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86)
구혈교 육혈성 담백하가 갑작스럽게 예를 갖추자, 이에 의아해진 목경운이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죠?”
그 물음에 담백하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목경운에게 말했다.
“그간의 무례를 용서하소서. 어르신의 제자께 혈교의 육혈성 담백하가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다소 어색하긴 했으나 제대로 예를 갖췄다.
그런데 이는 그녀만 아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육천호 소예린도 이내 담백하처럼은 아니더라도 목경운에게 공손히 두 손을 모아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슥!
“흐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목경운의 의아해하자 담백하가 답했다.
“비록 본교가 강자존을 숭상한다고는 해도 그 배분을 무시할 수 없는 법입니다.”
“배분?”
“네. 다른 분도 아니고 어르신께서 직접 무공을 전수하셨다면 본교에 있어서도 가장 웃어른이나 다름없습니다.”
“웃어른?”
이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법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목경운은 강호에 널리 알려진 규칙이나 법도를 잘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은 목경운의 의도와 다르게 굉장히 공교롭게 되었다.
무림인들이라고 해서 예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정사를 막론하고 무림인들 역시도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자신들의 무를 계승하다 보니 오히려 때에 따라서는 더욱 예를 중시하기도 했다.
지금이 그와 같은 경우라 할 수 있었다.
‘흠.’
목경운이 만났던 폭우 속에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있던 그 노인.
초라한 행색과는 다르게 무공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범상치 않았었다.
한데 그런 노인을 구무림 출신의 인물이 이리도 깍듯하게 대한다는 것은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온 거고, 그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말씀하신 그 어르신이 누구이시기에 제게 가장 웃어른이나 다름없다는 그런 말씀을 하는 거죠?”
이런 그의 말에 육혈성 담백하가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설마 어르신이 누군지 모르시는 겁니까?”
“모른다기보다는 알려주시지 않았거든요. 깨달음 이외의 것은요.”
“아······.”
이런 목경운의 말에 담백하가 소예린을 쳐다보았다.
소예린도 그녀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담백하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어르신께서 아무것도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네. 끝끝내 알려주시지 않더군요.”
“그렇군요. 그게 만약 어르신의 뜻이라면 저 역시도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어르신께서 공자께 스스로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신 데는 큰 뜻이 있으실 겁니다.”
“굳이 알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목경운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담백하가 조심스레 말했다.
“어르신께서 공자께 이를 밝히지 않은 것에는 나름의 뜻이 있으실 겁니다.”
“뜻? 뭐라도 짐작하시는 게 있나요?”
“어르신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강호를 떠나셨습니다.”
“떠났다는 건 은퇴를 의미하는 건가요?”
“네. 그런 의미도 될 겁니다. 어르신께서는 정말 오래전부터 강호를 등지셨습니다. 그건 제가 젊고 미숙하던 시절일 때도였습니다. 만약 그 사건이 없으셨다면 더욱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겠지요.”
“그 사건?”
“······대재앙의 날입니다.”
담백하의 그 말에 목경운이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터라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두 분이 대화를 나눌 때 대재앙의 날을 계기로 무림의 경계가 나뉘었다고 했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대재앙의 날······을 말입니까?”
“네.”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담백하가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긴 공자님의 세대나 당금의 무림인들에게는 너무 옛 과거가 되어버렸죠. 대재앙의 날은.”
“대재앙이라 표현할 정도면 굉장히 큰 사건이었나 보죠?”
“그런 말로도 부족합니다. 그날로 인해 수많은 중원인이 목숨을 잃고 그중 무림인의 팔 할이 넘게 죽어 나갔으니까요.”
“무림인의 팔 할?”
8할을 넘는다.
그야말로 무림인의 태반이 죽었다는 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 많은 수의 무림인들이 목숨을 잃었던 걸까?
아까 전에 이야기했던 이매망량인지 영물인지 하는 용귀 때문일까?
“그 용귀라는 영물이 그리 만들었나요?”
“용귀만이 아닙니다.”
“용귀만이 아니라는 건 마치 다른 것들도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네. 중원 각지에 기이한 괴이들과 온갖 영물들이 갑자기 한날한시에 튀어나와 중원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으니까요.”
‘!?’
한날한시에 수많은 괴이와 온갖 영물들이 중원을 뒤집어놓았다고?
목경운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일이 가능한 건가?
그러는데,
“이곳 황도인 개봉에서도 불기린이라 불리는 용암과도 같은 불꽃을 토해내는 기묘한 영물이 나타나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고 하더군요.”
중간에 소예린이 거들 듯이 덧붙였다.
“불기린? 그것도 잡은 건가요?”
“모르겠어요. 저도 황궁의 여러 기록을 살폈는데, 불기린이 도중에 사라져서 잡았다거나 죽였다는 기록은 없었어요. 어쨌거나 대재앙의 날로 인해 너무 많은 자가 죽었어요. 왜 구무림과 현무림의 경계가 생겨났는지 알겠죠?”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짐작 가는 바를 말했다.
“전수의 문제인가요?”
“네. 맞아요. 각 파의 종사들과 고수들이 전부 죽으면서 그 대가 전부 끊겼거든요. 심지어 전음입밀(傳音入密)마저 할 수 있는 이들조차 없어서 기초적인 무학의 체계가 붕괴되었죠.”
“아가씨의 말씀대로 그로 인해 대재앙의 날을 기점으로 무림의 수준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퇴보되었지요. 제가 이곳 지하금옥에 갇혀 있는 사이에 꽤 많이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요.”
담백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녀는 구무림과 그 기점 이후를 직접 겪은 유일한 자였다.
그러다 보니 그날을 떠올리며 더욱 치를 떨었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희한하네요. 살면서 한 번 볼까 말까 한 괴이들과 영물들이 갑자기 한날한시에 중원 곳곳에서 튀어나와 살육을 벌였다라······. 대재앙이라 불릴 만하기는 한데 뭔가······.”
“이상하죠?”
소예린이 끼어들었다.
이에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해경을 비롯해 여러 방술서를 읽게 되면서 괴이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된 목경운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괴이 중에는 아주 일부를 제외한다면 인간이나 짐승들처럼 집단성을 띄는 것들은 사실상 없었다.
그런데 그런 괴이들과 영물들이 한뜻을 모은 것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그런 짓을 대재앙을 일으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의도적인 것처럼 보이죠?”
“······그렇네요. 소위 이매망량이라는 것들은 집단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더군다나 정해진 영역도 잘 벗어나지도 않는다고 들었고요.”
“이매망량? 그런 것도 알고······. 아!”
목경운의 말에 의아해하던 소예린이 문득 아까 전을 떠올렸다.
목경운이 만든 그 신기한 연기의 문을 말이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무공뿐만이 아니라 기이하면서도 신묘한 방술에도 능통한 듯했다.
이에 소예린이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오히려 목 공자께서 이 방면으로 저희보다 더 전문가일 수도 있겠군요.”
“그저 수박 겉핥기로 배웠습니다.”
“수박 겉핥기로 치부할 정도의 술법 실력이 아니던걸요. 어쨌든 간에 안 그래도 괴이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있으면 묻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그리 큰 도움이 될 만한 답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그저 여쭤보는 겁니다.”
“그게 뭐죠?”
목경운의 물음에 소예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공자. 이매망량이라 불리는 그런 괴이나 영물들이 인위적으로 통제되어 살육을 벌일 수 있을까요?”
“······인위적 통제되어서요?”
“네.”
이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소위 괴이라 불리는 이매망량을 인위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결국 이를 의미했다.
‘식신.’
식신은 이런 존재들을 부릴 수 있는 연(緣)이었다.
자아가 강할수록 이를 부리기 힘들어지지만 간혹 뛰어난 주력이나 방술 실력을 가진 방사 중에는 괴이들을 식신으로 부리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물론 그 격이 높아질수록 괴이의 자아가 강해지기에 식신으로 부리기는 힘들어진다.
“부린다는 개념 자체만 놓고 보면 불가능하진 않네요.”
“불가능하지 않다고요?”
“네. 개념만 놓고 본다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부리는 건 가능한데 그런 식으로 수많은 괴이를 한날한시에 부리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
“괴이를 식신으로 부리려면 연이 이어지는 방사 즉 술자의 주력이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춰야 되거든요. 주력이나 강한 정신력을 가질수록 격이 높은 괴이를 굴복시킬 수 있는데, 보통은 하나의 괴이를 식신으로 굴복하는 것도 힘들다고 알고 있거든요. 애초에 연이라는 것은 혼과 혼이 연으로 이어지는 거나 다름없어서요.”
“그 말은?”
“이를 감안한다면 중원 곳곳에 나타난 그 많은 괴이를 인위적으로 부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군요.”
“아······.”
목경운이 내린 결론에 소예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뭔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대답이어서 그런지 허탈감이 있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소 육천호의 말씀대로 인위적인 느낌은 지울 수 없군요.”
“하지만 공자께서 통제할 수 없다면서요?”
“통제와 상황을 만드는 것은 다르죠.”
“상황을 만든다는 건 대체?”
“일일이 통제를 할 순 없어도 괴이가 자극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 폭주하게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로 보이니까요.”
이미 목경운은 그것을 천지회 시혈곡에서 본 적이 있었다.
식신으로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조건을 통해 괴이를 다루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괴수인 갈저(羯狙)였다.
원래는 북호산 부근의 북해에 서식하는 갈저를 시혈곡의 산에 풀어놓자, 그곳을 휘저으며 수많은 생도를 해치웠었다.
“그럼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그런 쪽으로 놓고 본다면 일말의 가능성은 있겠네요. 더군다나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고 했으니 더욱 더요. 다만······.”
“다만 뭐죠?”
“중원 전체를 아우를 만큼 온갖 괴이들을 폭주시키려면 방술이나 괴이에 해박한 방사들이나 엄청난 인력이 필요할 텐데, 대재앙이 벌어지고도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걸 보면 이 역시도 굉장히 희박······.”
“이게 단서가 될까요?”
그때 소예린이 목경운의 말을 끊었다.
이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단서?”
“네. 아버지께서 찾은 단서가 있거든요.”
그 말과 함께 소예린이 자신의 금색 혁대를 풀어서 그 안쪽에 붙여놓은 무언가를 아주 조심스럽게 떼었다.
그것은 굉장히 오래된 종이였는데 곳곳에 타들어간 흔적이 가득했다.
그녀가 그것을 목경운에게 넘겼다.
“이건?”
“많이 훼손됐지만 일단 펴보세요.”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부스러질 것 같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폈다.
이를 펴고 있던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들어 간 일부에 붉은색으로 문양 같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急急如······.
(급급여······.)
뒷부분이 타들어 가 있었다.
‘······율령.’
앞이 소실되고 급급여만 남고 문양도 고작해야 전체에서 일부에 불과해서 어떤 술법을 쓰려고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확실한 방술의 주술이었다.
“이걸 어떻게 찾으셨죠?”
“아버지께서 찾은 거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찾은 곳은 이곳 개봉 황도예요.”
“황도요?”
“네. 아버지께서는 쭉 단서를 찾다가 대재앙의 날과 관련된 단서를 가지고 있다는 자를 찾으셨다고 했어요.”
“그 단서가 이건가요?”
“네.”
“그렇군요. 분명 이건 술법인 것 같은데 문구 대부분이 타들어 가서 어떤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네요. 이와 관련되어 뭔가 들은 게 없나요?”
“없어요. 아버지께선 단서를 준 자에게서 무언가를 듣긴 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개봉에 있는 방사를 찾아가 자문을 구해본다고 했었어요.”
“아아. 조금이지만 술식의 흔적이 있어서 그랬나 보네요.”
“네, 한데······.”
“한데?”
“개봉에 있다는 유명한 방사를 찾아간 그 날 밤 아버지께선 살해당하셨어요.”
‘!?’
“어찌 그런 일이!”
-으득!
이런 그녀의 말에 육혈성 담백하가 화를 참지 못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쌍성의 생존자이면서 그분의 또 다른 혈손이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그날을 떠올렸는지 눈시울이 붉어진 소예린을 빤히 바라보던 목경운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방사는 찾으셨나요?”
“······아뇨. 찾지 못했어요. 아버지께서 살해당하고 나서 그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심지어 개봉에 있다는 모든 방사도 하룻밤 사이에 전부 사라졌어요.”
“방사들이 전부 사라졌다고요?”
“네.”
“흐음.”
참으로 공교롭기 그지없었다.
목경운이 단서라는 타들어 간 훼손된 종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물었다.
“이 단서를 줬다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죠?”
“······못 찾았어요.”
“네?”
“당시 단서를 준 사람과 만난 건 아버지뿐이셨어요. 그자가 오직 황도에 있다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기에······.”
“그래서 지금까지 찾고 있었던 건가요?”
“맞아요.”
그것이 바로 육천호 소예린이 금의위가 된 이유였다.
금의위가 된다면 황도와 개봉에 있는 모든 거주자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수사권 또한 가질 수 있기에 생각해낸 방책이었다.
그녀 나름대로 단서를 찾기 위해 백방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게 다인가.’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별다른 단서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목경운은 더 이상 관심이 사라졌는지 소예린이 준 단서 종이를 접으려 했다.
그렇게 종이를 한 번 접고 두 번 접을 때였다.
‘!?’
순간 목경운이 접던 것을 멈췄다.
종이를 폈을 때는 일부가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훼손된 종이 뒤편에 새겨진 또 하나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표식?’
두 이(二)의 한 가운데를 선 하나가 종(縱-세로)으로 관통하는 표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