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80)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과거를 상기하며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한 청령.
그런 청령의 이야기를 목경운은 진지하게 경청했다.
이렇게 자신이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를 풀어놓으며 청령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또다시 피눈물을 흘렸다.
육신이 없는 영체임에도 얼마나 한이 깊으면 피눈물이 나올까?
목경운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꽉!
그런 목경운의 손을 흐느끼고 있는 청령이 꽉 붙잡고 있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서 의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원혼이 된 영체는 음(陰)의 기운 그 자체이기에 싸늘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목경운에게는 그녀의 손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숨을 거두는 순간을 이야기하며 꼭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풀렸다.
그것은 ‘그’의 신부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였다.
서럽게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내심 민망해하면서 목경운의 눈치를 보았다.
‘말을 하다 보니 주체하지 못했구나.’
마지막은 괜히 이야기했다 싶었다.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고 나서 중생이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여겨서였다.
그만큼 그녀는 그를 너무도 사랑했다.
죽는 그 순간에도 오직 그만을 생각할 만큼.
-······,
“······.”
괜히 민망한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녀를 목경운이 빤히 쳐다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한데 듣고 보니 하나가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니, 무슨 소리냐?
“청령······아니 소월은······. 마지막에 분명 아버지와 일가를 잃었지만 ‘그자’와 천맥의 소주인지 뭔지 하는 자가 죽는 걸 본 것 같은데 어떻게 원혼이 된 거죠? 물론 가족을 잃은 것으로도 원한이 아직 깊어서 남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그녀의 원한은 그 비용헌이라는 자에게 있었다.
모든 것이 그 자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한 대로라면 그 비용헌은 아무래도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에게 당한 듯했다.
그때였다.
-아니, 놈은 죽지 않았어.
“네?”
죽지 않았다고?
-본좌 역시 마지막에 들은 놈의 비명소리 때문에 죽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놈은 살아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나요?”
-······느꼈으니까.
“느꼈다고요? 그자가 살아있는 걸요?”
-······백 년이 지난 지금은 몰라도 당시 분명 놈은 살아있었다. 살아서 본좌를 끝까지 능욕했다.
* * *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깊은 한은 음(陰)의 영력이 되어 혼(魂)을 세상에 붙잡아둔다.
막 원혼이 된 자는 영체로의 변화에 적응기와 낮은 격으로 인해 자아가 곧바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녀가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은 꽤 시간이 흘러서였다.
그렇게 스스로 자아를 형성한 그녀가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서책이었다.
‘서······책?’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이 서책이 강하게 묶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서책은 그녀가 영체 상태로도 이승에 더욱 붙어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줄 매개체였다.
한데 처음 보는 이 책이 어떻게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거지?
의문에 빠진 그녀는 서책을 상세히 살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
서책은 다름 아닌 자신의 심장으로 만들어졌다.
영체가 된 후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기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체 자신의 심장으로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녀는 심장을 다져서 말려 만든 서책을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여느 서책처럼 글귀를 하나하나 새겨놓았다.
그 글귀는 파사팔식(破思八式)과 자신의 무월공검(無月空劍)을 접목한 월(月)의 검식의 구결이었다.
‘이게 대체······.’
바로 그때였다.
두통이라도 오는 것처럼 그녀는 머리가 아파왔다.
영체에게 두통이라는 게 있을 리가 만무한데도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의아해하는데 희미한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심장은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상징하기도 하지. 너와 나는 영원히 함께하게 될 거야.]‘!?’
머릿속에 떠오르는 놈의 모습에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놈이 살아있는 거지?
분명 그의 손에······. 으윽.
순간 머릿속에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놈이 자신의 심장에 글귀를 새겨놓고 있었다.
[······소월. 네 모든 흔적을 여기에 남겨줄게.]-꽉!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분노했다.
마치 자신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처럼 자신의 심장에 이걸 새겨놓고 계속 보고 있었다는 건가?
-쿠구구구구구!
분노한 그녀의 영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이 흔들렸다.
너무 화가 난다.
그렇지 않아도 한이 풀리지 않아 원혼이 된 것도 서러울 판국에 죽어서도 자신을 이리 능욕하는 건가?
* * *
-죽어서도 놈에게 치욕을 당한 본좌는 참지 못하고 폭주하였다. 원혼으로서 아직 제대로 힘을 갖추지 못했지만 놈을 죽여야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그러다 놈에게 봉해진 건가요?”
처음 청령, 아니 류소월을 만났을 때 그녀의 매개체인 심장으로 만든 비급은 분명 방술에 의해 봉해져 있었다.
이야기대로라면 아마도 폭주하는 그녀를 막기 위해서 봉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모른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요?”
-그래. 본좌가 어떻게 봉해졌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의문을 가졌지만 그때의 순간을 아무리 상기해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그녀였다.
이에 목경운이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그럼 어떻게 심장으로 만든 그 비급서가 연목검장에까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군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봉인되어 있던 시점에서 외부와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백 년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버텨왔다.
놈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게 소중한 이를 잃는 고통을 안겨줬다.
그것은 죽어가면서도 괴로움과 깊은 한으로 남았다.
-본좌를 지탱한 것은 오직 이 한뿐이었다.
깊은 한을 품고도 그 오랜 세월을 버틴다는 것은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홀로 긴 외로움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하게 견뎌왔다. 그러나 아무리 원혼이라고 할지라도 그 지독함은 스스로의 마음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뒤흔드는 목경운 앞에서 무너진 것이었다.
“······.”
모든 이야기를 들은 목경운은 감정에 서툴렀지만, 그녀가 얼마나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해왔는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꽉!
그녀의 손을 잡고서 다짐하듯이 말했다.
“약조할게요.”
-······.
“놈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릴게요. 설령 놈이 죽어 세상에 없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살의가 느껴지는 목경운의 다짐에 그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여태껏 자신의 복수 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중생이었다.
그런 녀석이 자신을 위해서 복수를 다짐해주니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가 글썽이는 눈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중생······. 본좌의 이 안은 썩어 문드러져 오래전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네가 들어와 안착할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요.”
-너······. 이걸 듣고도 그런 소릴······.
“이미 좋아하게 된 건 어쩔 순 없잖아요.”
-하······.
죽은 후로 백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가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힘들었다.
살아생전에도 죽어서도 오직 그만이 자신의 남자라고 여겼던 그녀였다.
그런데 연이 그리도 길지 않은 중생 이 녀석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흔들리는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고작 외로움 때문에 이런 건가?
그래서 녀석이 흔들 때마다 기대고 싶어지는 건가?
부러지면 부러졌지 고목과도 같던 자신의 마음이 어째서 이리 갈대처럼 흔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난······. 난······.’
이러면 안 되는데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그가 떠오른다.
말투에서부터 외모 어떤 것도 전혀 닮은 게 없었는데,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안 돼.’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목경운을 그녀가 빤히 쳐다보았다.
영체인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아려온다.
‘차라리 혼자 가져갔어야 했나.’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했기에 토로한 것 같아 한결 시원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녀석의 마음을 한풀 꺾은 것 같아서였다.
괜찮다고 했어도 자신의 안에 여전히 ‘그’가 남아있는 것을 알았을 테니 아무리 중생 이 녀석이라고 해도 기분이 그리 좋진 않을 거다.
-중생. 난······.
“괜찮아요.”
-뭐?
“청령······. 아아. 너무 입에 붙었나 보네요. 아무튼 소월도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누군가를 좋아했고 그를 가슴에 담아뒀다는 게 나쁜 게 아니잖아요.
-······중생
이 녀석은 의외로 타인의 마음을 잘 울린다.
스스로의 감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녀석이 말이다.
삭막하고 냉철하기 그지없는 녀석이 도리어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다니.
그래서인지 더 가슴이 찌릿하다.
“이상하네요.”
-뭐가 말이냐?
“사실 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소월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마음조차 빼앗고 싶거든요.”
-······.
“한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렇게 하면 소월에게는 또 다른 괴로움의 반복이겠죠. 저는 소월이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거든요.”
-······.
“그래서 지금은 제 복수도 그렇고 소월의 한을 푸는 데 집중하려고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그녀의 두 눈동자가 글썽였다.
너의 이런 말이 오히려 나를 더욱 흔든다.
그렇게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어떻게든 가라앉혔다.
그 이외에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마음을 눌러야 한다.
‘너와 나의 인연은 복수로 끝을 맺어야 해.’
원혼이 한을 풀고 나면 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정해진 끝이 있기에 더는 흔들리면 안 됐다.
이를 새삼 깨달은 그녀는 이내 흔들리던 자신의 마음을 굳게 잡았다.
-그래. 중생 네 말이 맞다. 지금은 너의 복수와 본좌의 한을 푸는 데 집중하자꾸나. 그리고······.
“그리고?”
-애써 입에 붙지도 않으면서 류소월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
“금방 적응할······.”
-그냥 청령이라 불러다오.
“네?”
-네겐 계속 청령이라 불리고 싶구나.
* * *
어두운 밤.
영검산장에서 멀지 않은 산 중턱 아래로 마차 두 대가 나타났다.
이 마차 두 대를 몰고 있는 자들은 다름 아닌 목경운의 수하들인 섭춘과 몽무약이었다.
먼저 어검비행술로 날아가 버린 주군을 따라잡기 위해 겨우 달려 이곳에 다다른 그들이었다.
여기까지 오며 보주만 찾으면 될 일이기에 자신들이 영검산장의 영역까지 들어갈 일이 있겠는가 싶었던 그들이었지만, 어느새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이르렀다.
영검산장은 육천(六天)의 일인인 구천무의 영역이었기에 주군이라도 섣불리 접근하진 않았을 터인데, 왜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일까?
그러던 차였다.
-끼이이익!
“워!”
뒤에서 말을 몰던 섭춘이 앞의 마차가 멈춰서자 놀라서 이를 멈춰 세웠다.
섭춘이 이내 앞쪽을 향해 소리쳤다.
“무약. 멈추면 멈춘다고 신호를 줘야······아?”
이내 섭춘은 앞의 마차가 왜 멈췄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마차의 앞쪽에 영검산장의 검수들로 짐작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섭춘이 이를 지원하기 위해 황급히 마차 앞으로 신형을 날렸는데,
-팟!
‘뭐지?’
몽무약이 묘한 표정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스릉!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독문병기인 광무도를 뽑아 들어 싸울 태세를 취하려고 하는데,
“멈춰!”
몽무약이 그를 만류했다.
“멈추라니? 엇?”
순간 섭춘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검산장의 검수들의 한 가운데 초절정의 중년인이 있었는데, 그가 그들에게 예를 갖춰 공손히 포권지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의아해하는데,
“주공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기서부터는 마차로 이동하기 힘들 테니 걸어서 따라오시죠.”
“주공? 영검산장의 장주께서 말이오?”
역시 자신들이 이곳에 들어선 것을 알아차리고 보낸 것인가?
하고 여기던 차였다.
“아닙니다. 천마 주공께서 여러분들을 마중하라 보내셨습니다.”
‘!?’
순간 섭춘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천마 주공이라고?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