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14)
무월공검(無月空劍).
그것은 시혈곡의 보고에서 청령이 숨겨놓았던 종이에 있던 검초였다.
그녀는 무월공검을 두고서 구무림을 상징하던 오대 검법 중 하나라고 했었다.
‘아!’
목경운의 눈동자로 그려지는 검의 궤적들.
이를 바라보는 목경운의 머릿속에는 구결을 각인시키며 무아지경 속에서 보았던 절세검객과 노인의 모습이 겹쳐갔다.
-촤촤촤촥!
만월을 떠올리게 하는 시원한 검로. 이것은 그때의 기억을 무색하게 할 만큼 전율을 일으켰다.
시혈곡의 보고로 들어와 청령이 외우라고 했던 검법들을 각인으로 무아지경을 겪었지만 이 검초는 그것들과는 비교가 불가한 전율을 일으켰다.
-촥촥!
‘달라.’
목경운이 더욱 놀란 것은 검식의 차이였다.
무아지경 속에서 보았던 검 초식에도 불필요한 검로들이 없었고, 검로 하나하나가 아름다우면서도 철저하게 상대를 죽이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다.
한데 노인이 펼치는 검초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검로에 대한 틀마저 벗어났다.
‘아아아……’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하다.
공자께서 이르길 종심(從心-일흔)에 달하며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 제도, 원리에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마치 노인의 검이 그러했다.
기존의 초식에 대한 틀을 벗어나 초식을 자유로이 진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것은 무월공검이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 초식이라는 게 이렇게 펼칠 수 있는 거로구나.’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부쉈다.
목경운은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단순히 머릿속에 각인하고 기억한다고 해서 펼칠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이런 충격은 목경운만이 온 것이 아니었다.
비록 육신이 없었으나 청령 또한 살아 생전에는 뛰어난 검수였기에 이를 보는 순간 경악과 함께 개안을 하게 되었다.
‘이게 검(劍)……’
무월검공의 두 초식을 보고서 깨달음을 얻어 월(月)의 검식을 창안했던 그녀였다.
한데 이것을 보고나니 머릿속에서 새로운 검의가 피어났다.
이때 청령과 목경운 간에 한 가지 간극이 생겨났다.
그것은 목각인형 안에 갇혀서 순수하게 검초 그 자체만을 바라보는 청령과 달리 목경운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의 기운이 어떤 식으로 동(動)하는지도 보고 있었다.
이 차이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슥!
얼마 있지 않아 노인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췄다.
그가 이를 멈추자 악즉검의 검신에서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요검이라 불리는 악즉검마저도 노인이 펼쳐 보인 놀라운 검초에 경의를 표하는 듯 했다.
노인이 그런 악즉검을 보며 입을 열었다.
“훌륭하군. 네가 있어서 노부의 검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우우우웅!
그 말에 악즉검이 떨리며 검명을 일으켰다.
이를 보며 목경운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사람을 저리도 가리는 저 요검의 검심이 저럴 정도면 노인은 검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통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노인이 목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았는가?”
“네.”
“얼마큼 기억하는가?”
그 말에 목경운이 별 생각 없이 전부 기억한다고 답하려다 이를 멈췄다.
노인의 물음에 담긴 의미가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기억이야 전부 난다.
노인이 했던 동작 그대로 펼칠 수도 있었다.
하나 그것은 단순히 껍데기에 불과했다.
이에 목경운은 답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노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심 노인은 놀랐다.
목경운에게 검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그가 깨달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한데 설마 목경운에게서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가?”
“네.”
“……..그렇군.”
노인의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검을 다루는 자이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보답이 되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오성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인 듯 했다.
해서 노인은 다시 한 번 검을 들었다.
그러더니,
“하면 다시 보게.”
-촤촤촤촤촤촥!
이번에도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검무를 펼쳤다.
그런데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검의 궤적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검로가 더욱 단순해졌다.
아까가 차오른 만월(滿月)이라면 지금은 반월(半月)이 된 것처럼 검식이 더욱 간결해지면서도 선명해졌다.
검초는 처음과 다르게 절반 정도 선에서 끝이 맺어졌다.
검을 내리자 악즉검의 검신이 더욱 빠르게 떨려왔다.
노인이 목경운을 향해 물었다.
“이번엔 어떤가?”
“…….보고 있는데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 말을 듣자 노인의 입 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그러더니 노인이 이내 악즉검을 들고서 다시 기수식을 취하며 말했다.
“그렇군. 하면 다시 보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인이 다시 검초를 펼쳤다.
방금 전과는 검초가 사뭇 달랐다.
검은 더욱 간결해지고 더 이상 아름답다기보다는 단순히 휘두르는 것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경운의 눈동자는 검의 궤로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눈빛이다.
-촤촥!
노인의 검은 두 번째 펼쳤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끝났다.
거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보면 됐다.
이렇게 검을 휘두르고 난 노인이 목경운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가?”
이 말에 목경운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를 본 노인의 눈에 더욱 이채가 띠었다.
지금 이 호흡만으로 목경운이 자신과 함께 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노인이었다.
이윽고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자질이 미진하여 눈앞에서 보고도 전부 잊어버렸습니다.”
‘!!!!!’
그 말을 듣자 노인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핫.”
그렇게 한참을 웃던 노인이 이를 멈추며 목경운에게 말했다.
“그저 작은 보답을 하려 했는데 재밌게 되었군.”
“……..작은 보답치고는 과한 것 같습니다만.”
“이 또한 자네의 운이겠지.”
이런 노인의 말에 목경운은 문득 그것을 떠올렸다.
희한하게도 노인이 펼친 검식에서 무월공검을 느꼈고, 시혈곡 보고에 있던 구결 속에서 보았던 그 절세검객과 겹쳐지는 걸 느꼈다.
이에 묻고 싶었다.
“어르신 혹시 무월…..”
“허허허. 하마터면 이걸 가져갈 뻔 했군.”
“네?”
-스릉! 착!
미처 묻기도 전에 노인이 말을 자르고서 악즉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목경운을 향해 악즉검을 던졌다.
목경운이 가볍게 검을 잡아내자 노인이 말했다.
“하면 충분히 보답은 한 것 같고 자네도 그것을 갈무리하여야 할 것 같으니, 노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네?”
이 말에 목경운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직 강 한가운데였는데 대체 어디를 간단 말인가?
이 정도 물살이면 아무리 내가고수라고 해도 휩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목경운이 말했다.
“배가 당도하시고 내려도 되지 않습니까?”
“노부가 가려는 곳은 강 건너편이 아니라서 말일세.”
“하나 여기는……”
“괜찮네. 그리고 지나가는 인연에 크게 개의치 마시게.”
그 말과 함께 노인이 대나무 낚시대를 어깨에 짊어지고서 갑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정말로 미친 짓이었다.
아직 정체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낼 수 없었다.
목경운이 노인을 만류하려 했다.
“어르……”
-스륵!
그 순간 노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에 목경운이 황급히 노인이 다가가던 갑판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배 밖을 살폈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어둡고 폭우가 내리치는 강 위라고 해도 목경운의 안력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런데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 뭐지?’
정말 살아있는 인간이 맞는 건가?
한순간에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청령 봤나요?
-………
이에 목경운이 청령에게 물었다.
하나 청령은 답변이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품속에 있던 목각인형을 만져보았는데, 여전히 그녀는 이 안에 봉해져있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할 만큼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청령도 그걸 보고서 뭔가를 깨달은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하긴 지금 자신도 아까 전 노인이 보여주었던 그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주변을 한참 둘러보며 노인의 종적을 찾던 목경운은 이내 그것을 포기하고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노인이 펼쳤던 그 검을 처음부터 떠올렸다.
* * *
배의 선두(船頭).
천지회 본관 제 삼 호위대주 섭춘이 파계승 자금정이 넘겨준 호리병에 담겨 있는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크으. 이거 죽이는군.”
“흐흐흐. 네 녀석은 그래도 술맛을 아는구나.”
“하하하핫. 술맛을 모르면 남자라고 할 수 있나. 뒤집힐 듯 말 듯 기울어져가는 배 위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마시니 술맛이 아주 일품이구만.”
“원래 술은 이런데서 마셔야 기가 막히다.”
“옳은 말일세.”
“그런 의미에서 한 모금!”
-벌컥벌컥!
“에헤이. 그게 한 모금인가? 혼자만 다 마실 생각인가? 나도 같이 마시세.”
아주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어느새 어깨동무까지 하고 한 모금씩 마시며 흥에 겨워하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을 보며 부회주의 아들인 몽무약이 혀를 찼다.
‘미련한 것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느껴지기는 하는가?
하여간 자신과는 맞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렇게 한심하게 여기고 있던 찰나였다.
-쿵!
이내 몽무약이 그대로 눈을 감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어깨동무를 하고서 흥에 겨워하던 섭춘과 자금정 역시도 어느새 눈을 감고서 그대로 바닥에 누워서 잠이 들고 말았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 타(舵)를 잡고 있던 원혼 하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일제히 쓰러진 게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데,
“자넬 잊을 뻔 했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원혼 하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죽우의를 입고서 대나무 낚시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노인이 서있었다.
이를 본 하윤이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어르신!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원혼 하윤이 무릎을 꿇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더니 노인이 말했다.
“노부가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자네 무덤이 파헤쳐지는 일은 없었을 터인데 미안하네.”
-아닙니다. 어찌 그게 어르신의 잘못입니까? 제가 부덕하여 벌어진 일입니다.
이런 원혼 하윤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월이 그리 지났는데도 여전하군. 이제 스스로를 놓아줄 때도 되었는데 말일세.”
-아닙니다. 저는 아직 더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말게나. 그 아이도 자네가 이러지 않기를 바랄 걸세.”
-………
원혼 하윤은 씁쓸한 눈빛으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노인이 격려하듯이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원혼 하윤이 다시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저보다 어르신의 통탄함이 더 깊을 터인데, 여전히 이 못난 자를 위로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감읍하지 않아도 되네. 알겠나?”
-……..
“어쨌거나 일이 무사히 풀렸고 오랜만에 자네의 얼굴도 보았으니 노부는 이제 가보겠네.”
그 말에 원혼 하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올해 만큼은 노인을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10년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아 무덤과 사당을 관리해주었다.
자신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나 노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찾지 못하신 겁니까?
그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군.”
-차라리 저도 적당한 인간의 육신을 구해 어르신을 돕겠…..
“아닐세. 자네는 적당히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노부를 돕는 일일세.”
-……..어르신.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되네. 오늘은 옛 추억을 떠올려서 기분이 좋으니.”
그 말에 원혼 하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추억이라 하심은?
“노부의 할 일을 대신해준 젊은이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오랜만에 녀석을 떠올렸다네.”
‘!?’
그 말에 원혼 하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녀석이라 하심은 혹시 사위 분을 말씀하시는지?
이에 노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긍정의 표시였다.
그 모습에 원혼 하윤이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노인의 입에서 그분이 거론된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노인 역시도 그 범상치 않은 젊은이를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는 건데……
-그분을 떠올릴 정도라니 그 정도입니까?
이 물음에 노인이 아까를 떠올리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능만으로는 녀석조차 무색할 정도더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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