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27)
정도 무림에는 여러 명문 무가들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명성 두터운 일곱 무림 세가들이 있는데, 그들을 두고서 칠대세가라 칭했다.
그런 칠대세가 중에 하북에서 도(刀)로서 명성을 떨치는 명가가 있었는데, 이 가문을 무림인들은 하북팽가(河北彭家)라 불렀다.
현 하북팽가의 실권을 쥐고 있는 자는 가주인 팽일현으로 하북패도(河北覇刀)라 불리는 도법의 귀재였다.
하북성에서만큼은 도로는 누구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알려진 팽일현 가주에게는 그 몫지 않은 무위를 지닌 두 아우가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인 둘째 팽이문은 일찍이 권세에 눈을 두어 벼슬길에 나아갔다.
팽이문이 관직에 있는 덕분에 하북팽가는 그 수혜를 여러모로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막내 아우인 팽석임이 있었는데 그 품성이 형제들 중에 가장 좋지 않았다.
주색(酒色)을 워낙 밝혀 몇 번이나 구설수에 올랐고 도(刀)의 명가에 태어났으면서도 검(劍)을 고집하여 일족의 어른들의 눈 밖에까지 났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북팽가에서 그를 중용하는 것은 그 무재만큼은 워낙 뛰어나 가주인 팽일현에게 버금갈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슥슥!
이런 팽 가주의 막내 아우 팽석임이 등불로 밝혀놓은 음식점의 담벼락을 쳐다보며 검날을 천으로 깨끗이 닦았다.
이 모습에 그의 옆에 있던 한 무사가 물었다.
“대형. 뭘 그리 검날에 신경을 쓰십니까?”
“신경 써야지. 있다가 마마의 앞에서 멋들어지게 몸을 풀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아니. 황귀비 마마가 그리도 좋으십니까?”
“그런 절세미녀를 보고도 동하지 않으면 어찌 사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이고. 말조심 하십시오. 임자가 있는 분입니다.”
그 임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 폐하다.
무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팽석임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랏님도 눈앞에 없으면 욕할 수 있는 법이다.”
“대형!”
“알았다. 알았어. 뭘 그리 난리느냐. 하여간 너도 참 유별나구나.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늙은이에게는 아까운 여자 같지 않느냐?”
중얼거리는 팽석임을 보며 무사가 속으로 혀를 찼다.
무재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힌 자인데 이 주색만 관련되었다 하면 정신을 못 차린다.
황도로 온 후로 이를 멀리하기에 나이가 차서 제정신을 차린 건가 싶었는데, 언감생심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고 있다.
‘…….그만큼 아름답기는 하지.’
무사도 서 황귀비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늙은 황제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팽석임이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나 아무리 주색을 밝히는 팽석임이라 해도 황제의 여인인 그녀만큼은 절대로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목숨이 여럿이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러던 차에 팽석임이 갑자기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대형?”
그것은 담벼락 앞에 있는 몇몇 병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아까 전 가게 안으로 들어간 천지회 측 무림인들로부터 거둬간 병장기들을 빼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 중 도신 유독 얇아 팔랑거리기마저 하는 도를 빼들어 휘두르고 있었는데,
“저 도 멋지군.”
“멋지다고요?”
“그래. 저 정도로 도신을 얇게 했는데도 탄력이 있는 걸 보면 대단한 명장이 만든 것 같은데?”
“오 그렇습니까?”
“천지회 측에서 제법 한 가닥 하는 녀석들을 보낸 것 같긴 하네.”
“그럼 안 좋은 거 아닙니까?”
“뭐가 안 좋다는 거냐?”
“저희가 지원가야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좋은 거지. 인마. 그래야 마마 앞에서 뭐라도 보여줄 거 아니냐?”
“참 어지간하십니다.”
무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는데 팽석임이 미간을 찡그렸다.
“대형? 혹시 화가 나신 겁니까? 그런 거면 사죄드리겠…..”
“저 검……대체 뭐지?”
“네?”
팽석임이 쳐다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무사가 웬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검을 들고 있는 병사를 발견했다.
그런데 병사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검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왜 저러는 거죠?”
“………”
“대형?”
그런데 팽석임 또한 검을 쳐다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굉장한 보물을 발견한 듯한 그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차앙!
‘아닛?’
동창의 장 소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장 소감은 회색 관복의 중년인, 아니 하북팽가의 고수인 팽이문의 패도적인 기세의 일도가 고작 젓가락에 막힐 줄은 몰랐다.
정확하게는 막힌 것도 아니고 도신이 젓가락에 잡혔다.
‘이럴 수가?’
장 소감은 내심 당혹스러웠다.
환관 유 감승이 했던 말이 있어서 천지회 측에서 보낸 후기지수들 중 저 미색이 뛰어난 어린 친구가 가장 무위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봐야 후기지수 수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도 무림의 명문 무가 중 하나인 하북팽가의 고수의 도를 이런 식으로 잡아낼 수준의 고수일 줄은 몰랐다.
-휙!
장 소감이 유봉을 쳐다보았다.
유봉 또한 이 상황이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하북팽가의 고수인 팽이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 예측했는데 그것이 깨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목경운이 비릿하게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가만히 있기는 그른 것 같네요. 안 그런가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간양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원래의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
서 황귀비 측에서 이렇게 자신들을 제압하려는 것도 천지회와 연을 끊거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판을 끌고 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에 간양이 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채강!
그때 회색 관복의 중년인 팽이문이 젓가락에 붙잡혀 있는 도를 회전시키며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젓가락에 붙잡힌 그의 유엽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파르르르르!
이에 팽이문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놈 나보다 공력이 더 강하다.’
지금도 이미 9성 공력, 즉 최고 공력에 가까운 힘을 쓰고 있었는데도 이렇다는 건 내공에서조차 이 녀석에게 밀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팽이문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말도 안 돼.’
팽이문은 완숙함을 넘어서 초절정의 극에 가까운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공력으로 압도한다는 것은 완전히 초절정의 극(極)에 이른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애송이가 벽을 넘어야 한다는 건데…….
‘있을 수 없다. 약관도 되지 않은 녀석이 어찌 화경의 경지에 이른단 말인가?’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는 정도 무림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그들 중에서도 십대의 나이에 이 경지에 이른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랫동안 수련을 하고 높은 깨달음을 얻어야만 이를 수 있는 경지였기에 팽이문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녀석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할 수 없다. 그럼!’
-탓! 팍!
유엽도의 손잡이를 놓은 팽이문의 도병의 끝을 강하게 손바닥으로 쳐냈다.
이것은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비전 중 하나인 도파술(刀破術)이었다.
도병을 발경으로 치면서 도신을 깨뜨려 그 조각들에 예기를 실어 상대에게 날려버리는 수법이었다.
-채차차차차창!
발경에 의해 부서진 도 조각들이 목경운에게로 쇄도했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고 앉아 있는 상태였기에 이것만큼은 도저히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도 조각들이 그렇게 목경운을 꿰뚫을 기세로 피부에 닿는 순간,
-파파파파파팍!
그와 함께 도 조각들이 목경운의 몸을 뚫지 못하고 미끄러지듯이 궤로를 이탈하더니 여기저기 다른 곳들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이게 대체?’
이에 놀란 팽이문이 황급히 바닥을 박차며 거리를 벌렸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재미있는 수법이군요. 자신의 도를 부숴서 암기처럼 날리다니.”
“네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정체요?”
“천지회의 간부인 암종주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지금 이 수법을 이렇게 쉽게 막을 수는 없다.”
차라리 천지회 오왕(五王) 급의 간부라면 그나마 수긍이 갈 것이다.
그들 중에는 팔성(八星)의 칭호를 받은 괴물들도 있으니 말이다.
한데 그런 그들도 아니고 천지회 종주 급 간부의 제자가 이렇게나 강하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지 않는가.
“제 스승님을 너무 얕보시는군요.”
“얕보는 게 아니라…..”
“그보다 남의 목숨을 노렸으니 응당 대가는 치르셔야겠죠.”
“뭐?”
-슥!
목경운이 바닥에 박혀 있는 도날 중 하나를 검지와 중지로 떼어냈다.
그러더니 이내 팽이문을 향해 암기처럼 날렸다.
날아오는 도 조각에 팽이문이 황급히 몸을 옆으로 틀어서 그것을 피해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팍!
그가 몸을 트는 순간 목경운이 재빨리 도 조각 하나를 더 날렸다.
도 조각은 정확하게 팽이문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채앵!
그 순간 누군가가 그것을 연검(軟劍)으로 쳐냈다.
그 누군가는 바로 동창의 장 소감이었다.
“장 소감!”
하마터면 목이 꿰뚫릴 뻔한 팽이문이 그를 향해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장 소감이 황급히 말했다.
“대인.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저와 협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휘이이이익!
그 말과 함께 팽이문이 입으로 내공을 실어 휘파람을 불었다.
이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목경운이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안 그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우까지 와서 합세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장 소감이 유봉에게 소리쳤다.
“유 감승은 나머지를 이끌고 저들을 상대해라.”
“네….넷.”
유봉이 황급히 답하기는 했으나 내심 당혹스러워했다.
그의 원래 계획은 팽이문에게 목경운을 상대하게 하고, 장 소감과 합공하여 나머지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일류 무사들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후발대로 온 섭춘과 몽무약은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이었다.
간양이나 옥기도 보통 이들이 아닌데 저들을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아니다. 약한 소리하지 말자. 팽가의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어차피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 금방 올 것이다.
아무리 이들이 강해도 잠깐 사이에 전황이 뒤집히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별 수 없네.”
“이런 식으로 꼬이다니.”
섭춘과 몽무약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무사들을 향해 권각술의 기수식을 취했다.
보아하니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간양과 옥기 또한 일을 그르쳤다고 여겼는지, 싸울 태세를 하면서 원망의 눈초리로 유봉을 노려보았다.
그때 유일하게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황귀비 마마.”
‘!?’
일촉즉발의 상황인데 갑자기 목경운이 서 황귀비를 부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물론 당사자인 서 황귀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예상보다 뛰어난 무위를 지닌 목경운에게 상당히 놀란 상태였었다.
무공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 해도 황궁에서도 내놓으라는 고수들인 장 소감과 팽이문이 합공을 하려 할 정도라면 보통 실력이 아님은 확실했다.
“왜 본 비를 부른 것이냐?”
서 황귀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을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벌어질 일?”
“네.”
서 황귀비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놈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때 팽이문과 함께 합공을 하려 했던 장 소감이 언성을 높여 다그쳤다.
“무엄하다! 어딜 감히 마마께…..”
“멈춰보시오.”
“마마?”
이런 장 소감을 제지시킨 서 황귀비가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참으로 방자한 자로구나. 그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으냐?”
“마마를 제외한 모두가 이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
순간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었는데, 이 무뢰배 같은 놈이 감히 자신을 겁박하는 것인가?
그런데 목경운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듣자하니 정적들이 많으시다죠?”
“뭐라?”
“어차피 마마께서는 저희 손을 놓고 싶어하시니, 그 쓸모가 다한 듯 하여 그분들에게 마마의 목숨을 담보로 협상을 진행할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