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45)
“아아아, 이래서 눈치가 빠른 분들은 곤란하군요.”
‘!?’
서창의 환관 범 소감의 입에서 나오는 젊은 목소리.
이를 듣자마자 경친왕을 비롯해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의 눈빛에 경계심이 서렸다.
오랫동안 범 소감과 함께 해왔기에 그들은 당연히 목소리만 들어도 구분 가능했다.
태감 호 공공이 연검을 겨냥한 상태로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누구냐?”
“확실히 얼굴만으로는 한계가 있군요.”
“뭐?”
“거기서가 운이 좋았던 것 같네요.”
범 소감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범 소감, 아니 그 얼굴 껍질 속의 진짜 정체는 목경운이었다.
경친왕의 궁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무조건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목경운은 이들을 통해 인피면구의 약점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얼굴을 속인다고 해도 호 공공과 같이 기감이 예민한 고수를 상대로는 기운을 속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내공이 있다면 모를까 사기로는 힘들겠군.’
만약 양(陽)의 기운인 내공을 다룰 수 있었다면 소감 범증이 드러내는 특유의 기운을 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목경운의 기운은 여타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이 외에도 목소리가 확연하게 다르거나 오랫동안 이 인피의 얼굴을 알던 자들을 상대로 길게 속이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이를 감안한다면 연목검장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진짜 목경운이 워낙 평판이 좋지 않아 배다른 형제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솔들과도 교류를 하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인피면구는 이런 식으로 써먹을 패가 아니군.’
얼굴을 알거나 그와 가까운 자들을 상대로는 속이기 힘드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못 쓸 패라는 건 아니었다.
방법만 달리한다면 얼마든지 아까처럼 재밌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을 듯했다.
‘생각하기 나름이니······.’
바로 그때였다.
-촥!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의 연검이 양미간을 노려왔다.
찰나에 목경운이 고개를 슬며시 뒤로 빼며 아슬아슬하게 연검의 검 끝을 피해냈다.
-슥!
‘이걸 피해?’
가벼운 한 수처럼 보였으나 이는 초절정의 고수들조차도 쉽사리 피하기 힘들 만큼 굉장히 쾌속한 찌르기였다.
한데 이를 가볍게 피하자 호 공공을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놈, 보통이 아니다.’
경친왕 전하가 있는 자리이기에 일단 빠르게 제압을 할 작정으로 찌른 일검이었다.
기감 상으로 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신하기 힘들었는데, 이번 한 수로 확실해졌다.
‘나 못지않은 고수다.’
그 정도 되는 초고수라면 단 한 수 정도로 상대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호 공공이 연검을 쥐고 있는 손목을 슬쩍 굽혔다가 폈다.
그러자 연검이 살아있는 뱀처럼 휘어지더니 기묘한 방향으로 목경운을 노려왔다.
-슥!
그러나 목경운은 반보 정도 뒤로 발걸음을 떼는 것만으로 연검의 궤로를 피해냈다.
이를 피해낼 거라 예상이라도 했는지 호 공공이 소리쳤다.
“여봐라! 적이 들어왔다!”
공력까지 실은 외침이었다.
밖에는 금의위를 비롯해 서창의 환관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이 자를 물리치기 위함이 아니라 전하를 대피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적이 들어왔다! 적이 들어왔다! 적이 들어왔다!
그때 호 공공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방안을 울렸다.
그냥 목소리도 아니고 공력이 실려 있었기에 어찌나 쩌렁쩌렁했는지 경친왕이 인상을 찡그리며 황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큭.”
‘이런!’
호 공공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좁은 공간에서 메아리가 생긴 것은 외침이 부딪쳐서 튕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호 공공은 알 수 있었다.
‘방 전체를 진기로 둘러두었구나.’
초절정의 고수만 되어도 어느 정도 되는 공간을 자신의 진기로 덮어 소리를 차단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정도 되는 고수가 이를 못 할 리가 없었다.
-파파팍!
호 공공이 총총거리는 기묘한 움직임의 보법을 펼치며 목경운에게서 거리를 벌리더니, 이내 경친왕의 앞에 섰다.
그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호 공공이 은밀히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전음입밀(傳音入密)을 보냈다.
-전하. 이 자는 보통 고수가 아닙니다. 소신이라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없을 듯하오니, 기회가 생기면 창문을 부수고라도 이곳을 나가십시오.
이런 그의 말에 경친왕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서창의 태감인 호 공공은 황궁 전체를 통틀어 그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무공의 고수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경계심을 드러내는 적은 처음 본다.
그 말은 범 소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저 정체 모를 자가 그만큼 위험한 자이면서 뛰어난 고수라는 의미겠지?
‘그렇다면······.’
경친왕이 범 소감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목경운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누가 보내서 왔는가?”
‘전하?’
이런 그의 모습에 태감 호 공공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암살자일 수도 있는 자가 침입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런 자에게 말을 걸 생각을 하다니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지만 참 대담하다.
하나 저런 자가 고분고분히 전하께서 하는 물음에 답할 리가······.
“글쎄요. 누가 보냈을까요?”
‘!?’
호 공공이 미간을 찡그리며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이놈 대체 뭐지?
전하를 암살하러 왔다면 이런 질문에 일일이 답할 리가 없었다.
의아해하는데 경친왕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호 공공조차 경계할 정도의 고수인 자네를 보낼 정도라면 머릿속에서 세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는군.”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황궁의 실세들이었다.
삼공(三公) 중 태사(太師)와 중앙도독부의 제독을 겸하고 있는 대신 항윤파, 황제의 둘째 황자인 종왕(棕王), 그리고 서 황귀비 중 한 사람일 거라 여겼다.
“자네에게 본 왕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범 소감의 얼굴까지 따라하게 해서 보낸 걸 보면 확실히 작정한 듯하군.”
이는 자신이 생각해도 훌륭한 수였다.
범 소감에 의해 자신이 죽었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내분으로 종결짓게 될 거다.
누군가의 사주인지 금의위가 수사야 하겠지만 진짜 범 소감을 제거하면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 경친왕이 혀를 차며 말했다.
“범 소감은 당연히 죽였겠군. 아닌가?”
“높으신 분치고 꽤 똑똑하시군요.”
“칭찬이라면 감사하지.”
이런 그의 담담한 말투에 목경운이 속으로 흥미로워했다.
일부 상황을 오해하여 짐작하는 모습이 우습기는 했지만 확실히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족답게 평범한 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긴장하면서도 상황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려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는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것도 잘 아시겠군요.”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이 검결지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오며 살의로 인해 공기가 무거워졌다.
이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경친왕 또한 느껴질 정도였다.
‘숨이 막힌다.’
목경운의 이런 날카로운 기세에 호 공공이 연검을 움켜쥐고서 기수식을 취했다.
-전하 소신이 저자를 막는 동안 무조건 나가셔야 합니다.
다시 한번 그 말을 한 태감 호 공공이 목경운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 했다.
바로 그때 경친왕이 그를 만류했다.
“멈추게!”
그런 그의 명에 호 공공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여기서 먼저 기수식을 풀게 된다면 경친왕을 지키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친왕이 고집을 부렸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저자는 정말 위험합니다.”
“괜찮으니 멈추게.”
“전하!”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본 왕은 자네를 믿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자네가 막지 않더라도 가는 것이 운명이지 않겠나.”
이런 경친왕의 말에 태감 호 공공이 입술을 질끈 깨물다 기수식을 풀었다.
상대가 방심할 수 없는 고수였기에 쉽사리 경계심을 풀고 싶지 않았으나, 전하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이를 보며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좋은 선택이 아닌 듯한데요.”
그 말에 경친왕이 목경운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
그 모습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행동일까?
하는데 경친왕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본 왕은 인재를 아끼고 대우받아 마땅할 강자를 예우하는 사람이라네.”
“강자를 예우한다고요?”
“그렇다네. 본 왕이 하고 싶은 일에는 자네 같은 영웅들이 많이 필요하네.”
‘아아······.’
이런 경친왕의 말에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이 난처해했다.
전하의 장점이나 나쁜 버릇이 나왔다.
탐이 나는 인재가 있다면 그게 적이든 누가 되었든 일단 손을 내밀고 본다.
이것이 좋게 발휘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목숨을 노리는 적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특이하신 분이군요.”
흥미롭다는 듯한 말투에 경친왕이 내심 안도를 금치 못했다.
만약 자신이 이런 극진한 태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반응이 없는 자라면 어찌해 볼 여지가 없는 자였다.
그러나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파고들 여지가 있는 자임을 의미했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고 미련하다면 미련할 수 있으나 본 왕은 그만큼 인재에 욕심이 많네.”
“그렇게 보이는군요.”
“상황이 이러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누구의 의뢰나 명을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자네와 같은 훌륭한 인재를 이런 암살과 같은 지저분한 일에 쓰는 것은 초재진용이나 다름없는 것 같군.”
초재진용(楚材晉用).
이는 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 쓴다는 뜻으로, 그 진가를 알지 못하고 쓰임새 없는 곳에 이용한다는 의미였다.
“하여 감당지애(甘棠之愛-인재를 간절히 바람)의 마음으로 자네를 본 왕의 사람으로 초빙하고 싶네. 자네가 그들에게서 어떠한 대가를 받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보다 더한 대우를 해줄 용의가 있으니 부디 이 사람의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되어주게.”
동량지재.
그것은 기둥이나 들보가 될 만한 중요한 인재를 의미하는데, 한 집안이나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설득하고 말을 하는 능력만큼은 청산유수에 가까운 경친왕이었다.
학문이 깊은 그는 이런 언변술로 수많은 인재를 자신이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은 그 가치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다. 누구의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어떠한 자도 본 왕 만큼의 대우를 해주진 못할 것이다.’
가진 것이 몸이 무기인 서 황귀비나 오만하기 짝이 없는 권신인 항윤파,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여기는 잔혹한 이 황자인 종왕.
이들 중 어떤 누가 자신의 배포를 따라올 수 있겠는가.
-파르르르르!
그때 목경운이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고서 얼굴을 살짝 떨었다.
그 모습이 뭔가 감정적으로 북받친 것처럼 보였다.
이를 본 경친왕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무래도 자신의 인재욕으로 생겨난 이 도박이 통했던 것 같다.
이에 경친왕이 목경운을 향해 다가갔다.
“전하!”
경친왕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네. 이 자는 본 왕의 뜻을 이해했네.”
그 말과 함께 다시 목경운을 향해 다가간 경친왕이 그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핫. 본 왕에게 덕이 있나 보네. 이렇게 간성지재(干城之材)의 뛰어난 무인을 이리 얻게 되는 것을······.”
순간 경친왕이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들어올리는 목경운의 얼굴은 자신의 언변에 북받쳐서 그런 것보다는 마치 지루함, 하품을 억지로 참는 그런 것에 가까웠다.
“자네······.”
“아, 송구합니다. 열변을 토하시는데 하품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해서 나름 참는다는 게 너무 티가 났군요.”
이 말에 경친왕이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자신이 이렇게 예를 차려가며 띄워주며 이야기를 했는데, 고작 보인다는 반응이 하품을 참고 있는 거라고?
이것은 황족이자 왕인 자신을 능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경친왕은 내심 매우 심기가 불편했지만, 목경운과 너무 가까이에 있기에 이를 꾹꾹 눌러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본 왕의 말이 너무 길어져서 그러한가 보군. 하면 간단히 이야기하지. 부디 본 왕의 사람이 되어주게.”
그 말과 함께 두 손을 모아 고개까지 숙이며 다시 한번 예를 갖췄다.
왕인 자신이 이 정도까지 굽혀주며 띄워주었다.
이렇게까지 했다면 뭔가 네놈도 충분한 성의를 보여줘야······.
-푹!
그 순간 경친왕의 왼쪽 눈알을 뾰족한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느닷없이 파고든 침으로 인해 아픈 것보다도 화들짝 놀란 경친왕이 목경운을 밀치려고 했다.
-꽉!
하지만 그런 그의 팔목을 목경운이 움켜잡는 바람에 밀칠 수가 없었다.
“네 이놈!”
이 광경에 노한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이 황급히 경친왕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하가 죽는 꼴을 보기 싫으시다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텐데요.”
“이놈이!”
이에 태감 호 공공이 자리에서 멈칫했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전하가 괜찮다고 했어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다.
그러는데 왼쪽 눈을 찡그리고 있던 경친왕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목경운에게 말했다.
“어, 어찌 이러는 것이냐? 본 왕이 예까지 갖춰가며 더욱 대우를 해주겠다고 하였는데······.”
“아아. 갑자기 왜 그랬냐고요?”
“······그래.”
“말이 많아서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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