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26)
“진정한 성스러운 불꽃의 주인이 현세에 나타날지어니, 그 뜯겨나간 상처에 새로운 깃이 돋게 되는 날. 모두가 경배하게 되리라?”
목경운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것은 기존의 예언과는 그 결이 완전히 달랐다.
[하늘이 열리며 성스러운 불꽃을 검은 악(惡)으로 물들일 아흐리만의 화신이 현세에 나타날지어니 경계할지어다.]바뀐 예언은 마치 경고에 가까웠으나 원래의 예언은 그런 느낌이 없다.
하나 비슷한 것이 있다면 현세에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아흐리만의 화신······. 진정한 성스러운 불꽃의 주인······.’
이 존재들은 대체 무엇일까?
어째서 성화령주는 예언을 바꾼 걸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너무 모호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성화령주를 빤히 쳐다보던 목경운이 말했다.
“왜 예언을 바꿨죠?”
“하아······하아······. 그건······.”
망설이는 그녀에게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입이 무거워서 좋을 게 없을 텐데요. 앞으로 제가 할 일을 안다면요.”
이 말에 성화령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손녀······. 하나뿐인 손녀를······살리려면 어쩔 수······없었네.”
“손녀를 살리려 했다? 그것 때문에 예언을 조작했다라······.”
“나······. 나는······..”
“속사정이니 뭐니 변명은 집어치우고, 손녀를 가지고 협박한 건 조직의 그분이라는 자인 건가요?”
이 물음에 성화령주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 * *
18년 전, 배화교의 성화 대전.
대전의 한복판에 단상이 있었고 그 위로 푸른 빛의 보주(寶珠)가 박혀 있는 화려한 지팡이가 세워져 있었다.
평소에도 보주에서는 영롱한 빛을 발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런 보주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우우우우웅!
보주에서 강한 떨림과 함께 공명음이 퍼져나가 주변을 떨리게 만들었다.
이런 기묘한 현상을 알아차린 것은 대전에 있던 정갈한 복장을 하고 있는 장년인이었다.
그는 중원에서는 해영약선이라 불렸으나 이곳 배화교에서는 장 호법이라 불렸다.
[어찌?]보주에서 벌어진 기묘한 현상에 놀란 장 호법이 이내 그것에 다가갔다.
강하게 떨리고 있는 보주에서 강한 빛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이끌린 장 호법이 보주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장 호법의 눈동자가 검어졌다.
무언가 환상이라도 보는 것처럼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 호법이 이내 화들짝 놀라 보주에서 손을 뗐다.
[이······이게 대체?]떨리는 눈으로 보주를 빤히 쳐다보던 장 호법이 황급히 성화령주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미처 대전을 나가기도 전에 공교롭게도 성화령주와 죽립에 면사를 쓴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죽립을 쓴 사내의 허리춤에 있는 황금빛 검집을 발견한 장 호법은 그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화령주! 목······.] [언제부터 이랬던 거요? 장 호법.]공명음을 내며 환한 빛을 내뿜는 보주의 모습에 놀란 성화령주가 그의 말을 끊고서 물었다.
이에 장 호법이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방금 막 대전으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보주가 떨리며 빛을 냈습니다.] [보주가 이렇게까지 공명을 내다니 보통 일이 아니오.]그녀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의아해진 장호법이 반문했다.
[보통 일이 아니라함은?] [성화가 계시를 내린 것이오. 장 호법은 당장 교부들을 부르시오.] [알겠습니다.]그렇게 장 호법이 교부들을 부르러 간 사이 성화령주가 더욱 떨림이 강해지고 있는 보주로 다가갔다.
그녀 역시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성화령주로서 보주를 지킨 지 수십여 년이 되었지만 이런 공명음과 이 정도의 빛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이에 그녀가 보주로 손을 뻗으려는데,
-콰득!
[아닛?]지팡이가 부서지며 이내 보주가 위로 튀어올랐다.
그렇게 튀어 오른 보주는 대전의 천장을 뚫을 기세였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천장에 닿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낚아챘다.
-팍!
그는 바로 죽립인이었다.
이를 붙잡은 죽립인이 바닥을 착지하더니 보주를 잡은 채 잠시 멈칫했다.
그런 그에게 성화령주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밀주(密主). 감사합니다. 보주를 이리 주시지요.] [······.] [밀주?] [아!]그녀의 재차 부름에 정신을 차린 죽립인, 아니 밀주라 불린 자가 성화령주에게 보주를 넘겼다.
보주를 받아든 성화령주는 이내 그것을 쥐는 순간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성스러운 불꽃이 지며 지상으로 떨어지는 광경이었다.
‘어, 어찌 이런 일이?’
그저 계시일 거라 여겼던 그녀에게 있어서 이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성화는 배화교에 있어서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 성화가 그 불꽃이 꺼지며 떨어지는 광경은 교에 있어서 단순한 계시가 아니라 비극을 알리는 비보(悲報)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환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꺼져버린 성화는 재가 되어 지는가 했는데, 어느 순간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며 사방을 찬란하게 비추었다.
[아아아!]그녀가 탄성을 흘렸다.
그저 배화교의 몰락을 알리는 마지막 계시인가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련이었다.
이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성화를 다시 타오르게 할 불씨를 찾기만 한다면 다시 세상을 비출 만큼 찬란하게 타오르게 될 것이다.
-탁!
보주에서 손을 뗀 그녀가 자신이 본 광경을 정리해나갔다.
그러는데 그런 그녀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으며 말했다.
[보았던 것을 그대로 알리지 마라.]‘!?’
이에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 자는 다름 아닌 밀주였다.
[밀주 어찌 그런······.]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지금 본 것을 잊어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밀주 설마······. 보주의 계시를 본 것이오?]그녀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주는 선택 받은 자만이 그 계시를 직접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감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터인데, 어떻게 밀주가 계시의 환상을 볼 수 있었던 거지?
의아해하는데 밀주가 말했다.
[오랜 성화는 저물었고 새로운 불꽃으로 대체될 것이다. 하니 더 이상 보주가 보여주는 계시는 무의미하다.] [밀주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말씀이 과하시오! 이건 어디까지나 성화령주인 노부의······.]-슥!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밀주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위로 들어 올렸다.
밀주(密主)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보게 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 눈이?’
밀주의 이마로 보이는 붉은 반점으로 가득한 세 번째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밀주가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받들어 왔던 성화는 완전히 그 불꽃이 저물게 될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이다.] [대, 대체 무슨······.] [의문을 제기치 마라. 그대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계시를 내려라······. 아니, 아니지. 그래. 꺼져가는 불꽃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계시를 내려라.] [계시?] [믿었던 자들에 의해 끌어 내려지고 숭배하는 자들의 손에 의해 그 마지막 불꽃을 꺼뜨린다라. 아주 멋지구나.]성화령주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이자는 대체 무엇을 본 거지?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성화가 완전히 저문다고 생각하는 거지?
성화는 다시 타오를 것이다.
그 이전보다도 더 찬란하게 말이다.
[성화는 꺼지지 않소. 밀주. 그대가 무슨 의도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밀회(密會)는 배화교의 그림자이자 동경(銅鏡). 그대가 어찌 그런······.]-팍!
[컥!] [말하지 않았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고.] [수, 숨이······.] [숨이 막히겠지. 하나 지금은 그대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내······내가······. 그걸 따르리라······.] [따라야지. 소중한 것을 잃기 싫다면 말이야.]‘소중한?’
그녀의 머릿속에 오직 한 사람, 아니 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손녀였다.
* * *
“아아, 참 진부하군요.”
성화령주의 말을 듣고 있던 목경운이 혀를 차며 말했다.
협박에 이기지 못해 거짓 예언을 말했다라.
결국 배화교인이 아닌 혈육을 선택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그녀의 과거 회상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조직과 배화교의 관계였다.
그들은 밀회(密會)라 불리며 배화교와 완전히 별개의 집단이 아닌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도 그 보주라는 것을 통해 무언가를 본 것인가?’
들어보니 배화교의 모든 이들이 성화령주의 거짓 예언을 믿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 암종주 환야선 또한 말이다.
그런데 배화교인들도 그렇고 이들 조직 역시도 할아버지가 예언을 무시하고서 무언가를 저지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할아버지가 거짓 예언이 아닌 진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거짓 예언, 거짓 계시를 어겼을 것이다.
‘······.’
목경운은 문득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광경과 할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엎드리던 그 광경을 말이다.
이것을 떠올렸을 때 처음 보는 광경이기에 그저 꿈처럼 여겼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성스러운 불꽃의 주인······. 설마 그 예언에서 말하는 자가 나인가?’
믿기 힘들었지만 모든 정황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리 유아기라고 해도 보고 듣고 맡았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유독 어린 시절만이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그 부분의 기억만 도려낸 것처럼 말이다.
‘난 대체 뭐지?’
자신의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존재부터 사라진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존재.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지며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더해갔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모든 것이 복잡해지는군요. 그저 할아버지를 죽인 자만 처리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죠.”
“······.”
“확실한 건 제가 그 예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군요. 안 그런가요?”
그 물음에 성화령주가 고개를 떨궜다.
눈앞의 이자가 화신인지 그 존재 자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 분명 그 존재가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건······.”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목경운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됐어요. 이건 일단 미루죠. 제가 누군지를 아는 것보다 지금 당장에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이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세상에서 지울 거리고 말이죠.”
-오싹!
살기 어린 목경운의 그 말에 성화령주는 일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자가 정말 예언에서 말한 진정한 성화의 주인이라면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전대 성화령주가 말했던 교리의 일부를 떠올렸다.
[아후라 마즈다는 양면의 마이뉴이기에 스펜타(善神)이면서 아흐리만, 즉 앙그라(惡神)가 될 수 있다.]‘!!!!!!’
‘재앙······. 재앙이 될 수 있는 건가?’
목경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려왔다.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신의 거짓 예언이 정말로 재앙을 불러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쪽이 한 얘기 중에 꽤 흥미로운 게 있군요.”
“흥미롭다니 무슨?”
“그 밀주라는 자의 이마에 눈이 있었다고요?”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성화령주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그 불길하면서 섬뜩한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러는데 자신의 턱을 쓰다듬고 있던 목경운이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아. 이제 알겠군요.”
‘!?’
“생각보다 단순했군요. 세 번째 목간.”
“세 번째 목간?”
세 번째 목간(目艮).
조직의 우두머리를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목경운은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목(目)과 간(艮)은 따로가 아니라 결국 하나였군요. 눈 안(眼)······. 세 번째 목간이 뜻하는 건 결국 삼안(三眼)이군요.”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