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80)
“본교의 교리는 성스러운 불을 숭상하면서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야.”
“해서요?”
“하나 아무리 봐도 자네는 악(惡) 그 자체로군.”
그 말과 함께 냉담하게 쳐다보고 있는 금옥 안의 성화령주.
그런 노파에게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더니 말했다.
“악이라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어?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은 본교의 교인에게 있어 늘상 이뤄지는 시험이자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고리타분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선과 악의 기준을 누가 정하죠?”
“뭐?”
이런 목경운의 말에 성화령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과 악의 기준을 누가 정해?
어처구니가 없는 질문이다.
“도의적이고 당연시되는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네놈은 옳은 것과 그른 것도 구분이 되지 않느냐?”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누가 정합니까?”
“하······. 지금 노부와 말씨름이라도 하자는 것이냐?”
“그렇다기보다 뭔가를 당연시하는 게 우스워서요.”
“당연시하는 게 우스워?”
“네.”
“어차피 옳고 그름도 선과 악의 기준도 누군가가 정한 게 아닌가요?”
“뭐?”
“그 기준이란 걸 정한 게 결국은 사람이 아니냔 말이죠.”
“······.”
이 말에 성화령주는 딱히 부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기준이라는 것을 정한 건 결국 옛 사람들일 거고 그것이 내려와 하나의 관습과 도의로 이어졌을 거다.
마찬가지로 배화교의 교리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파사국에서 전해진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나 이런 식으로 원론을 따지고 든다면 한도 끝도 없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기준을 누군가가 정한 것을 부정하고픈 거냐? 한데 부정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다수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고 소수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다.”
“그래서요?”
“세상은 다수가 옳은 쪽으로 결국 움직이고 도의라는 것도 그르다는 것 역시도 결국 다수의 의지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해서 선과 악도 옳고 그름도 다수가 정한 의견이니 소수에 속하는 자는 거기에 따르라는 건가요?”
“그 해답은 노부가 내려줄 수 없다. 결국 네 스스로가 납득해야 하는 문제이니까. 하나 다수가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부딪침, 시행착오가 있었을 거다.”
“아아, 그렇군요.”
성화령주는 가르침이라는 것도 결국은 스스로 납득하는 것에서 깨달음이 온다고 여겼다.
백날 원론을 얘기하고 이것저것 주입시켜 봐야 의미가 없었다.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면 배화교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악이자 절대적으로 그른 것이로군요.”
“뭐? 지금 무슨······.”
“말씀하셨잖아요. 다수의 의견을 소수가 따라야 하는 이유.”
“그건······.”
“대다수의 중원인들에게 배척당하는 배화교와 배화교의 교리는 소수에 해당하니 당연히 부정해야 하지 않나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성화령주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도리어 당해버렸다.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악(惡)함에 교리를 알려 교화시키려 했는데, 오히려 자신의 말에 있어서 허점만 내주고 말았다.
‘······영악한 녀석이다.’
여기서 교를 위한 반론을 제기하면 오히려 스스로 했던 말을 뒤집어야 하는 논쟁이 반복될 것이다.
성화령주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노부가 말로서 이렇게 말려본 것은 간만인 것 같구나.”
“그런가요?”
“한데 그 덕분에 좀 더 명확해졌구나.”
“명확? 무엇이 말이죠?”
“노부는 본교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있는 그대가 정말로 본교의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어졌다.”
성화령주의 눈빛은 의구심으로 가득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목경운은 그녀를 적당히 자극해야겠다고 여겼다.
그녀에게서 알아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부족했고, 더욱 경계심을 사게 되면 괜히 탈옥시키는 일이 피곤해질 수도 있었다.
“아아아. 제가 성화령주께 믿음을 드리지 못했나 보군요. 하면 이건 어떨까요?”
목경운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그건?”
목경운이 빼든 것은 다름 아닌 암종주 환야선이 넘겨준 가락지였다.
그는 이것이 교인을 증명하는 증패라고 하였다.
증패를 보인 목경운이 그에게 공손히 두 손을 교차하듯이 모아,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며 인사를 올렸다.
“배화교의 교인이 성화령주를 배알하나이다.”
이런 목경운의 인사에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머릿속이 온통 의심으로 가득했던 성화령주가 혼란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어떻게 이걸?’
그도 그럴 것이 목경운이 보인 가락지는 배화교의 고위 직책인 교부(敎父)만이 가질 수 있는 증패였다.
배화교 내에서도 교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에 그녀가 물었다.
“이걸 누구에게 받았는가?”
얼굴을 보면 약관도 되지 않았기에 본인의 것일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당연히 목경운이 이 증패를 누군가에게 받았으리라 확신했다.
“제 스승님께 받았습니다.”
“스승님?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은 건지 그 존함이나 교명을 알려주게.”
암종주 환야선이 교인을 만나게 된다면 자신에 대해 알릴 때 성을 빼고 말하라고 했다.
이 성은 전대 암종주에게서 이어받은 성이라 했던 것 같다.
이에 목경운이 말했다.
“야선입니다.”
“야선 교부!”
그 말에 성화령주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들떴다.
이를 목경운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암종주 환야선이 배화교에서 꽤 고위직의 인물일 거라고는 예측했지만, 교주를 제외하고 이인자나 다름없는 성화령주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정말 주요한 인물이 맞기는 한 듯했다.
“야선 교부가 보냈다니?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혹시 천지회라는 단체를 압니까?”
“천지회라고? 무림에서 가장 큰 단체 중 하나가 아닌가. 노부가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면 야선 교부가 아직도 그곳에 있었단 말인가?”
그녀의 반응 덕분에 목경운은 암종주 환야선이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도 더욱 오랫동안 천지회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는데 그녀가 말했다.
“야선 교부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이렇게 힘을 써주고 있었다니 진정 본교의 홍복이군.”
‘······.’
이 말에 목경운의 눈빛이 묘해졌다.
정말로 성화령주가 예지를 할 수 있었던 게 맞을까?
만약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암종주의 생사라든지 궁금했던 어지간한 정보들은 예측했을 터인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의구심이 강해지려던 찰나였다.
-쿠르르르르!
갑자기 바닥에서부터 진동이 느껴지더니 이내 동굴 전체가 갑자기 흔들거렸다.
흔들림의 규모는 목경운과 구혈교의 혈성 담백하가 겨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엇?”
그것이 어찌나 심한지 성화령주가 비틀거리며 쇠창살을 붙들었다.
‘뭐지?’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러는데 이윽고 심하게 흔들거리던 동굴 전체의 진동이 빠르게 멎었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 수 없었다.
의아해하는데 성화령주가 말했다.
“일단 이곳을 나가세. 빨리 나가지 않으면 화를 당할 걸세.”
“왜 그런지 아시는 겁니까?”
“정확히는 모르네. 그저 이렇게 동굴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건 처음이네.”
“처음이라 했지만 심하게는 아니더라도 흔들린 적이 있다는 건가요?”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성화령주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이곳에 왔던 금의위들이 서둘러서 나갔던 것을 기억······. 아! 전부는 아니군. 그러고 보니 노부를 심문하던 자 중에 유일하게 지하금옥의 총책임자라 했던 자는 금옥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서 나가지 않았어.”
“이곳이 흔들렸는데도요?”
“그렇네.”
“그자는 이 떨림을 가리키며 기억해두라더군. 노부에게 살아서 무간금옥을 탈출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일세.”
“불가능요?”
목경운이 그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자신이 경험한 바로는 무간금옥의 탈출이 그렇게까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긴 어떠한 자라도 이곳에 들어오게 되면 탈출할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다른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까?
목경운이 바닥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일단은 나가시죠. 과연 말씀대로 불가능일지 아닐지 확인해보도록 하죠.”
“······야선 교부는 늘 조심스러운데 자네는 보기보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걱정보다는 부딪치는 편이 낫다 주의라서요. 그보다 뒤로 조금만 물러서 주시는 건 어떨지요?”
“물러서라니?”
“쇠창살에 붙어있으면 그걸 베기가 힘들거든요.”
“아!”
이런 목경운의 말에 성화령주가 이내 뒤로 다섯 발자국 정도 물러났다.
그러자 목경운이 검결지를 쥐고서 쇠창살을 가볍게 긋기 시작했다.
-슥!
저 죽은 자의 검이라도 쓸려나 했는데 맨손으로 쇠창살을 긋자 성화령주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손가락을 긋는 것만으로 쇠창살이 과연 잘리기나······.
-스겅!
그 순간 목경운의 검결지가 스치고 지나간 곳의 쇠창살들이 이내 잘려나가며 넘어갔다.
이를 본 성화령주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셨다.
아직 약관도 안 된 것 같은데 맨손으로 쇠창살을 자를 정도로 고수라니 내심 놀라웠다.
‘야선 교부의 제자라고 하더니 무위가 정말 뛰어나구나.’
야선 교부도 이 정도까지였나 싶다.
그렇게 팔다리의 구속구까지 전부 처리하자 성화령주는 금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나가진 못했지만 고맙네.”
그녀가 목경운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에 목경운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바로 그러던 찰나였다.
-쿠르르르르르!
또 다시 지하금옥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굴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더 심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동굴 벽이 갈라지며 떨림에 기묘한 압력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에 바닥에 손을 대고 있던 목경운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래서였나.’
-쿠르르르르르!
성화령주가 비틀거리며 동굴 벽면을 붙들고서 물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답했다.
“밑의 지반이 완전히 무너진 건지 저희가 있는 지반도 떨어지고 있는 것 같군요.”
‘!?’
제대로 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흔들림과 압력은 그로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목경운이 처음 겪어보는 사태에 혀를 찼다.
무간금옥이라고 하더니 설마 한 층의 지반이 무너져 떨어지게 만들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 * *
-쿠르르르르르!
“이, 이런······.”
무간금옥에서 지하금옥 3층으로 올라가는 길목.
사선부의 수장인 육천호 임규월이 무너져 내린 그곳을 보며 절망을 금치 못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최후의 기관진식이 발동했을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육천호 임규월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질렀다.
수감자들이 너무 많이 금옥 밖으로 나왔기에 혹시나 최후의 기관진식이 발동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급하게 왔는데 이미 끝났다.
-쿠르르르르르!
일어서기조차 힘든 압력은 밑에 지반이 무너져 내려서 무간금옥의 층계 전체가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자신이 알기로는 거의 1리(里)가량 떨어지는 걸로 알고 있었다.
이곳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무너져 비워진 지반들은 즉시 메꿔지게 되어 있어서 절대로 올라갈 수가 없는 구조였다.
-으득!
차라리 그냥 내려오지 말 걸 그랬다.
위무사 묵섬의 압박만 아니었어도 애초에 이런 일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이 상황을 괴로워하던 임규월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럴 시간이 없어.’
가만히 있으면 결국 죽게 된다.
최후의 기관진식이 발동한 이상 조금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었다.
수감자고 금의위 누구 할 것 없이 한 사람이라도 손을 보태서 위로 파고 나가는 것만이 답이었다.
게다가 최후의 기관진식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하금옥에 관해 인수받은 정보대로라면 밑으로 떨어지고 나면 숨겨진 금옥 방이 열리며 그 안에 있던 동인(銅人) 36개체가 풀려나 무차별적으로 탈옥한 자들을 공격한다 들었다.
-타타타타탁!
이에 임규월이 서둘러 무간금옥의 안쪽으로 달려갔다.
‘살고자 한다면 순순히 협조할 거다.’
* * *
목경운이 놀랍다는 듯이 구혈교의 육혈성 담백하에게 말했다.
“호오. 그래도 살려서 제압했네요?”
내심 요검인 겁살검에 사로잡힌 주운향이 그녀와 싸우다 목숨을 잃게 되리라 예상했던 목경운이었다.
그런데 천운이 있던 걸까?
다소 낯빛이 초췌하기는 했으나 주운향은 벽에 기대고 있는 담백하의 바로 앞에 엎어져서 기절해서 고이 잠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바닥에는 검살검이 반쯤 박혀 있었다.
요검답게 바닥에 박혀 있음에도 희미하게 떨리며 요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담백하가 짜증이 섞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놈을 구하고 자시고를 떠나서 이제 어떡할 거냐?”
“어떡하다뇨?”
“설마 몰라서 묻는 거냐? 아까 그냥 네놈과 본녀만 나갔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니냐?”
담백하가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그녀 역시도 지반이 밑으로 추락한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그 어린 노파 하나를 구하려다 이곳에 갇혀서 죽게 생겼구나.”
“어린 노파?”
담백하의 말에 성화령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여자는 누구기에 자신더러 어린 노파라고 하는 거지?
애초에 노파에다 어리다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하나 상황이 워낙 최악이다 보니 홧김에 말이 헛나왔으리라 여겼다.
그때 목경운이 박혀 있는 겁살검으로 다가갔다.
그런 그를 담백하가 만류했다.
“어이. 멈춰라.”
“네?”
“겨우 이놈에게서 그걸 떼놨더니 네놈이 잡아서 뭘 어쩌자는 거냐?”
상대적으로 기운이 약한 녀석도 제압하는데 꽤 성가셨었다.
그런데 벽을 넘어선 녀석이 만에 하나라도 요검의 요성에 사로잡히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를 우려해서 잡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냥 두고 가기에는 아까우니까 그렇죠.”
“두고 가기 아까워? 지금 그런 말이 나오느냐? 위로 손톱이 부서져라 흙을 파도 나갈 수 있을지 말지조차 모를 판국에······. 너 지금 뭐하는 거냐?”
담백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목경운이 대뜸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검지와 중지에 끼더니, 갑자기 원 모양으로 손을 회전시키는 것이 아닌가.
이 와중에 뭐 하는 짓이지 싶었는데,
-스스스스스스!
그 순간 허공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공간이 일렁이며 입구가 생겨났다.
이를 본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