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45)
“제발……손녀와 가까이 있게 해주시게. 이 노구가 이렇게 부탁함세.”
성화령주가 마부석에서 앉아 술이 담긴 호리병을 홀짝이고 있는 파계승 자금정에게 두 손을 비비며 눈물로 애원했다.
‘어지간히도 울어대는구만.’
이런 그녀의 혈육을 향한 애타는 모습에 자금정은 관심이 없는 척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내심 마음이 약해졌다.
제멋대로이고 광기 넘치는 그였지만 늙은 여인이 손녀를 부르짖으며 우는데 흔들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가면의 마라현이 냉정하게 제지시켰다.
“어디 한군데 부러지고 싶지 않다면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참 빡빡하구만. 클클.”
이에 자금정이 혀를 찼다.
그와 다르게 성화령주에 대한 앙금이 여전한 마라현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정에 흔들릴 일이 없었다.
“가까이 붙여둔다고 문제될 게 있겠나?”
“명을 따를 뿐이다.”
“아이구. 충신 납셨네.”
“……..”
“그나저나 저놈 참 기이하구만.”
“뭐가 말이지?”
마라현이 의아해하며 자금정이 고개 짓을 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두 눈을 감고서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유무진이 있었다.
딱히 운기를 하는 것 같지 않은데 뭐가 기이하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를 빤히 쳐다보던 마라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숨을 쉬는 것이 운기조식처럼 일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 기운들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후우…..후우….”
이런 그의 짐작대로 유무진이 숨을 쉴 때마다 자연지기가 조금씩이지만 모여들고 있었다.
여타의 무림인들의 상식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유가 일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그에게는 체질이나 다름없었다.
“쿨럭.”
숨을 쉬던 유무진이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한 그의 입가로 피가 묻어났다.
이를 손등으로 훔치다 보게 된 유무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왜 해소되지 않는 거지?’
그의 몸은 워낙 튼튼해서 어지간한 일로는 다칠 일이 없었으나, 그런 경우가 생긴다 해도 일족 특유의 괴물 같은 회복력 때문에 금방 낫고는 했다.
그런데 따끔거리는 걸 봐서는 심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이 원인이 상처를 중심으로 느껴지는 기묘한 요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이것이 이상하리만큼 해소되지 않았다.
‘이상해.’
평소라면 조금만 쉬어도 체내로 들어온 여타의 기운들이 몸 밖으로 나가곤 했다.
심지어 절벽 아래 흘러나온 기운 역시도 금방 배출되었었다.
한데 이 요성은 여전히 남아서 상처를 계속 덧내며 회복을 방해하고 있었다.
‘…….계곡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무래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듯 했다.
이에 유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런데,
-흠칫!
유무진이 가늘어진 눈으로 당가의 장원 쪽을 바라보았다.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신경을 끄려고 했는데, 아까부터 들리던 비명이 지금은 아비규환처럼 퍼져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분명 은원 관계를 확실히 한다고 하지 않았나?’
한데 어째서 이리도 많은 자들이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지?
이 소리에 불안함을 느낀 유무진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당가주 당인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자신의 눈으로 목경운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걸 보았다.
무형독공(無形毒功) 최후의 비기 독원파극(毒原派極)은 그 범위가 워낙 넓고 퍼지는 속도도 빨라서 아무리 절세고수라 해도 피할 수 없으리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놈은 아무렇지 않은 거지?
‘뭐지?’
심후한 진기로 무형독의 독기를 버텨내는 건가?
아무리 내가고수라고 해도 독인(毒人)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이 정도까지 버텨낼 수는 없었다.
그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이게 할아버지를 죽일 때 썼던 무형독인가요?”
당인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허장성세다.
이 엄청난 위력의 무형독공을 보았다면 자신을 어떻게든 빨리 처리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텐데, 저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무형독과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허세를 부리고 있구나.”
“허세?”
“내공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걸 모를 줄 아느냐?”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랐다.
당인해가 두 손으로 바닥을 밀쳐내 목경운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런데 두 손을 밀치려하자,
-투툭! 투툭!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것도 모자라 원기까지 끌어내 비기 독원파극을 펼치는 바람에 후유증 때문인지 남은 기운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했다.
‘별 수 없구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더라도 대신해줄 자들은 넘쳐났다.
이곳은 당가의 근거지였으니 말이다.
이에 당인해가 당가의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기회다! 놈을 쳐라!”
그런데,
‘!?’
가주인 그의 명에도 불구하고 당가의 간부들도 그렇고 무인들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뭘 하고 있는 게야! 놈은 무형독에 당해 움직일 수도 없다. 당장 쳐라!”
“……..”
그의 다그침에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오히려 당가의 무인들은 굳어진 얼굴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그런 모습에 당인해는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작정인가?
어째서 누구 하나 나설 생각을……
-짝짝짝!
그때 목경운이 손뼉을 치며 감탄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대단하군요.”
“뭐?”
“고작 저 하나를 죽이자고 가솔들을 이리도 희생시키다니 말이죠. 이런 걸 두고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하나요?”
‘!!!!!!’
빈정거리는 목경운의 그 말에 당인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직 목경운 하나만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비기를 펼쳤기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목경운의 말을 듣는 순간 새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무형독에 의해 처참하리만큼 녹아내리며 죽어가는 당가의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당가인들의 얼굴과 눈빛은 착잡함을 넘어서 분노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나…..나는……”
어느 순간 자신에게로 쏠린 당가인들의 증오가 담긴 눈빛을 인지하게 된 당인해는 시선을 어디로 둬야할지조차 힘들어졌다.
‘어째서…..어째서 그런 눈빛으로……’
희생당한 이들 때문에 실망한 거라면 이해한다.
그러나 오직 이것만이 방법이었다.
이놈은 키워준 해영약선 장문노를 죽인 자신과 그와 관련된 어떠한 것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의 죽음으로 놈을 제압할 수 있다면 값진 희생이었다.
한데 어째서 누구도 이런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거지?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알 수 있는 일을 어째서……
“억울하다는 표정이 가관이네요. 본인 손으로 가솔들도 버리고 죽여놓고서 이해를 바라는 건가요?”
“너!”
-으득!
당인해가 이를 갈다 고개를 돌려 목경운을 노려보았다.
모두 저놈 때문이다.
저놈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이렇게 될 일도 없었다.
혈족이자 가족이라 여기던 당가인들의 증오와 원망으로 벼랑 끝으로 몰린 당인해는 모든 화가 목경운에게로 향했다.
“그래. 전부 네놈이 나타나서 벌어진 일이다.”
“이젠 제 탓을 하시는군요.”
“이노오오옴.”
분노로 부들부들 떨던 당인해가 결국 남은 원기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목경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팟!
“죽어어어엇!”
무형독을 견디느라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이 감히 본 가주를 비웃어?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길동무로 네놈을 데려가주마.
누구도 알아주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팍!
그렇게 신형을 날린 당인해의 몸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붙든 것만 같았다.
‘!?’
당인해의 눈이 커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분명 무형독을 버티느라 움직일 수조차 없을 거라 여겼는데.
-저벅!
그 순간 목경운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왔다.
-저벅!
그리고 또 다시 한 발자국 걸었다.
아니 계속해서 그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는 목경운의 모습에 당인해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 어떻게?”
“이제 알겠군요.”
“그게 무슨?”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께서 저한테 다양한 약초와 독초를 먹이셨죠. 그때는 멋도 모르고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 피는 극독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피가…..극독이 되었다고?”
그 말에 당인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공을 연마하는 자들의 체내의 일부에는 당연히 독기(毒氣)가 쌓여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독을 연마했고 그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인간의 신체는 독(毒)과 상극일 수밖에 없어서 그와 반대되는 해독 기운 역시도 연마해야 했다.
독에 잡혀 먹히지 않도록 말이다.
“말도 안 돼. 피가 독성을 가진다는 건……”
[독공이 극(極)에 이르러 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를 독인(毒人)이라고 한다. 한데 그게 과연 끝일까?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전전대 가주 화천독수(花千毒手) 당연종이 만독주 백유와 겨루기 며칠 전 마지막 가르침을 내리며 던진 화두였다.
이 물음에 부친인 전대 가주가 이리 답했다.
[만독을 체화하는 체질인 만독지체(萬毒池體)야말로 진정한 끝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말 그대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이형의 체질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 [다른 답변은 없느냐?] [……..]그런 그의 물음에 누구도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때 놈, 장문노가 나섰다.
[그래.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저항이라는 것도 상극이어야 그런 것이니, 차츰 적응시켜 흐르는 체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독(毒)에 가까워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독인(毒人)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호오. 체내를 구성하는 것이 독에 가까워져?] [가령 몸에 흐르는 피조차 독(毒)이 된다면 어떻겠습니까?]이런 그의 말에 당인해를 비롯해 당가의 후계 자격이 있는 종가인들 모두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게 가능했다면 어느 누가 하지 않았겠는가.
인간의 신체는 독 자체가 될 수 없었다.
독을 버티거나 적응하는 구조가 될 수 있을지언정 독에 가까워지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어왔다.
한데,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흐르는 피가 독 그 자체가 될 수 있단 말이더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꽉!
그 순간 목경운이 그의 입을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믿기 힘들다니 한 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죠.”
“우….우슨…..”
-꽉!
목경운이 살점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진득한 피가 흘러나왔다.
“워…워하는 거야?”
목경운이 움켜잡아 강제로 벌린 당인해의 입으로 흘러나온 피를 떨어뜨렸다.
흘러나오는 핏물이 당인해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이를 뱉고 싶었지만 입을 움켜쥐고 있어서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서 식도로 들어오는데,
-치이이이이!
식도가 타들어가는 고통이 찾아왔다.
당인해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마, 말도 안 돼.’
정말로 독이었다.
어떻게 피가 독 그 자체가 된 거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한데 더 그를 놀라게 만든 것은,
“컥컥!”
무형독공을 익힌 후로 어떠한 독도 자신에게 통하지 않을 거라 자부했던 그였다.
그런데 식도를 타고서 안으로 들어온 극독이 빠른 속도로 체내에 중독 현상을 일으켰는데, 너무나도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데 여기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푸슉! 푸슉!
당인해의 얼굴부터 전신의 피부로 핏줄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몸 속에서 뼈가 끊어지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득! 우드득!
“끄아아아!”
그것이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당인해가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이에 목경운이 그의 입을 움켜쥐던 것을 놓고서 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끄어어어어.”
바닥에 쓰러진 당인해의 몸이 기괴할 정도로 뒤틀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목경운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파마독경을 익히고 나서 자신의 체내 독 기운이 더 강해지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중독 현상이 벌어지진 않았었다.
한데 당인해는 혈맥이 터지고 뼈가 뒤틀리기마저 하고 있었다.
“끄악!”
-뿌드득!
뼈가 뒤틀리다 못해 이곳저곳 튀어나온 당인해가 목경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제발 살려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그를 보며 목경운이 입 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그쪽을 죽이는 게 제 몫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네요.”
‘!?’
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놈 몫이 아니라니.
그 순간 문득 당인해는 장문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다 숨겨놨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을 테냐?] [쿨럭….쿨럭…..] [네놈이 그런다고 해서 내가 찾지 못할 것 같으냐?] [쿨럭쿨럭……옛정을 생각해서 말하지. 그 아이를….건드리지….말거라. 그….모든 화가….결국 네게….돌아가게…될 거다.]‘!!!!!’
그때 그는 곧 죽을 놈이 저주를 퍼붓는 거라 치부했었다.
한데 그것은 그저 흘린 말이 아니었다.
이놈의 피에 담겨 있는 독은 자신과 완전히 상극(相克) 그 자체였다.
그 때문에 몸이 더욱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장문노!’
-뿌득! 뿌드득!
혈맥이 터지며 뼈가 뒤틀리던 당인해는 결국 목이 꺾이며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런 그의 비참한 최후를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목경운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 생각이 있으셨군요.”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