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54)
불과 조금 전,
-촤아아아아아아!
요력과 검의가 일원화 된 날카로운 일검(一劍)
이에 밀려난 금모구미호는 거의 백여 장에 이르는 높이까지 밀려났다.
단순한 검의 자체도 아까보다 훨씬 날카로웠지만 자신의 요력이 그대로 더해지는 바람에 그 위력은 꼬리 네 개를 동시에 써야 할 만큼 강력했다.
-슈우우우우!
그렇게 허공으로 밀려난 그녀가 도중에 멈춰섰다.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부유하고 있는 그녀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내 요력을 이용해 나를 노려?’
이놈 정말 난 놈이다.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자신을 위협했던 자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선인이라 불렸던 존재이거나 혹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수에 가까운 이매망량이었다.
금모구미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녀석의 정신 속에 갇혀 있는 그놈의 영향인건가?’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었다.
이놈은 그 동안 자신이 찾아 헤맸던 마(魔) 그 자체인 인간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찌릿!
그때 금모구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막았다고 여겼는데 꼬리의 끝 부분이 거의 잘려나가 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순간 그녀의 눈빛이 살벌하게 바뀌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요력의 집합체인 자신의 꼬리를 일부라고는 하나 베어냈다고?
생채기만 나도 화가 나는 부위가 꼬리였는데, 이것이 베이기까지 하니 금모구미호는 왈칵 화가 치밀어올랐다.
‘죽여버릴까?’
순간이나마 살의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금방 이를 가라앉혔다.
‘참자. 여기서 죽여버리면 이 녀석이 강상이 말한 그 존재가 될지 안 될지도 알 수 없게 되잖아.’
그녀가 잘려나가 덜렁거리는 꼬리 부분을 혀로 핥았다.
그러자 상처부위의 피가 금새 멎었다.
금모구미호가 잘려나간 꼬리 부위를 완전히 뜯어내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생각해보면 고작 스무 해도 살지 못한 어린 인간 녀석이 벌써 이 정도 힘을 지녔을 정도면 확실히 가능성은 가장 높아.’
이놈은 빠른 속도로 강해질 것이다.
그럼 머지않아 자신의 바람이 이뤄질 수도 있었다.
‘곁에 두고서 계속 지켜…….’
봐야지라고 여기던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목경운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무언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 외에도 생각해보니 이 녀석은 타고난 재능도 남다르지만 복수심으로 인해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굳이 끼고 있어봐야 자신이 원하는 그 형태가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타락시키지 않아도 악(惡)하기 그지없는 녀석이고 말이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금모구미호가 입맛을 다셨다.
“아아아. 아쉽네.”
곁에 두고서 즐기고 싶었는데 이는 보류해야 할 듯 했다.
* * *
“순간 그냥 죽여버릴까 싶었는데 여기까지 하자.”
‘!?’
경계심을 극도로 높이고 있던 목경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금모구미호를 쳐다보았다.
이는 청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면금모구미호는 신수(神獸)에 가까운 대영수였다.
움직이는 대재앙이라 불리는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황도 전체를 피바다로 만드는 게 가능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그저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금모구미호의 힘은 절대적이었는데, 갑자기 변덕이라는 듯이 그만두자고 하니 이들로서는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금모구미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장 노리개로 삼을까 했지만 아직 영글지 않은 과실을 따는 건 아닌 듯 해서 말이야.”
“…….무슨 소리시죠?”
“말 그대로인데. 당분간은 내버려두겠다는 건데.”
“내버려둔다고요?”
“응.”
금모구미호가 잘려나간 자신의 꼬리의 일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내 꼬리를 자를 만큼 제법 예리하기는 한데, 그 정도로는 아직 멀었거든.”
“…….당신을 죽이기에 말입니까?”
이런 목경운의 말에 금모구미호가 배를 붙잡고 웃어댔다.
“깔깔깔깔. 나를 죽여? 내 요력을 이용해서도 겨우 꼬리의 끝을 살짝 베어냈을 정도인데 너무 욕심이 지나친 거 아냐?”
“……..”
그녀의 이런 말에 목경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금모구미호와 자신의 힘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했다.
아마도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고작해야 벌레 정도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은 존재이기에 변덕으로나마 봐주겠다고 한다면 이를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금모구미호가 했던 말이 걸린다.
‘당분간은 내버려두겠다……’
이는 당장에는 놓아줘도 자신을 계속 노리겠다는 걸로 들린다.
아니 왠지 그럴 것 같다.
‘어째서지?’
그녀가 왜 자신을 탐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찾던 마(魔) 그 자체인 인간이야.]이 말을 하기는 했으나 이것 또한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금모구미호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언제 밀려났는지 경친왕의 처소 구석에 있던 그녀의 의복이 날아오더니 저절로 입혀졌다.
-스르륵!
심지어 손짓 한 번만으로 다시 머리와 눈동자가 검게 변했다.
이렇게 되니 다시 화사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호 귀비의 모습이 된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잘려나간 꼬리의 일부를 주워서 내밀었다.
“가져가시죠.”
이 말에 호 귀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주는 건데.”
“주는 거라고요?”
“그래. 그거 잘 가지고 있어.”
“…….이런 걸 들고 다니는 취향은 없습니다만.”
“들고 다니는 게 좋을 걸. 내가 찜해뒀다는 증표가 될 테니까. 아. 그대로 들고 다니면 거슬려서 그런가. 그럼.”
-슥!
호 귀비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잘려나갔던 꼬리가 금빛 털이 달려있는 둥근 패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러면 들고 다니기 편하지?”
“찜해뒀다는 증표라면 더욱 들고 다니기 거북하군요.”
“너 되게 솔직하구나. 그런데 그거 들고 다녀서 나쁠 거 없을걸. 너 보니까 은근히 이매망량들이 잘 엮이는 것 같더라.”
“……..”
그 말에 부정하긴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원혼도 그렇고 이매망량들이 잘 엮이긴 했다.
눈이 개안한 이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가지고 있어. 내 꼬리의 일부라도 가지고 있으면 귀찮은 것들이랑 엮이는 일은 없을 걸.”
잘려나간 신체의 일부라 해도 요력의 흔적과 잔향이 남아있었다.
백면왕(百面王)이라 불리는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면 어지간한 이매망량들은 다가오지 못할 테고, 어느 정도 격을 갖춘 놈들조차도 알아서 설설 기게 될 거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있으면 네가 어딜 가든 찾아낼 수 있거든.’
금모구미호가 속으로 히죽거렸다.
굳이 곁에 두지 않더라도 이런 방법이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
아무리 격이 높은 대영수라고 해도 이 광활한 중원 대륙에서 작정하고 숨는다면 찾아내기 어려웠다.
“………”
말없이 그녀의 꼬리로 만든 패를 쥐고 있던 목경운이 이내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정말로 고마운 마음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는 당장에 금모구미호를 상대로 자극해봐야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차하면 후에 황궁을 벗어나 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런 목경운의 본심을 알기라도 하듯 금모구미호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버리다 걸리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지?”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금모구미호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경친왕의 처소를 나가려 했다.
‘정말로 그냥 가는 건가?’
이 모습에 청령이 내심 안도하려고 했다.
그러는데 금모구미호가 잠시 멈춰서더니 깜빡 했다는 투로 말했다.
“아 맞다. 밖에 있는 금의위나 시위부 무사들은 내가 잠들게 만들었거든. 그런데 이 안에 일들은 알아서들 처리할 수 있겠어?”
그 물음에 목경운이 기절해 있는 경친왕과 목이 잘려 죽어있는 서창의 태감 호 공공을 힐끔 쳐다보았다.
태감 호 공공이 일을 키웠다면 모를까 이렇게 죽었다면 원래의 계획대로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혹시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처리할 수 없다고 하면 도와주실 건가요?”
“아니.”
“그럼 왜 물어보신 거죠?”
“그냥. 고작 이 정도도 처리 못할 정도로 머저리가 아니잖아.”
“……..”
애초에 도와줄 마음도 없는 그녀였다.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기에 목경운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러는데 금모구미호가 피식하고 웃더니 나가면서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네가 찾던 그 표식.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순간 목경운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느닷없이 한 말이었지만 자신의 기억을 훔쳐보았던 금모구미호였기에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른 것에는 담담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표식이라는 말에 목경운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알아들었잖아.”
“제 기억 속에서 본 건가요?”
“맞아. 네 죽은 할아버지의 몸에 남겨져 있던 상흔 말이야. 그거 어디서 봤거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였다.
-스륵!
경신법으로 순식간에 금모구미호의 앞을 가로막은 목경운이 차가워진 어조로 말했다.
“어디서 봤죠?”
그녀가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왜 궁금해?”
“알려주시면 감사할 것 같군요.”
“감사만으로는 부족한데.”
살살 약을 올리듯이 금모구미호가 뒷짐을 지고서 목경운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이런 그녀를 쳐다보던 목경운이 이내 말했다.
“뭘 원하시죠?”
그 물음에 금모구미호가 자신의 손가락을 끈적하게 핥으며 말했다.
“아까 전에 못했던 거 마저 할래? 이 자리에서 날 만족시켜주면 얘기해줄 수도 있는데.”
“그걸 원하는 건가요?”
“그래.”
“그럼 당장…..”
순간 목경운이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청령이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보였다.
그 눈빛을 보고나니 목경운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죽은 할아버지의 몸에 남겨져 있던 상흔, 그 표식과 관련되었다면 단서를 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였다.
‘……..’
관계 한 번이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망설여졌다.
목경운은 자신의 이런 태도에 의문을 가졌다.
왜 자신이 청령을 의식하는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목경운이 이내 입을 열었다.
“없던 걸로 하죠.”
“뭐?”
금모구미호의 고운 한 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반면 뭔가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목경운을 바라보던 청령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띠었다.
‘어째서?’
중요한 단서가 걸려있는 일이기에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뭔가 모르게 씁쓸해하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목경운의 의외의 거절에 기분이 묘해졌다.
“칫.”
금모구미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이거 자존심 상하네.”
“네?”
“내 살다살다 고작 원혼 따위에게 밀리네.”
“……무슨 말씀이시죠?”
“됐어. 나도 할 마음이 싹 가셨거든. 흥!”
그 말과 함께 금모구미호가 성이 났다는 듯이 발걸음을 쿵쿵거리며 경친왕의 처소를 나가버렸다.
그녀를 순간 붙잡을까 하다 목경운이 이내 살짝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어차피 자신의 입으로 포기했는데 붙잡아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끝난 일에 미련을 두지 않기에 목경운 또한 몸을 돌려서 청령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명부에 있는 금의위 중에 그 표식을 하고 있는 자가 있어.”
금모구미호의 목소리였다.
‘!?’
목경운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그녀가 나간 문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반쯤 닫혀 있던 문 틈으로 그녀가 얼굴을 쏙하고 내밀더니 말했다.
“그냥 가려고 하다 이번만은 특별히 양보해준 거니까. 내가 준 꼬리로 만든 패….절대로 몸에서 떼어놓지 마.”
“……..그러죠.”
그건 어려울 게 없었다.
목경운의 대답에 금모구미호가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이 말과 함께 문을 닫았다.
“흥. 또 보자. 천마(天魔).”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