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37)
-크그그그그!
물에 젖은 흙은 뭉쳐놓은 것마냥 뭉개져서 내려가는 격세석 석판.
별다른 기대감조차 가지지 않았던 부감독관 이선부의 천호 시우량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무슨?’
기감 상 그가 느끼기에 목경운의 무위는 완숙한 절정의 경지였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도 두 촌 반 정도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
놀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다른 다섯 부처의 천호들 역시도 시험을 진행하다 말고서 이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크그그그그!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일까?
거침없이 석판을 뭉개고 내려가던 목경운의 손가락 다섯 개는 이윽고 완전히 그것을 통과하여 격세석 석판을 길게 여섯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쿵! 쿠쿠쿵!
바닥을 나뒹구는 이 격세석 조각들을 따라 고개가 내려간 이선부의 천호 시우량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시 정적으로 물들어있던 훈련장.
이내 여기저기서 술렁였다.
“······미쳤어.”
“지, 지금 격세석 석판을 그냥 손으로 저렇게 만든 거야?.”
“저 자식 얼마나 내공이 강하면 흠을 내는 정도를 넘어서 저렇게 만들 수 있지?”
생도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감탄은 자연스럽게 누군가와의 비교로 이어졌다.
그는 바로,
“주운향도 저 자식도 그렇고 대체 뭐야?”
“저것들 완전 괴물인데?”
“부감독관들도 넋 놓고 있는 거 보면 몰라?”
“그러게 말이야. 한데 그래도 격세석 석판을 완전히 박살 낸 주운향이 저 녀석보다 내공이 강한 거 아냐?”
“맞아. 주운향은 그냥 완전히 박살 냈잖아.”
“그럼 주운향이 계속 일석인가?”
난리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생도들의 반응보다 천호들은 더 심각했다.
주운향이 격세석 석판을 부쉈을 때도 내공이 생도가 아닌 금의위 천호 이상 급에 이르러 놀랐었는데 이건 더욱 경악스러웠다.
‘괴물 같은 놈이다.’
여섯 부처의 천호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이곳에 모인 천호 중에 절반 가량은 절기를 펼치거나 무리한다면 운향이 했던 것처럼 격세석 석판을 박살 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목경운처럼 저렇게 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내공이 사방으로 분산되지 않게 만들어야만 다섯 손가락 형태 그대로 격세석을 파고 내려갈 수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수준 높은 고급 기예였다.
천호들도 이를 알아보았지만, 생도 중에서도 목경운의 이 기예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궁세가의 남궁청현과 종남파의 제자 금종현이었다.
수준이 미치지 못하는 생도들과 달리 그들은 천호들처럼 목경운이 보인 기예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절대 후기지수 수준이 아니다.’
‘이건 태사부님이신 건문자 진인이나 장문인이 아니고는 못 할 것 같은데.’
뛰어난 무공과 안목을 갖춘 그들이었기에 이 기예 하나로도 목경운과 자신들의 격차를 확연하게 실감했다.
물론 이들처럼 순수하게 경탄을 금치 못하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련맹 사밀검 귀사만에게 무공을 전수 받은 위부청은 주운향에 이어서 관심의 집중을 받고 있는 목경운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으득!
‘어째서 이런 놈들이 연달아······.’
내정과 상관없이 금의위 선발 과정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경친왕 전하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으려 했던 계획이 점차 어그러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를 망쳤다고 여긴 주운향과 목경운에 대한 분노가 커져갔다.
‘기가 차군. 고작 저 나이에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르다니.’
총감독관 육천호 채호성이 혀를 내둘렀다.
초절정의 극(極)에 이른 그 역시도 억지로 해보자면 저 천지회의 후기지수가 보인 기예를 선보일 수는 있었다.
다만 저렇게 다섯 손가락 모두로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그만큼 내공을 조절하는 것이 숨을 쉬듯이 할 수 있어야 가능한 고급 기예였다.
‘저런 괴물을 길러내다니.’
과연 무림의 패권을 쥐고 있는 세 곳 중 하나인 천지회다웠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평가할 수 있는 영역에 들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아마도 육천호 소예린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응?’
옆을 쳐다보니 소예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천지회의 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은 여태껏 처음이었다.
이에 육천호 채호성이 조심스레 그녀를 불렀다.
“소 육천호.”
“아······네.”
그녀가 살짝 몸을 떨며 놀라는 기색과 함께 답했다.
그런 그녀에게 육천호 채호성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 않소?”
“······그렇군요.”
“육선관에 또 다른 괴물이 들어온 것 같소. 오선부의 육천호나 그대가 들어왔을 때가 생각날 만큼 충격적이구려.”
육천호 소예린 역시도 당시 모두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고작 약관의 나이에 여성의 몸으로 육선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육천호의 자리를 꿰찰 만큼 대단한 역량을 선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천지회에서 보내온 저 괴물은 그들보다도 어렸다.
아직 약관에조차 이르지 않았다.
그만큼 발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이런 육천호 채호성의 감탄사를 반쯤 한 귀로 흘리며 육천호 소예린이 어딘가로 눈길을 돌렸다.
그것은 바로 합격조에 있는 주운향이었다.
‘역시 당신도 느꼈군요.’
그녀와 마찬가지로 주운향 또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주운향은 등골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손끝부터 차가워지는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방금 그건 뭐지?’
천지회의 목경운이라는 자가 석판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순간 체내의 기운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저절로 활성화되었다.
마치 뭔가를 경계하는 것처럼 말이다.
‘흡사 칠흑 같다.’
이 감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어려웠다.
그저 흉악하면서도 어둡다는 것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불쾌감에 사로잡혀 있던 차에 천지회의 목경운이라는 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
주운향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목경운이라는 놈이 자신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의 심사를 맡았던 이선부의 천호 시우량이 결과를 외쳤다.
“생도 목경운. 석판 오지 절단. 일석!”
단숨에 일석을 갈아치우는 결과에 생도들이 술렁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엇? 뭐야?”
“일석이라니?”
“대단하긴 해도 주운향이 더 대단한 거 아냐?”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기예인지를 모르는 평범한 생도들로서는 그 결과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생도 중에 이 같은 결과를 납득할 만 한 자는 상위권의 몇몇밖에 되지 않았다.
합격을 한 목경운이 합격조를 향해 담담히 걸어왔다.
그리고 주운향을 스쳐 지나가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단전이 아니라 중단전에 꼭꼭 숨겨두고 있었군요.”
‘!?’
그 말을 들은 주운향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목경운은 이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길게 대화를 할 여유가 없었기에 이 정도만 이야기하고는 그냥 지나쳐갔다.
-꽉!
반면 주운향은 목경운이 지나가는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그를 지나쳐 합격자들의 가장 뒷열에 선 목경운에게 앞에 있던 섭춘이 슬그머니 뒤로 빠져나와 속삭이며 말했다.
“주군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랄 게 있나요.”
그저 석판 하나를 뭉개버렸을 뿐이었다.
그런 목경운에게 섭춘이 작은 목소리로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주군······. 너무 실력 발휘를 하신 게 아닌지?”
안 그래도 이것이 묻고 싶었다.
당연히 금의위 선발 과정에서 합격하려면 상위권에 속해야 한다.
그러나 목경운이 마음만 먹었다면 굳이 이런 기예를 보이지 않고도 어느 정도 맞춰줌으로써 상위권에 속할 수도 있었다.
한데 이 덕분에 괜히 크게 주목을 받은 것 같아 우려되었다.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답했다.
“성가신 일이 생겨서요.”
“성가신 일이라고요?”
“네.”
목경운이 조금 전에 있었던 뭔가를 떠올렸다.
* * *
불과 방금 전,
시험을 치르기 위해 격세석 석판 앞으로 다가가는 목경운의 귓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겁 없이 그분을 해하려고 했다는 자로군요.
‘!?’
그것은 다름 아닌 전음입밀(傳音入密)이었다.
목경운이 내색을 하지 않고 가늘어진 눈매로 눈동자를 굴렸다.
황궁에 전음을 할 줄 아는 자가 있었던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침착하군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제법이에요.
‘······남자.’
목소리는 남자인데 말투가 꽤나 여성스러운 말투를 쓰고 있다.
보통 이런 말투는 환관들이 쓸 법한 말투였다.
목경운은 기감을 열고서 눈동자만 움직여 이 소리가 어디서 전달되는지를 추적하려고 했다.
-둘러본다고 해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나요?
눈동자를 굴리던 목경운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고 그것을 담은 기운 역시도 여기저기로 튕겨 나가듯이 퍼져나가, 추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전음입밀, 즉 일반적인 전음과는 뭔가 달랐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아봐야 소용없어요. 육합전성(六合傳聲)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육합전성?
그게 뭐지?
기운과 소리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수법을 말하는 건가?
-그보다 범 노인의 말대로라면 벽을 넘어섰다고 하던데, 느껴지는 기운은 고작해야 절정의 수준에 불과하군요.
범 노인?
방금 전의 이 말로 인해 목경운은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빨리도 움직였군.’
목경운이 알고 있는 범씨 성을 가진 노인은 폭우 속 객잔에서 보았던 그 자다.
그 노인의 기운을 완전히 읽어냈기에 목경운은 황궁에서 범 노인이라는 자가 살아있다는 사실과 서창의 환관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어제 자신을 보고서 놀라 황급히 어딘가로 향한 것을 발견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 같다.
‘이 자도 환관이겠군.’
다른 건 몰라도 환관들은 자신들의 입에 밴 말투를 쉽게 고치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이 자는 범 노인의 동료이거나 윗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흐음.’
성가셔질 거라고는 여겼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몽무약이 미처 해결하기도 전에 말이다.
그때 전음이 이어서 들려왔다.
-그렇다는 건 그대가 진짜 무위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마침 잘됐군요. 그대가 정말로 벽을 넘어섰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시죠.
목경운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실력을 보이라고?
여기서 말인가?
‘······.’
원래 목경운은 적당히 섭춘이나 몽무약과 비슷한 수준으로 격세석 석판에 흔적을 남기려고 했다.
굳이 이곳에서 실력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이런 요구를 하면서 정말로 성가셔지기 시작했다.
‘어찌할까나.’
상대의 의도는 명확했다.
말 그대로 자신의 무위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에 끌려다녀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상대 역시도 만만치 않은 자였다.
-만약 그대가 나의 말을 무시한다면 그분을 해하려 했던 죄로 시위부 무시 자격을 이대로 박탈당하게 될 거예요.
‘!?’
-그걸 원치 않는다면 제대로 걸맞은 실력을 보이세요.
이런 전음에 목경운이 무미건조해진 눈빛으로 입술을 실룩거렸다.
실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일을 강제로 방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아니 하면 그 서창의 노 환관과 그자가 모시는 여자가 보낸 자라는 게 아닙니까?”
“아마도 그렇겠죠.”
“하······.”
섭춘이 목경운의 말에 우려를 금치 못했다.
설마 했지만, 생각보다 그 환관이 모시던 여자의 신분이 높은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주군을 상대로 전음입밀로 자신의 위치를 속일 수 있을 정도의 고수를 어찌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 정도라면 황궁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는 건,
“······주군. 그 정도 고수라면 누구인지 윤곽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몽무약에게 시켜서 오늘 일차 무시가 끝난다면 알아보도록······.”
“알아내는 건 좋은데 뭔가를 하진 않아도 돼요.”
“네? 하나 그냥 내버려 두면 분명 더욱 방해가······”
“어차피 알아서 접선해올 거예요.”
“접선이라면?”
“앙갚음을 먼저 생각했다면 실력을 보자는 식으로 나오지 않았겠죠.”
“아!”
* * *
시위부 무시가 행해지는 상급 훈련장에서 담벼락 두 개 너머.
그곳에 붉은 관복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복색을 갖춘 중년의 환관이 뒷짐을 지고서 나타났다.
그를 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서창의 소감(少監) 범증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
“호 공공.”
공공(公公).
그것은 고위직 환관을 높여 부르는 경칭이었다.
이렇게 공공이라 불릴 수 있는 환관은 몇 되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서창의 최고직인 태감(太監)이었다.
그 바로 밑의 직이라 할 수 있는 소감을 맡고 있는 범증이 물었다.
“직접 보시니 어떠신지요? 무례하긴 했으나 그 무공만큼은 범접하기 힘들 만큼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 말에 호 태감이 인상을 찡그렸다.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건가.
이에 범 소감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 자타공인 서창 최고수이신 호 공공만큼 그렇다는 건 아니오라······.”
“아니. 예상보다 많이 뛰어나더군요.”
“그게 무슨?”
“기어코 본관을 찾아냈어요.”
“네?”
반문하는 범 소감에게서 고개를 돌린 서창의 호 태감이 훈련장 방향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놈의 실력을 확인하고서 감탄을 한 그가 물러나기 전에 딱 한 마디만 육합전성을 보냈다.
-과연.
그 순간 놈이 건물의 기와지붕 아래에 숨어있던 자신을 정확히 쳐다보았다.
‘!?’
놈과 눈이 마주친 순간 호 태감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육합전성(六合傳聲)을 펼치게 되면 소리와 기운이 앞뒤좌우상하에서 전부 동일하게 공명하기 때문에 그 위치를 알아낼 수가 없다.
한데 그 목경운이라는 놈은 정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냈다.
이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