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3)
9화 구여(犰狳) (4)
“아악!”
“마, 마니이이임!”
시녀들이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녀들은 얼굴의 핏줄이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네 이년!”
호위무사 호앵이 더욱 노해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러자 대부인 석 부인이 황급히 소리쳤다.
“호앵! 멈춰!”
“네?”
그 외침에 호앵은 고작 세 보 만에 멈춰야만 했다.
그녀는 분에 겨운 눈빛으로 주술을 외우고 있는 방사 삭을 노려보았다.
마님의 약점을 잘도 파악했다.
석 부인은 친정에서 데려온 시녀들과 호위 무사인 자신을 자식인 대공자 만큼이나 아꼈다.
고향의 향수를 가진 공유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런 식으로 휘둘리게 되면 오히려 파고들 여지를 주고 만다.
“마….”
-슥!
석 부인이 차갑게 식은 얼굴로 손을 들어올렸다.
끼어들지 말라는 소리였다.
석 부인이 방사 삭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삭 방사.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약조하지. 내 모든 인맥과 힘을 동원해서라도 너와 귀영각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절대 건드려서 안 될 것을 건드렸다.
감히 자신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이런 그녀의 분노에 방사 삭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목경운이 원하는 대로 되버렸다.
[뭐든 다 한다고 했으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죠?] [……….]이렇게 영악한 놈은 처음이었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17살 철부지 공자인줄 알았더니 소마귀였다.
설마 이런 수를 떠올리다니.
이걸로 대부인은 자신과 귀영각을 미워하게 되었다.
아니 귀영각의 관점에서는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손님이 적으로 돌변한 셈이었다.
‘하아.’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영각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고작 식신 하나를 살리고자 귀영각의 규칙을 몇 개나 어겼으니 제적 당하거나 추방, 아니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떠날 때가 된 건가.’
-꽉!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삭이 주술을 외우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석 부인에게 소리쳤다.
“혹 저를 쫓아와 해코지를 하려한다면 두 시녀들을 잃게 될 겁니다.”
‘저년이 감히!’
석 부인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그것을 억눌렀다.
방술이라는 것이 멀리서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기이한 힘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삭의 협박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
-흠칫!
석 부인이 어딘가를 쳐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장원 내 많은 인기척들이 혜화당 쪽으로 몰려드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외당 무사들이리라.
삭을 노려보던 석 부인이 결국 마음을 정했다.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떠나라. 어서.”
이 말에 삭이 안도의 숨을 작게 내쉬었다.
“후우.”
그녀가 펼친 수법은 육인남노여비법(六人男奴女婢法)이라 하여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입히거나 조종할 수 있는 방술이다.
원래라면 대상자의 신체의 일부, 태어난 시기, 여섯 제물, 부적 두 장이 필요하다.
이것이 전부 갖춰줘야 살(殺)이든 뭐든 할 수 있다.
지금 것은 몇 가지 특별한 부적과 환정(環靜)이라는 특수한 기물의 힘을 빌려서 일시적으로 펼친 것에 불과했다.
-바스락!
품속에 있던 환정이 부서졌기에 더는 술법을 펼칠 수도 없었다.
결국 일종의 도박이었던 셈이었다.
‘빨리 가자.’
서두르지 않으면 들킬 지도 몰랐다.
* * *
-끼이이익!
약당 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방사 삭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녀에게 침상에 걸터앉아 있던 목경운이 손을 들어 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잘하셨나요?”
“……..네.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그 말에 목경운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는데 확실한가요?”
“네. 공자. 확인했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방사 삭이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뒤에서 대답을 한 자는 다름 아닌 호위 고찬이었다.
‘역시 사람을 붙였구나.’
삭이 속으로 혀를 찼다.
하긴 이렇게나 영악한 녀석이 감시를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구여를 위해서 시키는 대로 정확하게 했다.
삭이 목경운의 오른손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피접이 앙상한 구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약조를 지켜주세요.”
“좋아요. 약조는 약조니까요.”
삭은 이런 목경운의 말에도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자신보다 어리지만 이 남자 어디로 튈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목경운이 구여의 목을 움켜쥐고서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아!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녀가 흠칫했다.
설마 마음이 바뀌었다거나 그래서 다른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무엇을요?”
“당신이 속해있다던 그 귀영각이라는 집단에서 당신 말고도 이런 이매망량이나 여기 마승 같이 원혼을 식신으로 다루는 자들이 있나요?”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삭이 황령(黃靈)인 마승을 바라보았다.
역시 아무리 봐도 저 혼은 괴이의 영역에 속해있는 원혼이 틀림없었다.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혼은 애초에 원념 하나로 이승에 남아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 원념에 대한 집착과 해를 입히고자 하는 원한으로 식신으로 부릴 수가 없다.
아니 식신이 될 수도 없다.
‘그저 제령의 대상이다.’
대체 저 남자 어떻게 황령을 식신으로 부리는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방사도 아니지 않은가.
“얘기하기 싫은가요?”
목경운의 재촉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서 빨리 답했다.
“아니에요. 귀영각에서 식신을 부릴 수 있는 방사는 저를 포함해 셋이에요.”
‘이젠 둘이 되겠지만.’
귀영각에 각규를 어긴 것도 모자라 연목검장의 대부인이라는 적을 만들어놓았으니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떠날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최악의 경우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들거나 저주를 걸지도 몰랐다.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귀영각에는 그렇죠.”
“귀영각에는? 그럼 다른 방사 집단도 있나요?”
이 말에 삭은 속으로 자신을 탓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해버렸다.
어차피 귀영각을 나가게 되면 다른 곳에 몸을 담아야 하는데 실수였다.
이에 그녀는 대충 얼버무렸다.
“연목검장 말고도 무림에는 여러 문파들이 있듯이 방사 집단도 마찬가지에요.”
“뭐 하긴 그렇겠네요.”
“이제 물으실 건 없나요?”
“다른 두 방사들이 다루는 이매망량이 뭔지도 알 수 있을까요?”
“………”
삭은 진심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 남자 아무래도 귀영각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하는 그 대부인이라는 여자와 귀영각 간에 이간질을 붙여놓은 것도 모자라 대비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목경운의 손에 붙잡혀 애처롭게 자신을 쳐다보는 구여를 힐끔 바라보았다.
고민하던 그녀가 결국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각주를 보필하던 고(顧)라는 방사는 녹오산의 괴수 고조(蠱雕)를 식신으로 다루고 있어요.”
“그 이매망량은 어떤 힘을 가졌죠?”
“정확히는 몰라요. 하나 생김새는 기억하는데 독수리 같은 몸에 기이한 형태의 뿔이 달려있어요.”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니겠죠?”
“……..식신은 방사에게 있어서 비술이나 다름없기에 대부분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 숨기고 있어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방사들 간에도 기본적으로 서로의 방술이나 식신에 대해서는 밝히지도 묻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들 만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또 한 사람은요?”
“귀영각주에요. 각주가 어떤 이매망량을 지니고 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해요.”
“모른다고요?”
“네. 하나 적어도 최상위 이매망량을 식신으로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적어도 방원육십사각의 각주 중 한 사람이니 그렇겠지.’
방원육십사각(方原六十四閣).
중원 각지에 자리하고 있는 육십네 개의 방사 집단이다.
이곳의 수장들인 각주들은 이면의 세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린 방사들이었다.
그 정점이라 불리는 육방신(六方神)에는 들지 못했어도 중간 정도는 된다고 했으니 실력으로는 굉장할 것이다.
“이매망량에도 격이 있나요? 원혼처럼?”
목경운의 물음에 삭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상위면 어느 정도 수준이죠?”
“이매망량은 흉수(兇獸), 괴수(怪獸), 요수(妖獸), 마수(魔獸), 영수(靈獸), 신수(神獸)로 그 격을 나눌 수 있어요.”
삭의 식신인 구여는 산해경에서도 흉수(兇獸)라 칭하고 있다.
사실 흉수의 경우는 이매망량 중에서도 다소 온순한 편에 속하고 인간을 기피하는 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괴수(怪獸)만 되어도 인간을 잡아먹는 것들도 더러 있다.
그렇기에 괴수부터는 식신으로 굴복시키거나 다루는 것이 굉장히 까다롭다고 할 수 있었다.
“음. 그럼 그 각주란 분은 영수나 신수를 다루겠네요.”
그 말에 삭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아뇨.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네. 영수(靈獸)나 신수(神獸)는 움직이는 재앙 그 자체이기에 아무리 뛰어난 방사들도 식신으로 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영수나 신수는 재앙 혹은 전설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그녀조차도 이 존재들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저 방술을 익히기 위해 공부했던 고서나 산해경에 나오는 기록만을 접했을 뿐이었다.
‘그런 걸 보면 육방신이 대단하긴 하구나.’
방사의 정점이라 불리는 육방신(六方神).
그들은 신(神)의 칭호를 받은 여섯 방사들이었다.
그런 그들 중에서 두 사람이 영수(靈獸)를 식신으로 굴복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수많은 방사들 중 단 둘 만이 그 영역에 이른 것이니 신의 칭호를 받을 만 했다.
“그럼 요수나 마수겠네요?”
“아마도 그럴 거에요.”
영수 이상은 아니어도 요수나 마수만 되어도 이매망량으로서는 최상위라 불릴 만 했다.
한 지역에서 굉장한 악명을 떨치거나 그 요력이 보통이 아닌 존재들이니 말이다.
목경운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왕이면 마수였으면 좋겠네요.”
“네?”
“아…..별 거 아니에요.”
삭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남자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 찰나에 목경운이 그녀에게 구여를 넘기며 말했다.
“자. 이제 가보세요.”
“………”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숨을 헐떡이는 구여를 받아들었다.
* * *
삭이 나가고 나서 호위 고찬이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공자……저리 보내도 되는 겁니까?”
“보내주기로 약조했잖아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고찬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언제부터 본인이 자비로웠다고.’
하지만 표정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다.
많이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괜찮겠습니까? 속하는 혹시 그 방사 여인이 앙심을 품고서 복수를 하려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괜찮아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만약이라는 게 있었다.
자신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들어보면 목경운이 그 방사 여자의 소중한 무언가로 협박을 했던 것 같았다.
해서 혹시나 그녀가 그것에 앙심을 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에 목경운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찬 호위의 말도 맞는데, 아마 그러진 못할 거에요. 아마도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고찬은 의아해했다.
뭘 믿고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 * *
-파르르르!
숨을 헐떡이는 구여를 감싸고 있는 방사 삭.
그녀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이 아이와 함께 해온 세월이 있었고, 구여는 자신에게 있어서 하나뿐인 친구이면서 가족이었다.
그런데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기운을 대부분 소진했는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를 채우거나 회복시키지 않는다면 구여를 잃을지도 몰랐다.
-으득!
가슴이 아프다 못해 화가 났다.
어린 나이에 방기(方技)의 칭호를 받을 만큼 뛰어난 인재로 인정받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런 수모를 겪게 되다니.
방사 삭이 고개를 돌려서 목경운이 있는 약당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머지않아….’
-복수의 다짐이라도 하는 듯 하구나. 중생아.
-오싹!
순간 화들짝 놀란 삭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황급히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머리를 누군가 두 팔로 감쌌다.
-슥!
‘이런……’
그녀는 어쩔 줄 몰라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등골이 싸늘했다.
심지어 그녀가 안고 있는 구여마저도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워하고 있었다.
약해져서가 아니라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이었다.
‘이…..이 느낌……’
이 감각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역살(逆殺)을 튕겨내고 백안(白眼)에 타격을 입힌 그 존재. 삭의 이마로 어느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리고 그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르륵!
‘말도 안 돼.’
이 존재와 직접 접촉하고 나니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이것은 절대 녹령(綠靈) 따위가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악하고 소름끼치는 존재를 다룰 수 있다고?
-찌릿!
“하윽!”
괴이에 반응하는 그녀의 백안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더 이상 백안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스멀스멀!
그런 그녀의 검은 눈동자로 누군가 거꾸로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
아름다운 얼굴.
그와 대조적으로 광기가 서린 핏빛 안광.
그것과 마주하는 순간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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