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50)
“알다마다요. 영검산장은 검(劍)의 성지라 불리는 곳입니다.”
“검의 성지?”
“검을 다루는 수많은 검수가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찾는 곳입니다.”
“그런가요? 꽤 유명한가 보군요.”
“······허허허.”
이런 목경운의 무미건조한 반응에 팔독사장 구양수는 본능적으로 그가 영검산장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검산장(靈劍山場)은 정말로 그 명성이 드높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현존하는 명검의 태반을 이곳 영검산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는 당대 최고의 검 장인입니다.”
“검 장인이요? 대장장이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런가요? 보통은 도검 장인이라 하지 않나요?”
이 물음에 구양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구 장주는 오직 검만을 만듭니다.”
“검만 만든다고요?”
“네, 노부가 알기로 영검산장은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서 오직 검만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병장기는 하나도 만들지 않고요?”
“노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꽤 재미있는 곳이네요. 검만 만드는 곳이라. 한데 고작 그것만 가지고 유명해졌을 것 같진 않군요.”
“그렇지요. 그 일가는 춘추시대 월나라 최고의 명장이라 불렸던 구야자(歐冶子)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을 만큼 최고의 명검들을 만들었습니다. 정의맹의 맹주 정현문의 독문병기인 명검 일휘(一輝) 역시도 그의 손에 탄생했습니다.”
“호오.”
그 말에 목경운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정의맹 맹주라고 한다면 분명 무림 삼대 세력 중 하나의 수장이자 육천(六天)의 일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대종사급의 고수의 검을 만들 정도라면 대단한 장인임은 틀림없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장인이면 검수들이 줄을 설 만하군요.”
“그렇지요. 하나 구 장주는 아무에게나 검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나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건 값을 지불하는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허허허. 맞습니다. 노부가 듣기로는 구 장주는 장인으로서 자부심이 큰 자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인정할 정도의 검의 대가이거나 혹은 그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검을 만들어준다고 하더군요.”
“하긴 그 정도로 대단한 검을 만드는 자라면 그 정도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공자께서도 검을 다루시니 혹······.”
“아뇨. 전 이 두 검이면 됐어요.”
목경운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두 요검을 탁탁하고 손바닥으로 쳤다.
악즉과 겁살.
영검산장의 장주가 구야자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면 이 검은 구야자 본인이 관야흑철이라는 희귀한 광물로 만들어낸 검이었다.
“······그렇지요. 공자께는 이미 최고의 검들이 있으시지요.”
평범한 이들은 다룰 수조차 없는 검들을 지니고 있었다.
굳이 검으로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말했다.
“어쨌거나 잘됐군요. 그저 검을 만드는 장인 집단의 영역이라면 보주라는 걸 가지고 오는데 딱히 어려울 게 없겠군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구양수가 다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했는데,
“영검산장은 단순히 검을 만들기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니라면 뭐죠? 무공이라도 익혔나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들은 검의 장인이면서 검에 관한 조예도 굉장히 높습니다.”
“검에 관한 조예가 높다고요?”
“혹 만류귀종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만류귀종······? 만 가지 갈래가 하나로 모이게 되어있다는 말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만류귀종(萬流歸宗).
그것은 불가에서 유래된 말로 어떤 식으로 수련을 하든 간에 그 끝은 곧 열반이라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무공을 익히는 이들 역시도 종종 만류귀종을 언급한다.
이는 종국에는 그 길이 하나로 모인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영검산장은 최고의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검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고 여겼고, 그를 위해 검을 갈고 닦았습니다. 한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그들로 하여 누구보다도 검을 더 잘 알게 해줬습니다.”
“검의 장인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검수라는 거로군요.”
“맞습니다. 다만 그냥 뛰어난 정도가 아닙니다.”
“하면?”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는 현 무림의 정점인 육천(六天)의 일인입니다.”
‘!?’
이 말에 목경운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육천(六天) 극영검장(極靈劍匠) 구천무.
현 무림의 여섯 정점 중 한 사람이자 무(武) 자체가 아닌 검에 대한 조예만 놓고 본다면 최고에 가장 가깝다고 불리는 이였다.
목경운이 성화령주의 손녀 예송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체 그런 곳에 어떻게 들어간 거죠?”
“그건······.”
예송아가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뭔가 이야기를 해선 안 될 것이라기보다는 그 반응이 묘했다.
물론 목경운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서 말했다.
“괜히 힘 빼지 마시고 바로 얘기하시죠.”
“······영검산장 장주님의 셋째 아들이 저희 배화교의 교인입니다.”
그 말에 구양수가 공교롭다는 듯이 되물었다.
“구 장주의 셋째 아들이 배화교인이란 말인가?”
“······네.”
“그럼 그자를 통해 보주를 숨긴 건가?”
“네, 네.”
그녀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구양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천당가의 분가에서도 배화교인이 나온 마당에 어떤 누군가가 배화교에 빠져들었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유독 쭈뼛쭈뼛하는 것이 이상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아무리 배화교인이라고 해도 보주라 하면 배화교의 보물이 아닌가. 그런 귀중한 것을 맡길 정도면 정말 믿을 만한 자라는 건데······.’
“혹시 정인인가요?”
그때 목경운이 대뜸 물었다.
그 물음에 예송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상기되고 말았다.
이런 그녀의 반응에 구양수가 혀를 내둘렀다.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그나저나 정인이라니 참 공교롭기 그지없었다.
“허참. 그게 정말인가?”
“······.”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그녀는 부끄러운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 모습에 구양수가 피식하고 웃었다.
손주들이 떠올라서였다.
딱 이 나이 또래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반면 목경운은 그녀의 이런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 했다.
호감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지만 이것이 부끄러워해야 할 정도의 일인가?
의아해하던 차였다.
‘!?’
순간 목경운은 그녀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령이었다.
청령도 뭔가 모르게 저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있었다.
‘부끄러워했다고?’
목경운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러는데 구양수가 말했다.
“하면 소저의 정인······.”
“그,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냥······그냥 본교의 교인인 구연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구연우?”
“네.”
구양수가 빙그레 웃었다.
보아하니 정말 많이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이런 때가 아닐까.
황혼기에 접어든 그에게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청춘이었기에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뿐이었다.
“흠흠. 아무튼 공자. 구 장주의 셋째 아들이 배화교의 교인이라고 하니 쉽게 보주를 빼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미덥지 못하다는 듯한 목경운의 말투에 예송아가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가져온다고 크게 도움이 될지 몰라서요.”
이미 보주나 계시의 힘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목경운이었다.
이에 그녀는 오기가 생겼다.
“보주를 찾는다면 당신께서 원하는 것을 계시로 받아보겠습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렇게만 된다면 시간을 다소 단축할 수 있었다.
굳이 천지회 회주를 통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 * *
호북성의 북쪽 조양(棗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험한 산세가 이어진 곳의 한 중턱.
그 높은 곳에 집 몇 채가 모여 있는 장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원의 입구의 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靈劍山場(영검산장)
장원의 여기저기서는 풀무의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중 굴뚝이 없는 한 건물의 안에 지하실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지하실에는 철창이 있는 금옥(禁獄)이 있었는데, 그 안에 양팔에 구속구를 차고 있는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렇게 청년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형님. 제발 돌려주십시오. 그건 정말······.”
“닥치거라.”
철창의 밖에서 한 중년인이 그를 다그쳤다.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상체가 잘 발달한 사내였다.
사내의 손에는 복주머니가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정말 그건······.”
“닥치라 했다. 밤마다 어딜 가냐 했더니 이런 것에 절을 하며 숭배를 하고 있었다니.”
-탁!
사내가 복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빼냈다.
그것은 영롱하기 그지없는 푸른빛의 보주(寶珠)였다.
-꽉!
이를 본 청년이 피가 나올 정도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연우. 네가 혹세무민을 일삼는 이교에 빠져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끄럽지도 않느냐? 새 어머님께서는 돌아온 네가 정신 차렸다고 생각했다. 한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
“······.”
“조상님께 절을 올려도 모자랄 판국에 어찌 이리도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냐?”
“······형님.”
“입에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저는······. 제 선택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
“갈!”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의 사내가 일갈을 내질렀다.
혈도가 점해진 청년, 아니 구연우가 공력이 담긴 일갈에 괴로워했다.
‘더······. 공력이······깊어지신 건가.’
눈앞에 있는 40대의 중년인은 자신의 큰형인 구웅황이었다.
이곳 영검산장의 소장주이자 장주인 아버지를 제외하면 최고의 검객이었다.
“형님. 고정하시지요.”
지금 입을 연 찢어진 눈매의 삼십대 후반의 청년은 둘째인 구웅석으로 장자인 구웅황과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였다.
그와 달리 구연우는 이들과 배다른 형제이자 막내였다.
“지금 고정하게 생겼느냐? 막내란 녀석이 이딴 해괴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너는 어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야?”
“형님. 미우나 고우나 저희 구가(歐家)의 사람이고 배가 다르다 해도 형제입니다. 죄가 미워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지요.”
“사람 좋은 소리 해대는구나.”
“그보다 절벽 부근에서 벌어진 참사로 정의맹에서도 사람을 보내고 난리도 아닌데, 이쯤에서 적당히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후우.”
장자 구웅황이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나서 다 다그치고 싶었지만 둘째 녀석의 말이 옳았다.
안 그래도 본장을 찾아왔다가 하산하던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가주를 비롯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참살당해 난리가 났다.
이 덕분에 본장 역시 용의선상에 올라 정의맹에서 보낸 자들이 성가시게 굴고 있었다.
아버님의 심기도 불편한 마당에 녀석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여기서 머리도 식히고 반성하고 있어라.”
“형님!”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평생 가둬둘 테니 그러기 싫다면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게다.”
“혀, 형님 제발 그것만은 돌려······.”
“이놈이!”
-쾅!
구웅황이 철창을 발로 걷어차더니 화가 난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올라가자 둘째 구웅성이 혀를 차더니 이내 빈정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뭐 하러 돌아와서 일을 키우는 게야. 쯧쯧.”
한 차례 약을 올린 구웅성이 손을 흔들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으득!
구연우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장자인 소장주 구웅황과 다르게 둘째 구웅성은 뱀과 같은 자였다.
그는 막내이기는 했으나 장인으로서의 재능이 훨씬 앞서는 자신을 늘 시기해서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금도 아마 자신의 뒤를 밟아서 큰형님께 이른 것도 놈일 것이다.
“아아. 어떡하지?”
여기에 갇히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화령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보주를 빼앗겨버렸다.
큰형님은 그렇다 쳐도 구웅성 저놈이 자신이 이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알았기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꽉!
‘송아······.’
그녀에게 미안했다.
믿고 맡겼는데, 이를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들키게 될 줄은 몰랐다.
구연우가 입을 우물우물거리며 이내 무언가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퇫.”
-챙그랑!
그것은 바로 얇고 긴 철사였다.
당황한 와중에도 혹시나 하여 겨우 몰래 챙겼다.
‘어떻게든 되찾아야 해.’
보주는 교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 * *
호피에 털옷을 입은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들이 몽둥이와 병장기를 어깨에 걸치고서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이송을 위한 수레형 옥(獄)이었다.
나무로 창을 만들어 놓은 그 안에는 반쯤 찢겨 여기저기 새하얀 속살이 보이는 한 여인이 있었다.
반백의 머리카락을 지닌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은 입고 있는 옷 때문에 그런지 야릇한 분위기마저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있는 옥 수레 바깥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파가 있었다.
노파가 여인에게 말했다.
“춘추 공 이 정도면 충분히 속을 듯합니다.”
“그렇겠지? 이 정도만 되도 속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
“맞습니다.”
“자고로 사내란 것들을 적당히 명분만 주어지면 상관없는 일이래도 협객이라도 된 것마냥 나서지 못해서 안달이 나거든.”
“끌끌. 그렇지요. 더군다나 이렇게 아름다우신 춘추 공이 험악한 산적 나부랭이들한테 잡혀 있는 걸 본다면 절대 못 참을 겁니다.”
“당연하지. 꽤 단순하고 얕은수 같아도 의외로 이런 게 잘 먹히거든. 후후후.”
그녀가 의기양양해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차의 경로에 맞춰서 준비해뒀으니 이제 오기만 기다리면 되었다.
“반 시진 정도 뒤에 이곳을 지날······.”
-파아아앙!
그 순간 폭풍이라도 몰아친 것마냥 강풍이 휘몰아쳤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험악한 인상에 산적 행세를 하던 그녀의 수하들이 우왕좌왕 당혹스러워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 춘추를 비롯한 노파는 위를 쳐다보았다.
-슉!
그런 그들의 위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갔다.
짧은 찰나라 매우 흐릿했지만 분명 검을 타고 있는 무언가였다.
‘!!!!!!’
이를 본 춘추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방금 그거 그놈 맞지?”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