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30)
객잔의 2층.
병장기를 차고 있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빌어먹을 산도적놈들이 정말 미쳤군. 감히 정도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사천까지 쳐들어와서 그런 짓거리를 벌이다니.”
“대사형.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저희라도 나서서 당가를 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진정해라. 보 사제. 지금 떠도는 소문을 알지 않은가?”
“설마 대사형 그걸 믿으시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사천당가가 배화······.”
“쉿. 조용.”
“······송구합니다. 아무튼 당가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소문이 너무 빠르게 퍼져나갔어. 아마도 녹림의 산도적 놈들이 저지른 짓이겠지.”
“하면 어찌합니까? 그냥 방관하실 겁니까? 녹림과 당가가 붙게 된다면 우리 청성도 도와야 합니다.”
“그리하고 싶어도 명분이 부족하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로 당가에서 그런 짓을 했다면 중원인들의 지탄을 받게 될 거다. 섣불리 도왔다가 도리어 우리까지 연루될 수도 있다.”
“그걸 대비해서 도복을 벗고 왔지 않습니까?”
“어허. 보 사제. 아무리 도적 떼들이라 해도 놈들을 이끄는 건 녹림투왕일세. 팔성의 칭호를 받은 초인이 청성파의 검조차 구분하지 못할 것 같나?”
“큭.”
“사제의 말이 맞다. 일단은 자중하고 지켜보자. 듣자하니 아직까지 그들이 대치 중이라고 하니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곧······!?”
그때 무리의 사내 중에 대사형이라 불리던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에 옆에 있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대사형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저들. 보이나?”
중년인의 눈짓에 무리의 사내들이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검 두 자루를 허리에 차고 있는 누군가가 밖으로 나가려 했고, 그들을 따라서 무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은 평범한 무인들이 아닌 무림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이 있었다.
“저자 누군지 모르겠느냐?”
팔 부근이 찢어진 허름한 가사에 깨진 염주를 목에 매고 있는 근육질의 대머리 사내였다.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사내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저, 저자 설마 삼광의 일인인 자금정이 아닙니까?”
“이제 알아봤느냐?”
그런 그의 말에 사내들이 술렁였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안쪽에 앉아 있었기에 미처 저자를 보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사형은 아래층이 보이는 쪽에 앉아 있었기에 저 미치광이 땡중을 발견한 듯했다.
삼광(三狂)이라 불리는 이들의 대부분은 미치광이 소리를 듣는 광인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출신이 어떻든 간에 정파인들의 대부분은 그들을 거의 사마외도(邪魔外道) 취급을 했다.
소림의 파계승인 자금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저 미치광이 승려가 어찌 이곳에?”
“쉿. 조용히 해라. 아직 나가고 있다.”
“아니. 대사형······.”
“저들이 앉았던 자리다. 저길 봐라.”
대사형이라 불리는 중년인의 말에 모두가 음식 그릇이 놓여 있는 자리를 보았다.
그곳에 먹다 만 음식 그릇들이 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그릇에 국수와 음식들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먹다 말고 일어난 모양이었다.
이에 한 사내가 커진 눈으로 말했다.
“설마 도중에 일어난 겁니까?”
“파계승 자금정도 그렇고 아무래도 저들 모두 무림인인 듯하여 혹시 하는 마음에 수시로 쳐다보았는데, 도중에 갑자기 일어났다.”
“하면 저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대사형의 말에 사내들이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들의 대화를 엿듣고서 식사 도중에 일어난 것이라면······.
“혹시 녹림도들과 한패가 아닙니까?”
“한패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니라고도 부정할 수 없구나.”
“대사형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가가 수적으로는 수세에 몰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파의 고수들이 녹림을 돕는다면 더욱 사달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럼 어쩌실 겁니까?”
“명분이 없으니 당가를 직접적으로 도울 순 없어도 녹림에 지원군이 가는 건 막아야 할 듯하구나.”
“네!”
이런 그의 말에 사내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사천당가의 장원 밖,
그곳을 큰 규모의 장원을 수많은 산적이 둘러싸고 있었다.
포위하고 있는 수만 보더라도 사천당가 내부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거의 세 배 가까이 이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름통과 화로를 놓고서 언제든지 불화살의 시위를 잡아당길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은 녹림의 산적들이었다.
담장에서 이를 지켜보는 당가의 무사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여러 전투 경험이 많은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이렇게 본가를 두고서 농성(籠城)하듯이 대치하고 있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언제 터질지도 모를 전투에 긴장 상태로 사흘째를 맞이하는 그들로서는 한 시도 녹림도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런 당가의 무인 중에 정문 쪽을 지키는 무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이들을 증오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우적우적!
그들이 노려보는 이들은 다름 아닌 당가의 맞은 편으로 이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커다란 막사를 세워두고서 그 아래 앉아, 호화로운 술상을 차려놓은 녹림투왕 석패웅과 녹림의 간부들이었다.
‘빌어먹을 도적놈들이!’
‘지금 약 올리는 건가?’
누가 보더라도 자신들을 도발하는 행위였다.
물론 그것은 정답이었다.
“으하하하핫! 한 잔들 하게.”
“사천까지 와서 아주 포식을 하는구만.”
간부들을 술잔을 기울이고 고기를 뜯어 먹으며 일부러 왁자지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당가 무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약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수에서 앞서기에 녹림도들은 교대를 통해 밤낮으로 나눠서 포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당가의 무인들은 수에서 열세였기에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종일 뜬 눈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피로가 누적되고 약도 오를 것이다.
이런 당가 무인들의 초췌해진 얼굴에 간부 중의 녹림투왕의 왼팔이라 불리는 포살객(抛煞客) 형택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껄껄걸. 투왕.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하러 나흘씩이나 말미를 주시나 했더니, 그냥 그런 게 아니라 저들을 말려 죽이기 위해 그런 것이군요.”
“겸사겸사다.”
“겸사겸사라면 혹 다른 이유도 있으신 겁니까?”
“그건······. 몰라도 된다.”
그 말과 함께 녹림투왕 석패웅이 술잔을 털어 넘겼다.
그런 그의 기억 속에 문득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길게는 힘들겠지만 혹 나흘이나 닷새 정도 말미를 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말미를 주라고?] [네. 사냥당하던 쥐도 막다른 골목에 막히면 쫓던 고양이의 목을 무는 법입니다. 하여 생각할 말미를 주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생각할 말미를 주는 게 좋다라······.]처음에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무작정 전쟁을 하는 것도 목적이 아니었고 그저 배화교인을 데려가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굳이 나흘, 닷새씩이나 그럴 필요가 있을까?
명분이 없다면 모를까 배화교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점을 이쪽에서 가지고 있었기에 굳이 길게 말미를 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반나절 정도만 시간을 줘서 생각할 틈도 없이 밀어붙이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나 이미 그렇게 제안을 한 상황에서 이를 도중에 물리기도 그러했다.
그저 당가의 가주가 배화교인을 보호하려 하는 어리석은 선택만 하지 않기를 바랐다.
* * *
덕양(德陽)을 벗어난 목경운 일행의 마차와 말이 빠르게 서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을에서 벗어난 지 고작 1리(里)밖에 안 된 곳에서 한 무리로 인해 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회색 무복을 입은 30여 명의 복면인이었다.
하나 같이 검을 차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섭춘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나란히 몰고 있던 몽무약에게 말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 통행로에 산적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객잔의 그 녀석들인가?”
“그런 것 같군.”
몽무약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복면을 하고 있었으나 하나같이 비슷한 회색 무복을 입고 있는 데다, 객잔 2층을 통째로 빌렸기에 그 무리를 통째로 기억하고 있었다.
“형씨들. 얼굴을 가리는 건 좋은데 병장기도 그렇고 옷을 바꿔 입을 생각은 못 했나 보지?”
“······.”
섭춘의 외침에 회색 무복의 사내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는 뭐라고 답변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출발하는 저들을 경공으로 앞질러야 했기에 복장마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도중에 가리기는 했으나 복면 역시도 공식적으로 나서기 애매한 상황이었기에 혹시를 대비하여 쓴 것이었다.
회색 무복의 사내 중 대사형이 나서며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 물음에 호리병을 홀짝거리고 있던 파계승 자금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남이사 어딜 가든 말든 무슨 상관들인 게냐?”
빈정거리는 그 말에 회색 무복의 사내 중 한 사람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녹림도들을 도우러 가는 것이 아니더냐?”
“녹림? 뭐, 산적 떼들을 말이냐?”
“시치미 떼지 말거라. 녹림도들을 도와 당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더냐?”
“녹림도들을 도와? 하? 그것 참 상큼한 발상이구만.”
자금정이 그들의 말에 비웃음을 흘렸다.
-끼이이익!
그러는데 마차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얼굴을 슬쩍 드러냈다.
그는 목경운이었다.
“무슨 일이죠?”
그 물음에 마차 옆을 지키고 있던 가면의 마라현이 답했다.
“객잔 이 층에 있던 자들이 저희를 쫓아온 것 같습니다.”
“아, 그분들이요.”
“네, 어찌할까요?”
그 물음에 목경운이 회색 무복의 사내들을 가볍게 훑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바쁘니 한두 분만 남아서 처리하고 따라오시죠.”
-탁!
그렇게 말하고는 목경운이 마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 말을 들은 것은 목경운의 수하들만이 아니었기에 회색 무복의 사내들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하?’
‘뭘 처리해?’
아무리 정체를 감추기는 했지만, 자신들은 명문 정파인 청성파의 정예 검수들이었다.
사천당가가 녹림과 대립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그들로서는 저 말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가장 대사형이 나서며 화를 드러냈다.
“참으로 오만한 자들이구나.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런 자신감을 보이는 줄 모르겠으나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면 각오하는······.”
말을 하던 청성파의 대사형이 도중에 이를 멈췄다.
그가 언성까지 높여가며 말을 하고 있는데 저들 중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주인이 그렇게 하라는데 누가 할까? 가면 네가 할래? 아님 이 땡중이 할까?”
“······.”
“하기 싫으면 대답이라도 해라. 망할 놈.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그냥 너희 둘 중 아무나 남아서 처리하고 와라. 아니 저기 저 녀석 때문에 힘들랑가? 아님 둘이서 처리하고 오든지. 이 땡중은 저놈 때문에 빈정 상해서 못하겠다.”
“그냥 귀찮으니까 떠넘기는 거 모를 것 같나?”
“크흘흘.”
혀를 차던 섭춘이 청성파 검수들의 대사형 현문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자는 그나마 한가닥 할 것 같군.”
현문자는 청성파에서도 명성이 높은 검객이었다.
청성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을 제외한다면 가장 높은 무위를 지녔다.
‘초절정의 초입에 이르렀군.’
그런 그의 실력을 한눈에 파악한 몽무약은 호승심이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급격히 무위가 상승하여 제대로 된 실력자를 상대로 시험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이에 몽무약이 말했다
“저자는 내가 처리하지. 나머지는 네가 처리해라. 섭춘.”
“뭐? 저 녀석은 내가 하려 했다고.”
이것은 섭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도 늘어난 실력을 시험하고픈 마음이 컸기에 가장 실력이 두드러진 저자를 상대하고 싶었다.
이런 그들의 말다툼에 현문자는 진심으로 노기가 치솟았다.
그가 유일하게 견제하는 자는 삼광의 일인인 복마권사 자금정이었다.
그런데 저들 중에 가장 젊어 보이는 녀석들이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이런 치욕을 준단 말인가.
-스릉!
현문자가 검을 반쯤 뽑으며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니다. 그냥 제가 하는 편이 빠르겠네요.
마차 안에서 자신들을 처리하니 뭐니 했던 그 젊은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아무리 자신들이 정체를 감췄다고는 하나 저리 오만한 말을 내뱉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 같······.
-끼이이익!
그때였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검 두 자루가 살아 있는 것처럼 둥둥 뜨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
이를 본 현문자가 반쯤 검을 뽑은 상태로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