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46)
‘하……’
황족이자 왕인 자신의 예를 갖춘 등용 제의에도 불구하고 눈을 찌른 이유가 고작 말이 많다는 것 때문이라고?
경친왕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찔린 눈을 비롯해 굉장한 두통이 밀려왔다.
“으윽!”
“전하!”
이런 그를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호 공공은 굉장히 노한 상태였다.
경친왕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저 불경하기 짝이 없는 무뢰배를 향해 살초(殺招)를 날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나 침착하지 않으면 정말로 전하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태감 호 공공이 화를 누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보시오. 제발 진정하시게. 부디 전하를 놓아준다면 그대를 무사히 놓아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하는 어떠한 것이라도 들어주겠소.”
“원하는 어떠한 것이라도요?”
“그렇소. 전하를 무사히 놓아준다면 말이오.”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아아. 하면 전하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군요.”
그걸 말이라 하겠는가.
“물론이오!”
태감 호 공공이 목소리에 힘주어 답했다.
오랫동안 경친왕을 보필한 오른팔이었기에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었다.
이에 목경운이 입 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말했다.
“하면 공공께서 스스로 자결한다면 전하를 놓아드리지요.”
“뭐?”
이 말에 태감 호 공공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놈도 사람인 이상 어떤 식으로든 이득이 되는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을까 하긴 했는데, 설마 자신더러 목숨을 끊으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에 화를 꾹꾹 누르고 있던 호 공공이 이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어라? 설마 지금 화를 내는 건가요?”
“뭐?”
“전하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더니 설마 목숨이 아까워진 건가요?”
그 말에 태감 호 공공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 영악한 놈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을 만들어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놈의 수작이었다.
자신이 죽게 되면 놈은 오히려 거칠 것이 없게 된다.
한데 그렇다고 여기서 자신이 죽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면 경친왕 전하께서 자신의 충심에 의구심을 품을지도 몰랐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때 찔린 눈을 붙들고서 고통스러워하던 경친왕이 입을 열었다.
“으으으….호 공공. 짐을 신경 쓴다고 이 자의 수에 넘어가지 말라.”
“전하!”
“이런 걸로 자네의 충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경친왕의 말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말이 많긴 하셔도 상황 판단은 잘 하시는 편이네요.”
“하아…..하아…..자네가 호 공공더러 목숨을 끊어달라 부탁했다는 것은 그를 쉽게 제압할 수 없어서가 아니겠나.”
“뭐 틀린 말은 아니군요.”
태감 호 공공은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준다면이야 일이 훨씬 편해질 수 있었다.
“하면 전하께서 저 대신 공공에게 목숨을 끊으라고 해주실 수 있겠나요? 그래주신다면 당장 놓아드릴 용의가 있습니다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 말거라.”
“마음에도 없는?”
“자네에게 예로서 대했음에도 이리 나왔는데, 그 말을 본 왕이라고 믿을 것 같은가?”
“아아아. 그건 그렇겠네요.”
“본 왕의 입으로 그런 말을 내뱉을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본 왕이 호 공공에게 내릴 명은 하나다.”
“네?”
“호 공공. 짐의 안위를 신경쓰지 말고 당장 창을 부수고 나가 적습을 알려라.”
이 말에 목경운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러자 경친왕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자네가 설령 이곳에서 짐을 죽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황궁에서 살아서 나갈 수는 없을 걸세.”
“재미있게 나오시네요.”
“이 상황이 재미로 보이나? 하면 과연 자네가 금의위의 수장인 남진무사까지 온다면 이를 막을 수 있을까?”
‘남진무사?’
경친왕의 이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는 사전에 들은 정보로 황궁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세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금의위의 정점이라 불리는 남진무사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순히 금의위의 정점이 아니었다.
남진무사 구성백.
황제를 호위하는 그의 또 다른 호칭은 북파도왕(北派刀王)으로 현 무림의 정점이자 육천(六天)의 일인이었다.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장강에서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가 이끄는 커다란 배 세 척을 일도에 갈라버린 일화가 있었다.
그 엄청난 일전 덕분에 남진무사 구성백은 원래는 오천(五天)이라 불렸던 무림의 정점에 새롭게 그 위명을 올리게 되었다.
‘육천의 일인.’
이지만 그는 황궁 최고의 고수이기에 한시도 황제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해서 무림의 혹자들은 그를 잠룡(潛龍) 내지 도집에 갇혀 있는 명도라고도 부른다.
하나 황궁 내에서라면 상황이 다르다.
“남진무사를 비롯해 황궁의 고수들이 당도한다면 자네가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고 해도 본 왕을 해하고 쉽사리 도망칠 수 있을 성 싶은가?”
경친왕이 목경운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목숨을 던지는 것을 각오한다면 당장에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군요.”
목경운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다고 여겼는지 경친왕이 다소 부드러워진 투로 말했다.
“하니 서로 한 걸음 양보하는 게 어떻겠나?”
“양보?”
“그렇네. 본 왕도 자네더러 짐의 산하로 들어오라는 강요는 하지 않겠네. 하나 자네도 짐을 죽이려는 것을 멈추고 돌아가게. 그렇다면 이 일은 본 왕의 명예를 걸고 없는 일로 하겠네.”
이는 경친왕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책이었다.
서로가 해가 되는 상황임을 알려주고서 스스로 포기하게 하려는 수였다.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지금의 수가 아까 전에 말이 많던 것보다는 훨씬 낫군요.”
“…….그럼 짐의 제안을 받아들일 텐가? 어차피 짐은 자네의 정체를 모르니 여기서 물러난다고 해서 자넨 전혀 손해볼 것도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겠지요.”
“하면 짐을 부디 놓아주게.”
이 말에 목경운이 고민하는 것처럼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경친왕은 그가 정말 목숨을 던질 것을 각오한 게 아니라면 이번만큼은 자신의 제안을 들어주리라고 확신했다.
그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고민해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자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저기 공공께서는 전하를 죽게 내버려두지 못할 것 같거든요.”
“하!”
경친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짐이 명을 내리면 공공은 무조건 그것에 따를 것이다. 자네는 짐과 호 공공을 너무 얕보는 것 같군.”
“얕보는 게 아니죠. 제가 알기로 황궁은 그 법도나 규율이 엄하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전하께서 죽게 되면 그 신변을 호위하는 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까요?”
“……..”
“그것도 죽음으로서 말이죠.”
이 말에 경친왕이 이내 말문이 막혔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면 황궁의 규율 상 자신을 호위했던 모든 금의위들과 환관들 역시 그 책임을 물어 전부 목숨을 거둔다.
경친왕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신변을 위협하는 적이다보니 최대한 거슬리지 않는 선상에서 서로에게 활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 영악한 놈은 자신의 수에서 찾기 힘든 빈틈을 단번에 찾아냈다.
결국 경친왕은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공. 짐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겠나?”
이 말과 함께 경친왕이 태감 호 공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진의가 정말로 희생을 해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의지만 보여주면 된다.’
그래야 이 자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호 공공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나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니 도박을 해달라는 말에도 망설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경친왕의 눈빛에서 진의를 깨달았는지 결의에 차서 답하려 했다.
“소신은…..”
그런데 바로 그때 목경운이 말했다.
“아아아. 전하께서 이리 강단 있게 나오시니 저도 어느 정도는 양보를 해야 겠군요.”
“양보?”
“네. 그럼 호 공공더러 스스로의 단전을 폐하라고 명하세요. 그럼 전하의 목숨도 호 공공의 목숨도 살려드리죠.”
“뭣?”
단전을 폐하라는 그 말에 호 공공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무인에게 있어서 단전을 폐하라는 것은 목숨을 버리라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나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경친왕 역시도 노기를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호 공공은 짐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다. 그런 자의 단전을 폐하라는 것은 오른팔을 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짐이 그런 수작에 넘어갈 것 같으냐?”
“그건 전하의 몫이 아니지요.”
“뭐라?”
“호 공공의 선택에 달려 있죠. 지금부터 다섯을 세죠. 그 안에 스스로의 단전을 폐하지 않는다면 전하를 죽이겠습니다.”
“이노오오옴!”
호 공공이 참지 못하고 다그쳤다.
당장에라도 목경운을 찢어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 한다면 아마도 저 자의 손에 경친왕이 죽게 될 것이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죽인다는 것도 아니고 전하를 살리기 위해 무공을 포기하라는 것도 못하겠다면 딱히 충성심이 있는 것도 아니군요.”
“뭐라! 네놈이 지금…..”
“그럼 왜 망설이시죠? 전하도 살리고 본인도 살려주겠다는데 그게 그리 어렵나요? 무공이 전하보다도 중요한 건가요?”
“……..”
“아아. 그렇군요. 하긴 자신의 목숨도 중요하신 분이라면 당연히 무공도 소중하죠. 결국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이 중요한 법이죠.”
“네, 네놈……”
이렇게 호 공공을 몰아붙이는 목경운의 압박에 경친왕의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이 자는 숨막힐 정도로 상대를 심적으로 극한으로 몰아가는데 굉장히 능숙했다.
호 공공의 흔들리는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넘어갈 듯 했다.
“호 공….”
-꽉!
“켁.”
그때 목경운이 경친왕의 목을 움켜쥐었다.
목이 막힌 경친왕이 얼굴이 시뻘개져서 켁켁거렸다.
“너!”
“하나!”
뭐라고 하려하는데 목경운이 숫자를 셌다.
하나를 듣는 순간 호 공공은 표정이 굳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이놈 정말로 전하를 죽이려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범 소감의 인피면구 같은 것을 착용하고서 나타난 시점에서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둘!”
호 공공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에게 선택권은 오직 둘뿐이었다.
저놈의 말대로 스스로의 단전을 폐하거나, 전하의 명대로 방문을 뚫고 나가서 적습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하나 후자가 된다면 당연히 황제 폐하가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사형은 무조건 정해져 있었다.
-으득!
어떤 것을 선택하든 자신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때 목이 잡힌 경친왕이 그를 향해 무언가를 손짓하는 게 보였다.
그것은,
‘아……..’
배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 말인 즉 자신의 단전을 폐하라는 의미였다.
이를 본 호 공공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결국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지니 후환보다는 스스로의 안위를 선택하고 마는 경친왕이었다.
“셋!”
목경운의 입에서 셋이 나오자 연검을 쥐고 있는 호 공공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찰나의 순간에 호 공공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고민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결국 그가 선택을 했다.
그것은 바로,
-팍!
호 공공이 목경운을 향해 강기를 실은 연검을 던지는 것과 함께 이내 신형을 날려 창문을 부수고 나가버렸다.
‘공공!’
이 광경에 경친왕의 눈동자가 배신감으로 찢어질 듯이 커졌다.
결국 자신을 살리는 것이 아닌 단전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타타타타탁!
창문을 뚫고 나간 호 공공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황궁의 법도나 후에 있을 책임을 묻는 것은 여차하면 황궁 자체를 탈출하는 방도가 있었으나, 단전이 폐해진다면 답이 없었다.
만약 저놈이 말을 바꿔서 단전이 폐해진 자신과 전하를 죽인다면 어찌하는가?
그럼 더욱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린다.
‘전하 송구합니다. 어차피 전하께서도 저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설령 놈이 약조를 지켜서 전하를 살려준다고 해도 단전이 폐해진 자신을 경친왕이 다시 기용할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그렇게 밖으로 나가 소리를 치려고 했던 호 공공이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궁 주변이 너무도 조용했다.
비경궁 내에만 금의위와 시위부 무사들이 수십여 명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지?
뭔가 이상하다고 여긴 호 공공이 일단은 놈이 자신을 쫓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궁 밖으로 벗어나야겠다고 여겼다.
해서 궁밖으로 신형을 날리려고 하는데,
-또각! 또각!
궁문의 전각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호 공공이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곳에 적금색의 화사한 옷을 입은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한손에 무언가를 들고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 순간 호 공공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호 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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