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77)
이윽고 연무장 전체가 월맥인들의 환호성으로 울려 퍼졌다.
그런 그들의 외침에 류소월은 검결지로 일으킨 검강(劍罡)을 거두며, 서쪽 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기뻐하는 월맥의 가신들, 무사들이 보였고 부친인 가주 류강이 자리에서 일어난 채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런 부친을 바라보며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주먹으로 두드렸다.
-쿵쿵!
마치 스스로를 증명해 보였다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가주 류강의 입술이 실룩이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윽고 그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두 눈을 감자, 그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
그런 부친의 모습에 류소월은 격해지는 감정을 겨우 참아냈다.
과연 자신이 천맥의 소주를 꺾고 부친이 그어놓은 한계를 넘어섰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기분이 들까? 무척이나 궁금했던 그녀였다.
속이 시원할까? 아니면 그간의 한이 풀릴까?
그런데 막상 부친이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 포기한 것처럼 그딴 제안을 수락해놓고서 이제와서 울긴 왜 울어.’
이러면 그간의 서러움을 풀 수 없지 않은가.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야속했다.
저 모습 한 번에 괜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는데 환호성 사이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순 없어. 어떻게······.]그것은 천맥의 소주 비용헌의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벽을 넘어서 화경의 경지에 오른 뒤로 모든 감각이 전보다 발달하게 된 그녀의 귀에는 이 소리가 정확히 들려왔다.
‘용헌······.’
평소의 장난기 가득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패배로 인한 충격이 큰 건지 무력감에 사로잡힌 그였다.
비록 그를 꺾기 위해 인고의 노력을 해왔던 그녀였지만, 막상 이런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해서 그에게 뭐라 한 마디 건네려고 하는데,
-저벅저벅!
그런 그의 뒤로 천맥의 가주 비형명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패배로 충격을 받은 아들을 위로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다가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본 그녀는 비무의 승자인 자신이 달래는 것보다 저편이 낫겠다고 여겨서 그만 물러났다.
그런데,
‘!?’
순간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웃······어?’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천맥의 가주 비형명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패배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짓는 그런 인자한 유의 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모습에 류소월은 일순간 불쾌감에 사로잡혔다.
‘어째서 저런······.’
그러나,
[소주!]비무의 첫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달려오는 월맥의 가신들로 인해 그녀는 이 불쾌감을 묻어둬야만 했다.
그 불쾌감의 여운은 머지않아 가신들의 기쁨 속에 서서히 묻혀갔다.
* * *
그날 해가 질 무렵,
가벼운 몸놀림으로 봉우리 정상에 오른 류소월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녀는 달려가 그 누군가의 품에 안겼다.
그 누군가는 온통 흑으로만 가득한 사내였다.
사내 역시도 안겨 오는 그녀를 품 안에 쏙 감싸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슥!
그 말과 함께 류소월이 사내의 두 뺨을 두 손으로 붙잡고서 까치발을 올리며 입술에 입맞춤했다.
사내 역시 그런 그녀에게 부응하듯 진한 입맞춤을 이어갔다.
자신을 무인으로서 깨우쳐준 스승이자, 처음으로 여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남자였다.
한 해에 고작해야 이틀에서 사흘 정도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이 남자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진 게 자신만이 아닌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동안 사내와 소월은 붉은 석양 아래 서로를 탐닉했다.
* * *
절벽에 걸터앉은 채 사내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류소월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이보다 순탄하고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사내가 말했다.
[바라던 것을 이뤘으니 이제 그 회주라는 목표에 가까워진 것이냐?] [아직 몰라요. 이번엔 이겼지만 다음 해에는 어떻게 달라져서 올지 모를 일이니까요.] [호오. 제법 성장했군.] [방심은 금물이라면서요.] [만족은 방심을 불러오고 방심은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승리를 오랫동안 만끽해봐야 무의미하지.] [······옳은 말이네요. 한데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꼭 평생을 쉬지 않고 싸우기만 한 것 같아요.]이런 그녀의 말에 사내가 말없이 웃었다.
마치 그 모습이 긍정으로 보였다.
[정말이에요?] [네가 생각한 것보다 아득히 오래전부터 전장에서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고요?]류소월은 기대던 어깨에서 머리를 떼고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국적인 외모를 보면 중원인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한 게 아리송하다.
그렇다고 서역인이라고 보기에는 또 중원인 같은 느낌도 든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느낌이다.
[당신을 보면 항상 신비롭다는 생각뿐이에요.] [뭐가 말이지?] [외모도 그렇고 모든 게 다요. 매해 한 번도 빠짐 없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가는지조차 난 몰라요.]그와 매해 이곳에서 만났지만 사내가 이곳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같은 곳에서 나타났다.
그것이 항상 의문인 그녀였다.
하지만 사내는 이렇게 가까워졌음에도 자신에 관한 어떠한 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끔은 이것이 섭섭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하는지 사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간 말하마. 하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게 언제일까요?] [머지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갈수록 황폐하기 그지없고 오랫동안 전쟁만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먼 옛날부터 이곳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나 지금 그리한다면 그들 역시도 움직일 테지. 그럼 이곳은 곧 전쟁터가 될 거다.]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세상에 사는 걸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고이 접었다.
어련히 때가 되면 모든 걸 이야기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굳게 믿었다.
류소월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사내의 팔을 꼭 쥐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아. 그러셔요. 누구 분께서 몇 년 전만 해도 저보고 주인 어쩌고 하면서 이곳을 직접 지배할 거니 뭐니 그런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나 봐요?] [······지배. 그래, 그리하려 했었지.] [어휴. 그러셨어요?] [너는 이를 감사해야 한다. 아직도 그러길 원하는 자들이 많다. 몇 년 동안 너를 상대해주었던 그자도 그렇지.]가르침을 빙자해 그녀를 몇 년이나 흠씬 두들겨 패다시피 한 사내의 아랫사람이다.
그자는 몇 해가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자신을 늘 하찮은 벌레처럼 대했다.
아무리 선머슴처럼 자라기는 했지만 나름 절세미녀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왔는데, 자신을 그리 대하는 자는 그자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분은 어떻게 지내나요?]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 일족은 일상 자체가 전장이라고.] [전장······. 어째 제 삶보다도 더 피폐하네요.] [모두의 삶은 고귀하다. 다만 그것을 쉽게 인지하지 못할 뿐.] [그럼 저도 그런 건가요?] [물론이다.]이런 사내의 답에 류소월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결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다만 여전히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사내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신을 존중하고 아낀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가 너무나도 좋다.
사내를 빤히 바라보던 류소월이 살짝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계속······.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를 향한 감정이 깊어졌기에 한 해의 짧은 만남이 늘 아쉬운 그녀였다.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감정을 부끄러워하면서 이야기하는 소월이 귀여운지 사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금만······. 아니 네게는 조금은 아니겠지만 기다려다오.] [기다리면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건가요?] [······그래. 함께 할 거다. 설령 그것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찰나?]함께한다는 표현을 왜 영원이 아닌 찰나로 말한 걸까?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사내가 뭔가 모르게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와 같다면 좋으련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찰나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너를 품은 것이 아프게 느껴지는구나.] [······왜 그렇게 얘기하는 거에요?]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류소월은 문득 불안함을 느꼈다.
그러자 사내가 그녀를 꼭 안으며 말했다.
류소월은 그런 그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불안함은 씻은 듯이 날아갔다.
아직 남은 생은 한참인데도 그걸 짧게 느껴진다고 할 정도면 이 남자가 얼마나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그녀도 사내를 꽉 껴안으며 말했다.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짧으니까 더욱 반짝이는 거라고. 저희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잖아요.] [짧으니까 더욱 반짝인다라······. 그래, 그 말이 옳구나.]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말했다.
[나 역시도 너와 하는 이 순간이 생에 가장 빛나는 것만은······!?]말을 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방해하지 말라고 하였을 텐데.] [송구합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한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익숙한 목소리에 류소월이 그곳을 바라보니 사내의 아랫사람이 어느새 와있었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그녀가 사내의 품 안에 있던 것이 괜히 민망했는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오, 오랜만이네요. 타우 님.]이런 그녀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타우라 불린 사내의 아랫사람은 여전히 벌레를 바라보듯 그녀를 슥 한 번 훑고는 모른 체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가 사내에게 다가가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안 들리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청각의 감각에 집중해보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모종의 기운으로 이를 막은 듯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내의 표정이 여간 좋지 않았다.
무언가 보고가 끝나자 이내 사내가 그녀에게 다가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많이 곤란한 것 같네요. 혹 제가 도울 일은 없나요?] [괜찮다. 네게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으냐.] [그래도······.]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늘 그랬듯이 이곳으로 올 거다.] [······알겠어요.]그래.
자신이 걱정할 만큼 사내는 약하지 않다.
사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구보다도 강하기에 그를 무너뜨릴 자는 없다고 그녀는 믿었다.
[기다릴게요.]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다음 해를 기대하며 사내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리라고는 이 순간에는 전혀 의심치 않았다.
* * *
류소월은 침상에서 이불을 덮어쓴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를 맞아가며 이레 가까이 그 자리에서 사내를 기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걱정에 사로잡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그렇게나 믿었건만 그 일말의 불안함이 현실이 된 것 같아 괴로운 그녀였다.
[흑.]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늘 전장 속에 살아간다고 한 그가 자신을 두고서 세상을 떠나진 않았을까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슬픔과 괴로움으로 눈물이 그치지 않는데,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가! 제발 좀 내버려······.]-쿵!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그녀의 부친인 월맥의 가주 류강이었다.
류강이 슬픔으로 여윈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참이더냐?] [······그냥 내버려두세요. 이번 비무에서도 이겼잖아요. 그러니까······.] [그자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이더냐?]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내 그녀가 가주 류강의 뒤편에 서있는 호위대주 화연을 흘겨보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오랜 말벗인 그녀에게만 했었다.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그걸 이야기한 건가?
하는데 가주 류강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 좋아한다면서 그자를 믿지 못하는 게냐?] [네?]이게 무슨 소리지?
그녀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신을 그저 가문의 후계자인 소주로만 여기는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노발대발 화를 낼 거라고만 여겼던 그녀였다.
왜냐하면 자신이 천맥과 지맥의 소주들을 꺾었음에도 그들 중 한 사람과 연을 맺어 자식을 낳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부친이 이런 말을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말과 함께 가주 류강이 씁쓸한 표정과 함께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 딸을 이리 울게 만든 그놈의 상판이 아주 궁금하구나.] [······아버지.]이내 다시 류소월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주가 된 이후로 그렇게 엄하고 매정하기만 했던 부친이었다.
그런데 오라버니마저 떠난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자신을 여식으로서 대하고 있었다.
벅차오른 그녀를 부친 류강이 다가가 감싸 안았다.
그를 만나지 못한 것과 걱정으로 숨죽여 울기만 하던 류소월이 울상이 되어 펑펑 울었다.
그런 그녀를 부친 류강이 말없이 등을 두드리며 보듬어주었다.
한참을 운 그녀에게 류강이 말했다.
[그놈이 돌아오면 내 혼쭐을 내줄 터이니 이제 기운을 내거라.] [······.] [그만하래도. 후우. 그리 그놈이 보고 싶다면 화공에게 일러서 초상화라도 그려서 걸어놓거라.] [네?] [나도 사위 될 놈이 어떻게 생긴 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아······아버지.] [하는 김에 이참에 너도 예쁘장하게 꾸미고서 초상화도 하나 그려놓으면 어떻겠느냐? 앞으로 애비를 대신해 월맥, 아니 천지월회를 이끌게 된다면 여인으로서의 꾸밀 일도 드물 테니 말이다.] [풋, 새삼 이제야 딸처럼 여겨지나요?]그런 그녀의 말에 류강이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소주이기 이전에 늘 내겐 딸이었다.]어떤 말보다도 부친의 그 말은 그녀의 삶에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
* * *
여섯 달 후.
호북성의 북쪽 조양(棗陽) 영검산장에서 들렀다가 떠나오는 길.
류소월의 호위대주 화연이 계속해서 그녀를 놀려댔다.
[가주께서 얼마나 노발대발하셨으면 전서구까지 날리셨겠어요.] [······.] [그러게 아직 혼인도 치르지 않으셔 놓고서 신부복은 뭐 하러 입고서 초상화를 그리신 거예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초상화를 남기자고 해서 그런 건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 노발대발할 일이냐?] [노발대발하는 게 당연하죠. 소주는 신부복으로 초상화를 그리고 그분도 신랑처럼 초상화를 그렸으니 안 그러시겠어요?]이런 화연의 말에 류소월이 입술을 삐쭉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칫. 언제는 사위 어쩌고 하더니 전부 빈말이었어.] [그래도 너무 갔잖아요. 소주.] [이제 그만 놀려. 그것 때문에 골이 지끈거리니까.]이런 그녀의 반응에 슬슬 그만 놀려야겠다고 여겼는지 호위대주 화연도 머쓱해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참 공교롭기 그지없네요.] [뭐가 말이야?] [검이 완성되는 시기가 소주가 회주로 즉위할 수 있는 시점이랑 맞물렸잖아요.]이런 그녀의 말에 류소월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너무 설레발은 치지 말고. 아직까진 모르니까.] [헤에. 그러신 분이 영검산장의 장주님 앞에서는 회주가 될 것처럼 자신감은 왜 보이셨나요?] [그럼 외인 앞에서 자신 없다고 이야기할까?] [뭐 그건 그렇죠.]호위대주 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은 명실공히 세 맥을 통틀어 최고의 고수가 되었다.
그녀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화연 역시도 이런 아가씨를 보필한다는 걸 크게 자랑스러워했다.
[한데 소주. 검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역시 그분 때문인가요?]본의 아니게 영검산장 구문혁 장주와 그녀가 나누는 대화를 들은 화연이었다.
검의 이름을 묻는 그에게 류소월은 순연(順戀)이라 붙여달라고 했다.
순연은 그리움을 뜻한다.
그것도 사무치도록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평생을 쓸 보검에다가도 그런 이름을 붙일 정도면 소주가 얼마나 그분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러는데 류소월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얘긴 나중에 하자.] [죄, 죄송해요. 아가씨. 저도 모르게 요, 요놈의 입이 입방정을 떨었네요.]호위대주 화연이 자신의 입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류소월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다 이내 말했다.
[지금은 오직 합종식의 비무에만 집중하고 싶어.] [소주······.]이런 그녀의 굳은 결의에 호위대주 화연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내심 뿌듯함을 금치 못했다.
여러 아픔을 겪고 난 후에 참으로 단단해진 그녀였다.
많은 이들을 이끌 재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꼭 이기실 겁니다. 소주께서 삼맥의 합종식에서 최종 승자가 되어서 회주로 즉위하시고 지고의 비급이라 불리는 파사팔식도 가지시게 될 거예요.]파사팔식(破思八式).
그것은 천지월(天地月)의 삼맥(三脈)이 세 파로 나뉘게 된 계기였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