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48)
“흐음.”
팔독사장 구양수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성화령주의 손녀 예송아의 머리에서 조심스럽게 긴 장침을 뽑았다.
침을 뽑는 과정에 예송아의 머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러다 이내 침 끝 부분에서 검은 액체가 묻어나오며 이것이 바늘이 나온 머리 구멍을 통해 빠져나왔다.
이를 본 구양수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다행히 미독을 전부 빼냈습니다.”
“훌륭하군요.”
“허허허. 아닙니다.”
목경운의 칭찬에 구양수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독(毒)에 관해서는 중원과 서역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가 바로 구양수였다.
목경운 역시도 할아버지인 해영약선을 비롯해 섬독왕 백사하에게 독을 배워 능숙하기는 했으나, 세세한 부분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구양수가 앞설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해독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당가 녀석이 손을 썼다고 해도 이 정도 독은 문제 될 게 없지요.”
사천당가의 가주 당인해가 직접 손을 썼다고는 하나, 무형독이 아닌 이상은 어떠한 독이라도 해독이 가능한 그였다.
다만 뇌의 경우는 가장 조심해야 할 부위 중 하나였기에 시간이 다소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곧 깰 겁니다.”
“그럴 것 같군요.”
-후우….후우….후우….
미독이 빠져나가면서 숨을 내쉬는 것이 달라졌다.
이것만 봐도 뇌로 들어오는 혈액의 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의 순환……’
이를 보자 목경운은 문득 유무진을 떠올렸다.
그와 겨루게 되면서 목경운은 그의 힘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유무진의 폭발적인 힘은 태생적으로 응집되는 자연지기와 그 기운을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피의 순환과 근육의 팽창을 통해 이뤄졌다.
‘할 수 있으려나?’
이건 기운을 다루는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수법이었다.
근육을 통제하는 것은
-꽉!
주먹을 움켜쥔 목경운이 전완근을 비롯해 이두 쪽의 근육을 부풀려보았다.
평범한 자들도 훈련을 통해 근육이 발달하면 이것에 힘을 가해 일부 부풀게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무리이려나.’
근육이 유무진처럼 팽창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듯 했다.
그건 일반적인 근육의 범위를 넘어섰다,
확실히 훈련을 통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혈통에서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오히려 근육을 부풀리려다 쓸데없이 힘만 빠지고 있었다.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볼까.’
피에 자연지기를 담아 빠르게 순환시키는 방법은 꽤 효용성이 있어보였다.
피를 빠르게 순환하는 것은 독혈(毒血)이 되면서 터득한 방법이 있어서 어떻게 해보면 가능할 듯 했다.
-슈우우우!
이윽고 주먹을 쥔 손에 살짝 붉어지며 피부가 뜨거워졌다.
‘될 것 같은데.’
좀 더 순환을 빠르게 해보았다.
그러자 오른손이 더욱 빨개지며 이윽고 피부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를 본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잘하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순환을 더욱 빠르게 하는데, 이윽고 피를 빠르게 순환시키는 부위로 근육이 심하게 욱씬거리며 통증이 일어났다.
혈관과 그 중심의 근육들이 파열된 것처럼 아파왔다.
이에 목경운은 그것을 중지했다.
-슈우우우우!
이를 본 팔독사장 구양수가 기이한 광경에 놀라서 물었다.
“지금 뭘 하신 겝니까?”
“피를 빠르게 순환시켜봤어요.”
“피를요? 진기도 아니고 피를 빠르게 순환시키는 게 가능한 겁니까?”
“네. 되네요. 단지 그냥은 좀 힘드네요.”
그 말에 구양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체내에 흐르는 피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아무리 내가고수라고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피의 순환이 빨라지니 혈맥도 그렇고 근육에도 과부하가 생기네요.”
왜 유무진의 근육이 발달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갑옷처럼 두꺼운 근육이 피의 빠른 순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근육이 받쳐주든지 혹은 피를 순환했을 때도 이것이 몸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보호해줄 방법이 필요했다.
‘호오.’
진기로 혈맥을 보호하는 상태로 순환시킨다면 어느 정도 유지가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부분적으로 역혈사공을 펼쳤을 때보다도 안정적으로 기운을 폭증시키는 것도 가능할 듯 했다.
가령,
-슈우우우우!
천마기로 혈맥을 보호하고서 피를 더욱 빠르게 순환시킨다면,
-슈우우우우우!
그 순간 목경운의 오른손과 팔목 부근이 검붉게 아니 갈색 빛으로 바뀌어가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이를 본 구양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말했다.
“진혈금체?”
“네?”
“지금 그 수법 진혈금체(進血金體)가 아닙니까?”
“무슨 말씀이시죠?”
“목 공자가 지금 하고 있는 수법은 아무리 봐도 사련맹의 이맹주 해역원의 독문 무공인 진혈금체와 흡사합니다.”
“해역원? 아!”
그 말에 목경운은 당가에서 헤어진 유무진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 * *
[돌아가시는 건가요?] [네. 당신도 심장에 남아있는 요성은 어찌할 수 없다고 하니, 집으로 돌아가서 여쭤보는 수밖에 없을 듯 하네요.] [송구하네요.]심장에 남아있는 요성은 요검 겁살의 저주 때문이었다.
겁살에 베인 상처 부위는 저주나 다름없는 이 요성 때문에 낫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겁살에 심장이 다치게 되면 그냥 죽었다고 봐야 하는 상태였지만, 혈통 대대로 물려받은 회복력 덕분에 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요성…..’
사실 목경운은 방술로 그의 요성을 치료해줄까 싶기도 했다.
물론 무조건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이 오랜 원념으로 생겨난 저주라면 방술로 이를 해(解)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내 그만뒀다.
당장에는 약조 때문에 봉문으로 그쳤지만, 사천당가가 이를 계속 지킬지도 의문이었고, 만약에 그들이 복수하겠다고 나선다면 유무진이 이를 돕겠다는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겁살의 요성을 그대로 남겨둬서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로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헤어지려던 찰나에 유무진의 그 말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부탁요?] [별 건 아니에요. 그쪽을 보아하니 좀 걱정이 돼서요.] [뭐가 말이죠?] [그쪽 같은 괴물이 작정하고 날뛰면 막을 수 있는 자가 드물어보여서요. 저희 가문은 ‘그곳’을 계속 지켜봐야 해서 멀리 벗어날 수 없는 처지거든요. 그래서 고작해야 살펴볼 수 있는 건 가까운 당가 정도거든요.] [그곳?]그곳이 뭔데 지켜본다는 거지?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듯이 이야기 한다.
그러는데 유무진이 말했다.
[가문의 사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름 봉사에요. 봉사.] [봉사라고 하니 궁금하군요.] [별건 아니에요. 먼 옛날에 저희 가문의 시초께서 때려눕힌 아주아주 커다랗고 하얀 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소가 힘도 무지막지 센데 도통 죽지를 않네요.]목경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이 커다란 소는 대체 무슨 소리지?
[흰 소(白牛)?] […….그렇다고요. 아무튼 간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혹시 복수를 위해 무림을 활보하시다, 해씨 성을 쓰는 자가 있다면 한 번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요.] [해씨 성이요?] [네. 당가보다도 저희 가문과 더 가까운 친척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본 적은 없지만요.] […….부탁인가요?] [네. 부탁이에요. 이것도 인연인데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않나요?] [제 할아버지의 죽음과 연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러도록 하죠.] [그 정도면 충분해요.] [한데 그 해씨 성을 쓰는 자가 한 둘이 아닐 텐데 어떻게 알아보죠?] [생각보다 적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척 보면 알 수 있을 걸요. 저희 일족처럼 타고나진 못했어도 몸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고 들었거든요.]* * *
그래.
유무진이 얘기했던 자가 바로 그 해역원이라는 자인가 보다.
몸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는 말은 피를 빠르게 순환시켜 역량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키는 법을 터득한 듯 했다.
그걸 두고서 진혈금체(進血金體)라고 하는 듯 했다.
“그 해역원이라는 자는 누구죠?”
“사련맹의 이맹주입니다. 그 무위가 팔성과 비견될 만 하다고 알려진 자입니다.”
“그렇군요.”
어쨌거나 이름과 소속을 알게 되었으니, 밀회와 엮이지만 않았다면 딱히 건드릴 일도 없을 듯 했다.
그런데 사련맹은 분명 멸문한 구혈교인들과 사파인들이 모여서 만든 집단이라고 했던가?
알게 모르게 연이 조금씩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러던 차였다.
“으음.”
신음성과 함께 잠들어 있던 예송아가 눈을 떴다.
눈을 뜬 그녀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 누구세요?”
이런 그녀의 물음에 구양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기껏 치료해서 깨어나게 해줬더니 그것부터 묻는 게냐?”
“네?”
“그보다 이분께 감사하거라.”
구양수가 목경운을 손바닥으로 공손히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막 깨어나서 정신이 없었던 그녀는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뚫어져라 쳐다본 끝에 목경운의 얼굴을 알아보자 그녀의 두 눈이 희열에 휩싸였다.
“아아아!”
눈물까지 글썽이던 그녀가 이내 마차 안에서 넙죽 엎드렸다.
-쿵!
심지어 바닥에 이마까지 세게 찧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구양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무리 감사하라고 했다 해도…..”
“오직!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이런 그녀의 벅찬 목소리에 목경운 또한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을 처음 볼 텐데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목경운이 손을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그녀의 고개가 진기에 의해 위로 들어 올려졌다.
“엇?”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를 들어올려지자 그녀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물었다.
“뭘 기다렸다는 거죠? 저를 오늘 처음 보지 않나요?”
“보주가 당신을 보여줬습니다.”
“보주? 그…..성화의 계시를 내려준다는 그것말인가요?”
“맞습니다. 계시에서 이르길 당신께서 미천하기 그지없는 저를 찾아와 구원하시고 길을 내어주실 거라 하셨습니다.”
“…….길을 내어준다고요?”
“네. 당신은 이 혼탁한 세상을 성스러운 불로 정화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마도(魔度)로 이끄실 분입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