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44)
금의위 의원으로 급히 향하는 두 관인이 있었다.
그들은 종 7품 내의원 배 직장(直長)과 종 9품 내의원인 조 참봉(參奉)이었다.
졸린 눈을 하고 있는 배 직장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각오해야 할 걸세.”
“정말입니다. 주요 팔맥까지 확인해봤습니다.”
“허어. 이 사람이.”
배 직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원에 입원해 있는 시위부 생도인 목경운이라는 자는 단기간에 깨어나거나 상태가 호전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하룻밤 만에 맥이 원상태로 돌아온단 말인가.
야간 당직을 세워놨더니 피곤해서 그런지 정신머리를 어디 두고 온 건지 모르겠다.
‘헛소리여봐라.’
아주 혼쭐을 낼 작정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의원 근방으로 왔는데, 누군가 밖에서 쭈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약동이었다.
“옛끼 이놈아.”
조 참봉이 그를 보고서 다그쳤다.
이에 약동이 화들짝 놀라서 군기가 든 병사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배 직장과 조 참봉을 발견하고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나, 나으리들.”
“내 환자를 돌보고 있으라 했더니 농땡이를 피우고 있구나.”
“그, 그게 아니옵니다.”
“뭐가 아니라는 게야? 당장······.”
“지금 안에 손님이 오셨습니다요.”
“손님?”
뜬금없이 웬 손님이란 말인가?
의아해하는데 약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창의 소감 나으리입니다.”
“소감 나으리?”
그 말에 배 직장과 조 참봉이 서로를 쳐다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창의 환관 중에서도 소감이라 하면 황족을 직접 보필할 정도로 높은 직책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소감이 어찌 금의위 의원에 온 거지?
이에 그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그들 중 가장 앞장 섰던 조 참봉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이내 침상 하나를 보고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헉!”
엉덩방아를 찍을 만큼 놀라는 그의 모습에 배 직장과 약동도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히익!”
“이, 이게 무슨!”
그들이 이렇게까지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환자가 누워있어야 할 침상 위에 수십 조각으로 토막 난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원인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토막 난 시신이었다.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그들은 이를 어찌해야 하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차에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각종 약재를 보관하는 약재 서랍 앞이었는데, 그 앞에 붉은 관복을 입은 누군가가 보였다.
“나, 나으리?”
약동이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부르고 말았다.
그러자 붉은 관복을 입은 누군가가 고개를 돌리더니, 일렁이는 호롱불 그림자 속에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
* * *
비경궁(毖鏡宮).
이곳은 나라의 네 실세 중 하나인 경친왕(鏡親王)이 기거하는 궁전이었다.
본시 경친왕은 종친으로서 사천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를 보위 전부터 아꼈던 당대 황제가 상황이 승하하자 황도 개봉으로 불러올렸다.
그리고 그를 위해 머물 궁을 주었다.
비록 아우를 아끼기는 했지만, 그가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궁의 이름에 삼가고 근신할 비(毖)를 붙어주었다.
물론 그런 황제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경친왕은 꾸준히 자신의 세를 넓혀와 지금에 이르렀다.
-스륵!
기품이 넘치는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낡은 서책의 책장을 넘겼다.
그런 그를 문 가까이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붉은 관복을 입은 중년의 환관이 있었다.
그가 입은 화려한 관복만 보더라도 그 직책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중년의 환관은 다름 아닌 서창의 태감(太監)이었다.
-스륵!
일정한 속도로 책장을 넘기던 중년인이 이내 입을 열었다.
“범 소감이 늦군.”
이런 그의 말에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하. 사람을 보내오리까?”
기품이 넘치는 콧수염 중년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 비경궁의 주인인 경친왕이었다.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네 실세답게 기품 이외에도 만상을 아우를 것만 같은 오만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기개를 풍기고 있었다.
“아니. 됐네.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오겠지.”
“알겠나이다.”
이런 경친왕의 말에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하나 고개를 숙이는 눈빛 속에는 우려감이 깃들었다.
‘전하의 명을 어기진 않겠지?’
그렇지 않아도 범증이 그 목경운이라는 천지회에서 보냈다는 후기지수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것이 꽤나 마음에 걸렸다.
‘많이 두려웠나 보군.’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는 한다.
보고받은 대로라고 하면 그런 부상과 수모를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 대상이 부상을 입었다면 누구라도 기뻐할 수밖에 없을 테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 기회가 아니었다.
[그자의 상세를 살펴보라. 그런 아까운 인재를 잃을 수야 없지.]경친왕은 그 천지회 후기지수라는 자를 가지고 싶어 했다.
인재욕이 강한 전하답게 자신이 아끼는 여식인 군주마마를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자일수록 길들일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려는 기개를 지닌 자와 평범한 자들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범 소감 부디 쓸데없는 짓은 삼가라.’
만약 이걸 기회로 여겨 쓸데없는 짓을 한다면 전하께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전하는 자신의 명을 어기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한다.
그때 경친왕이 읽고 있던 서책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그 계집은 어찌하여 그리 멀쩡한 거지?”
“그 계집이라면······.”
“호양궁의 그 계집 말이다.”
“아······. 호 귀비 마마를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호 귀비(貴妃).
황제에게는 수많은 여인이 있다.
그들 중에 유독 총애를 받는 두 여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서 황귀비와 호 귀비였다.
본래 황제는 서 황귀비를 가장 총애했지만, 그 외에도 자신의 자식을 낳은 남궁 비(妃)와 서문 비(妃)에게도 정을 주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서문 비는 경친왕의 모계. 즉, 외가 쪽으로 깊은 연관이 있었다.
그렇기에 경친왕은 서문 비가 황제의 총애를 받을 수 있게 많은 투자와 공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어느 새부터 내명부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것은 갑자기 나타난 호 귀비 때문이었다.
‘현혹될 수밖에 없는 절세가인.’
호 귀비를 본 모든 자가 하나 같이 하는 소리였다.
막 궁에 입궐한 궁녀였던 그녀의 외모는 아름다움으로는 방점을 찍었다고 불렸던 서 황귀비와 쌍벽을 이룬다고 소문이 날 만큼 빼어났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그 이야기는 호색한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고작 삼 년······.’
그녀가 황궁에 입궁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궁녀 출신에 불과한 어린 계집이 배후에 어떤 후원도 없이 오직 외모 하나만으로 황제를 홀려 고작 3년 만에 귀비의 자리까지 올랐다.
심지어 아들을 낳은 서문 비조차 귀비가 되지 못했는데 말이다.
‘위험한 계집이야.’
서 황귀비는 그래도 오랜 시간에 거쳐서 황제의 마음을 얻어냈다.
그런데 그녀는 고작 3년 만에 그것을 해냈다.
경친왕은 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황제가 비록 호색하여 여인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 하지만 그 편력 또한 굉장히 심해 금방 질려 하곤 했다.
심지어 아끼는 서 황귀비와도 사흘 이상을 함께 하는 법이 없었다.
한데 호 귀비의 처소에서는 길게는 보름이 넘게 머물기까지 할 만큼 그 총애가 굉장했다.
‘대체 무슨 요술을 벌이는 것이냐?’
이에 경친왕을 비롯해 다른 실세들 역시도 그녀를 위험하게 여기고 있었다.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고 해도 이상하리만큼 모두가 그것을 실패했다.
경친왕 또한 이를 시도해보려고 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직접 만나서 자신의 쪽으로 돌려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녀에게서 굴욕적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종친이면 종친답게 그 본분에 맞춰 납작 엎드려 사는 게 어떠신지요?]이 말을 들은 경친왕은 크게 분노했었다.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비라고 해도 감히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순 없었다.
결국 경친왕은 극단적인 수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미독을 써서 호 귀비를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것이었다.
다른 비빈들과 다르게 아무런 배후나 도울 자들이 없는 그녀로서는 몸이 약해진다 한들 도움을 청할 자가 마땅치 않았다.
해서 경친왕은 약해진 그녀를 굴복시킬 작정이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났는데도 어찌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이지?”
이런 경친왕의 물음에 서창 호 공공이 난처하다는 듯이 답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사실 호 공공 역시도 이것이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이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는데, 그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호 귀비는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심어두었던 궁녀에게 미독의 양을 늘리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호 귀비는 조금도 병약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갈수록 피부 빛이 좋아지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더 강한 독은 없는 것이냐?”
“송구하오나 독을 제조한 자의 말에 의하면 그 이상이 되면 기미궁녀(氣味宮女)나 내의원의 감식(監食)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하옵니다.”
이런 호 공공의 말에 경친왕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 황귀비 하나로도 벅찬 마당에 여기서 호 귀비가 덜컥 아들이라도 낳게 된다면 더욱 정국이 혼란스러워질지도 몰랐다.
‘차라리 회임(懷妊)을 막는데 주력하는 게 좋을까?’
하나 이것은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다른 세 실세 쪽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도 달가워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이 복잡해지려던 차였다.
밖에서 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범증 소감이 들어가길 청하옵니다.
“이제 왔군. 들여보내게.”
-네이.
문이 열리고 이윽고 고개를 숙이고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범 소감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응?’
그도 그럴 것이 평소의 범 소감과 다르게 침착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심지어 기운도 갈무리가 되었는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호 공공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리 범 소감이 초절정의 극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자신은 황궁에서 네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세고수였다.
‘내게서 기운을 완전히 숨길 수 없을 터인데?’
의아하게 여기고 있는데 경친왕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래. 그자의 환세는 어떠한가? 회복될 만한가?”
-저벅!
이 물음에 범 소감이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 순간 호 공공이 빠른 경신법으로 황급히 그 앞을 가로막았다.
“멈추게.”
이에 경친왕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호 공공. 왜 그러나?”
“전하, 잠시 소신이 범 소감을 확인해보겠습니다.”
“확인하다니 무슨 소린가?”
“범 소감. 고개를 들게.”
호 공공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범 소감에게 고개를 들라 하였다.
이에 범 소감이 천천히 두 손을 내리며 얼굴을 들어 올렸다.
환관 특유의 분칠을 한 범 소감의 얼굴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이 눈빛?’
경친왕 전하와 서창의 수장인 자신의 앞에 서면 늘 모든 것에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범 소감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도 눈빛도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호 공공이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허리춤에 있는 혁대의 손잡이를 붙잡고 빼 들었다.
-스릉!
혁대를 잡아당기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연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 공공이 연검의 검 끝을 범 소감에게 겨냥하며 경계심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 누구냐?”
이런 그의 물음에 범 소감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뭔가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경친왕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장식대에 걸쳐놓았던 검집을 붙잡았다.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 걸까?
하는데 이윽고 범 소감이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아아, 이래서 눈치가 빠른 분들은 곤란하군요.”
‘!?’
이것은 범 소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환관 특유의 간드러짐과 늙은 목소리가 섞여 걸걸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매우 젊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