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33)
“이랴! 더 빨리 달려라!”
마차의 말고삐를 잡고 있는 파계승 자금정이 소리치며 말을 재촉했다.
그러자 달리고 있던 말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망할 땡중 놈아. 내가 정말 말인 줄 아느냐? 그리고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있는 힘껏 달리고 있거든.”
말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진짜 정체는 마수(魔獸) 알유였다.
작정하고 달리는 알유의 속도는 여느 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렇기에 목경운의 수하들 모두가 마차의 지붕 위에 타고 있었다.
“내 하다하다 이제는 어검비행까지 보게 되는군.”
어검비행(馭劍飛行).
말 그대로 검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말한다.
얼핏 간단하게 들렸지만 검을 자유자재로 타고 다닌다는 것은 어검술 만큼이나 고절한 수법이었다.
섭춘이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몽무약도 아까 전 그 모습을 떠올렸다.
갑자기 마차에서 내린 주군 목경운이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더니, 먼저 가겠다며 검을 타고 날아갔다.
갑자기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
사천당가와 녹림의 대립 때문에 그러는 건가?
어쨌거나 서둘러서 주군을 따라잡아야 할 것 같다.
* * *
사천당가의 가주 당인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또 다른 누군가로 인해서였다.
‘대체 저자는 누구지?’
흑색 운무의 회오리와 함께 검 한 자루 위에 서서 나타난 그 모습은 가히 신비로우면서 경이롭기마저 했다.
“······가주. 저건 어검비행이 아닙니까?”
외당주 당철용이 입까지 벌어져 경악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검과 경신법, 그리고 진기를 다룸 있어서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바로 어검비행이었다.
애초에 벽을 넘어 화경의 경지에 이른 자신조차도 할 수 없는 신기였다.
당가주 당인해의 시선이 검을 타고 있는 정체불명의 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얼핏 봐도 굉장히 젊어 보였다.
하나 저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면 심후한 내공과 환골탈태로 젊어 보일 수도 있기에 뭐라고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오히려 당인해는 저자의 정체 이상으로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당가의 숨겨진 수호자인 유 가(家)가 나타난 것도 모자라 팔성(八星), 아니 대종사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절세고수가 나타났다.
유 가의 저자가 나타난 건 녹림과의 대립으로 인해서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저런 괴물 같은 자가 왜 하필 이런 시기에 나타난 거지?
* * *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누가 시키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녹림패왕 석패웅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무진이라는 청년의 대결로 녹림도들은 술렁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좌중의 모두가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잔뜩 긴장해서는 위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바로 목경운이었다.
-고오오오오!
그것은 흡사 맹수의 앞에 선 먹잇감의 기분과도 같았다.
‘······미치겠군.’
녹림패왕 석패웅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목경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전신에서 흉악하면서도 패도적인 흑기운을 내뿜고 있는데, 이를 보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육천(六天)의 일인인 그자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다.
그때도 그 위압감에 짓눌려 말조차 하기 힘들었었다.
한데 그런 기분을 또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대체 누구지?’
그는 육천의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이들의 외양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자는 처음 본다.
얼굴만 본다면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데, 이를 보이는 그대로 믿긴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절대······. 정도인은 아니다.’
정도인들 중에 이런 흉악한 기운을 가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마치 어둠 그 자체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다는 건 사파 계열의 인물 같은데, 사련맹에서도 저런 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였다.
-탁!
요검 악즉을 타고 있던 목경운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목경운의 신형이 바닥에 닿는 순간 좌중의 녹림도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그리 길진 않았지만 위압감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는데 누군가 입을 열었다.
“무슨 목적으로 오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갔다면 하마터면 후회했을 뻔했네요.”
그는 바로 유무진이었다.
무림 최고수인 팔성(八星)의 일인인 녹림투왕 석패웅조차 위압감에 사로잡혀 말문이 막혔는데, 그는 달랐다.
석패웅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지만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강함에 절대적인 확신이 있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여유로움이었다.
-착!
그때 허공에 떠 있던 요검 악즉이 목경운의 허리춤에 있는 검집으로 착검되었다.
검이 착검되자 목경운이 주변을 한 번 슥하고 훑더니, 이내 유무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녹림과 싸우고 있었다는 건 당가와 한편이라 봐도 되겠죠?”
그 물음에 유무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뭐 그렇기는 한데, 그런 물음을 한다는 건 사천당가에 호의적인 분은 아닌 것 같네요?”
“호의적이라······. 당장에는 그렇다고 봐야겠죠?”
이런 목경운의 말에 유무진이 어울리지 않게 크게 부풀어 오른 가슴 근육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역시 그냥 갔다면 큰일 날 뻔했네요.”
“큰일?”
“여기 있는 산적분들은 그냥 내버려 둬도 상관 없었지만 그쪽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거든요.”
-고오오오오!
유무진의 눈동자에 이채가 띠었다.
그에게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특출한 눈이 있었다.
그것은 상대의 강함을 색(色)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그의 두 눈에 보이는 목경운은 여태까지 봐왔던 자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완전히 흑색을 띄고 있는 자는 처음 보았다.
그 흑색 기운의 크기는 이곳에 있는 모든 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냥 갔다면 사달이 났겠는걸.’
녹림도들과 그 위험도가 비교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수적으로 압도한다고 해도 사천당가의 저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저건 좀 많이 위험해 보인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건 그만이 아니었다.
‘기묘하다.’
삼안의 요력을 개방한 목경운의 눈에도 유무진의 기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기운은 여느 무림인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이것은 선천진기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기운의 순도가 높은 것을 넘어서 마치 주변의 자연지기가 뭉쳐진 것만 같은 형태였다.
그것이 전신을 순환하고 있는데 꽤나 흥미로웠다.
-구우우우우!
더 특이한 것은 기운이 뭔가에 의해 응축되어 억눌려 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저건가?’
오른손에 차고 있는 금빛 환 때문인 듯했다.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금빛 환은 아무래도 평범한 물건이 아닌 듯했다.
소예린이나 주운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선천진기가 환에서 풍기고 있었는데, 그것 말고도 마치 수많은 술법이 하나로 뭉쳐진 것처럼 수백, 아니 수천의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저 물건은 보구(寶具)라 부를 수 있는 수준마저 넘어섰다.
그때 유무진이 목을 돌리고 근육을 풀며 입을 열었다.
-우득! 우드득!
“그쪽이 당가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하니, 그냥 가긴 그렇고 제압을 해야겠네요,”
“······제압?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네요.”
그런 그의 말에 목경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무래도 당가와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하려면 이자를 먼저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이자가 작정하고 방해하려 든다면 아무것도 하기 힘들 듯했다,
-스릉!
목경운이 허리춤에서 요검 악즉을 뽑아 들었다.
-파르르르르!
처음 만나는 강자의 기운을 감지하기로 한 듯이 악즉의 검신이 떨리며 강한 공명음을 냈다.
이것은 마치 호승심과도 같았다.
“······투왕.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이대로 지켜만 보실 겁니까?”
왼팔이라 할 수 있는 포살객 형택의 물음에 녹림투왕 석패웅이 내심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새롭게 나타난 저놈을 비롯해 유무진이라는 녀석이 마치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겨룰 분위기였다.
뭔가 굴욕적인 상황이었기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 두 괴물 사이에 괜히 끼어들었다가 도리어 사달이 날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수많은 수하가 보는 앞에서 이를 쉽게 인정하고서 후퇴하자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투왕?”
보채는 듯한 왼팔 포살객 형택의 부름에 석패웅이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새로이 나타난 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 그러고 보니 저자가 자신의 입으로 당가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 이유 때문에 유무진이라는 저 괴물 녀석과 지금 대립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저자의 목적도 당가라면 적당히 구슬려서 동맹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에 석패웅이 목경운을 향해 말했다.
“이보시오. 귀공의 목적도 당가라면 함께 하는 게 어떻겠소?”
‘그래 이거다.’
명분으로 나쁘지 않았다.
적당히 수하들에게 둘러댈 수도 있고, 이 괴물들이 서로 치고받을 동안 자신은 당가를 압박해 실리를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놈도 생각이 있다면 자신의 제안을 가볍게 흘려넘기지 않을 것이다.
“귀공이 그자를 상대할 동안 우리가 당가를······.”
-파아아아아앙!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파공음과 함께 몰아치는 엄청난 기운에 석패웅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 팔을 교차했다.
“헛?”
-촤르르르르르르르!
호신강기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몰려오는 엄청난 파동을 견디지 못한 그의 신형이 뒤로 십여 보가 넘게 밀려났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교차한 팔을 풀은 그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어느새 목경운의 검(劍)과 유무진의 권(拳)이 부딪쳐서 서로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저 검과 권을 부딪쳤을 뿐인데, 이 여파가 어찌나 강한지 두 사람이 서있는 바닥이 십여 장이 넘게 패어 있었고 균열이 일어나 사방으로 갈라져 있었다.
“끄으으으.”
“두, 두목!”
근방에 있던 왼팔 포살객 형택을 비롯한 녹림의 간부들 역시도 이 여파로 인해 더욱 튕겨 나가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이 위력을 아예 버티지 못했는지 심지어 내상마저 입었다.
이 광경에,
-꿀꺽!
석패웅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두 괴물 놈들은 완전히 격이 달랐다.
제대로 부딪친 것도 아니고 단 일수만을 나눴을 뿐인데, 이 정도 여파라면 자칫 잘못하면 수하들이 잔뜩 죽어 나갈지도 몰랐다.
고작 자존심 하나 지키자고 희생을 감수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이에 석패웅은 더 이상 자존심이고 뭐고 간에 내공을 실어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후퇴하라!!!”
그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녹림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그들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후퇴를 했다.
그렇게 녹림도들이 멀어지자 유무진이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방해꾼들도 사라졌으니 이제 제대로 해보죠.”
-우득! 우득!
그 말과 함께 유무진의 붉게 달아오른 오른팔 근육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 요검 악즉을 맞대고 있던 목경운의 신형이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
다섯 보 정도 밀려났을 때였다.
목경운의 검신에서 물결 파동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힘으로 밀어붙이던 유무진의 주먹이 이기진경(移氣眞經)의 묘리로 인해 튕겨지듯이 위로 솟구쳤다.
‘엇?’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쾅!
목경운이 바닥을 향해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그리고는 검신을 잡아당기며 이내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와 함께 검 끝에서 예기의 회오리가 몰아치며 폭풍과도 같은 기세로 유무진의 복부를 향해 쇄도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