황급히 객잔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렇게 뒷문을 통해 객잔 안으로 들어간 범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곳에는 쓰러져 있는 호위무사들과 함께 면사의 여인의 뒤에 서서 그 가냘픈 목에 검날을 들이밀고 있는 몽무약이 있었다.
범 노인보다는 한 수 아래인 몽무약과 섭춘이었지만 그 외의 호위무사들 중에서는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이놈들! 당장 그분을 놓아주지 못할까?”
범 노인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들에게 다그쳤다.
마음 같아서는 저분의 목에 검을 들이댄 저들을 당장 찢어죽이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런 범 노인에게 몽무약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이!”
이 상황을 어찌 한단 말인가?
설마했는데 이놈들이 기어코 불경한 일을 벌이고 말았다.
그러던 차였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제 협조와 협박의 차이를 알 것 같나요?”
-꽉!
어느새 뒤에서 들려오는 목경운의 목소리에 범 노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되갚음을 당할 줄은 몰랐다.
제대로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