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77)
어느새 동굴 통로를 목경운과 구혈교의 혈성이라 불리는 담백하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아까 전과 같이 격앙된 모습은 사라졌고 다시 냉정을 되찾은 담백하가 목경운에게 말했다.
“한 사람만 탈취하면 된다고 했지?”
“네.”
“약조 반드시 지켜라.”
“그럼요. 그 자만 탈취한다면 제게 경신법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을 뵙게 해드리겠습니다.”
“흥.”
목경운의 말에 담백하가 미덥지 못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전에는 워낙 감정이 격해져서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까지 이놈을 확실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놈이 하는 모든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웃는 모습조차 저게 진짜 감정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이런 녀석은 처음이다.
그렇게 통로를 걸어가던 차에 담백하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턱 쪽의 피부가?”
자글자글하게 밀려 있는 게 보였다.
이에 목경운이 그곳을 만지작거리더니 옅은 숨을 내쉬었다.
겨루다가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소지하고 있던 약품이 모자라서인지 모르겠지만 턱 부근의 인피가 밀려 있었다.
이에 목경운은,
-쭉!
그녀에게 자신의 피부를 잡아당겨 보였다.
보통의 피부라면 탄력이 있는데, 이것은 늘어나는 게 뭔가 달랐다.
이를 본 담백하가 가늘어진 눈으로 말했다.
“인피면구?”
“네. 이곳에 몰래 잠입하려면 이 수가 가장 무난했거든요.”
“하면 진짜 얼굴이 아니라는 거구나.”
“네.”
이 말에 담백하가 그러면 그렇지 하고 혀를 찼다.
어쩐지 약관도 안 된 것치고는 너무 무공이 뛰어나고 정신력도 굉장히 특출났다.
아마도 저 안 속에는 더 많은 나이의 얼굴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차에 목경운이 말했다.
“저도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뭘 말이지?”
“듣기로는 혈교 출신이라면 구무림이라 들었는데, 대체 몇 년을 갇혀 있었던 겁니까?”
“구무림?”
담백하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자신은 처음 듣는 표현이었다.
이에 그녀가 물었다.
“구무림은 대체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죠. 과거의 무림이라고 해야할까요? 듣기로 지금보다 예전의 무림 수준이 훨씬 높았다고 하던데요.”
“예전? 아아…….”
이 말에 담백하의 눈빛이 묘하게 씁쓸해졌다.
뭔가 안 좋은 과거를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내심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이곳에 갇힌 지 너무 오래되어 이미 본 녀에게는 시간관념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이 수십 년인지 수백 년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하나 네가 말하는 구무림이 무학에 있어서 가장 황금기를 말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 되겠지. 다만 ‘그분’이 등선하고 몇 세대가 흐르면서 모든 게 달라졌지만 말이야.”
“등선?”
“…….우화등선이라는 말도 모르나?”
“우화등선?”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화등선(羽化登仙).
말 그대로 직역하면 도를 깨닫고 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을 의미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뛰어난 도인이 입적하는 것을 등선한다고 하기도 하고 정말로 도를 깨달아 선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청령이 목경운에게 가르친 등선은 무림인들이 무(武)로서 깨달음을 얻어 선계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등선…..’
이런 등선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치를 말했던 자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괴이 그 자체였던 삼안(三眼)이라는 존재였다.
문득 놈이 소멸되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수? 애초에 그건 현세에 있을 수 없다. 요력이 그 정도 영역에 이르면 순리(順理)를 벗어난다.] [순리?] [순리가 뭔지 모르는 거냐] [그게 뭐죠?] [이 세계를 지탱하는 것이 순리다. 하긴 인간이 그것을 알리는 어렵지.] [모호하게 말씀하시네요.] [순리는 순리다. 그 영역을 벗어나게 되면 순리로 인해 경계의 저 편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경계의 저편?] [그래. 이것과 같은 이치가 등선일 거다. 인간들은 깨달음을 거듭해 탈각하게 되어 순리로 인해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등선이라 여겼으니 말이다.]이를 떠올리면서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실제로 등선을 했다고?’
삼안도 그렇고 청령 역시도 이것이 거의 전설적인 것처럼 말했었다.
실제로 이뤄지기는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담백하가 말한 ‘그분’이라는 자는 대체 얼마나 뛰어났기에 순리로 인해 경계의 저편에 넘어가게 된 것일까?
확실한 것은 괴이인 이매망량들에게 있어서는 신수(神獸)에 이르러야 경계의 저편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으니, ‘그분’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신수에 가깝다는 육마(六魔)라 불리는 영수들조차 뛰어넘는다는 게 된다.
이에 호기심이 생긴 목경운이 물었다.
“등선했다는 그분이란 분은 대체 누구죠?”
“그분?”
이 물음에 그녀가 묘한 눈빛으로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아직까지 네가 들을 건 아닌 것 같군.”
“네?”
“본 녀는 아직 네 스승을 만나지 않았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아아아.”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복수 이외의 뭔가에 큰 흥미를 가지는 편은 아니지만 내심 그분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는데 꽤 아쉬워졌다.
그러자 그녀가 목경운에게 말했다.
“네 말대로 네 스승이 정말로 진가에 대해 알고 있다면 어련히 알게 될 일일 테니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그렇군요. 하면 다른 한 가지를 물어봐도 될까요?”
“다른 한 가지?”
“네.”
“본 녀가 대답할 거라 생각하나?”
“그야 당신 마음이겠죠. 이것도 사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랍니다.”
“그냥 궁금해?”
“네. 아까 전에 입을 열게 하려고 수십 년 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했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목경운이 겪은 그녀는 허언을 할 자가 아니었다.
그런 자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수십 년을 버텼다고 했는데, 몸 상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심지어 겉보기만으로는 여전히 이십 대의 얼굴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녀가 도중도중에 말했던 것까지 조합한다면 마치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불로장생(不老長生)에 가까운 존재인 듯 했다.
이에 그녀가 목경운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네놈도 장생이나 불로장생에 관심이 있는 것이냐?”
이 물음에 목경운이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별로요.”
“뭐?”
“그런 것에 관심을 가져봐야 큰 득이 있나요?”
“득? 삶을 영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득이 아니라는 것이냐?”
“그게 정말로 득일까요?”
“……..”
“영속적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생이라면 오히려 저주에 가깝지 않나요?”
‘!!!!!’
목경운의 반문에 담백하의 눈빛이 떨려왔다.
그와 함께 아주 먼 옛날의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수많은 시체들에 폐허가 되다시피 한 요녕성의 한 도시.
피투성이가 된 담백하가 잘려나간 팔이 다시 생겨난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이게 대체?]팔이 잘려나간 이상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니 애초에 팔이 다시 자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놀라워하고 있는데, 창백할 만큼 새하얀 얼굴에 학사풍의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 그녀에게 다가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걸 마신 겐가?] [어르신?……그거라면 대체?] [영물의 피말일세.] [피라면…..저 괴물 놈의 피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네.] [아!]그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러고 보니 뇌전을 뿜어대는 그 괴물의 머리 하나를 자를 때 뿜어져 나오는 피를 의도치 않게 마셨던 것 같다.
그 후로 몸 전체가 타들어가는 고통에 정신을 잃었었다.
이에 그녀가 말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팔이 낫게 된 겁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군.] [하면 부상당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지 말게.] [어, 어째서죠? 저 괴물 놈의 피를 마시면 몸이…..] [십중팔구, 아니 백중구십구는 버티지 못하고 죽네.] [네? 죽다니 그게 무슨] [자네 말고도 실수, 아니 우연으로라도 영물의 피를 마셨던 자들의 대부분이 버티지 못하고 죽었네.]그 말과 함께 노인이 영물의 주변에 새까맣게 타들어가 죽은 자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하나 같이 혈맥이 폭사되어 죽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
[영물의 피는 평범한 인간이 버틸 수 있는 그런 게 아닌 모양이네.] [저…..저는 어째서?] [아무래도 자네에게 천운이 따른 모양일세.] [천운…….]정말로 자신이 운이 좋았던 걸까?
멍해진 그녀에게 노인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게 정말로 천운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 또한 자네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게.] [독이 될 지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그런 그녀의 물음에 노인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뭔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소실된 산해경의 옛 비서에 이르기를 오행의 영력을 지닌 영물의 피나 진원을 먹은 자들은 불로장생한다는 말이 있더군.] [불로장생(不老長生)?] [그렇네. 자네 역시도 불로장생할 확률이 매우 높겠지.] [한데 그게 어째서 독이란 말씀인건지요? 오히려 축복이 아닙니까?] [축복? 허허허.]이 말에 노인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흘렸다.
의아해하는데 노인이 웃음을 그치며 말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세. 그건 오히려 저주에 가깝지.] [저주?] [그렇네. 저주이지. 불로불사의 존재나 다름없던 녀석이 왜 자네들이나 혈손들을 두고서 등선을 한 것 같나?] […….어째서?] [소중한 이들이 하나둘씩 곁을 떠나갈 때마다 버틸 수 없어서일세.] [……..] [어찌 보면 녀석의 그런 선택이 현명한 걸지도 모르네.]이런 노인의 말에 당시에 그녀는 뭔가 이해가 되면서도 크게 와 닿지 못했다.
그저 불로장생이 축복이라고만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게 되면서 이제는 노인이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이 녀석.’
목경운을 바라보던 담백하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장생(長生)을 살아본 적도 없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겪어본 적도 녀석이 노 선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할 줄이야.
주어진 사명이 없었다면 자신 역시도 이 모진 생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 지었을지도 몰랐다.
이에 그녀가 목경운에게 말했다.
“너…….뭘 알긴 알고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글쎄요. 혼자서 오래 살고 주변의 모두가 죽는 게 그리 좋은 것 같진 않아서요.”
“………”
이런 목경운의 대답에 그녀가 탄식을 내뱉었다.
참으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겪지 않고도 이를 당연스럽게 여기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길게 한숨을 내쉬던 그녀가 이내 목경운에게 말했다.
“참으로 현명하구나. 네 말이 맞다. 이건 축복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저주다. 만약 본 녀가 불로장생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었……”
-흠칫!
그때 담백하가 하던 말을 멈추고서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그곳은 동굴의 갈림길에서 우측 편 쪽이었다.
공교롭게도 목경운은 그녀가 그렇게 하기도 전에 이미 그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고오오오오오!
어둠 속에서 엄청난 살기와 함께 농도 깊은 사악한 기운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누군가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벅저벅!
걸음소리에 담백하가 목경운에게 말했다.
“…….보통 자가 아니다. 느껴지느냐?”
“그렇네요.”
경계심이 차오른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는데, 이윽고 횃불이 비치는 영역 안으로 그 존재가 모습을 비췄다.
그는 다름 아닌,
“주운향?”
바로 생도 주운향이었다.
한데 주운향의 상태가 평소와 같지 않았다.
두 눈동자에서 기묘한 안광을 내뿜고 있는 것도 모자라, 전신에서 풍겨지는 사악한 기운에 원래의 깨끗하고 정명한 선천진기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데 담백하가 주운향의 손에 들려 있는 특이한 형태의 검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검이 어떻게?”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사악한 기운에 가려져 있었지만 검에서 굉장한 요성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걸 아시나요?”
의아해하는 목경운에게 그녀가 경고하듯이 낮아진 어조로 말했다.
“구야자의 요검인 겁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