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292)
흠원(欽原).
거대한 새의 상반신과 말벌의 하체를 가진 곤륜산의 요수(妖獸) 중 하나다.
대부분의 이매망량들이 그러하듯이 괴이들은 낮에는 그 힘이 약화되지만, 흠원이 날아가는 속도는 달리는 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높이 솟구쳐 날아가는 흠원을 어떻게든 쫓으려 했지만 결국 추적대는 점점 사라져가는 뒷모습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저걸 어떻게 쫓아간단 말이야?”
애초에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망연자실해하던 그들은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펄럭펄럭!
“못 따라올 것 같군요.”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멀어져가는 추적대를 바라보던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 목경운의 말에 섭춘이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주군. 대체 이런 괴이 같은 건 언제 길들인 겁니까?”
“아. 이거요? 회에서 운 좋게 기회가 있었네요.”
“회 말입니까?”
이런 목경운의 대답에 섭춘과 몽무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지회 출신인 그들은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왔지만 이런 것은 처음 본다.
그러는데 육천호 소예린이 쓰고 있던 검은 복면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목 공자께서는 정말 방술에도 많이 능하시군요. 이런 괴이조차 길들인 걸 보면 말이죠.”
“그저 운입니다.”
“운만으로 이런 걸 길들일 수 있는 자가 있나요? 어찌 되었든 간에 공자께서…..앗.”
말을 하던 그녀가 움찔하며 수레를 붙들었다.
흠원이 고도를 높이면서 살짝 옆으로 선회하는 순간 균형을 잃었던 것이다.
아래를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떤 것도 겁내지 않을 것 같던 그녀였지만 의외로 높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쳐다보는 것이 두려운 듯 했다.
이에 가면의 금의위 마라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육천호. 괜찮으신….”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마라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예린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얼굴이 살짝 상기된 걸로 보아선 아래를 쳐다보며 두려운 기색을 보였던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이런 은사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을까 마라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성화령주가 있는 잔반통을 바라보았다.
이를 바라보는 마라현의 눈빛이 묘해졌다.
그러는데,
-달칵!
목경운이 잔반통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소리만으로 밖의 상황을 유추해야만 했던 성화령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목경운에게 물었다.
“어찌 된 것이냐?”
“보시다시피 탈출하는데는 성공했어요.”
“성공했다고?”
“네.”
“아아아!”
이 말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차였다.
한데 탈출에 성공했다고 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이에 웅크리고서 음식물 잔반 속에 머리만 내밀고 있던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걸 권해드리고 싶은데요.”
“탈출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까부터 안에 있는데 이상하게 귀가 멍멍하고 속도 울렁거리는게 불편한데 여기서…..!?”
그 순간 성화령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를 쳐다본 그녀는 수레를 움켜쥐고 있는 거대한 발톱과 흠원의 배면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대체?”
“별 건 아니고 지금 좀 높은 곳에 있다고 해야 할까요.”
“높은 곳?”
“네. 하니 다시 안에 편하게 계시지요?”
“…….아, 알겠다.”
“뚜껑 닫아드릴까요?”
그 말에 속이 울렁거려하던 성화령주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계속 보고 있는 게 더 울렁거렸기에 차라리 잔반통 속에서 아무 것도 보지 않는 게 나을 듯 했다.
그렇게 웃으며 뚜껑을 닫은 목경운이 시선을 돌렸다.
목경운과 시선을 마주친 마라현이 이내 당황한 듯이 시선을 회피했다.
-중생 너도 느낀 게냐?
옆에 있던 청령의 말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에도 민감했지만 살기만큼은 아무리 갈무리해도 귀신 같이 포착해내는 목경운이었다.
마라현에게서 느껴지는 희미한 살기가 성화령주에게로 향하는 것은 진즉에 알아차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감정적인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따로 붙여두면 안 될 것 같구나.
-그렇네요.
-그나저나 요수인 흠원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다니 네 녀석도 참 대단하구나.
-임기응변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임기응변 덕분에 기어코 황궁을 탈출했구나. 하다못해 이젠 금모구미호까지 이용해먹다니 중생 네 녀석의 담력은 정말 알아줘야 겠구나.
혀를 내두르는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흠원까지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비책이었으나 금모구미호는 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었다.
금모구미호가 특유의 변덕으로 도와줬기를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로 육천의 일인이라 불리는 남진무사 구성백의 손에 붙잡혔을 수도 있었다.
-꽉!
목경운이 떨리는 왼손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영물의 피를 먹은 육혈성 담백하만큼의 초재생력은 아니었으나, 회복력이 빨랐기에 서서히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를 보며 목경운이 옅은 숨을 내쉬었다.
금모구미호의 어마어마한 요력을 흡수하고 나름 깨달음도 얻었는데, 확실히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육천(六天)이라는 벽은 거대했다.
‘아직 멀었네.’
할아버지를 죽인 자들은 하나의 거대한 단체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 그들을 파헤치려면 마찬가지로 세력을 갖추든지 압도적인 무력이 필요했는데, 이번 싸움으로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한 목경운이었다.
하지만 실망할 건 아니었다.
이번 싸움으로 육천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로 배우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기(氣)를 다루는 방법은 무궁무진해.’
완전히 벽의 벽을 넘어선 자가 어떻게 기를 운용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로 인해 그의 운용 방식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이를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더 효과적으로 기를 다룰 수 있을 듯 했다.
-슥!
목경운이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자 검집에 꼽혀 있던 악즉검의 검병이 희미하게 떨려왔다.
이에 목경운이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던 때였다.
-중생.
-…….
-중생
-네?
-너……그런데 그 땡중 놈은 버리고 갈 거냐?
-!?
청령이 말하는 땡중 놈은 다름 아닌 소림의 파계승인 복마권사 자금정이었다.
일이 꼬이면서 흠원마저 동원하느라 미처 잊고 있었다.
원래는 잔반 수레를 끌고 외궁 밖으로 나가게 되면 자금정이 준비해둔 마차로 개봉을 벗어나는 게 전반적인 계획이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흠원으로 탈출하게 되면서 자금정을 버려두고 가게 된 셈이었다.
-아……깜빡했네요.
-그런 것 같더구나.
-뭐 별 수 없죠.
-응?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목경운이 소예린을 쳐다보았다.
남진무사 구성백이 나타난 바람에 얼떨결에 그녀도 황궁을 나오게 되었으나, 그녀는 결국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부탁해서 자금정에게 따로 오라고 해야 할 듯 했다.
그러는데 청령이 갑자기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밑을 봐라.
청령의 그 말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시각이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발달한 목경운의 두 눈으로 털 뭉치처럼 작게 보이는 수풀 위로 점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게 보였고 희미한 소리도 들려왔다.
흠원이 날아가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거세서 잘 들리지 않지만 청력에 집중하자 그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아아아아아아! 안들리냐아아아아아아!
내공을 실어서 지르는 소리가 위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악에 받쳐서 지르고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복마권사 자금정이었다.
* * *
근방의 인적이 드문 숲속.
“헥…..헥……”
얼굴이 땀투성이가 된 파계승 자금정이 혀까지 내밀며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주변의 기운을 끌어당겨서 버텼다고는 하나 가까스로 날아가는 흠원을 따라잡느라 모든 체력을 소진한 그였다.
무공을 익힌 이후로 경공을 펼치다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잘 따라오셨네요.”
“헥….헥…..망할…..주인아……마차를 준비하고 기다리라 해놓고….헥헥…..이 땡중은 그냥 버리고 가는 건 무슨 짓이냐?”
“아아. 버린 건 아니고요.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됐네요.”
“피치 못할 상황? 그게 뭐기에….”
-팍!
그때 섭춘이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치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면 자네도 놀랄걸세.”
“놀란다고?”
“조용히 듣기만 하게. 실은…..”
섭춘이 외궁의 탈출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를 듣던 파계승 자금정의 두 눈이 커져서 반문했다.
“뭐? 북파도왕 구성백이랑 싸웠다고?”
“아니. 조용히 듣기만 하라 했는데 그걸 또 되물으면 어쩌란 건가?”
섭춘이 난처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은근히 뿌듯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합공이라고는 하나 자신이 주군으로 선택한 목경운이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우는 육천(六天)의 일인인 남진무사 구성백과 겨뤘고 심지어 부상마저 입혔다.
이것은 그저 운이 좋다는 말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벽의 벽, 즉 현경의 경지에 오른 대종사 급의 절세고수를 상대로 대단한 쾌거를 보인 것이었다.
이것을 다른 이들, 아니 무림에 퍼져나간다면 목경운의 명성 역시도 올라갈 거다.
모르긴 몰라도 신진고수로 이름을 날릴지도 몰랐다.
‘아…….’
순간 섭춘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황궁에서 목경운은 죽은 자로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쉽지만 이번 일로 인해 명성이 퍼져나갈 일은 없을 듯 했다.
촉망받는 후기지수를 넘어서 단번에 팔성(八星)에 비견되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황궁과 관련된 임무여서 이를 철저히 숨겨야 하는 게 아쉬웠다.
그러는데 자금정이 들뜬 목소리로 목경운에게 물었다.
“아니. 주인. 정말로 육천의 일인과 겨룬 것이냐?”
“어이. 땡중아.”
“뭐?”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파계승 자금정이 인상을 험악하게 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를 부른 사람은 육혈성 담백하였다.
“지금 나더러 땡중이라 했느냐?”
“본인 스스로 땡중이라 칭하면서 남이 부르는 건 듣기 싫은 게냐?”
“하?”
“목 공자께 주인이라 부르는 걸 보니 아랫사람인 듯 한데, 어린놈이 제 주인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아니. 이 보살님이 벌써부터 극락으로 가고 싶어 환장을 했나? 행색도 이 땡중보다 거지 꼴을 해가지고는 지금 누구더러 어린놈이 어쩌고 저….”
-팍!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담백하가 자신의 기운을 드러냈다.
-고오오오오오!
“어린 놈을 어리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리?”
이를 감지한 자금정이 순간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러나는 기운만으로도 자신보다 훨씬 공력에서 앞선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 보살은?’
마치 드러난 기운만 보면 자신의 스승이었던 소림 장경각주 공전대사를 떠올리게 할 만큼 공력이 매우 심후했다.
대체 이 여자의 정체가 뭐지?
의아해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육천호 소예린의 앞으로 누군가 털썩하고 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바로 가면의 금의위 마라현이었다.
마라현의 이런 태도에 소예린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지금…….그게 무슨 소리죠?”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육천호와 함께 황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