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85)
육천호 소예린과 구혈교의 육혈성 담백하가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목경운의 지하금옥 죄수 탈취를 도와준 것으로 인해 사달이 날까 봐 우려했던 가면의 금의위 마라현은 다행이라 여겨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묵묵히 있던 마라현의 시선은 어느새 인가부터 소예린과 담백하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자는 수감자 복을 입고 있는 한 노파, 성화령주였다.
처음 성화령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녀의 연로함 때문이었다.
‘······저렇게 연로한 자가 어떻게 무간금옥에 갇혀 있던 거지?’
무간금옥은 최악의 중죄인만이 갇힌다고 들었다.
그곳에 갇힌 자는 거의 대역죄인이나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자라고 들었는데, 저 노파는 뭔가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게 내공을 익힌 흔적이 없다.
무공을 숨겼다고 하기에는 발걸음조차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대체 무슨 죄를 지은 거지?’
그리고 목경운은 저자를 왜 데리고 나온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성화령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마라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그저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뿐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얼굴이 낯익다.
‘이상하다.’
자신이 지하금옥 무간금옥에 갇혀 있는 죄수와 마주칠 일이 있었던가?
육천호 소예린도 그렇지만 자신 또한 사선부로 배치된 적이 없었다.
한데 어째서 얼굴이 낯익은 걸까?
한참을 쳐다보던 마라현의 눈매가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분명 봤어.’
굉장히 오래되어서 희미하기는 했지만 저 노파를 본 적이 있다.
별생각 없이 이를 그냥 넘어가려 하던 마라현의 동공이 축소되며 성화령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라현은 그녀를 어떻게든 기억해내려 했다.
본능적으로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기억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에게는 소예린과 담백하가 나누는 대화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슥!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성화령주가 무의식적으로 마라현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마라현과 눈이 마주친 성화령주는 왜 그런 건지 의아해했다.
안 그래도 금의위 복장을 하고 있어서 본능적으로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응?’
성화령주의 눈매가 마찬가지로 가늘어졌다.
미처 몰랐는데 가면의 틈 사이로 보이는 벽안(碧眼)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를 본 성화령주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비틀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마이어라 제사장?”
그런데 고수인 마라현이 이 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이어라 제사장?’
이를 듣는 순간 마라현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려왔다.
낯익은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온갖 집중을 하고 있던 그의 머릿속으로 잊혀졌던 기억이 스멀거리며 떠올랐다.
그것은 마라현이 어린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옆에 서 있는 마라현은 바쁘게 짐을 채비하고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혼혈인 마라현과 다르게 노란 머리카락에 벽안을 하고 있는 완벽한 서역인이었다.
복장은 서역인이 아닌 중원식 복장을 한 서역인은 이내 어머니에게로 다가와 안아주고는 마라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فرزند من]그 말과 함께 서역인은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는 푸른 옥구슬이 박혀 있는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고운 자태의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중년의 여인은 다름 아닌 노파였다.
어째서 낯은 익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어릴 때였고 얼굴이 워낙 초췌하고 주름이 가득해져서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서역인이 어눌한 말투로 노파에게 말했다.
[오이래 기다리시었지요.] [아닙니다. 마이어라 제사장.] [이제 가시지요.] [감사합니다. 본토의 모교(母敎)에서 오신 마이어라 제사장께서 가주신다면 본교의 교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겁니다.]이런 그녀의 말에 서역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상당히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씁쓸한 얼굴은 마라현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서역인의 얼굴이었다.
‘······아버지.’
서역인은 다름 아닌 마라현의 아버지였다.
불길함은 언제나 들어맞는 것일까?
그의 부친은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조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부친이 들고 있던 몇 가지 유품이었고, 그 유품과 함께 부고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감했다.
-으득!
이제 모든 게 기억이 났다.
불길하다며 제발 남아있으면 안 되겠냐고 붙잡는 어머니.
끝까지 고민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데려가기 위해 설득하던 저 노파.
-꽉!
주먹을 쥐고 있는 마라현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 노파가 나타나서 망할 아버지를 데려가지만 않았더라도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일도, 혼혈인이라며 노예 상인들에게 몇 년이나 끌려다닐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노파는 한 번도 자신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친이 본토의 모교의 제사장이기에 직접 데리러 왔느니 뭐니 지껄였지만 막상 부고를 전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말단 교인이었다.
이에 분노를 참지 못한 마라현이 성화령주에게 다가갔다.
‘이자?’
성화령주가 일순간 뒷걸음을 쳤다.
그녀는 마라현의 벽안을 보는 순간 누군가를 떠올렸다.
한데 그 누군가는 죽었다.
그것도 오래전에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라는 것인데, 저렇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보는 순간 그것이 직감적으로 분노임을 알 수 있었다.
-저벅!
말없이 다가오는데 성화령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이 분노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라현이 두 발자국 걸어오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설마?’
마이어라 제사장의 집에서 보았던 그 혼혈의 소년이었다.
중원인과의 혼혈이기에 머리는 검었지만 이국적인 외모에 부친을 똑 닮은 벽안의 소년.
순간 성화령주는 충격이 휩싸였다.
그 소년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장성해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정말로 살아 있었단 말인가?
다시 그곳에 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도 산속 깊은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로 간 건지조차 행방을 물을 수도 없었다.
이에 성화령주가 다가오는 마라현에게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바로 그때였다.
-촤촤촤촤촤촤촥!
목경운이 갑자기 검초를 펼쳤다.
그 검초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검로에 담겨 있는 웅대함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모두가 일순간 그곳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마치 만월(滿月)을 연상시키게 하는 검초는 그 궤적이 복잡하지 않음에도 많은 검의가 담겨 있었다.
‘······하!’
분노에 사로잡혀있던 마라현조차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인으로서 지금 목경운이 펼치는 검초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순함 속에 어떻게 이런 복잡함이 담겨 있을 수 있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마라현뿐만이 아니었다.
목경운이 펼치는 검법이 무엇인지를 아는 소예린이나 육혈성 담백하의 입에서조차 경탄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검초를 바라보던 소예린의 눈이 커졌다.
그 이유는 목경운이 펼치는 무월공검이 자신이 아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달라.’
검식의 궤로가 다르다.
원래의 검 초식에 있던 불필요한 검로들이 없어졌고, 원래의 검로는 그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상대를 죽이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다.
한데 목경운이 펼치는 무월공검의 검초는 기존의 검로에 대한 틀마저 벗어났다.
-주르륵!
이를 바라보는 소예린의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까지 벅차게 만드는 검로였다.
기존의 초식에 대한 틀을 벗어나 검로가 자유로이 움직이는데도 무월공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진짜였단 말인가?’
육혈성 담백하가 입까지 벌리고서 혀를 내둘렀다.
지금 목경운이 펼치는 검초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예전에 어르신에게서 보았던 그때의 검은 오로지 살의로만 가득했다면 지금 검은 그야말로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틀림없다. 어르신의 검이야.’
형식이 다르다고 해도 검의는 변할 수 없다.
다만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도 중원 오대검법 중 하나라 불렸던 무월공검이다.
그런 검법이 이렇게까지 진화할 수 있다니.
과연 어르신은 다시없을 천재(天才)다.
-털썩!
그때 누군가 바닥에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가면의 금의위 마라현이었다.
목경운의 검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마라현은 어떠한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두 눈을 감고서 명상에 들어갔다.
‘하? 이놈 봐라.’
아주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지금 목경운이 보이는 검은 초상승을 넘어선 검극에 가까웠다.
저걸 보고도 아무런 깨달음이 없다면 무재가 떨어진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담백하가 소예린을 쳐다보았다.
홍조까지 띄고서 검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를 보아하니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었다.
‘······역시 그분의 혈손답구나.’
소예린과 잠시였지만 겨뤄봤던 담백하였다.
그녀의 무위는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무공을 연마한 자신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다니.
과연 대단한 무재였다.
피는 속일 수가 없었다.
-슥!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검초를 펼치던 것을 멈췄다.
노인과 만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기에 굳이 초식을 전부 펼칠 이유는 없었다.
도중에 목경운이 검을 멈추자 소예린의 눈빛이 아쉬움으로 가득 차졌다.
‘아······.’
그도 그럴 것이 막 무언가를 붙잡을 듯 말 듯 한 순간이었다.
이는 작은 깨달음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거대한 단초였다.
그런데 목경운이 검초를 멈추면서 단초에 닿아 심상에 빠지려던 것 역시도 멈춰지고 말았다.
이러다 보니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보시다시피 어르신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만. 소 육천호가 알고 있는 어르신이 맞는지 모르······.”
“잠깐······. 지금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나요?”
“네.”
“그분이 직접 목 공자께요?”
“뭐, 그렇지요.”
덕분에 스스로 마검공까지 창안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목경운의 이 대답에 소예린과 담백하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팍!
육혈성 담백하가 목경운에게 한쪽 무릎을 꿇더니 갑자기 두 손을 모아 포권지례를 하며 예를 갖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