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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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회 내성의 한 연무장.
천지회 상위 간부인 오왕(五王) 명도왕 손윤의 둘째 제자 엽위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헉······헉······.”
거친 호흡성을 내뱉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짧은 수염의 사내.
그는 엽위선의 대사형이자 거궐단의 대단주이면서 천지회 내에서도 최고의 후기지수로 일컬어지는 오호(五虎)의 일인인 우호랑이었다.
-주르륵!
도를 쥐고 있는 우호랑의 오른손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말도 안 돼.’
대사형이 패했다.
설마하는 일이 현실로 이뤄지고 말았다.
“훌륭하군.”
흉터로 가득한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바로 명도왕 손윤이었다.
손윤 역시도 꽤나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무의 예상을 뒤엎고 새로 거둬들인 막내 제자가 대사형인 우호랑을 꺾은 것이었다.
그 새로운 제자는 다름 아닌 목유천이었다.
‘······근래 심혈을 기울이기는 했으나 이 정도였나.’
시혈곡에서 목경운을 대신하여 아쉬운 대로 녀석을 억지하는 ‘패’로서 데려온 것이 바로 목유천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놈 못지않은 재능과 패기를 지녔기에 선택했는데,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
이놈도 재능이 개화되지 못한 천재였다.
고작 몇 달 만에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 지은 우호랑마저 이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재밌군.’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볼모로 끌고 온 연목검장의 두 녀석이 전부 자신의 제자들을 이기는 사태가 벌어지다니 말이다.
정파 출신만 아니라면 후계자로 지목하고 싶을 정도다.
아쉽지만 제자로 거둬들인 걸로 만족해야 할 듯했다.
-우득우득!
목유천의 검게 부풀어 올랐던 오른팔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역혈의 대법을 그럭저럭 통제할 수 있게 된 후로 급격하게 증진했는데, 과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졌다.
-꽉!
흡족한 얼굴로 목유천을 바라보는 스승의 눈빛에 우호랑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른 걸까?
그간 놈에게 다시 설욕을 갚기 위해 무공 연마에 더욱 박차를 가했던 그였다.
그런데 설마 녀석의 아우에게마저 패하게 될 줄은 몰랐다.
스승의 저 표정은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고는 나오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아. 최악이군.’
목가 일족에게 모든 걸 빼앗긴 기분이다.
놈의 아우에게는 스승의 총애를, 놈에게는 연모하던 여인의 마음을 빼앗겼다.
위계를 잡겠다고 한 이후로 위소연 아가씨는 수하들을 사적으로 만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었다.
놈이 나타나기 전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의지했던 그녀였다.
-으득!
입술에 피가 흘러내릴 만큼 세게 깨물던 우호랑이 이내 스승인 명도왕 손윤에게 포권 지례를 하고서 거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연무장을 나갔다.
그런 그를 손윤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았다.
패배한 제자의 심경을 이해하지만 그는 가르침에 있어서 위로가 없었다.
후계자가 될 녀석이라면 스스로 극복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호적수는 너를 더욱 성장시킬 것이다.’
* * *
-타타타탁!
엽위선이 황급히 달려가며 대사형 우호랑을 따라잡았다.
“대사형!”
그런 그의 부름을 무시한 채 우호랑이 걸어갔지만 이내 엽위선에 의해 앞이 가로막히면서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우호랑이 불쾌하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냐?”
“대사형.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닙니다.”
“뭐가 말이냐?”
“사부님께서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대사형에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나.
오늘은 자신이 녀석에게 패했지만 이미 그 전에 목유천에게 패한 엽위선이었다.
그때부터 불만이 넘쳐났지만 자존심 때문에 참았던 게 보였다.
그러나 자신마저 놈에게 패하고 나니 이를 명분 삼아 불만을 토로하려는 건가.
“······그런 얘기를 할 거면 비켜라.”
“대사형!”
“비무는 비무일 뿐이다.”
그 말과 함께 우호랑이 엽위선을 비켜가려고 했다.
그러자 엽위선이 언성을 높였다.
“대사형이 무슨 성인군자라고 매번 참는 겁니까?”
“뭐?”
“저 빌어먹을 목가 놈들에게 저희가 가진 모든 걸 빼앗기게 생겼는데, 그걸 참으려고 하다니. 이건 인내가 아니라 미련한 겁니다.”
-콱!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호랑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어······.”
“왜 저에게 화를 풀려고 하십니까? 진짜 화풀이를 할 대상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뭐?”
“목가 놈들 말입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구는구나.”
“지긋지긋한 게 아니라 놈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저희 사형제는 정말로 모든 걸 잃게 될 겁니다. 그때 가서 후회할 작정이십니까?”
엽위선의 말에 우호랑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철없는 사제의 토로라 여기며 무시하고 넘어갔지만 그 역시도 사람이었다.
당연히 불만이 턱 끝까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라도 목가 두 형제를 쳐 죽이고픈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하지만,
‘안 돼.’
그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누르면 눌렀지 암수나 계략을 쓰는 것은 하수들이 하는 짓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과연 스승님이나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위소연 아가씨가 과연 자신을 인정할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실망을 금치 못할 거다.
그렇기에 이 쓰라림을 양분 삼아 강해져야 한다.
실력으로 목가 형제들을 눌러야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팍!
우호랑이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서 거칠게 엽위선을 밀어젖히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무공 연마에 더 힘을 써라.”
“대사형!”
“불만을 토로하는 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 생각은 버려라. 스스로의 힘으로 하지 못한다면 전부 무의미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다.”
“어찌······”
“간다.”
그 말과 함께 우호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런 그를 엽위선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비슷한 처지이기에 자신의 심경을 이해해줄 수 있는 것은 대사형뿐이라 여겼는데, 이리 자신을 밀어내니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쿵!
성이 나서 담벼락을 발로 걷어찬 엽위선이 이내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런 그의 뒤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바로 목유천이었다.
“후우.”
목유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엽위선이 그를 따라가는 걸 보고서 뭔가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 여겨서 따라갔던 그였다.
그러나 다행히 대사형 우호랑은 자존심이 강해 놈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
만약 그가 엽위선과 손을 잡는다면 꽤나 불편해졌을 것이다.
‘아직 더 강해져야 하는데 방해를 받을 순 없지.’
그의 목적은 이들 두 사형제가 아니었다.
배다른 형제이기는 하나 한 핏줄이라 믿었는데 자신의 뒤통수를 친 목경운 놈에게 복수하고 다시 정의를 바로 잡는 것이었다.
‘머지않았다. 내 손으로 널 쓰러뜨려 주마.’
* * *
-타타타탁!
한참을 경공을 펼치며 어딘가로 향하던 명도왕 손윤의 둘째 제자 엽위선이 멈춰서서 주변의 동향을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인적이 드문 창고 건물 같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들어간 엽위선은,
-짝짝! 짝! 짝짝!
규칙적으로 손뼉을 쳤다.
그러자 이윽고 어둡던 창고 안이 밝혀지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자는 바로,
“모 형.”
천지회 회주의 첫째 제자인 대공자 나율량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모약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은밀한 곳에서 엽위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곧바로 드러났다.
등불을 들고 있는 모약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래. 어떻게 우 형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나?”
“······.”
이 물음에 엽위선이 탄식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런 그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건지 모약이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그는 엽위선이 실패할 거라 예상했다.
그의 대사형 우호랑과 몇 번이나 접촉하여 대공자 나율량을 모시자고 설득했던 전적이 있기에 얼마나 고집이 센지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절대로 자신들과 함께하지 못할 거라 어느 정도 짐작했었다.
하나 목유천이라는 변수가 있기에 혹 가능성이 있을까 했지만 그마저도 딱히 소용 있진 않았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
어차피 우호랑은 없어도 있어도 그만이었다.
“모 형······. 조금만 더 시간을 준다면······.”
-탁탁!
모약이 그를 달래듯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네. 우 형은 자네가 천천히 설득하면 되니까 말이야. 그보다 대공자께서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자네일세.”
“······그게 정말이오?”
“암, 그렇고말고.”
기대감에 찬 그의 얼굴에 모약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올라갔다.
사실 우호랑이란 패는 고집이 세서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반면 탐욕과 질투가 넘치는 자만큼 이용해먹기 좋은 패는 없었다.
원하는 그림을 얼마든 그릴 수 있으니 말이다.
* * *
늦은 밤.
한 무덤의 비석으로 술을 따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바로 부멸단의 대단주 호종혁이었다.
천지회 회주의 둘째 제자인 장능악이 이끄는 오악회(五岳會)의 진짜 일악(一岳)이자 오왕(五王)의 일인인 파부왕 호태강의 자식이 바로 그였다.
물론 여기까지는 몇 달 전의 일이다.
지금 그 몸속에 있는 것은 호종혁 자신이 아닌 원혼이 된 이악(二岳) 위맹천이 있었다.
“후우······.”
호종혁의 몸을 차지하게 된 위맹천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늘 이곳에 올 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덤의 비석에는 위맹천이라 새겨져 있었다.
‘평생 그렇게 바라왔던 이 두 눈으로 죽은 내 육신의 무덤을 바라보는 꼴이란······.’
-벌컥벌컥!
위맹천이 비석에 따르던 술병을 들이켰다.
장님이었던 그의 바람은 앞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앞을 보게 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비록 몸을 잃었어도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걸 만족해야 하는 걸까?’
비석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복잡한 그였다.
그렇다 해도 별수 없었다.
이미 목경운의 식신이 되어 연(緣)이 이어졌기에 그의 명을 받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남아있는 술을 들이켜던 찰나였다.
-챙그랑!
위맹천이 술병을 놓고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촥!
젖힌 그의 고개 위로 날카로운 예기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도기(刀氣)였다.
도기를 피한 위맹천이 황급히 보법을 펼치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린 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
자신을 향해 도기를 날린 자는 다름 아닌,
“대공자?”
그는 대공자 나율량이었다.
나율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죽은 옛 동료가 그립더라도 요즘 같은 때에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지.”
웃는 얼굴과 달리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나율량을 노려보던 위맹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역시 대담하네.’
근래에 들어 제대로 후계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에 내심 우려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대놓고 노릴 줄은 몰랐다.
이에 위맹천이 등에 차고 있던 도끼의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두 사제분의 연합과 정면으로 겨뤄야 할 텐데 충분히 준비가 되신 겁니까?”
“글쎄. 그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율량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 * *
“이 정도면 그럴듯하지 않나?”
-탁!
대공자 나율량이 누군가의 어깨로 팔을 걸치며 말했다.
그 누군가는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죽은 호종혁(위맹천)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명도왕 손윤의 둘째 제자 엽위선이었다.
‘저, 정말로 죽일 줄이야.’
엽위선은 내심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아까 저녁 자리 때만 하더라도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대공자 나율량이 자신을 산하로 받아준다고 하며 술자리마저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손에 둘째 공자 장능악의 수하가 죽었다.
이것만으로도 굉장히 큰일이었는데, 문제는 호종혁의 뒤에는 둘째 공자만이 아닌 그의 부친 파부왕 호태강도 있었다.
‘······팔성의 자식을 죽이다니.’
파부왕 호태강.
그는 현 무림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팔성(八星)의 일인이었다.
그런 그의 자식을 이렇게 거침없이 죽일 줄은 몰랐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이러려고 내게 도법을 보여달라고 한 건가?’
나율량은 자신이 보여준 도법의 일부 도초를 따라 해서 호종혁을 죽였다.
누가 봐도 자신의 종파에서 벌인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엽위선은 그제야 그의 진짜 목적을 알았다.
‘······사부님과 파부왕을, 아니 장능악 공자와 위소연 아가씨의 연합을 깨뜨리기 위함이구나.’
-꽉!
엽위선의 손에 힘이 들어갔구나.
아뿔싸 하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여기서 만약 진실을 밝히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르르륵!
그가 이렇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사이 죽은 호종혁의 몸에서 빙의되었던 원혼이 빠져나왔다.
이 원혼은 바로 위맹천이었다.
육신이 죽는 바람에 강제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된 위맹천이 혀를 찼다.
대공자 나율량의 목적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명도왕 문하의 손에 파부왕 자식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꾸몄으니 필시 두 왕이 부딪친다. 그리된다면 연합의 힘이 분산된다.’
어쩐지 검이 아닌 도법을 펼치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가만히 손 놓고 지켜볼 위인이 아니라 여겼지만 대공자 나율량은 정말 만만치 않은 자였다.
하지만 그 역시도 한 가지 예상 못 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빙의였다.
이대로 둘째 공자 장능악의 몸에 빙의해 있는 고찬에게 알린다면 진실을 밝힐 수 있다.
그리된다면 오히려 대공자 나율량은 두 오왕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거다.
‘기껏 암약을 꾸민 게 전부 헛되게 되었구······.’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촥!
‘헛?’
위맹천의 몸을 무언가가 갈랐다.
이에 당황해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곳에 오른쪽 안대를 벗고 있는 대공자 나율량이 보였다.
황금빛에 가깝고 동공의 초점이 점처럼 작은 눈동자.
마치 인간이 아닌 사나운 맹수의 흉폭함이 느껴지고 있었는데, 그 눈동자의 작은 초점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내가 보인다고?’
그는 자신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