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05)
-쏴아아아아!
거세게 몰아치는 비에 천지회 본관 제 삼호위대주 섭춘이 혀를 내둘렀다.
‘어째 강가로 오니까 비가 더 거세는 것 같네.’
이래서야 배가 크더라도 과연 도하(渡河)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지대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니 격류 그 자체인 강줄기가 보였는데 심히 걱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들의 눈앞에 마을에서 유일한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지회 내성에 있는 으리으리한 규모의 장원에 비한다면 초라하기 짝이 없으나, 확실히 이런 작은 강마을에 있는 것치고는 상당히 부유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몽무약이 장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에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닫혀 있는 장원 내로 인기척들이 느껴졌고 심지어 기와 지붕들 사이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용인들일 겁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섭춘이 앞장서서 대문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문고리를 잡고 두드리려던 그가 대문 옆에 붙어있는 현판 같은 것을 보고서 이채가 띤 눈으로 말했다.
“주군.”
“왜 그러시죠?”
“배의 주인이 아무래도 평범한 마을 부호가 아닌 모양입니다.”
“평범하지 않으면 비범한가요?”
“여길 보십시오.”
섭춘이 가리킨 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平難四等功臣]“평난사등공신?”
목경운이 그것을 읽자 가까이 다가온 몽무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장원의 주인이 공을 세운 관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인요?”
“네. 현판을 대문 바로 옆에 달아놓은 걸로 봐서는 공을 세우고 낙향한 관인일 수도 있습니다.”
“허참. 오늘 무슨 날인가?”
섭춘이 혀를 찼다.
객잔에서도 관 혹은 황궁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를 자들과 만났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곳 장원의 주인도 관인 출신이었다면 참으로 공교롭기 그지없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두 사람의 반응과 달리 목경운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지 말했다.
“관인이었든 아니든 간에 신경 쓸 필요가 있나요? 저희는 그저 배를 빌려 강만 건너면 되죠.”
“그건······뭐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 말이 맞기는 했다.
그저 이 상황이 공교로울 뿐이었다.
이내 섭춘이 문고리를 잡고서 대문을 두드렸다.
-쿵! 쿵!
워낙 빗발이 거세서 그런지 안에서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섭춘이 소리치며 문을 두드렸다.
“안에 누구 없소?”
-쿵! 쿵!
몇 번을 그렇게 두드리자 얼마 있지 않아 대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대문이 열리며 건장해 보이는 장정 두 사람을 대동한 지우산(紙雨傘)을 쓰고 있는 이십 대 중반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흐음.’
아무래도 객잔 주인에게 들었던 그 배의 주인은 아닌 것 같았다.
하나 관련은 있어 보였다.
객잔 주인도 그렇고 범 노인이라는 자도 배의 주인이 다 죽어간다는 말을 했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하고, 안색이 어둡고 기운이 없는 걸로 보아 배 주인의 여식일 지도 몰랐다.
“객들께서는 이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이신지요?”
“실례하오만 장원의 주인을 만나 뵐 수 있겠소?”
“······.”
섭춘의 이런 물음에 초췌한 얼굴의 여인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섭춘의 허리에 차고 있는 병장기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물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저 강을 지나가려는 객입니까? 아니면 인근 현(睍)에 있던 석삼장 앞의 청문을 보고서 와주신 분들입니까?”
이런 여인의 말에 섭춘이 미간을 찡그렸다.
장원의 주인을 보러 왔다고 하는데 도리어 하는 질문이 뭔가 이상했다.
강을 지나려는 객이냐고 묻는 건 이해가 갔지만, 뒤에서 이야기하는 석삼장 앞의 청문은 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청문(請文)은 말 그대로 도움을 청하는 글이다.
이를 의아해하던 섭춘은 이내 그게 자신들과 무슨 상관인가 싶어 전자라고 답하려 했다.
“우리는 가······.”
“청문을 보고 왔습니다.”
그때 목경운이 대뜸 섭춘의 말을 끊고서 말했다.
‘주군?’
섭춘이 흠칫해서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자신들은 그저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빌리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굳이 알지도 못하는 청문을 보고 왔다는 식으로 말했다가, 괜히 그 내용이 뭔지 묻기라도 하면······.
“아아아.”
그때 초췌한 얼굴의 여인이 탄성을 흘리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응?’
이런 여인의 반응에 섭춘은 영문을 알 수 없어 했다.
의심을 하지 않는 건가?
그러는데 여인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그녀의 반응은 마치 간절한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경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의아해하는데 목경운이 아무렇지 않게 그녀에게 물었다.
“청문 때문에 오기는 했으나 주인어른을 먼저 뵙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아!’
이 말에 섭춘이 이제야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자에 그저 강을 건너는 객이냐는 물음에는 상당히 날이 서 있던 여인이었다.
해서 괜히 자신들의 목적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장원 주인의 상태가 정말로 배를 몰 수 있을지 아닐지를 확인할 방법이긴 했다.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여인이 고개를 들며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친의 상세를 보여드릴 수는 있으나, 얼마 전부터는 정신조차 제대로 차리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게 그때의 업(業)인 듯합니다.”
‘아······진짜였나?’
이런 그녀의 말에 섭춘이 곤란하다는 눈빛으로 몽무약을 쳐다보았다.
몽무약 역시도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서둘러 강을 건너지 못하면 집결지로 기일을 맞추지 못할지도 몰랐다.
반면 이들이 이를 걱정할 때 목경운은 다른 것에 흥미를 보였다.
목경운의 시선은 여인이 아닌 그녀의 뒤, 정확히는 대문 너머에 있었다,
‘요동을 치네.’
장원 안쪽에서 사무친 원혼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너무나도 싸늘하고 사이했다.
게다가 꽤 오래 진행되었었는지, 장원 내부 전체가 이 사이한 기운에 사로잡혀 마치 가라앉는 배처럼 무겁게 침체되어 가고 있었다.
[그 집 양반 수귀(水鬼)에 씌였다니까.]‘이런 의미였나.’
아무래도 객잔 주인인 노파가 했던 말이 마냥 소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데 기묘한 것은 이 정도로 사이한 기운이 대문을 열려서야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마치 시혈곡 절벽 때처럼 누군가 인위적으로 이를 막은 것 같은데······.
‘호오. 이건가.’
목경운의 시선이 대문의 틈 사이로 꼼꼼하게 붙여져 있는 여섯 장의 부적으로 향했다.
이를 본 목경운은 단번에 무엇인
‘육부사방위술(六符四方位術).’
누가 했는지 모르겠으나 제법 실력 있는 방사인 듯했다.
부적에서 상당한 주력(呪力)이 느껴졌다.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았네.’
시해왕과 삼안의 요력을 흡수한 이후, 주력마저 거의 방일(方日)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오른 목경운은 부적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이 부적술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실력 있는 방사 분이 오셨었나 보군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여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답했다.
“그걸 어찌 아신 건가요?”
“부적술에 능한 분인 것 같군요. 대문의 문틈 이외에도 후문과 동서(東西)쪽 담벼락에도 붙였겠지요?”
“맞아요! 맞아요! 죽의에 가려져 있어서 몰랐는데 혹시 방사분이신 건가요?”
그녀가 이렇게 물은 이유는 목경운이 방사들이 입는 도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변변찮은 실력이지만 고명한 방사 분께 방술을 사사했습니다.”
‘변변찮은?’
이런 목경운의 말에 섭춘과 몽무약이 속으로 혀를 찼다.
잘린 자의 팔마저도 도로 붙일 정도의 신묘한 방술 실력을 지녔는데, 어찌 이를 두고서 변변찮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괜한 겸손이었다.
물론 이를 모르는 여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한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야심한 밤에 폭우를 뚫고서 이리 와주신 게 어딥니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한데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지?”
“어머, 제정신을 봐. 객분들을 계속 빗속에 세워뒀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여인이 그렇게 목경운 일행을 장원 안으로 들이며 안내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은 우향이고 장원 주인의 첫째 여식이라고 한다.
목경운과 일행들이 청문을 보고서 왔다고 해서인지 그녀의 태도는 내내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호위하는 두 장정은 아니었다.
안내하는 내내 영 탐탁지 않다는 듯한 눈빛으로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에 청령이 말했다,
-저 중생 놈들 썩 아니꼬운가 보구나.
-그렇네요.
-외관의 근육이 잘 발달해 그럴 듯해 보이지만 보법이 투박한 것을 보니 무공이 아니라 무술 정도만 익힌 것 같구나.
-네, 무공은 익히지 않은 것 같아요.
-관군들이었을 수도 있다.
-관군요?
-그래. 보법이 투박하다 해도 둘 모두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호오. 그렇군요.
장정 둘이 나란히 걷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일치했다.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걷는 자세도 상당히 비슷했다.
-이를 보니 장원 주인이 군관(軍官)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아아.
목경운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해 보니 대문 옆에 붙어있던 현판의 평난공신(平難功臣)은 난(難)을 평정한 공신이라는 의미도 된다.
여기다 관군으로 짐작되는 자들을 호위로 가지고 있는 걸로 보아, 청령의 말대로 장원 주인은 낙향한 군관 출신일 확률이 높았다.
그때 섭춘이 가까이 붙으며 목경운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주군 송구한데 장원 주인을 도와주시려는 것입니까?”
“배를 타야 하니까요.”
멀쩡한 상태라면 협박해서 배를 몰게 하면 되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일단 보죠. 사이한 것이 들러붙어서 그런 건지 아닌지요.”
“네?”
이런 목경운의 말에 섭춘이 어리둥절해 했다.
혹시 몽무약의 잘린 팔을 붙였을 때처럼 신묘한 방술로 다 죽어간다는 장원 주인을 도와주려고 그러는가 싶었는데, 대뜸 사이한 것이 들러붙었는지를 확인한다고 하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해서 조심스레 물었다.
“그 사이한 것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원혼이나 이매망량 같은 거랄까요.”
“······.”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원혼이나 이매망량은 풍설적이고 괴이에 가까운 말들이지 않은가.
주군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장원 주인의 여식 우향이 말했다.
“먼저 오신 청문의 은인분들께서는 아버님이 계신 본당을 지키고 계십니다.”
“본당이요?”
“네, 이문해라는 방사 분께서 오늘 밤이 고비라고 하셔서······.”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본당에 가까워질수록 사이한 기운이 더욱 요동치며 강해지고 있었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절대 격이 낮지 않았다.
“아! 저기 한 분 계시는군요.”
우향이 전각 너머로 보이는 본당 건물 앞을 가리켰다.
이를 본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응?’
본당 기와 처마 밑에 벽에 등을 기대고서 호리병을 들이키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이 사내는 신장이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근육이 굉장히 우락부락하게 발달해 보통사람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컸다.
한데 이보다 눈에 띄는 것은 대머리에 가까울 만큼 짧은 머리카락. 그리고 목에 걸고 있는 깨진 알들로 채워진 염주였다.
‘승려인가?’
분명 복색이나 행색이 승려를 보는 듯했다.
어떤 의미로는 마승과 비슷한 느낌마저 드는 자였다.
그때 섭춘이 입을 열었다.
“허참. 저자가 어찌 이런 곳에?”
“알고 있는 자인가요?”
그 물음에 섭춘이 아닌 몽무약이 끼어들며 답했다.
“복마권사(伏魔拳士) 자금정입니다.”
“복마권사?”
특이한 별호였다.
복마(伏魔)라고 하면 말 그대로 마(魔)를 복속시킨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이런 호칭을 쓰는 단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정도 무림의 발상지이자 중심이라 불리는 소림사(少林寺)였다.
소림사에는 여러 계율과 호칭을 받은 승려들이 있었고, 보통 복마라는 호칭은 불도와 무도를 동시에 수련하는 무승들에게 붙는 표현이다.
이렇게 불도를 닦는 무승이나 쓸 법한 복마라는 호칭이 붙는 것과 달리 저 자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오히려 투박하고 거친 피 냄새가 진동했다.
이런 목경운의 의문이 금방 풀렸다.
“저 자는 소림의 파계승입니다.”
“파계승요?”
“네.”
파계승(破戒僧).
말 그대로 계율을 어겨서 파문당한 승려이다.
이 말에 목경운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아. 살계 때문이겠군요.”
살계(殺戒).
불도를 닦는 승려는 살아있는 것을 죽여선 안 된다.
그것은 무학의 중심지라 불리는 소림사의 승려라고 해도 다를 게 없었다.
이런 목경운의 말에 몽무약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술을 너무 탐해서 파계되었습니다.”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