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10)
비가 쏟아지는 한밤중.
산중턱 위에서 죽립과 죽우의(竹雨衣)를 입고서 불빛이 일렁이는 작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마을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지팡이로 질퍽한 바닥을 짚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이내 목소리도 들려왔다.
“과연 자네의 말대로네. 결국 이곳으로 왔어. 그건 유인책이 확실해졌군.”
“탈출이야 상황이 여의치 못하니 어쩔 수 없다지만, 멍청이들이 아닌 이상 눈에 띄는 짓들을 할 이유가 없소.”
“그렇군. 덕분에 기다린 보람도 있고 내기도 자네가 이겼군.”
-탱!
뒤에 있던 누군가가 은전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죽우의를 입고 있던 자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이를 받아냈다.
은전은 내기의 대가였다.
이렇게 받아든 은전을 품속에 집어넣은 죽립인이 말했다.
“준비된 것은 확실하오?”
“허허허, 노부를 믿지 못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소. 그랬다면 소 어르신과 함께 할 이유가 없지요. 하면 어르신의 솜씨를 지켜보죠.”
“기다려보게. 조용히 해결할 수 있을 걸세.”
어르신이라 불린 누군가가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 * *
-쿵!
“크아!”
5세 아이 크기만 한 술독을 내려놓은 파계승 자금정이 히죽거리는 얼굴로 맞은편에 있는 섭춘을 바라보았다.
섭춘 역시도 그와 마찬가지로 술독을 두 손으로 붙잡고서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는데, 술의 반 이상이 입이 아닌 턱과 상의를 적시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섭춘이 비틀거리며 술독을 내려놓고 말았다.
-쿵!
“제, 젠장!”
“클클, 자넨 이 땡중에게 안 돼.”
섭춘의 술독에 남아있는 술을 확인한 자금정이 득의양양해 하며 말했다.
이에 섭춘이 질린다는 얼굴로 자금정을 바라보았다.
나름 애주가라 자부했기에 작정하고 겨뤄봤는데, 이건 살아있는 술 단지도 아니고 술을 들이붓는 수준이다.
내공으로 술기운을 밀어내는 것도 아닌데 어찌 저리 멀쩡한 거지?
“자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가?”
“고작 이만한 술독 세 개를 비운 정도로 취할 것 같나? 하하하핫.”
파계되고 나서 하루가 멀다하고 술만 마신 그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싶지 않고, 늘 취한 상태로 있고 싶어서 줄곧 마셔댄 덕분에 그는 중원 무림에서 손꼽힐 만큼 주당이 되고 말았다.
“하아하아······.”
“애송이 자식. 이제 안 된다는 걸 알았으면 덤비지 마라.”
“뭐가 어쩌고 저째? 아직 멀었네. 다시 하세.”
“자넨 안 된대도.”
“다시 하자고!”
섭춘이 오기로 술독을 쥐고서 다시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러더니 몇 모금 목에 넘어가자 이를 버티지 못하고는 결국 토가 올라왔는지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읍!”
“애송이 녀석. 클클.”
그런 그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린 자금정이 다시 술을 마셔댔다.
이런 둘을 몽무약이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따뜻하게 데운 황주를 한 모금 마셨다.
“주도(酒道)도 모르는 것들.”
술을 저렇게 마시면 무슨 맛으로 즐긴다는 건가.
정말 한심한 녀석들이었다.
-탁!
잔을 내려놓은 몽무약이 한결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올렸다.
임무로 황궁에 들어간 이후로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에 이렇게 술을 기울일 여유는 없었다.
“후우.”
하지만 닷새 가까이 쉬지 않고 남하한 여독을 풀기 위해 한잔했는데, 전신에 피가 감돌고 속이 따스해진다.
그래서인지 술이 유독 달게 느껴졌다.
“지부장. 이 황주가 소흥주라고 했습니까?”
“맞습니다. 이번에 강남(江南)에 내려가면서 절강성 소흥쪽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떻습니까? 맛이 괜찮으신지요?”
“맛있군요. 신미, 첨미, 산미, 쓴맛, 매운맛, 떫은맛 등의 육미가 잘 조화되었군요. 과연 월나라 구천이 즐겨한 술답군요.”
월나라가 있던 하남 지방은 곡창지대였기에 쌀로 술을 만드는 주조법이 발달했는데, 그 덕분에 유명한 황주(黄酒)들이 많았다.
소흥주(紹興酒)는 절강성 소흥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황주였다.
황주 가운데서도 최고로 치는 소흥주는 춘추시대부터 내려온 주조법으로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를 징벌하러 가기 전에 병사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회주님 산하의 정보부처의 부수장답게 식견이 높으시군요. 참으로 명석하십니다.”
지부장의 아부에 몽무약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부친인 부회주 몽서천은 술에 식견이 높고 주도(酒道)를 중요시하는 자였기에 아들인 몽무약에게도 중원 각 지방의 술들을 맛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몽무약 역시도 특색있는 술들을 많이 경험하여 나름 술에 대한 일가견이 있었다.
“푸하하핫. 술 하나 마시는데 온갖 고상한 척을 해대는구나.”
그때 자금정이 비웃음을 흘리며 몽무약을 도발했다.
이런 그의 도발에 몽무약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러나 이내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품격이 떨어지는 것들과 똑같이 놀아봐야 고상한 자신만 피곤해질 뿐이었다.
“샌님처럼 마셔대는 꼴이 딱 어여쁜 보살님들이 어유 저는 못 마시겠어요 하고 입만 갖다 대고서 홀짝거리는 것 같구나. 푸하하하핫.”
‘······샌님? 홀짝?’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몽무약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런 그에게 자금정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약 올렸다.
“왜 기분 나쁜가? 한데 사실인 걸 어쩌나? 사내대장부가 술도 제대로 못 마셔서 대작에 끼지도 못하는······.”
-팍!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몽무약이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술독 하나를 집더니 이내 그것을 들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를 들이키며 단숨에 비워내고야 마는 그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로 이어서 옆에 있는 술독을 들어서 그것마저 벌컥벌컥 마셔대는 몽무약이었다.
첫 독까지는,
‘넘어왔구만 애송이.’
이런 표정을 지으며 여유만만해하던 자금정이 이내 마른 침마저 삼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놈 주도니 뭐니 하는 어설픈 샌님인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쿵!
단숨에 두 독을 비워낸 몽무약이 이내 가득 찬 술독을 찾았다.
그러다 이내 지부장을 향해 자금정과 동시에 외쳤다.
“있는 술 다 꺼내와라.”
“술을 더 가져와 주시죠.”
이런 두 사람의 요청에 지부장이 당혹스러워하다 이내 둘의 재촉에 못 이겨 아랫사람들을 향해 손짓을 해 창고로 가게 했다.
-드르렁! 드르렁!
이렇게 떠들썩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성화령주는 따뜻한 화로 앞에 모포를 덮고서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던 그녀는 허기를 채우고 따스한 곳에 있으니 견디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런 성화령주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가면의 마라현이었다.
주군인 목경운과의 약조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그녀를 족쳐서 자신의 부친이 어떻게 죽게 된 건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약조를 한 이상 목경운의 볼일이 끝날 때까지 참아야 했다.
“흥.”
마라현이 콧방귀를 뀌고는 이내 찻잔을 들이켰다.
이런 그에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목경운이 가득 차 있는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거기 술이라도 한잔 마시지 그래요?”
“아닙니다.”
“따뜻한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인데, 이거 꽤 맛있는걸요.”
“괜찮습니다. 모두가 술을 마시면 기감이 흐려지기 마련이니, 누군가는 멀쩡한 정신으로 호법을 서고 주군을 호위해야 합니다.”
마라현이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닷새 동안 쉬지 않고 남하했고 추적이 그간 없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경계심을 풀면 안 된다고 여기는 그였기에 술을 입에 댈 생각은 없었다.
이런 그를 바라보며 목경운이 빙그레 웃었다.
고지식해 보였지만 이곳에 들어와서도 기운을 흘려보내며 내내 경계를 게을리 않는 모습에서 그를 좋게 보는 목경운이었다.
“나쁘지 않군요. 한 잔 정도는 몸이 열기도 올려주고 좋을 텐데 말이죠.”
-짠!
목경운이 그의 가득 차 있는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고는 입에 털어 넘겼다.
이에 마라현이 술잔으로 잠시 손을 뻗다가 이내 찻잔을 공손히 두 손으로 쥐고서 목경운을 향해 올리며 말했다,
“저는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따뜻한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에 목경운도 더는 술을 마시라고 권유하진 않았다.
* * *
두 시진 가량이 지난 어두운 새벽.
-쏴아아아아아!
밖은 여전히 빗소리로 시끄러웠다.
시끌벅적했던 숙소 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어느새 코를 고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 숙소 건물 안에서 한 중년인이 조심히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이곳의 지부장이었다.
숙소 밖으로 나온 지부장이 이내 손을 위로 들어 올리고는 수신호를 보내고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딱!
그러기가 무섭게 주변의 건물들에서 어두운 인영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 같이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빗소리 덕분에 더욱 움직이는 것에서 구애받지 않은 그들은 대범하게 숙소 건물을 포위해나갔다.
그렇게 포위한 복면인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수십여 명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더욱 많은 복면인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러는데 복면인들과 다르게 지부장이 있는 곳을 향해 죽립에 뱀의 머리를 하고 있는 기괴한 형태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나운 인상의 노인이 걸어왔다.
그가 나타나자 지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대로 한 시진 정도 지나니 정말 하나둘씩 쓰러지더니 전부 잠이 들었습니다.”
“말하지 않았나. 한 시진이 지나면 전부 잠들 거라고. 한데 두 시진 가까이 버틴 녀석이 있었다니 지독한 녀석이군.”
“안 그래도 금정차에는 혹시해서 어르신이 주신 약재를 많이 넣지 못해 그 가면을 쓴 녀석이 늦게 잠이 든 것 같은데, 한 녀석은 은근히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제일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내성이 좀 있나 보군.”
“내성이요?”
“그래. 그 약재는 독이 아니라 약에 가깝지. 해서 몸에 해가 되지 않기에 아무리 내가 고수들이더라도 자연스럽게 천천히 잠이 오게 만들기 때문에 긴장을 풀게 만들지. 다만 그 약재를 조금이라도 처방받거나 했다면 내성이 있어서 늦게 들 수밖에 없지.”
“그렇군요. 어쨌거나 대단하십니다. 역시 어르신께서는 독뿐만이 아니라 모든 약재에 있어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허허허. 칭찬은 거기까지 하지. 확실히 잠든 것을 확인했나?”
“네. 말씀하신 혈 자리도 눌러보았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됐군.”
그 말과 함께 죽립을 쓴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죽립과 죽우의를 입고 있는 자가 뒤에서 걸어오며 말했다.
“소 어르신을 데려온 보람이 있구려.”
-슥!
죽우의를 입고 있는 자가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복면인 중 일부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기척을 죽이는데 능한 자들로 무공 실력도 보통이 아닌 이들이었다.
총 여섯 명이 나오자 죽립인이 명했다.
“늙은 노파만 데리고 나오고 나머지는 심장을 찔러 단숨에 죽여라.”
“충!”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섯 명의 복면인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다가갔다.
-쏴아아아아아아!
빗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기척을 죽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한 사람씩 불이 꺼진 어두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죽립인이 팔짱을 끼고서 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려서 다행이었다.
놈과 얼굴을 쏙 빼닮았다던 녀석도 이미 황궁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나머지만 처리하고 성화령주만 빼돌리면 된다.
그러는데 천지회의 지부장이 그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약조대로 제 삼계(三界)로 추천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런 그의 물음에 죽립인이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조급해하지 마라. 중요한 역할을 해냈으니 당연히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소, 송구합니다.”
천지회의 지부장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고는 이내 옆으로 비켜났다.
이런 그를 죽립인이 탐탁지 않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버러지 같은 놈.’
무위가 제 사계(四界) 수준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고작 이런 쉬운 임무를 맡아놓고는 욕심이 과하다.
그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때 뱀의 머리 형태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늦군.”
그런 노인의 말에 죽립 사이로 보이는 죽립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확실히 늦다.
노인이 만든 약재를 먹고서 잠이 든 자는 아무리 때리고 흔들고, 심지어 혈자리를 눌러도 쉽사리 깨지 않는다.
그런 자들을 죽이는 것치고는 늦었다.
-끼이이이익!
그러는데 이내 닫혀 있던 숙소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어두운 숙소 안에서 인영의 얼굴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형태를 보아하니 복면인인 듯한데,
‘!?’
그 순간 죽립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복면인 중 한 사람이 나오는 거라 여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복면인의 머리였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복면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서 내밀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당황한 지부장이 어쩔 줄 몰라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분명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잠이 들었고 자신이 직접 혈 자리까지 누르며 확인했다.
한데 지금 저 안에서 복면인의 잘린 머리를 들이 내밀고 있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하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맥문동, 당귀, 산조인(대추씨)까지 잔뜩 들어 있어서 푹 자라는 배려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군요.”
‘!?’
그 목소리에 뱀 머리 형태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눈이 커졌다.
‘이걸······. 알아차렸다고?’
그도 그럴 것이 특수한 비법으로 정제해서 향과 맛에 변화를 주었는데 들어간 약재를 정확하게 맞췄기 때문이었다.
-첨벙!
그때 잘린 복면인의 머리통이 빗물이 고인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함께 어둠 속에서 검집 두 자루를 허리에 차고 있는 이십 대의 얼굴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인피면구를 하고 있는 목경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