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2)
7화 착(着)의 식 (1)
이어진 붉은 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혼이 이어졌음을 의미했다.
식신(式神).
주인에 의해 부려지는 괴이가 된 청령의 존재는 이 상황이 얼마나 억울하고 황당했는지 머리까지 쥐어뜯으며 절규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 화를 이기지 못해 목경운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런데,
-치이이이익!
-큭! 망할!
청령의 존재가 목경운의 목을 졸랐는데, 갑자기 당황해하며 손을 뗐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청령 존재의 새하얀 목 부근에 붉게 손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설마?’
이걸 보고서 목경운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식신은 주인이 위해를 받게 되면 이를 공유하는 듯 했다.
‘그래서였나.’
마승이 어째서 몸의 여기저기에 검은 점이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청령의 존재가 핏방울로 공격을 하면서 당한 피해들이 마승에게도 향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군.’
어째서 식신이란 존재들이 주인을 따르는지 알 것 같다.
혼(魂)이 이어지면서 위해를 공유하기에 주인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보면 청령의 존재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오만한 존재가 노예나 다름없는 식신이 되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는가.
아무리 혼만 남은 존재라 해도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목경운은 청령의 존재가 억울해하든 분통이 터지든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목적을 달성해서 만족해했다.
‘청령(靑靈) 급.’
격(格)으로 친다면 일곱 단계 중 다섯 번째로 이매망량에 근접한 고위 원혼이다.
백 년 이상 그 한을 가지고 존재해온 청령 급 원혼은 황령 급인 마승과 달리 살아있는 존재 이외의 것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목경운은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 전에……’
목경운이 여전히 분통을 터뜨리는 청령의 존재에게 말했다.
“식신이 되었으니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
“계속 그러고 있어봐야 시간 낭비가 아닌가요?”
-……..
‘흠.’
목경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씩씩거리며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아무렇게나 불러도 상관없겠군요.”
-……..
“머저리 이런 것도 상관없나요?”
-감히!
목경운의 그 말에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하던 청령의 존재가 훽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건 또 싫은가 보군요.”
그 모습에 청령의 존재의 한 쪽 눈썹이 무섭게 치켜 올라갔다.
-망할 중생이 감히 본좌를 가지고 놀아?
“가지고 놀리기 싫으면 적당한 호칭을 알려주시죠.”
-하찮은 중생에게 알려줄 호칭 따윈 없느니라.
그 말을 하고는 청령의 존재가 다시 고개를 훽하고 돌렸다.
이를 보며 목경운이 속으로 혀를 찼다.
다행히 자신에게 위협이 되진 않겠지만 이거 통제하기가 꽤나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졌다.
“별 수 없군요. 알려주기 싫으시다니 아무렇게나 부를게요.”
-……..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니 청령이라 부르겠습니다.”
원혼의 격을 나타내는 급인 청령을 그대로 호칭으로 정한 목경운이었다.
이에 청령의 존재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뭔가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진명이나 호칭 같은 것을 알려주고 싶진 않은 듯 했다.
‘천천히 구슬려봐야겠군.’
이왕 얻은 청령 급인데 써먹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이를 내색하지 않고서 목경운은 어딘가로 다가갔다.
그것은 공동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겉표지였던 인피가 뜯겨져 나갔던 서책이었다.
서책을 주워들은 목경운이 물었다.
“안에 뭐가 적혀 있는지 청령은 잘 아시겠군요.”
-누가 청령이라는……후우.
화를 내려다 그녀는 말을 섞기 싫다는 듯이 손을 휙휙 휘저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곰방대를 주워서 뻐끔거리며 피워댔다.
어지간히 골초인 듯 했다.
목경운이 입맛을 다시더니 서책을 넘겨보았다.
‘응?’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서책 안에 적혀 있는 글씨는 아무래도 핏물로 적은 글씨인 듯 했다.
‘재밌네.’
겉표지는 인피였고 글씨는 핏물이라.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 서책이 꺼려서 넘겨볼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목경운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뭐지?’
서책 안에는 글자들이 순서가 없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워낙 아무렇게나 나열되어 있어서 해석조차 힘들었다.
목경운은 그런 글자들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왜 이렇게 두서없이 나열한 거지?’
글자들도 일반적인 말들보다는 상당히 추상적이게 쓰이는 단어들뿐이었다.
이런 식이었던 글을 최근에 본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연목화심법(然木化心法)이었다.
호흡과 운기 방법에 대해 적혀 있었지만 심결에 관련된 부분은 시(詩)를 보는 것처럼 상당히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뤄졌었다.
‘비슷하네. 한데 더 복잡하다.’
총 서른 글자가 아무렇게나 나열되어 있었다.
이를 조합하는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연결하든 의미 없는 문장이 생겨났다.
-피식!
그때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에 그곳을 바라보니 청령이 곰방대를 뻐끔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반응을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넌 이게 뭔지 모를 걸 이런 것 같다.
목경운은 이를 개의치 않고서 글자들을 뚫어지게 보았다.
“흠…….”
한참을 바라보던 목경운.
이내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무절망려서…….이형위심양……”
-!?
두 문장이 나오자 비웃고 있던 청령이 표정이 굳어졌다.
이 반응을 통해 목경운은 조합한 두 문장이 맞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내색하면 청령의 표정으로 확인할 수 없을 듯 해서 일부러 표를 내지 않고서 뒷문장을 유추했다.
“무오전거상……무상형위전……”
이를 말하자 청령이 굳어지다 못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뒷문장도 맞는 모양이었다.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느낌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맞아 들어갔다.
남은 여섯 단어로는,
“마가량해거……역해무극혈.”
-우그적!
바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였다.
문장을 끝내는 순간 배의 중심부가 쪼이는 느낌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서책이 기괴하게 우그러져버렸다.
‘이게 대체?’
목경운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서책이 우그러진 형태를 보면 들고 있던 손의 방향으로 종이가 뭉쳐졌다.
꼭 손바닥에 흡착되려고 하는 형태와도 같았다.
그때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착(着)을?
“네?”
목경운이 반문하며 쳐다보자 청령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고개를 훽하고 돌려버렸다.
말을 섞기 싫다는 의지가 굳건해보였다.
이런 그녀를 바라보며 목경운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착(着)이 뭐죠? 서책이 이렇게 된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
“서책이 구겨질 때 배꼽 아래쪽이 살짝 팽팽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것도 관련이 있나요?”
-하……
이런 목경운의 말에 청령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목경운이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던 청령이었다.
그렇기에 절대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것은 어지간한 경지에 오르거나 깨달음이 없는 이상은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데 놀랍게도 목경운이 이 서른 글자를 조합하여 첫 번째 구결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
청령이 목경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을 식신으로 만드는 바람에 말도 섞기 싫었지만 궁금증이 커졌다.
정말로 제대로 저것을 이해한 건지 말이다.
이내 고민하던 청령이 입을 열었다.
-어이 중생아.
“정……아니 목경운이요.”
-뭐?
“목경운이라고 부르세요.”
그 말에 청령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중생아.
이름을 알려줘도 딱히 그렇게 부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딱히 그것에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었기에 목경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라 부르든 의사만 통하면 되니까 말이다.
청령이 곰방대를 머금었다가 연기를 후하고 내뿜으며 말했다.
-중생아. 방금 전 그 감각을 기억하느냐?
“감각요?”
-그래.
“무슨 말인지 모호하네요.”
그런 목경운의 말에 청령이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하찮은 중생이 착(着)의 식(式)을 그리 간단하게 익힌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일…..
-우그적!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목경운이 쥐고 있던 서책이 더욱 우그러져서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이를 바라보는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아?’
청령이 말한 것처럼 그 감각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그 구결을 머릿속으로 외우며 집중해보았다.
그러자 또 다시 종이가 우그러지며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 또 다시 배꼽 아래가 살짝 팽팽해졌다.
그것도 모자라 손바닥을 중심으로 팔의 혈관들 또한 배꼽처럼 팽팽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목경운이 청령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뭐죠?”
청령이 그런 목경운을 바라보며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생전에도 못 봤던 걸 죽어서 보다니.
“네?
-……..아니다.
“뭐가 아니라는 거죠?”
-신경 꺼라. 중생아.
“이왕 운명 공동체가 되었는데 마음을 조금이라도 비우면 어떨까요?”
-마음을 비워? 하! 본좌가 하찮은 너 같은 중생의 식신이 되었는데 마음을 비우게 생….
“흡!”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경운이 손을 움켜쥐었다.
어느새 손등을 비롯해 손목의 핏줄들이 터질 것처럼 바짝 곤두서있었다.
-파르르르르!
-칫!
청령의 손등이 떨려왔다.
혼이 연결되어 있어서 목경운의 고통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청령이 소리쳤다.
-어이! 중생. 호흡을 멈추고서 머릿속을 비워라.
“흡흡!”
-호흡을 멈추라니까!
이런 그녀의 외침에 목경운은 억지로 숨을 멈췄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외우던 그 구결들을 지우기 위해 다른 생각들을 했다.
목경운의 이런 모습에 청령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굉장한 집중력이었다.
방금 전 그것은 착의 식을 조절하지 못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보통이라면 구결에 빠져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저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목경운은 고작 조언 한 번에 이를 혼자의 힘으로 벗어나고 있었다.
놀라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아.”
이윽고 목경운의 입에서 안정된 호흡성이 들려왔다.
이 모습에 청령이 혀를 내둘렀다.
목경운이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그건 왜 그런 거죠?”
-…….착의 식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그런 거다.
이번에도 답변을 해주지 않을 거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청령은 곱게 답해주었다.
이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제대로 알려주실 건가요?”
-흥! 네놈이 또 쓰잘데기없는 짓을 해서 본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으려는 것뿐이니라.
그런 청령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목경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면 말이다.
“착의 식이 뭐죠?”
-말 그대로다. 끌어당겨서 붙게 하는 것이다.
“붙게 한다면 방금처럼 말인가요?”
-그래.
“한데 왜 배가 아프고 그것도 모자라 혈관이 팽배해진 거죠?”
-아무 것도 없는데 그저 끌어당기니 그렇지.
“그게 무슨 말이죠?”
의아해하는 목경운을 바라보던 청령이 곰방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것은 대롱대롱 매달린 채 죽어있는 조일상이었다.
거꾸로 매달아놓고서 목을 베었더니 피가 전부 빠졌는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저기다 해봐라.”
“이것에 말인가요?”
목경운이 죽은 조일상에게 다가가 툭툭 건드렸다.
이에 청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
왜 죽은 조일상에게 착의 식을 써보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경운은 군말 없이 손바닥을 갖다댔다.
그러자 청령이 다그쳤다.
-아니 거기 말고.
“네?”
-죽어서 기운이 흩어졌겠지만 단전 쪽에 해라.
“단전이라면 복부 배꼽 아래쪽을 얘기하는 건가요?”
-그런 것도 일일이 얘기해줘야 하는 거냐?
“………뭐 잘 모르니까요.”
그 말에 청령이 콧방귀를 내뿜더니 곰방대를 빨면서 연기를 내뿜었다.
이에 목경운은 숨을 가볍게 들이쉬고는 조일상의 단전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그리고는 착의 식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외웠다.
‘무절망려서 이형위심양 무오전거상 무상형위전 마가량해거 역해무극혈.’
이와 함께 그 감각을 떠올렸는데,
-팍!
그러더니 이내 죽은 조일상의 단전 쪽 피부가 목경운의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서책이 우그러졌을 때와 촉감이 다르긴 했지만 별다른 게 없었다.
라고 여기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뭔가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따뜻한 기운이었다.
‘이건?’
기운이 손바닥으로 들어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혈관을 타고 흐르던 따뜻한 무언가는 팽배해진 복부마저 따뜻하게 만들었다.
따스한 기운에 기분이 들뜨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청령이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느껴지나? 그게 착(着)의 식이 가진 묘리다. 무엇이든 당겨서 붙게 할 수 있다. 그것은 기(氣)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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