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15)
-쿠구구구.
선두의 배 바닥이 뭍을 긁고 올라갔다.
-첨벙! 첨벙! 첨벙!
배의 좌우와 후미에 달려 있던 닻이 내려갔지만 거친 물살로 여전히 배가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반 시진 채 되지 않아 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했다.
도착할 무렵에 깨어난 섭춘과, 자금정, 몽무약 등은 다소 정신이 몽롱했는지 멍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 잠들었다가 깼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잠시 졸았다는 감각뿐이었다.
‘흠.’
이런 그들을 묘하게 바라보던 목경운이 타(舵) 앞에 서있는 원혼 하윤에게 다가가 포권 지례를 하며 인사했다.
“덕분에 무사히 강을 건넜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약조를 지킨 것 뿐이니 너무 감사하진 않아도 되오.
“약조는 약조고 감사는 감사니까요.”
-알겠소. 하면 조심히 내리시오.
“아! 가기 전에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무엇을 말이오?
“혹시 대나무 낚시대를 가지고 있는 노인을 보았나요? 아니 알고 있나요?”
이 말에 원혼 하윤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모르오.
“정말 모르나요?”
-…….그렇소.
이런 원혼 하윤의 대답에 목경운이 이내 피식하고 웃더니, 다시 한 번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목경운의 뒷모습을 보며 원혼 하윤은 아까 전을 떠올렸다.
[혹 노부에 대해서 묻거든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게나.]어르신의 당부가 있었기에 숨겼다만 아무래도 저 영악한 젊은이는 알아차린 듯 했다.
적어도 어르신과 자신이 인연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말이다.
하지만 어르신이 원하지 않는 이상 그 정체는 모르는 편이 나았다.
‘…….어르신의 안목대로 정말로 그분 이상의 재능을 지녔다면 분명 언젠가 다시 인연이 이어질 것이오.’
* * *
저녁 술초시(戌初時) 무렵.
하남성의 안낙의 기주산 동쪽 버려진 관제묘(關帝廟) 앞.
그곳에 모닥불에 둘러앉아서 구운 노루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세 명의 사내들이 있었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세 사내들 중 한 사람이 유독 튀었는데, 얼굴에 분이라도 칠한 것처럼 하얗고 입술에는 연지를 발랐는지 빨갰다.
심지어 고기를 한 입에 베어먹는 것이 아니라 조신하게 뜯어서 먹고 있었다.
이런 그를 보며 이마에 푸른 띠를 감고 있는 처진 눈의 사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유봉 자넨 아주 내관이 다 됐군.”
“호호호. 내관으로 산지 근 이 년이 다 되어가는데 당연한 소릴 하는군요.”
“다른 건 그렇다 쳐도 그 웃음소리 좀 어떻게 안 되나?”
“이미 입에 배인 것을 어찌 고치겠나요? 조금만 양해해주시지요. 간양님. 호호호.”
“하아.”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어찌나 거슬리는지, 간양이라 불린 푸른 띠를 머리에 감고 있는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에게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턱수염을 기른 사내가 고기를 뜯어먹다 말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간양.”
“왜 그러나?”
“이쯤 기다렸으면 충분하니 슬슬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돌아가자고?”
“그렇네. 어차피 후발대는 오늘 도착하지 못하네.”
“하나 옥기…..”
무언가를 말하려는 강양의 말을 옥기라 불린 사내가 언성을 높이며 끊었다.
“하나가 아니라 보름 가까이 비가 쏟아 부었네. 여기저기 강이 범람하고 산사태까지 났다고 하는데 그들이 무슨 수로 기일을 맞춘단 말인가?”
이런 그의 말대로 보름 간 이어진 비의 폐해는 말로 이룰 수가 없었다.
특히 강 주변은 배를 띄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들은 그들이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아무리 고수들이라고 해도 기일을 맞춰서 집결지로 도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옥기였다.
“흠.”
간양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사흘 뒤에 시위부(侍衛府) 무시(武試)가 있다.
그 전에 이틀 내로 황도인 개봉에 도착해야 했고, 기밀 임무의 진짜 목적과 필요한 요건들을 전부 숙지시켜야 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라 무시를 보기 전에 반드시 만나야 할 자도 있었다.
“우리만으로는 힘들 텐데.”
“힘들고 자시고가 아니라 이미 늦었네. 그들이 내일 도착한다면 이미 그 시점에서 임무에 차질이 생긴 거나 다름없네.”
“……..”
“어차피 선발대가 제때 도착하지 못할 때의 상황도 상정하지 않았나. 그만 돌아가세.”
이런 옥기의 말에 간양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폭우로 강이 범람하여 며칠이나 도하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사실상 내일이 아니라 사흘이 지나도 그들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는 확률은 희박했다.
“후우.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이만 철수하도록 하지.”
이런 강양의 결정에 옥기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후발대가 오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그였다.
내성에서 ‘그곳’의 요구대로 실력 있는 후기지수를 파견한다고 하는데, 그래봐야 실전이나 간자 경험조차 없는 샌님들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자신들은 이 날만을 위해 훈련받았다.
크게 공을 세워 회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할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샌님들을 주력으로 임무를 행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그였다.
‘그런 놈들 따위가 없어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마.’
그렇게 옥기가 남은 노루 고기를 나무 받침대에서 빼내며 모닥불을 끄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바스락!
남서쪽 수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에 그를 비롯한 모두가 황급히 자신들의 병장기에 손을 가져가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누군가 풀숲을 파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제때 도착한 것 같군요.”
‘!?’
모닥불에 비친 얼굴을 본 옥기가 속으로 탄성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순간 여자인가 싶을 만큼 미형의 얼굴에 놀란 것이었다.
그때 그 뒤를 따라서 세 명이 더 나타났다.
유독 눈에 띄는 자는 크진 않아도 근육질에 우람한 체구, 그리고 깨진 염주를 목에 걸고 있는 험악한 인상을 한 사내였다.
그 양 옆에는 다소 가벼워 보이는 도집을 들고 있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과,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에 비해 냉철한 느낌을 주는 청년이 있었다.
‘설마?“
이들의 등장에 옥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이들이 후발대라고?
‘그럴 리가?’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기일에 맞추기 힘든 후발대였다.
애초에 강을 건널 수가 없는데 무슨 수로 오늘 도착한단 말인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던 찰나에 선발대의 우두머리 격인 간양이 그들에게 말했다.
“천명(天命).”
이것은 사전에 정해놓은 암구호였다.
간양의 이 말에 몽무약이 나서며 답했다.
“지운(地運).”
그 말에 간양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제때 도착하지 못할 거라 여겼던 후발대가 철수하려던 시점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팍!
간양이 두 손을 모아 포권 지례를 취하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려 했다.
“어서오시오. 선발대의 간….”
그때 옥기가 말을 잘랐다.
“아직 후발대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 위치와 암구호를 아는 자들이 어찌….”
“그러다 일을 그르치면 어쩌려고 그러나? 뭐든 확실히 해야 하네!”
단호한 옥기의 태도에 간양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회로부터 후발대에 대한 통보를 들은 이후부터 불만이 넘쳤던 그였다.
“이보게. 옥기…..”
“회에서 통보받은 것은 셋이네. 한데 이들은 넷이네. 게다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기일마저 맞췄네. 이게 전혀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일리가 있다.’
그 말에 간양의 표정이 이내 일말의 경계심이 생겨났다.
후발대에 대한 불만으로만 여기기에는 이것은 분명 이상하기는 했다.
-스릉!
그때 옥기가 검을 뽑고서 후발대를 향해 겨냥하며 말했다.
“회로부터 후발대는 삼인(三人)이라고 들었다. 네놈들 정체가 무엇이냐?”
검까지 겨냥하며 추궁하는 그런 그의 태도에 심기가 불편해진 몽무약이 나섰다.
“지금 누굴 의심하는 거냐?”
“의심받을 만한 짓을 했으면 이를 해명해야지 지금 따지는 것이냐?”
평소의 상황이었다면 상대가 아무리 날카롭게 굴어도 우선 경위를 확실히 했을 것이다.
하나 후발대 모두가 그렇겠지만 몽무약은 현재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다.
기일을 맞추기 위해 열흘 가까이 폭우를 맞아가며 휴식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이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비조로 몰아붙이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따져? 누가 지금…..”
“아아. 진정하시죠.”
그런 그를 목경운이 만류했다.
“하오나 주군……”
‘주군?’
주군이라는 말에 옥기를 비롯한 선발대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이를 개의치 않고서 목경운이 말했다.
“후발대로 온 건 저희 세 명이고 이쪽 분은 제 종자입니다.”
‘뭐? 종자?’
이런 목경운의 말에 파계승 자금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듯 하여 어찌하나 지켜보려 했는데, 고작 자신을 이딴 식으로 소개할 줄은 몰랐다.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는 자금정을 쳐다본 옥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기밀 임무에 종자를 데리고 왔다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것이냐?”
“회에서 데려온 건 아니고 도중에 얻은 종자라서요.”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목경운의 태도에 옥기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졌다.
해명을 하라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선발대의 우두머리 격인 간양 역시도 이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반쯤 뽑으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장난 같소? 회에서 내린 막중한 기밀 임무에 정체 모를 종자를 데려왔다고 하면 그걸 우리가 알겠다고 그냥 넘어갈 것 같소?”
“이분의 정체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아니. 그게 요점이…..”
“혹시 자금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자금정이고 뭐고…..뭐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싶어 언성이 높아지려 했던 간양의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금정은 소림의 파계승이자 무림에서 복마권사라는 별호 이전에 삼광(三狂)의 일인으로 더 악명이 높았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었다.
소림에서조차 내놓은 미치광이 파계승이 어째서 이 자의 종자가 되었단 말인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한데,
‘………’
간양의 시선이 자금정에게로 향했다.
안 그래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모습이라 여겼었다.
깨진 염주하며 우람한 체구에 험악한 인상까지 전부 소문으로 들었던 그대로였다.
도저히 상황이 맞지 않기는 하지만 혹시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간양은 뭔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옥기는 아니었다.
“하! 지금 그딴 헛소리를 믿을 거라 생각하나? 아무리 소림에서 내놓았다지만 삼광으로 악명이 자자한 그 자금정이 고작 약관도 되지 못한 애송이의 종자따위를 할 것 같으냐? 상식이 있다면 그딴 말은…..”
-콱!
“컥!”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런 옥기의 목을 누군가 전광석화처럼 움켜쥐고서 들어올렸다.
그는 다름 아닌 파계승 자금정이었다.
‘이, 이 새끼가…..’
한순간 방심했다고 여긴 옥기가 들고 있던 검으로 자금정의 팔을 베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자금정이 그의 손목을 꺾어버렸다.
-뿌득!
“끄으읍!”
-챙그랑!
덕분에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금정이 이마에 핏대까지 선 얼굴로 씩씩거리며 말했다.
“남이사 종자를 하든 노예가 되든 네놈 따위가 뭔데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이 자리에서 모가지를 부러뜨려서 부처님 곁으로 보내주랴?”
“컥컥……”
옥기의 두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지, 진짜 자금정이라고?’
옥기의 무위는 절정의 극에 달했다.
정사를 통틀어 동년배들 중에서는 나름 상위권에 속하는 편이라 자부하는 그였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목을 한 손에 쥐고 들어올려 꼼짝 못하게 할 정도의 무력을 지닌 자라면 틀림없는 자금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목경운이 선발대의 우두머리 격인 간양에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인원을 딱 맞춰야 하는 거면 이참에 한 사람을 줄이면 되지 않을까요?”
‘!!!!!!!’
그 말을 들은 옥기의 얼굴이 이내 아연실색이 되고 말았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