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03)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제 협조와 협박의 차이를 알 것 같나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경운의 목소리에 범 노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되갚음을 당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건드린 것 같다.
‘이놈들……’
젊은 놈들이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설마 보복으로 아가씨를 인질로 잡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이걸 예상할 틈도 없었다.
범 노인이 매서워진 눈빛으로 섭춘과 몽무약을 노려보았다.
이 젊은이들 설마 정파 무림인들이 아닌 건가?’
범 노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록 아가씨의 성화 때문에 자신이 억지를 부리기는 했으나, 협의를 중시한다는 정파 무림인들이라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사파인?’
범 노인이 알기로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정파인들과 달리 사파인들은 실리와 이익을 중시하여 이런 짓을 서슴없이 한다고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더욱 곤란해진다.
이미 사죄도 하고 보상까지 해줬는데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 협상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꽉!
범 노인이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너무 불리한지라 화까지 나려 한다.
하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인질로 잡힌 아가씨 또한 처음 겪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터이니,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였다.
“무엄한 놈들……”
겁을 먹은 줄 알았는데 면사의 여인이 볼을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이런 그녀의 태도에 범 노인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그분의 여식이 맞긴 하나보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저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안 됩니다.’
범 노인이 면사의 여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위험하니 말을 아끼라는 의미였다.
아무리 귀하게 자라 천방지축이라고 하나 그녀는 기본적으로 영민했다.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미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이보게.”
범 노인이 침착하게 목경운에게 말을 건넸다.
“네.”
“이번 일은 분명 노부가 잘못한 게 맞네. 하나 아무리 무림에서 은원을 확실히 한다고 해도 노인과, 아이, 여인을 건드리는 건 너무한 처사이지 않나. 부디 저분을 놓아주고 차라리 모든 화를 노부에게 쏟으시게.”
범 노인은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애원하듯이 말을 했다.
이미 상황이 최악에 가까우니 동정심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동정심 구애는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는 이들만이 아닌 주변인들로 하여금 동정론과 같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웅성웅성!
이런 범 노인의 의도로 객잔에 있던 이들이 수군거리며 난리가 났다.
사실 이들 입장에서는 섭춘과 몽무약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면사의 여인과 호위무사들을 습격한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저자들 대체 뭐야?”
“왜들 저러는 거야?”
수군대고 있었지만 당연히 들리기 마련이었다.
‘좋지 않군.’
천지회 본관 제 삼 호위대주 섭춘이 이런 주변인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갑자기 귓가를 울리는 목경운의 명에 따르기는 했으나, 너무 보는 눈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분이 어찌 되었던 간에 여인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서 협박하는 것은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주군.”
이에 섭춘이 목경운을 부르며 눈빛을 보냈다.
충분히 이들에게 경고를 한 것 같으니 이 정도에서 끝내면 어떻겠냐는 의미였다.
이를 읽어낸 범 노인이 다시 간혹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가 이리 부탁하네. 제발 저 분만이라도 놓아주시게.”
아무리 사파인들이라고 해도 사람이니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을 그냥 무시하고 넘기진 못할 거라 여겼다.
그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흐음. 노인과 아이, 여인 중에 둘이나 포함되는군요.”
“……..노부는 포함시키지 않아도 되네.”
“네. 당연히 그래야죠. 어르신 같이 초절정의 극에 이른 무공의 고수가 연로한 노인 취급을 받으려 한다면 염치가 없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고 있네. 하니 부디 아가씨께 겨눈 저 검은…..”
“한데 말이죠. 그런 대단한 고수 분께 힘을 써서라도 저희를 끌고 오라고 시킨 분은 누구였던가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범 노인의 말문이 막혔다.
“분명 밖에서 저 면사 여인 분의 성화로 그런 거라 하지 않았던 가요?”
이 말에 범 노인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이, 이보게. 언제 노부가 그렇다고 했는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자신이 아가씨를 핑계 삼은 게 되지 않는가.
면사 여인의 심기를 의식한 범 노인이 황급히 변명했다.
“아가씨께서는 그런 명을 내리지 않았네. 이건 순전히 노부가 자네들을…..”
“애써 수습하지 마시죠.”
“수습이 아니…..”
-꽉!
그 순간 목경운이 범 노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강하게 누르자,
“흐읍.”
-쿵!
범 노인의 무릎이 강제로 꿇려지고 말았다.
오랜 세월 동안 단련하여 심후한 진기를 가졌다고는 하나,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와 비견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으득!
범 노인이 이를 악물었다.
아까 전과 다르게 이렇게 이목도 많고 저 분이 보는 앞에서 이런 식으로 당하게 되니, 치욕스럽기 그지없었다.
하나 범 노인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더 큰 치욕들도 견뎌왔었다.
그렇기에 이런 것 따위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범 노인이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이보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제발 여기서 멈춰주…..”
“충분하고 말고에 대한 판단은 일을 벌인 쪽이 내리는 게 아니죠.”
-꽈악!
“끄으으읍.”
어깨를 부술 것처럼 움켜쥐는 손아귀에 범 노인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러자 면사의 여인이 소리쳤다.
“공!”
그 모습에 범 노인이 괴로워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나서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만! 그만 하거라!”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면사의 여인이 목경운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입을 여시는군요.”
“무엄한 놈. 당장 공…..에게서 손을 떼거라!”
“손을 떼고 말고는 제 마음이죠.”
“하!”
면사의 여인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모욕감을 준 자는 없었다.
한데 기껏해야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무뢰배 같은 놈이 자신의 명을 무시해?
면사의 여인이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정말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자로구나.”
“방자한 건 그쪽이죠.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 명을 내려서 이 사달을 낸 장본인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너! 감히!”
“아아아. 역시 말로는 안되겠네요.”
-꽈악!
“끄으으으읍.”
그 순간 범 노인의 입에서 더욱 큰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으나, 얼굴이 시뻘개져서 핏대가 선 모습만 보더라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붙잡힌 어깨가 피로 물들고 있었다.
“그만! 그만 해!”
“그걸 원하나요?”
“그래. 원해! 하니 이제 그만……”
“…….두게 하고 싶으시면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만.”
“간단한 방법?”
“네.”
“그게 뭐지?”
“무릎을 꿇고 사죄하시죠. 하면 제 손에 힘이 풀릴 지도요.”
“……….”
그 말에 그녀의 몸 전체가 분노로 떨려왔다.
‘그곳’에서 나올 때 범 노인의 간곡한 조언이 있었기에 어지간하면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만은 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이내 자신의 면사를 벗어버렸다.
그러자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허어.”
“와…….”
여기저기서 감탄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얼굴도 그랬지만 그야말로 고귀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의 목에 검날을 갖다대고 있는 몽무약조차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내심 놀라워할 정도였다.
‘이 여자 대체 뭐지?’
외모 이상으로 풍겨지는 기품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것은 평범한 자들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러는데 얼굴을 드러낸 여인이 목경운을 매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무례한 놈.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뭐지? 이 여자?’
이런 그녀의 말에 몽무약이 미간을 찡그렸다.
범 노인 같이 대단한 고수를 일개 호위로 대동한데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그녀가 평범한 자는 아닐 거라 짐작했던 그였었다.
한데 그런 여인이라 할지라도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당연히 겁을 먹고서 떨거나 굴복할 만한데, 여전히 기가 살아있었다.
심지어 말하는 투를 보면 자신의 신분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렇다는 건,
‘설마 이 여자…..관이나 황궁 쪽과 관련 있는 건가?’
몽무약이 굳어진 얼굴로 마른 침을 삼켰다.
만약 이 여자가 정말로 관이나 황궁과 관련이 있다면 상당히 난처해진다.
관과 무림이 최근에 들어서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서로 간에 불가침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만약 자신의 짐작이 맞다면 정말 성가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 기밀 임무는 황도인 개봉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적당히 이쯤에서 끝내는 게 나을지도.’
그런데,
“제가 그쪽이 누군지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가요?”
오히려 목경운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당연히 이런 목경운의 도발은 그녀를 더욱 화가 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 그렇게 나온다 이것이냐?”
“무릎 한 번 꿇고 끝날 일을 더 키우시는군요.”
“일을 더 키우는 것은 바로 네놈이다. 본 녀가 누군지 알고나서도 그렇게 무례하게 굴 수 있는지 한 번……”
“더 이상 말하는 건 좋지 못한 선택일 텐데요.”
그녀의 말을 목경운이 끊었다.
이에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내 필히 너를…..”
-콰직!
“끄아아아아악!”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지독한 비명과 함께 범 노인의 어깨가 비틀려서 뼈가 살점을 뚫고서 튀어나왔다.
그 끔찍한 광경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했던 여인이 순간 하앟게 질려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미리 말씀드릴까요?”
“너….너! 감히!”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관심도 없죠. 한데 괜한 오기로 그 귀하신 신분을 밝혀서 귀찮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될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네. 아무 것도 없었던 일로 만들 거거든요.”
“뭐라?”
“이해가 되지 않으시나보군요. 혹시 살인멸구라는 말을 아시나요?”
‘!?’
살인멸구(殺人滅口).
사람을 죽여서 말이 새어나오지 않게 한다는 의미였다.
이 말에 오만하면서도 당당했던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져버렸다.
그런데 목경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객잔 내에 있는 주변의 사람들을 무심한 눈으로 훑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참 안타깝네요. 저 소저 분이 입을 열게 되면 여러분들도 살아서 나가지 못하겠군요. 뭐 제 탓은 아니니 소저를 원망하세요.”
‘!!!!!!!!’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객잔 내 분위기가 일순간 정적으로 물들었다.
별일이 아닌 것 마냥 조곤조곤 말을 했지만 그 위압감은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으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이, 이놈!’
어찌 상황을 이런 식으로 몰아간단 말인가.
그녀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열려하자 객잔 내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따가울 정도로 원망과 두려움이 담긴 시선에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어째서?’
위협을 가한 진짜 대상은 저 남자인데 왜 자신을 저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지?
이런 그들의 시선에 그녀는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눈동자로 그림자로 드리워진 목경운의 얼굴이 보였다.
입 꼬리가 귀까지 닿을 만큼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얼굴은 온통 악의(惡意)로 가득했다.
-오싹!
등골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두려움이 그렇게 전신을 사로잡는 순간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쿵!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