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9)
11화 위험한 방문 (1)
그로부터 나흘 후,
연목검장의 장원에서 머지않은 한 우거진 숲.
죽립을 쓰고 낡은 책이나 기구들을 실은 배서함을 등에 진, 음양도가 그려진 남색 도복을 입은 사내가 한 손에는 검결의 수인을 또 다른 한 손에는 추(追)라고 적힌 부적을 쥔 채,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사내는 끊임없이 주술을 외웠다.
“천정지정 일월지정 천지합기정 일월합기명 신귀합기형 이심합아심 아심합이심 천심만심…..”
이것은 화합주(和合咒)이다.
소식이 끊긴 이를 만날 수 있는 법술의 일종인 초환화합법(招歡和合法)으로 이틀 사흘 내내 이것을 펼치며 주변을 수색 중이었다.
평소라면 이 술법으로 금방 누군가를 찾아내곤 한다.
하나,
‘가려졌다.’
아주 강하고 흉한 기운이 이를 가리고 있었다.
이것은 행방불명 혹은 평범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괴이나 술법의 힘이 개입되었다.
‘대체 누가?’
삭(朔)은 귀영각 내에서도 3인자라 할 수 있는 방기(方技)였다.
게다가 이매망량인 구여까지 식신으로 다루기에 황령 급의 원혼 정도는 혼자서도 제령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그런데 이리 당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네? 그럴 리가요?] [연목검장의 대부인이 보낸 서찰이다. 읽어 보거라.]서찰에는 협박에 가까운 항의가 적혀 있었다.
위약금 은전 삼천과 삭을 내놓지 않으면 귀영각을 몰살시킬 거라는 내용이 담겼다.
적혀 있는 내용대로라고 한다면 대부인이 화내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삭이 이런 짓을 벌일 리가 없었다.
[분명 뭔가가 있다. 그녀를 찾아서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내라.]해서 이렇게 밤낮으로 쉬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었다.
연목검장에서 움직이기 전에 서둘러 그녀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술법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파르르르르!
왼손에 쥐어져 있던 추(追)의 부적이 심하게 흔들렸다.
‘근처다.’
이에 사내가 추의 부적을 두 손으로 쥐고서 주술을 외웠다.
“……신구합덕 사귀만천 좌보우필 운재운전 수오구사 금폐사연신구 급급여율령!”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였다.
심하게 떨리던 부적의 글씨가 진해지며 절로 허공에 뜨더니 어딘가로 날아갔다.
-파락파락!
사내가 날아가는 부적을 따라갔다.
이윽고 부적이 어딘가에서 밑으로 꺾여서 내려갔다.
두터운 수풀에 가려져 있었는데 그곳을 지나가니 꽤나 가파른 절벽이 나왔다.
발을 헛딛으면 실족사 하기 쉬운 곳이었다.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며 비탈길을 찾아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에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부적을 발견했다.
그런데,
‘!?’
부적보다 그의 눈에 다른 것이 들어왔다.
그 주변이 사람이었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여기저기 육신의 파편과 말라버린 핏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이를 본 순간 사내는 절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이런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녀가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긴 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내가 마른 침을 삼켰다.
이건 절대 황령 급 정도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이 끔찍한 현장 만으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시신이 무사했다면 귀술로 어느 정도 상세히 알아낼 방법이 있겠지만 이래서야 확률이 낮아진다.
하나 별 수 없었다.
사내가 참사가 벌어진 한 가운데 바닥에 손을 갖다 댄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착! 착!
왼손으로 수인을 만들었다.
‘개(皆)! 투(鬪)! 전(前)!’
외박인, 외사자인, 그리고 이어지는 보병인.
구자활법의 수인이었다.
“삼인기명법. 북제께서 내게 권한을 주셨다. 하니 겪었던 모든 것들을 밝혀라. 급급여율령.”
-파르르르르!
바닥의 핏자국이 묻은 것들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맺혀갔다.
괴이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 혼(魂)과 남아있는 육신의 백(魄)마저도 손상되기 때문에 그 흔적을 주술로 끌어내기 힘들었다.
“모든 것들을 밝혀라. 급급여율…..헉!”
사내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그러더니 주마등처럼 찰나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박혀왔다.
-솨아아아아!
[묘신…….] [쿨럭쿨럭, 역살을 보낸 것을 받아쳤어요.] [방사이신가요?] [후우. 이제 조용하네요.] [어떻게 이매망량을 맨손으로?]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 했죠?]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머지않아….]-오싹!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흉흉한 기운과 함께 사내의 정신이 돌아왔다.
사내는 떨리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뭐, 뭐야?”
마지막에 삭이 느꼈던 엄청난 공포심과 함께 기억이 끊겨버렸다.
무언가가 그 부분만 삭둑 자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공포심과 두려움이라면 마지막 편린이 조금이라도 보일 텐데, 그런 것조차 없었다.
‘이상하다.’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서 공포에 빠진다.
한데 이 마지막에 끊긴 기억 전에 보았던 공포는 죽기 전에 느꼈던 공포가 아니라 뭔가 커다란 공포에 직면하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더욱 의문이 들었다.
기억들도 너무 순간순간으로 짧게나마 남아서 정확하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스쳐지나가는 일부 기억들을 통해 알아낸 것은 단 하나였다.
‘목경운……’
그 자가 삭의 죽음과 이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편린에 불과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기억이 있었다.
‘……..이매망량을 맨손으로 잡다니?’
방사들조차도 특수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 둘 중 하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이 목경운이라는 공자가 사전에 자신들이 짐작한 데로 황령에게 씌여 있어서 이런 것이 가능하든지.
아니면 영적인 재능이 타고 났을지도 몰랐다.
후자라면 대단한 재능이었다.
‘……..타고난 방사일지도.’
이런 재능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적인 흔적을 오감 중 하나로 조금이라도 느끼기만 해도 재능이 있다고 한다.
하나 조건을 갖추지 않고서 요기 덩어리 그 자체인 이매망량을 만지는 것은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영역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 목경운이라는 녀석과 접선해야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내가 허공을 힐끔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고조. 왠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될 것 같구나.”
그 말과 함께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바닥에 비친 수리 형태의 그림자가 날개를 펄럭이며 호응했다.
괴이한 것은 이 그림자 속의 수리의 머리에는 특이한 형태의 뿔이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 * *
저잣거리의 남쪽 끝 편 뒷골목에 자리 한 영란루.
영란루에는 질이 떨어지는 여러 파락호들로 넘쳐나는 곳이었다.
“크하하하핫.”
“마시라고. 오늘은 내가 전부 계산 할테니.”
“오늘 죽어보자!”
이런 이들로 인해 다른 손님들은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후우.’
그런 그들을 보며 입구에 서있던 호위 고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이 근처에 있는 유일한 정보 단체가 여기긴 한데.’
급이 꽤 떨어지는 곳이었다.
상중하로 따지자면 하급에 겨우 들어갈까 말까했다.
몰려 있는 자들만 봐도 수준이 한참 떨어졌다.
그러나 목경운에게 받은 명이 있기에 일단은 가까운 곳이라도 의뢰를 할까해서 왔다.
[이 표식을 아는지 물어봐주세요.] [네? 이걸 어찌?] [자세한 걸 알 것 없고 고찬 호위는 그냥 그 정보 단체인가 뭔가 하는 곳에 의뢰만 넣어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이게 뭘까?’
목경운이 보여준 표식은 꽤 단순했다.
하나 자신은 본 적이 없었다.
은퇴한지 꽤 오래 되었기에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살수 출신인 자신조차 모를 정도면 별 시덥잖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어딨지?’
이곳의 수장이 있을 거다.
급이 떨어지는 곳이기에 특별한 규칙은 없었고 돈을 주는 만큼 정보를 물어다 오는 곳이었다.
‘아 저깄군.’
이곳에 정착하면서 몇 번 안면을 튼 적이 있었다.
고찬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누군가를 불렀다.
“곽 루주.”
그의 부름에 객잔의 한 가운데 앉아 있던 취기로 가득한 사내가 일어나지도 않고서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그리고는 눈을 깜빡거리다 이내 고찬을 알아봤는지 화색을 띄며 일어났다.
“이야. 연목검장의 고찬 호위가 아니시오.”
오랜만에 봤지만 여전히 주색에 빠져 사는 인간이었다.
지금도 곁에 기녀로 보이는 여인을 끼고 있는데 꼴 보기도 싫었다.
고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의뢰할 게 있소.”
“의뢰?”
“값은 제대로 치룰 것이오.”
“알겠수다. 2층 집무실로 올라오시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리 보여도 예전에 하오문 방파 출신이라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보력이 그리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먼저 객실로 들어간 지 얼마 있지 않아 2층 복도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가 있어서 늘 저리 소리를 낸다.
‘살수로는 실격이지.’
살수의 기본은 은밀함과 기밀함에 있다.
물론 소양을 가진 자들은 드물다.
그때 객실 문이 열리며 곽 루주가 들어왔다.
“…….뭐 하는 짓이오?”
고찬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곽 루주는 한 여인을 옆구리에 차고서 들어왔다.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리고 짙은 화장에 가슴골이 보일만큼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기녀인 것 같다.
얼굴이 워낙 아름다워 눈이 가지만 이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이라오. 괜찮지 않소?”
“의뢰를 한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우리 쪽 아이라 들어도 상관없으니 그리 신경 쓰지 마시오.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어서 하시오. 어서 내려가봐야 하니.”
‘……이런 한심한 놈.’
고찬은 내심 살의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격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정말 수준 이하였다.
계속 이런 식이면 굳이 의뢰를 할 필요가 없을 듯 했다.
“내보내시오.”
“어허. 고 호위. 사내가 말이오. 풍류를…..”
“계속 이리 나온다면 그냥 가겠소.”
“…….”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곽 루주가 짜증스럽게 기녀에게 말했다.
“내려가서 얌전히 이 낭군님을 기다려라. 다른 놈팽이에게 안겨 있으면 각오하거라.”
그리고 엉덩이 쪽을 손바닥으로 치려하는데,
-탁!
기녀가 곽 루주의 손을 낚아챘다.
“어랏?”
“후우. 못해먹겠네.”
기녀가 짜증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년이!”
그런 그녀의 태도에 곽 루주가 어처구니가 없어하며 그녀의 얼굴에 손찌검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푹!
기녀의 손이 어느새 곽 루주의 귀에 닿았다.
그러자 곽 루주는 실이 끊어진 인형마냥 비틀거렸다.
“너!”
이 광경에 놀란 고찬이 황급히 단검을 빼들려 했는데, 기녀의 손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그의 혈 자리를 파고들었다.
-푸푸푸푹!
그것은 아주 얇은 비침이었다.
비침이 파고들자 고찬은 입을 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점혈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드르르!
기녀가 탁자에 있던 의자를 빼서 비틀거리는 곽 루주의 뒤로 밀어붙였다.
그러자 곽 루주는 자연스레 의자에 앉은 형태가 되었다.
물론 앞에서 보면 눈이 뒤집혀서 흰자만 보이는 것이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이건…..’
고찬이 가슴에 꽂혀있는 비침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살문 출신인 그가 이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영인비침?’
그것은 비살문의 문주이자 중원 사대 살수 중 한 사람인 비살염객의 독문암기였다.
* * *
비살문의 문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영인비침(瑛璘飛針)을 한낱 기녀가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대 문주 비살염객은 세수가 예순에 달한 자였다.
현역들에 비해 연배가 많다고는 하나, 그 실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이십여 년 간 사대 살수의 일인의 자리를 견고히 지켜왔었다.
한데 그런 그의 독문암기가 이 기녀의 손에 있다는 것은……
‘!!!’
고찬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제야 이 기녀의 정체를 알 것 같다.
‘서, 설마?’
비살염객에게는 한 명의 손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하채린.
불의의 습격으로 일가 모두를 잃고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었다.
비살염객은 이 남은 혈육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충분히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니까.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문주 제정신입니까?’
비살문의 모든 살수들은 비살염객이 그 하나뿐인 손녀에게 자신의 문주 자리를 물려줄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왜냐하면 그녀는 살수로서 도저히 맞지 않았다.
살수의 기본은 냉철한 이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손녀는 절대 그것과는 관련이 멀었다.
그녀는 성격파탄자 그 자체였다.
그 예쁘장하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욕지거리, 더러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결벽증, 분노조절장애…….
무엇 하나 살수와 맞지 않았다.
‘모두가 반대했건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가 4년 전이다.
은퇴하기도 전이었는데, 비살문의 간부들과 모든 살수들이 항의를 하자 비살염객은 그녀를 바로 잡겠다며 강제로 비살동에 폐관시켜버렸다.
‘무리다.’
모두가 절대 바로 잡힐 수가 없다고 확신했다.
불같은 성정을 무슨 수로 잡고 살수의 냉철함을 갖추게 만든단 말인가.
그렇게 그녀를 잊고 살았다.
은퇴하고 4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열아홉의 나이로 어엿한 여인의 모습을 갖추었을 거다.
‘어엿한……’
가슴골이 잡힐 만큼 훌륭한 가슴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라기는 정말 제대로 자랐다.
저런 고혹적인 얼굴이라면 웬만해선 누구라도 쉽게 넘어갈 것이다.
그때 그녀가 객실 벽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슉!
벽에 박혀있던 비침이 뽑혀져 나오며 그녀의 손목에 있는 완환(腕環)에 달라붙었다.
이걸 보니 확실히 비살염객의 독문암기인 영인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걸 쓴다는 것은 문주 자리를 물려받았음을 의미했다.
‘……그럼 백일백살에 성공했다는 건가?’
살수의 문파인 비살문의 문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 통과 의례가 있었다.
그것은 백일백살(百日百殺)이라 불리는 시험을 치러야 했다.
백일백살은 지정된 백 가지의 의뢰를 백일 안에 성공하는 것이 과제로 이것을 달성하게 된다면 사대 살수라고 칭해지게 된다.
‘말도 안 돼.’
그녀의 성정상 이것을 해냈다는 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니면 정말로 문주가 그녀를 어엿한 살수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단 말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결벽증이 심한 그녀가 파락호들 사이에서 참고서 술시중을 들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갱생의 여지가 있었던가.’
만약 그런 거라면 전대 문주가 존경스러워질지도 몰랐다.
그 성격파탄자를 사대 살수의 일인으로 기어코 키워냈으니 말이다.
그런 그의 귓가로 작게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씨발.”
‘…….!?’
기녀로 분장한 하채린이 뺨에 묻은 작은 핏방울을 닦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불쾌하다는 듯이 싸늘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에 욕지거리를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고쳐진 게 맞나?’
의구심이 들려하는데 그녀가 다가왔다.
다가온 그녀가 가슴에 박혀있던 비침 중 하나를 뽑았다.
그러자 고찬의 입에서 기침이 튀어나왔다.
“쿨럭쿨럭.”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혈을 막고 있던 침을 뽑은 듯 했다.
하채린이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서 드러나는 매끈한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했다.
“은퇴하신 분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고찬 아저씨. 아니면 전 하급살수 팔십삼 호라고 부를까요?”
‘빌어먹을.’
역시 하채린이 틀림없었다.
4년 전이라 잊혀 졌을 줄 알았는데, 몇 번 마주친 것만으로 기억했다.
고찬이 긴장된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가씨.”
“문주님.”
“네?”
“이제 문주님이랍니다.”
반신반의했는데 그의 짐작은 들어맞았다.
그녀는 현 비살문의 문주가 되었다.
이게 사실임이 드러나자 고찬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은퇴한 살수가 전 살수 집단 살수와 만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죽음뿐이기 때문이었다.
불안해하고 있는데 하채린이 말했다.
“은퇴해서 그런가 문주가 문주로 보이지 않나봐요.”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임 문주가 되신 걸 경하드립니다.”
“씨발. 엎드려서 절 받기네.”
‘………’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걸쭉한 욕에 고찬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봐도 예전에 알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 예쁜 얼굴로 저런 욕설이 튀어나온다는 게 참 어울리지 않았다.
하채린이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오랜만에 아는 분을 만나서 너무 편해졌나 봐요. 내숭 좀 떨고 그래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네요.”
“펴, 편하실 대로 하십쇼.”
“그럴 수야 있나요. 숙녀가 교양이 있어야 하잖아요.”
‘…….’
이제 와서 무슨 교양인가.
속으로 그리 생각했지만 고찬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입으로 내뱉을 용기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긴장되었다.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채린이 붉은 입술을 뗐다.
“누가 보면 잡아먹으려고 온 줄 알겠어요. 할아버님께서도 두 분을 어여쁘게 여기셨는지 감 아저씨와 함께 은퇴를 하는 걸 허락 하셨었잖아요. 하니 긴장 풀어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고찬이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내심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온 것인가 우려했었다.
그런데 이리 말하는 걸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 듯 했다.
‘하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그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을 노리고 온 게 아니라면 왜 이곳까지 신임 문주가 직접 나타나서 자신에게 영인비침을 사용한 걸까?
의아해하는데 하채린이 웃으며 말했다.
“잘됐네요.”
“네?”
뭐가 잘됐다는 거지?
“목가의 첫째 공자가 주색을 좋아한다해서 그 자를 통해서 연목검장으로 들어갔다 나오려고 했는데 고찬 호위와 같이 들어가면 되겠네요.”
‘!?’
고찬은 순간 무슨 소린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녀가 자신과 함께 연목검장을 들어가려 한단 말인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째서 저와 연목검장을?”
그 물음에 하채린이 고찬의 턱을 손끝으로 슬쩍 들어 올리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연목검장의 셋째 공자의 머리통을 가지고 갈까 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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