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68)
“노부가 이리 용서를 구하겠소. 귀하께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테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모두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장주 구천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검의 성지라 불리는 영검산장의 장주이자 현 무림의 정점이라 일컫는 육천(六天)의 일인인 그가 팔을 자른 것도 모자라 심지어 무릎마저 꿇었다.
‘······이건 아니다.’
‘정말 둘째 공자 때문이 맞는 건가?’
‘이는 패배 선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제야 영검산장의 검수들도 그렇고 객들까지도 이를 의아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들이 소중하다 해도 무인으로서 정점이라 불리는 자가 이리도 쉽게 체면을 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무엇을 선택해도 어찌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
그렇게 모두가 충격으로 말문을 잃고 있을 때였다.
-팍!
그때 막내인 구연수가 황급히 다가와 엎드리며 말했다.
“성화의 주인이시여. 저도 이렇게 빌겠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공자!”
구연수의 행동에 영검산장의 검수들이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객들이 보는 앞에서 장주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답답할 지경이었는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는 그만이 아니었다.
-팍!
소장주 구웅황 역시 그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기를 거두시기 힘들다면 본 장의 후계자인 제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 머리를 내놓겠습니다. 공께서는 부디 자비를 베풀어 여기서 끝내주십시오.”
“아니?”
“소 장주까지 왜 이러는 거요?”
지켜보는 이들이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검을 논하는 걸로는 천하제일에 가깝다고 불리는 장주 구천무와 그 일가가 왜 저렇게까지 수치를 무릅쓰며 저자에게 몸을 낮춘단 말인가?
그들은 검수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장주의 검이야말로 천하제일로 여기기에 이곳을 검의 성지라 칭하며 모였다.
그렇게 자신들이 존경하는 이가 스스로 굴욕을 감수하는 모습은 이들로서는 도저히 납득, 아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챙! 스릉!
객들 역시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이 하나둘씩 소리쳤다.
“장주! 아드님과 여기 있는 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거라면 더는 그만두시오. 우리도 무인이오. 언제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이다.”
“맞습니다! 장주께서 이끄신다면 전부 함께할 겁니다.”
“적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십시오!”
“맞소이다! 우리가 장주께 힘이 됩시다!”
“모두 지켜만 보지 말고 구 장주님을 도와 우리 손으로 검곡을 지킵시다!”
“와아아아아아!!!”
화가 나다 못해 분기충천(憤氣衝天)한 검수들과 객들이 사기가 올라 함성을 질러댔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정의맹의 수사관으로 파견된 모용학도 흥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사태. 저희도 돕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런 그의 말에 항산파의 정명 사태가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돕는다고 될 문제가 아닌 것 같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구 장주께서 아들을 인질로 잡혀 저 배화교인에게 농락당하고 있는데 이를 그냥 지켜보자는 겁니까?”
“아미타불. 모용 시주는 정녕 구 장주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나?”
“네?”
“구 장주는 아드님과 객들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빈승의 판단이 틀렸으면 하지만 아무래도 구 장주께서는 저자와 싸운다고 해도 가망이 없다고 여기신 것 같네.”
‘!?’
그 말에 모용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면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여섯 대종사 중 한 사람인 구 장주가 듣도 보도 못한 초출에게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를 직감하고서 머리를 숙였다는 게 되지 않는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설령 저자가 강하다고 한들 검으로 극(極)에 이른 구 장주보다 압도적으로 강할 리는 만무했다.
하면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법도 했다.
설령 강하다고 해도 구 장주 정도 되는 고수라면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우면 되지 않는가?
대체 무인으로서의 긍지는 어디로 간 거지?
‘실망하는 이들이 더러 보이는군.’
뒷짐을 지고서 남 일처럼 상황을 지켜보던 지외가 속으로 혀를 찼다.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의 명성과 중원인들의 경외심이 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싶었는데 일어났다.
‘역시 구천무 그대는 종국에는 장인에 불과했군.’
구천무의 무(武)는 모두가 인정할 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검을 논함에 있어서 천하제일에 가깝다고 할 정도면 거의 최고라 할 만하지 않은가.
분명 그러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곳에 남아 장주 구천무를 겪은 지외는 그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두 가지가 있다고 여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전의 부재.’
구천무는 현 무림 최고수들이라 불리는 육천팔성(六天八星)들 중에 가장 실전 경험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영검산장은 정사에 속하지 않은 중립 문파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그들은 오랫동안 무인으로서가 아닌 장인으로서의 활동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타 문파와 적대한 적도 싸운 적도 없었다.
‘고작해야 검곡 객들과의 비무나 논검(論劍)이 다였다.’
선대 때부터 차곡차곡 수많은 검수의 비기와 검초들을 겪으며 깨달음이 높아졌으니 비무나 논검에서는 두드러지게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목숨을 걸고 싸운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장주가 육천의 일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같은 육천의 일인이자 정의맹의 맹주인 정현문이 구 장주와 논검(論劍)을 하고서 그가 검극에 이르렀다고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무림인들은 그를 육천의 한 사람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무인으로서의 긍지가 없다.’
무인은 이론에만 능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무를 익히는 것은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고 타인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나아가서는 적을 베어 넘기는 것이 무인이었다.
하나 장주 구천무, 아니 영검산장의 구(歐)가 일족은 장인으로서의 사명감이나 긍지는 뚜렷한 반면 누군가와 싸워야겠다는 전의(戰意)가 없었다.
전의가 없으니 당연히 무인으로서의 긍지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아아. 구 장주. 결국 한계를 드러내는가.’
지외가 탄식을 흘리며 실망스러워했다.
어렴풋이 그에게서 전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극한에 상황에 놓이게 되자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반쪽짜리에 불과했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지외의 시선이 장주 구천무에게서 벗어났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검도검극을 꺾기 위해 있던 시간은 아깝지 않았으나,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 그에게 더 이상 흥미가 없었다.
아니 더 이상 흥미를 가질 이유가 없었다.
더욱 그의 전의를 끌어올릴 만한 상대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슥!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목경운에게로 향했다.
목경운이 엎드려 있는 장주 구천무와 그의 두 아들을 슥 한 번 쳐다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뒤에 있는 분들은 장주께서 저와 싸우길 바라는 것 같은걸요.”
이에 장주 구천무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본 장의 일원들과 객들께서는 더는 나서지 마시오. 이것은 노부와 여기 있는 공과 해결해야 할 일이오.”
“장주!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저희는 목숨을 걸 각오가······”
“갈!”
그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검수들과 객들이 당황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조용해지자 장주 구천무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서 말을 이어갔다.
“절벽에 있는 저 검(劍)은 노부조차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네. 그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대들이 목숨을 걸어서 어찌한다는 것인가? 더는 관여치 말게.”
“······.”
이런 그의 단호한 의지에 검수들과 객들이 입을 다물었다.
장주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나서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그들의 눈동자에는 실망감이 서리고 있었다.
오직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 자리에 모여있는 그들이었다.
비록 실력에서 부족할지언정 그가 이끈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끝끝내 무인으로서의 긍지를 저버리고 스스로 굴욕과 패배를 선택하는 모습에 그들의 의지 또한 꺾여버리고 말았다.
이런 그들을 외면한 채 장주 구천무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귀하, 아니 귀공께서 원하는 대로 하겠소.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아아.’
철저히 스스로를 낮추는 그를 빤히 쳐다보던 목경운이 이내 입맛을 다셨다.
스스로 팔을 자르는 모습에 흥미가 생겨서 그가 이번엔 어떻게 대응할지 보기 위해 몰아붙여 봤는데, 생각 외로 원했던 그림과는 달라졌기에 흥미가 떨어졌다.
무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자식을 향한 부애(父愛)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제 어쩔 작정이냐?
그때 청령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긴요. 적당히 끝내야지요.
-적당히 끝낼 건데 왜 그렇게 몰아붙였느냐?
-글쎄요. 후환을 없애려면 확실히 해둘 필요도 있고······. 무위의 차를 알았다고 해도 이 정도 경지에 이른 자라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거든요.
-······그 도객 놈과 싸운 걸로도 모자랐느냐?
-제대로 된 육천(六天)과 겨뤄보면 제가 어느 정도 선에 있는지 파악이 될 테니까요.
-하?
청령은 기가 찼다.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육천을 상대로 스스로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파악해보겠다는 건 오직 중생 이 녀석뿐일 거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녀석이 이렇게 대담하게 나가는 건 스스로의 강함에 어느 정도 확신이 섰기 때문에 이럴 것이다.
‘······때가 무르익었다.’
청령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고조되어갔다.
아무리 중생 녀석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복수를 하려면 적어도 십 년은 잡아야 한다고 보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 괴물 같은 녀석은 이를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단축시켰다.
고작 반년 만에 육천(六天)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에 이르렀다.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이미 천지회 내에 제법 구축해놓은 세력도 있었고, 밖으로 나와 거둔 수하들 또한 보통 녀석들이 아니었다.
이제라면 그녀가 원하는 복수가 가능할지도 몰랐다.
아니 이 녀석이라면 가능할 거다.
‘머지않았어.’
그녀는 내심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둘째 구웅성의 혀를 뜯으려고 했던 진기를 거두었다.
혀에 진기를 거두자 구웅성이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끄으으으.”
“어서 지혈하시죠. 출혈로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에 소장주 구웅황이 쓰러진 구웅성에게로 달려가 지혈점을 누르고, 서둘러서 팔의 베인 부분을 옷을 찢은 천으로 감쌌다.
겨우 목숨을 살리게 된 구웅성을 보며 장주 구천무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었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뭐든지 하실 수 있다고 했는데 어디까지 가능하시죠?”
‘!?’
그 말에 장주 구천무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목경운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서 거의 항복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이리 말하는 걸 보니 어떤 걸 요구할지 두려워진다.
“······노부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팔을 잘라 달라는 그런 요구는 들어줄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선을 그었다.
적어도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 요구하라는 소리였다.
“할 수 있는 것이라······. 그럼 딱히 어렵지 않겠군요.”
“혹 검을 제작하는 걸 원한다면 귀공께 어울릴 만한 최고의 명검을 만들어드릴 수······.”
“아뇨. 검은 이걸로 충분해서요.”
목경운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두 요검을 손바닥으로 툭툭하고 치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장주와 영검산장이 제게 충성을 맹세하시죠.”
‘!!!!!!!’
순간 모두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