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17)
황궁의 내명부에는 87명의 승은을 입은 여인들이 있었다.
재인(才人), 귀인(貴人), 빈(嬪), 비(妃), 귀비(貴妃) 등의 칭호를 받은 이들이 87명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런 많은 비빈들 중에서도 황제에게 가장 총애를 받고 있는 두 비(妃)가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서 황귀비(皇貴妃), 서양효였다.
그녀에 대한 황제의 총애가 얼마나 컸냐면 장성한 황후의 자식들을 제치고서 그녀가 낳은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황태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황궁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인방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선발대의 우두머리 격인 간양이 손가락 네 개를 펴더니, 이를 하나씩 접어가며 말했다.
“당금의 황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네 사람을 꼽는다면 황제 폐하의 아우인 경친왕(鏡親王) 그리고 삼공(三公) 중 태사(太師)와 중앙도독부의 제독을 겸하고 있는 대신 항윤파, 원래 가장 유력한 황위 후보였던 황제의 둘째 황자 종왕(棕王), 그리고 현 황태자의 모친인 서 황귀비가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천천히 나열하는 것은 목경운이 황궁의 세력과 권력 구도를 전혀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산속에서만 지냈던 목경운은 서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무림도 그렇고 현 중원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황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인방 중 한 사람이 서 황귀비라는 거네요.”
“맞습니다.”
“그런 분이 저희를 왜 도와주신다는 거죠?”
목경운은 이해가 가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듣기로는 황궁과 무림의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불가침 조약도 그대로였고 황궁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정도 무림뿐이라 했다.
그런데 어째서 황궁의 권력자 중 한 사람인 서 황귀비가 한때는 황궁과 정도 무림과 대립까지 하였던 천지회를 돕는다는 건가?
의아해하는데 유봉이 비밀이라는 듯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서 황귀비가 되기까지 귀인(貴人) 시절부터 지원한 게 저희였으니까요.”
“천지회가 서 황귀비를 지원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호오.’
계획이 있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 황귀비가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천지회의 지원을 받았다면 그녀로서도 도움 요청을 마냥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때 팔짱을 끼고서 탐탁지 않다는 얼굴로 호리병의 술을 홀짝 거리던 파계승 자금정이 말했다.
“흥. 적당한 부탁이야 들어줄지 몰라도 과연 자신의 자리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한 부탁도 들어줄까?”
“……..”
이런 그의 말에 선발대의 모두가 부정하지 않는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간양이 말했다.
“그건 복마권사의 말씀이 맞습니다. 사람은 고지에서 서게 되면 올라가기 위해 겪었던 모든 고난들을 쉽게 잊곤 하죠.”
“거절할 확률도 있다는 거네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의 서 황귀비는 예전의 서 귀비가 아니니까요. 황태자의 모친이기에 저희도 함부로 압박을 가하기 힘든 위치까지 오른 셈이죠.”
후궁의 신분으로 황태자의 모친이 되면 귀비에서 황(皇)의 칭호가 더 해진다.
그때부터는 굉장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천지회 입장에서는 오랜 지원을 해왔던 그녀가 그런 위치에 도달한 것이 마냥 달갑지 않은 것이 어떤 의미로는 통제를 벗어난 셈이었다.
“서로 간에 이(利)가 맞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맞습니다. 그렇기에 서 황귀비를 사전에 알현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번에 후발대로 여러분들께서 와주셨기에 그녀의 요구 조건에는 부합합니다.”
“요구 조건? 하면 이미 이야기가 오갔던 거요?”
섭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물음에 유봉이 답했다.
“네. 황귀비 정도 되는 내명부 최고 위치에 있는 권력자에게 대뜸 저희 요구를 당장 들어달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하면 그 요구 조건이라는 게 뭐요?”
“정도 무림의 대소문파들과 마찬가지로 회에서 키우는 제대로 된 후기지수들을 파견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유봉의 대답에 몽무약이 혀를 찼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왜 그러시죠?”
“역시 보통 여자가 아니군요.”
“네?”
“본 회에 제대로 된 후기지수를 보내달라는 건 간자를 통해 배후나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정면으로 움직이라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섭춘도 그 말에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하! 도움을 주더라도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상황은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거로군.”
“그런 것 같다.”
간자의 경우 여차할 경우 꼬리를 자를 수도 있다.
하나 회 소속의 후기지수를 공식적으로 파견하게 되면 상황이 다르다.
문제가 생길 경우 꼬리를 자르기도 힘들뿐더러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고 만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청령이 목경운에게 물었다.
이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말했다.
-영리한 여자로군요.
-그런 것 같구나. 공식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당연히 눈치를 봐야 할 쪽은 부탁을 해야 하는 쪽이다. 게다가 여차할 경우 책임도 져야하고 말이다. 그걸 확실히 해두려는 거다.
-그뿐 만도 아니죠.
-그뿐만이 아니라고?
-네.
-배가 불렀어요.
-배가 불렀다고?
-네.
-아아아. 그런 의미였느냐?
청령은 목경운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들었다.
배가 고픈 자는 허기 때문에라도 아쉬운 말을 하게 되어 있으나, 그 허기가 가시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더 이상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고 목줄이 채워지기도 원하지 않는다.
이를 감안한다면 권력을 쥐게 된 그녀가 순순히 부탁을 들어줄까 아닐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이쪽이 키우기는 했지만 더 이상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패가 아니군요.”
그 말에 간양이 동의하는 투로 말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달래가면서 저희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합니다. 그게 이번 임무의 관건입니다.”
이런 간양의 말에 유봉이 웃으며 덧붙였다.
“하나 너무 우려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지켜봤던 서 황귀비 마마께서는 본 회에 받은 도움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자신과 황태자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고자함이니 그것만 안심시킨다면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그들은 서 황귀비를 통해 황궁을 어찌 해보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회에서 내린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뿐이었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납득하고 있을 때 목경운은 묘한 눈빛으로 선발대인 간양과 유봉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선발대로 하여금 앞으로 어떤 식으로 기밀 임무가 진행될지에 대해 숙지한 후발대는 이곳까지 오면서 한 번도 쉬지 못했기에 한 시진 가량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 * *
피곤함에 섭춘은 골아 떨어졌고 몽무약은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었다.
자금정은 선발대가 구워놓은 노루 고기를 안주 삼아 호리병의 술을 홀짝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관제묘에서 약간 떨어진 조용한 곳에 간만에 목각인형 밖으로 나온 청령이 곰방대를 휘두르며 목경운에게 무언가를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검초였다.
이를 바라보던 목경운이 탄성을 흘렸다.
“아아!”
청령이 펼치고 있는 이 검초는 월(月)의 검식이었다.
그런데 월의 검식이 달라졌다.
원래 그녀가 가르쳐주었던 월의 검식보다 더욱 정교해지고 빈틈이 없어졌다.
게다가 검식에 훨씬 복잡한 변화가 들어가 상대를 현혹시키고 몰아붙일 수 있는 검초로 진화했다.
이렇게 진화한 월의 검식을 선보인 청령이 말했다.
-어떻느냐?
“검초에 빈틈이 없어졌군요.”
-그게 다냐?
“변화도 많아져서 상대하기 더욱 껄끄러운 검초가 되었어요.”
그 말에 청령이 빙그레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배 위에서 그 노인의 검초를 보고나니 월의 검식에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알 것 같더구나. 해서 내친김에 이를 보완했다.
“훌륭하군요.”
-전부 외웠겠지?
“네.”
-하면 전의 것은 잊어라.
“네. 그러죠.”
보완된 검법이 있는데 굳이 결점이 있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는 없었다.
청령이 곰방대를 입에 물고서 연기를 뻐끔뻐끔 내며 말했다.
-한데 중생 너도 본좌와 같이 그 노인의 검을 보았는데 뭔가 깨달은 게 없느냐?
“깨달음이요?”
-그래. 그 검을 보고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느냐?
선상에서 노인이 보여준 검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이에 청령은 그것을 보고서 월의 검식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초식을 보완하여 이를 더욱 완벽에 가깝게 진화시켰다.
지금이라면 놈의 천(天)의 검식을 완전히 능가하지 않았을까 자부했다.
자신조차 이런 깨달음을 얻었을 진데 중생 이 녀석이 그걸 보고도 아무 것도 깨닫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이 녀석의 재능은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과연 그 검이 중생 이 녀석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왔을지 궁금하다.
그때 목경운이 악즉검을 뽑았다.
-스릉!
그리고 검으로 처음 보는 기수식을 취했다.
이에 청령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게 무엇이냐?
지금 목경운이 취한 기수식은 노인이 보였던 것도 자신의 월(月)의 검식도 아니었다.
이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이 말했다.
“원래 월의 검식에 1초식에 필요한 검식은 총 네 개였죠. 한데 이번에 두 식이 들어가서 여섯 개의 식이 조화를 이루더군요.”
그 말에 청령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원래는 하나의 초식에는 네 개의 식이 가장 적합하고 그게 한계라 여겼으나 그건 본좌의 고정 관념에 불과했다. 식이 필요하다면 더 집어넣어 초식의 변화를 다채롭게 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지.
그녀는 여섯 개의 식이 가장 이상적이라 여겼다.
그렇게 보완된 것이 지금의 월의 검식이다.
“네. 저도 그걸 보니까 굳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더군요.”
그 말에 청령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혹시 너……본좌처럼 검초를 보완했다는 것이냐?
“아뇨. 월의 검식은 청령이 더욱 잘 아니 굳이 제가 보완할 필요가 없죠.”
-하면 대체?
“그냥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검초가 무엇일까 고민해봤거든요.”
-잠깐……너 설마?
이 녀석 지금 스스로 검초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건가?
검초를 창안한다는 것은 절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휘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서 식(式)의 조화를 통한 초식의 발현, 그리고 검에 념(念)을 담을 수 있는 검의(劍意), 그리고 초식에 가장 적합하고 그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운기 경로 등의 세 박자가 다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면 이를 두고 종사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본좌 또한 벽을 넘어서고서 놈과 함께 수 년에 걸쳐서 가다듬어 가며 월의 검식을 창안해냈다.’
한데 아무리 그런 엄청난 검을 보았다고 해도 무공을 배운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스스로 검초를 창안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슥!
목경운이 악즉검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붓으로 획을 긋는 것처럼 목경운이 월의 검식과는 전혀 다른 궤로의 검식(劍式)을 해나갔다.
-촥!
첫 검식은 단순했다.
그저 횡으로 긋는 것이었고 둘째 검식도 종으로 긋는 것이었다.
그러나 검식이 더 해갈수록 당연히 변화가 두드러졌다.
월의 검식은 총 24개의 식으로 이루어졌고 원래는 한 초식 당 네 개의 검식을 조합시켰으나 지금은 총 30개의 식으로 한 초식 당 여섯 개의 검식을 조합시켜 그 변화를 더욱 끌어올렸다.
-촥! 촤촤촥!
목경운이 보이는 검식은 10개를 넘어갔다.
검(劍)이라는 병장기의 특성상 찌르는 것과 베는 것의 조화가 이뤄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겹치는 식(式)은 무조건 나온다.
목경운이 보이는 검식 중에 절반 가량이 월의 검식과 비슷한 것들이 나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검식이 달라졌다.
-촤촤촥! 촥! 촥!
전혀 예상치 못한 각도로까지 검의 궤로가 이어진다.
이를 보며 청령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목경운이 펼치는 검식들 하나하나가 조금도 궤로에서 겹쳐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저렇게 다르게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중생 녀석이 이런 것에 경험이 없다보니 검식을 창안하는데 너무 어렵게 다가가는 듯 했다.
저런 식이면 초식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검식을 조합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초반의 열식을 제외하면 어떤 식으로 조합해야 할지조차 난감해 보일 정도였다.
-촥!
“후우.”
그렇게 목경운이 보인 검식은 총 24개였다.
이를 본 청령이 혀를 차며 말했다.
-궤로를 굳이 달리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검식을 창안하면 활용할 수 있는 검식이 결국 중복되고 나머지 검식들은 버리게 될 거다.
“아뇨. 전부 쓸 겁니다.”
-이런 걸로 욕심 부릴 필요 없다. 중생.
“그런 가요?”
-궤로가 전부 겹치지 않겠다는 것 역시도 결국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거다. 네가 정말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다면 얽매이지마라.
“그러려고요.”
-또 귓등으로 듣는 것이냐? 쯧쯧.
하여간 고집이 세다.
청령은 더 말 해봐야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저렇게 창안한 검식들로 조합을 하다보면 결국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 목경운이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더니,
“이게 첫 번째 초식이 되겠군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촤촤촤촤촤촥!
목경운이 검식을 이어가며 초식을 펼쳤다.
그런데 이것을 바라보는 청령의 두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려왔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식들을 조합하여 초식을 펼칠 것인가 궁금해했는데, 그 모든 예상을 뒤집은 결과가 지금 목경운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청령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당연히 24개의 식 중 많아봐야 네 개에서 여섯 개 사이의 조합일 거라 여겼다.
한데 지금 목경운의 펼치는 검식의 조합은,
‘스물네 개의 검식을 한 초식에 전부 조화시킨다고?’
그것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은 검식의 조합이었다.
24개의 겹치지 않는 수많은 궤로들이 엄청난 속도로 펼쳐지며 하나로 초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촤촤촤촤촤촤촤촤촥!
일체의 틈조차 없는 공수일체의 검초였다.
이렇게 초식을 펼치고 난 목경운의 입에서 입김이 흘러나왔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한 번에 스물네 개의 식을 동시에 펼치면서 근육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었다.
‘!!!!!!!’
이를 바라보는 청령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정관념에 구애를 받지 말라고 했더니 상식에 벗어난 초식을 만들어냈다.
‘이놈…..정말 미쳤구나.’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