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25)
어둠으로 가득한 대전.
그 안으로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닌 면사를 쓴 세 인영이 들어섰다.
그렇게 들어선 세 인영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그림자조차 잘 보이지 않는 단상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서 예를 갖췄다.
그들이 무릎을 꿇자 단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제(破帝)와 귀검(鬼劍)만 오지 않은 건가?”
그 물음에 가장 우측 편의 호리호리한 체형의 면사인이 입을 열었다.
“파제는 목간께서 내린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귀검은 그 명을 내린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혹시 공께서······.”
-슥!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바로 옆에 있는 자가 손을 내밀며 말을 하던 것을 만류했다.
이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면사인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가운데 있는 자가 말했다.
“춘추(春秋). 자네는 귀검의 일에서 신경 끄게.”
명령에 가까운 그의 말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면사인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이 답했다.
“······귀검이 반년이 넘게 행방이 묘연해졌네. 동류(同類)가 사라졌기에 공께 여쭤보려 했을 뿐인데, 강염(絳炎) 자네는 그게 그리도 불만인 건가?”
“귀검과 그자에 관련해서는 목간께서 아무도 관여치 말라 했던 것을 잊었던가?”
“하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네. 귀검이 반년이 넘게 사라졌네. 마지막으로 행방을 보인 곳이 사천당······.”
“그만.”
그때 단상에서 위엄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서로를 쳐다보며 으르릉대던 두 사람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입을 다물자 단상에서 목소리가 이어 나왔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이광이 죽었다.”
“네?”
“이광이 어찌?”
그 말에 세 사람 모두가 고개는 들지 못했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중 가운데 있는 강염이라는 자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광에게는 목간께서 교마왕(蛟魔王)의 비늘로 만든 기물을 하사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썼다면 어지간한 초고수들조차······.”
“이광이 죽는 순간 놈이 느껴졌다.”
‘!!!!!’
그 말에 세 사람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들 중 과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가장 좌측 편의 면사인이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뭐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거지?”
“분명 놈은 힘을 완전히 잃었다고 했습니다. 설령 천운으로 목숨을 연명했다고 해도 고작 형체만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할 터인데 어찌······”
“하면 본좌가 잘못 느꼈다는 것이냐?”
“······.”
면사인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부정하기에는 줄곧 뿌리를 내린 것처럼 이곳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서 놈의 기운을 느끼는 일에만 매진했다.
모두가 놈의 완전한 소멸을 확신할 때 목간만은 이를 부정했었다.
이런 목간이 느꼈다면 확실하다.
‘이래서 전부 소집한 건가.’
정말로 놈이 부활했다면 조직의 모든 전력이 움직일 때가 오긴 했다.
* * *
어둠으로 가득한 대전 밖으로 두 명의 면사인이 먼저 나왔다.
-팍!
그중 호리호리한 체형의 누군가가 갑갑하다는 듯이 이를 벗었다.
그러자 그 얼굴이 드러났는데, 백발과 흑발이 섞인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얼굴을 드러낸 여인이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자신보다 훨씬 거구인 면사의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분명 사천당가에 뭔가가 있다. 한데 어째서 그곳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거지? 설마 고작 독인(毒人) 따위가 두려워서 그러는 건가?”
이런 여인의 물음에 면사인, 아니 강염이 지겹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지간하군.”
“어지간한 게 아니다. 귀검도 그곳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고, 성화령주 그 늙은이가 분명 사천당가와 어떠한 관련이 있다는 건 목간께서도 알고 계시는데 어째서 그곳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지 그 연유조차······.”
“어이. 춘추.”
“뭐?”
“오랫동안 갇혀서 자네는 알지 못하겠지만 건드리지 말라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냔 말이다.”
그녀의 짜증스러운 태도에 면사의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가를 지키는 숨겨진 힘이 있다.”
“숨겨진 힘? 그게 뭐지?”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단지 그 힘이 꽤 오래전부터 내려왔고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만 안다.”
“하? 그래 봐야 한낱 인간······.”
“적당히 해라. 힘을 되찾은 그 교마왕조차 한낱 인간 따위에게 당했다. 아니 한낱이라 하기에는 육마(六魔)조차 쉽게 범접하지 못한 괴물 같은 놈이지만.”
이런 그의 말에 춘추가 미간을 찡그렸다.
육마(六魔)라 하면 한없이 신수(神獸)에 가깝다는 영수들의 왕들이 아닌가.
그것들은 자신들조차 통제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들이 범접할 수 없었던 인간이라면······.
“······설마 경계의 벽을 넘어섰다는 그놈을 말하는 것이냐?”
“그래. 놈이 있었다면 대재앙의 날 목간께서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겠지.”
“그런 예외적인 경우가 또 있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냐?”
“모르는 법이다. 그렇기에 목간께서는 이를 확실히 하려는 거다. 그분의 뜻을 이루고 싶다면 잔말 말고 명에 따르라.”
“······.흥.”
춘추가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더니 이내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고서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이런 그녀의 잔류 사념을 느낀 강염이 우려가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귀검만큼은 아니더라도 제 일계 간부 중에서도 유독 감정적이고 통제가 되지 않는 그녀였다.
해서 그녀가 자신의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고서 움직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후우.”
긴 탄식을 내뱉은 그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목간의 새로운 명을 이행하기 위해서 말이다.
* * *
천지회 내성 본관 구궁 폐관실.
-끼이이이익!
굳게 닫혀 있던 폐관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옷이 넝마가 되었지만 전신이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는 선이 굵은 미남자였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오른쪽 눈에 가죽 안대를 쓰고 있었는데, 그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환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공자!”
그를 부른 자는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왜소한 체구의 한 사내였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내를 보자마자 미남자가 입을 열었다.
“모약.”
미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천지회 회주의 대제자인 나율량이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폐관에 들어가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과 있던 모약은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낫다 못해······.”
전보다 기운이 훨씬 가다듬어진 것 같다.
폐관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았는데, 높은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이에 궁금해서 물어보려 하는데,
-슥!
나율량이 그의 옆쪽을 바라보며 먼저 말했다.
“저자는 누구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신분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한데 더 거슬리는 것은,
“너.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스륵!
나율량의 신형이 흩어지듯이 사라지더니 이내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정체 모를 자의 뒤에서 나타났다.
나율량이 그의 머리 우측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면사의 존재가 고개를 옆으로 움직이며 이를 가볍게 피해내더니,
-탁!
나율량의 손목을 잡아냈다.
이에 나율량의 오른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라고는 하나 독문 경신법인 명현수월보(明顯水越步)로 초고속 이동을 하여 기척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낸 것도 모자라 이 한 수마저 잡아냈다.
‘이놈 봐라?’
-파르르르르!
나율량의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와 함께 두 사람이 서 있는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콰드드득!
공력 대결에 들어갔음을 깨달은 모약이 황급히 소리쳤다.
“대공자. 멈추십시오! 그분은 대공자를 돕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뭐?”
이런 그의 말에 나율량이 끌어올리던 공력을 이내 낮추었다.
면사의 존재 역시도 이에 맞춰 공력을 거둬들였다.
서로가 공력을 거둬들이자 이내 면사의 존재가 나율량을 향해 포권 지례를 하며 인사를 올렸다.
“놀랍습니다. 대공자에 대한 명성을 익히 들어왔지만, 폐관을 마치신 그 공력이 이제는 무림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팔성(八星) 분들과 비견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공손한 그의 태도에 나율량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는 누구지?”
“속하는 장로전에서 보낸 사자입니다.”
“장로전?”
그 말에 나율량의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장로전은 천지회의 은퇴한 간부들이 머물고 있기에 숨겨진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늙은이 중에 이 정도 역량을 갖춘 초고수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였다.
장로전에서 왔다는 면사의 사내를 빤히 쳐다보던 나율량이 입을 열었다.
“하면 면사를 벗어라.”
그런 그의 명에 면사의 사내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송구하오나 속하가 화상으로 얼굴이 흉측하기 그지없어 차마 보이기가 민망하옵니다.”
“상관없다. 보여라.”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이에 면사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쓰고 있던 면사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화상 자국으로 가득한 처참하기마저 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나율량의 하나뿐인 눈매가 가늘어졌다.
화상의 흉터가 흉측한 것에는 특별히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화상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몰라도 두 눈이 없었다.
‘두 눈이 없는데 기척만으로 나의 일수를 잡아냈다고?’
나율량의 눈동자에 이채가 띠었다.
폐관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어 이젠 사부님인 천지회주 아니 육천(六天)이라 불리는 대종사의 경지에 이른 그들이 아니고는 누구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그런데 이 자를 쉽게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자, 새삼 한번 겨뤄보고 싶다는 강한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너······.”
-슥!
그때 나율량이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화상을 입은 사내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살짝 떨어진 곳에서 목함 같은 것이 허공섭물에 의해 둥둥 하고 떠올라 그의 두 손으로 들어왔다.
나율량이 이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지?”
목함의 크기는 꽤 작았다.
그런데 목함의 겉면 가득히 빼곡하게 붉은색 글귀가 적혀 있었다.
마치 방술 혹은 주술의 주문처럼 보였다.
이에 얼굴이 화상으로 가득한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눈을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율량의 왼쪽 눈매가 매서워졌다.
자신이 눈을 다친 것을 아는 자는 고작해야 세 명이었고, 그들 중에 이를 발설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나마 발설할 만한 유일한 인물은 목을 베어 죽였다.
그런데 장로전의 사람이 자신의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을 어찌 안 것이지?
그러는데,
“대공자 경계심을 거두십시오. 이제 본격적으로 회를 규합하시려면 할 일이 많으실 텐데 고작 이런 일로 힘을 빼셔야 되겠습니까?”
“힘을 빼고 말고를 결정할 것은 네놈 따위가 아니다. 나는 장로전이라고 해서 내 머리 위로 올라가려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달칵!
이런 그의 말에 화상의 사내가 말없이 목함을 뚜껑을 열었다.
-솨아아아아아!
-흠칫!
그 순간 뒤편에서 뭐가 들어있나 기웃거리고 있던 모약이 소름 끼치는 무언가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모약이 입을 여는데 차가운 기운에 입김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주변이 서리로 가득 찼다.
‘이게 대체?’
의아해하는데 나율량이 화상의 사내가 열고 있는 목함을 향해 다가갔다.
목함을 열자마자 그 안에서 차가운 한기와 함께 소름 끼치는 기묘한 기운이 드러났다.
그 기묘한 기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눈?’
그것은 눈알이었다.
노란 아니, 황금빛에 가깝고 동공의 초점이 점처럼 작은 이 눈알을 보는 순간 사나운 맹수의 흉폭함이 느껴졌다.
이건 누가 봐도 인간의 눈동자는 아니었다.
여기서 하나뿐인 눈을 떼지 못하는 대공자 나율량에게 화상의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것이 대공자의 새로운 눈이 되어줄 것입니다.”
* * *
호북성의 북쪽 조양(棗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세가 험한 한 절벽 부근.
그곳에 수많은 검수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명성이 높은 한 무림 세가 집단의 깃발이 부러진 채 꽂혀 있었다.
남궁.
그것은 바로 남궁세가의 깃발이었다.
그런 그들의 사이로 금이 간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는 한 중년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대체 저 괴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최고 경지에 제왕검형(帝王劍形)의 절초들을 고작 단순한 도식만으로 파훼시켰다.
아니 고작 단순한 도식은 아니었다.
평범한 근육과 관절로는 도저히 펼칠 수 없는 방식의 궤로로 도식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충격을 받은 그가 이내 결국 버티지 못하고서 피를 토해냈다.
“끄웩.”
-쿵!
피를 한 움큼 토해낸 중년인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그림자로 드리워진 누군가가 뒷짐을 지고서 오만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 모습에 치욕을 느낀 중년인이 이를 악물었다.
천하에서 육천(六天)을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고 자부하는 팔성(八星)의 일인인 자신이 어찌 이런 무명의 젊은 사내에게 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정체는 바로 팔성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창천무검(蒼天武劍) 남궁진이었다.
“쿨럭쿨럭······.”
피를 토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온 뒷짐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제왕이라는 칭호는 검(劍) 따위에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니다.”
“하아······하아······.”
“오직 도(刀)만이 제왕, 아니 신(神)이라 칭해질 수 있다.”
“오······만······을······넘어서······광오하기······그지없군.”
“광오든 오만이든 모든 것은 오직 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남궁세가의 검수여.”
“쿨럭쿨럭.”
분하지만 패배했기에 할 말이 없었다.
치욕스러워하는 그에게 뒷짐을 진 사내가 물었다.
“그보다 정말 들어본 적이 없나?”
이 물음에 남궁진이 힘겹게 고개를 들고서 답했다.
“하아······하아······. 그런 별호, 아니 이름조차 듣도 보도 못했다.”
“확실한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쿨럭쿨럭······. 오십 평생 무림을 활보했지만 천마······.”
-촥!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남궁진의 목이 갈라지며 그의 머리통이 앞으로 떨어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탁!
그런 그의 머리통을 사내가 가볍게 밟으며 중얼거렸다.
“아직인 건가.”
-콰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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