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95)
“그렇죠. 그래서 모색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요.”
귓가를 울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거기에 화들짝 놀란 대공자 나율량의 심복 모약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팟!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양 소매에서 비수 두 자루를 빼내 공중제비를 돌며 그대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날렸다.
-슈슉!
극도로 긴장해서 그런 것일까?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공중제비를 도는 와중이었음에도 그 존재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너무도 미형의 얼굴.
여인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존재가 날아오는 비수를 바라보며 살짝 고갯짓을 했다.
막을 생각이 없는 건가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파팍!
날아가던 비수가 공중에서 느닷없이 방향을 틀더니, 이내 공중제비를 돌고 있던 그의 어깨와 허벅지에 그대로 꽂히고 말았다.
-푹! 푹!
“아악!”
-쿠당탕!
본인이 날린 비수에 본인이 당한 모약이 제대로 착지도 못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이, 이런!”
이에 바로 뒤 옆에 있던 무음도 형인이 황급히 허리춤에서 매우 얇아서 휘어지기마저 하는 도를 빼 들며 갑자기 나타난 그 존재, 목경운의 목을 베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미처 닿기도 전에,
-챙강!
도가 부러지며 위로 튕겨 나갔고,
-팍!
“켁!”
도를 휘두르던 무음도 형인의 목이 목경운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져서 뭘 어떻게 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무음도 형인이었다.
당혹스러워하는데,
“아까 훔쳐보던 그 쥐새끼로군요.”
“컥컥······너······너?”
“할일이 끝났으면 가시죠.”
“가, 가라고?”
-콰득!
반문하는 형인의 울대를 목경운이 그대로 뜯어버렸다.
울대가 뜯겨나간 부위에서 피가 쏟아져 내리는 형인이 찢어질 듯이 커진 눈으로 비틀거리다 이내 뒤로 쓰러지며 대(大) 자로 뻗었다.
움찔거리며 피가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모습이 애처롭기마저 했다.
순식간에 두 명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자 나율량의 눈빛은 오직 목경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눈동자로 위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날아서라도 왔나?”
“네, 잘 맞추시는군요.”
“······.”
날아서 왔다라.
그렇다면 능공허도(凌空虛道)나 허공답보(虛空踏步)라도 펼쳤다는 건가?
희대의 경신법 중 하나인 명현수월보(明顯水越步)를 익혔기에 누구보다 보법에 능한 그 역시도 아직까지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속으로 일말의 부정을 해보았으나 역시,
‘······벽의 벽을 넘어섰군.’
순수한 무(武)로만 겨룬다면 승산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거다.
그리고 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에도 감정이 거의 희석된 것부터 시작해 여러모로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인간이라고 여겼기에 따르지 않을 거라면 당연히 죽여야 한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미숙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때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마치 잘 벼려진 검처럼 완성된 느낌이 강했다.
‘강해졌다라······.’
나율량의 눈동자가 미세하지만 계속해서 움직였다.
목경운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척 상황이기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대결의 양상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찰나에 수십, 수백 번을 새겨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놈은 완전히 괴물이 되었다.
-주륵!
이마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나율량이 손등으로 그것을 훔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식은땀이었다.
이를 본 나율량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수련하면서 흘러내린 땀 이외에 이런 땀을 흘려본 적이 있던가?
살면서 무언가에 긴장해본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삶과······죽음······. 나는 그 기로에 서 있나.’
기로.
참으로 재밌는 기로다.
삶으로 가는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죽음으로만 점철된 기로.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좀 더 감정적으로 바뀐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합리적인 분이라 그런지 현실이 금방 와닿나 보군요.”
“승산이 보이지 않으니 딱히 부정하진 않겠다.”
“선택권을 드리죠.”
“선택권?”
“네.”
“쓸데없는 희망 고문을 하려나 보군.”
“좀 더 삶을 누릴 기회 정도로 여기시죠.”
“그 선택권이라는 게 뭐지?”
“스스로 사지의 근맥을 절단하고 단전을 파괴한다면 목숨은 붙여드리죠.”
“무인에게 죽으라는 말과 큰 차이가 있나?”
“무인으로서 죽음이 목숨과 동일하다면 이대로 죽으셔도 되고요.”
“훗.”
나율량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그의 반응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나율량이 어딘가로 손을 뻗었다.
술상 옆에 놓여 있던 검집이 허공섭물에 의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탁!
검집을 쥔 나율량이 입을 열었다.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도 그런 식으로 살 생각도 없다. 하나 이왕 갈 거라면 무인으로서 가는 건 나쁘지 않겠군.”
“훌륭하군요.”
“마음에도 없는 소린 집어치워라. 어차피 무림을 떠나서 세상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다. 약하면 도태되는 것이 섭리이고 이번엔 그게 나였을 뿐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참 씁쓸한 순간이었다.
거의 팔성(八星)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게 되었는데도 놈이 더욱 강해진 덕분에 약자가 되어버린 상황이 우습기마저 하다.
오른손으로 검병을 꽉 쥔 나율량이 이내 쓰고 있던 안대를 벗으려고 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도 발버둥은 쳐야 하지 않겠는가.
목경운 역시도 검결지를 쥐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시정지암(時停止暗).”
-츠츠측!
눈을 깜빡인 것처럼 잠시 세상이 어두워졌었다.
그와 함께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에 눈앞에 있던 대공자 나율량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너무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의아해졌다.
기척의 움직임도, 기의 유동도 없었는데, 도중에 눈앞에서 사라진 것도 모자라······.
-우르르르르!
주변에 수많은 기척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굉장히 많다.
이 역시도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나타났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에 목경운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후원에 있던 정자 기와에 걸터앉아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쪽의 소행인가요?”
“호오.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제법 당혹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냉철함을 잃지 않다니. 과연 대단하군.”
거리를 두고서 정자 기와에 앉아 있는 자.
그자는 장로전의 사자인 율명이었다.
끔찍한 화상의 흔적으로 가득한 율명의 얼굴을 본 목경운은 자신을 술법으로 추적하려 했던 그 자임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갑자기 대공자 나율량이 사라지고 그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스륵!
목경운의 눈동자로 삼안(三眼)의 요력이 개방되었다.
그러자 자신의 주변으로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주력이 느껴졌다.
그것이 마치 공간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는지 아직도 주변의 흐름이 불안정했다.
이를 살피던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이건 무슨 술법이죠?”
그 물음에 장로전의 사자 율명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설마 하는 마음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주력의 파동을 읽어낸 건가?
“원살각주 인서옥이 남긴 사문 기록에 방월 조의공이 뛰어난 재능 때문에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니 정말이었군.”
그런 그의 말에 목경운은 전혀 개의치 않는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이 정도 주력은 아무리 뛰어난 방사라도 가질 수 없을 듯한데, 법구나 특별한 매개체의 힘을 빌린 건가요?”
“하?”
“맞나 보군요. 아마도 저만 잠시 멈추게 한 건가요?”
‘!?’
그 물음에 장로전의 사자 율명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뭔가 놀란 듯했다.
입을 벌리고서 미간을 꿈틀거리던 율명이 이내 말했다.
“······네놈 대체 뭐냐? 그걸 어찌······.”
“바닥에 흘려진 핏자국이 전각 바깥 방향 쪽에 있는데, 분명 쓰러진 상태로 움직이질 않았는데, 저기서 저걸 남기고 사라졌다는 게 특이하지 않나요?”
‘피?’
목경운이 쳐다보는 곳에는 아주 희미한 몇 방울가량의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흔적은 전부 지웠지만, 이것은 미처 찾지 못한 듯했다.
만약 율명의 두 눈이 보였다면 이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만큼 찾기 힘든 흔적을 단번에 찾아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많은 자가 이렇게 가까이로 다가오는데, 기척 한 번 느끼지 못했다는 건 저 혼자 뭔가 동떨어져 있다가 이곳에 갑자기 떨어져야 그나마 가능한 일인데······. 아아. 혹시 저를 특수한 술법 같은 걸로 잠시 다른 곳에 분리해 뒀었나 보군요. 아니 단순히 공간만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에서마저 분리해낸 건가요?”
‘!!!!!’
그 물음에 율명이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방술을 배웠었기에 주력을 느끼는 건 그럴 수 있다지만 이 통찰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일부 상황만으로 신기(神器) 시정지암(時停止暗)을 쓴 것을 알아냈다.
시정지암은 삼황오제 시절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선인의 신기로, 자연적으로 주력이 쌓여야만 쓸 수 있는 보물이었다.
다만 이 신기는 여타의 신기들에 비해 그 조건이 꽤 까다로웠다.
가령 한 번 쓰고 나면 주력이 전부 소진되기에 다시 모아야 하는 것도 있었고, 쌓여있는 주력이 발휘되는 것은 고작 그 천(千)분지 일에 불과했다.
천 년 동안 주력이 쌓이게 되면 원하는 대상을 그 천분지 일인 일 년 동안 세상의 시공간에서 완전히 분리해낼 수 있다.
그것은 신기(神器)라 불릴 만큼 절대적이었기에 어떠한 존재라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놈 대체 뭐지?’
아무리 방술을 배웠다고 해도, 또 아무리 통찰력이 강하다고 한들 이건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기에 단숨에 추리해내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짧은 찰나에 신기가 어떤 짓을 했는지 정확히 파악해냈다.
‘괴물 같은 놈이구나.’
장로전의 사자 율명이 진심으로 혀를 내둘렀다.
필요할 때마다 신기를 써왔기에 주력을 얼마 모으지 못해 고작 반 각밖에 가두지 못했다.
그러나 짧게 갇혔기에 더욱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텐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놈이다.
놀라는 한편으로 율명은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놈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말이다.
듣자 하니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무위가 벽의 벽을 넘어서고 방술마저도 이 정도 재능을 지닐 정도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인재였다.
이에 율명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정말 머리가 좋군. 내가 여태껏 봤던 자 중에 자네만큼 영리한 자는 없었던 것 같네.”
“칭찬이라면 감사하다고 해두죠.”
“그래서 말인데······.”
“회유라면 거절하죠. 그보다 대공자는 어디로 빼돌렸죠?”
“······.”
말을 꺼내기도 전에 거절하다니.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단호한 녀석이었다.
아무래도 회유는 정말로 힘들 듯했다.
이에 장로전의 사자 율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걸 순순히 알려줄 거라 생각하나?”
그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본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그 입에서 대공자가 어디로 갔는지 나올 수도 있겠지요?”
-고오오오!
목경운이 일부러 살의를 드러냈다.
이것은 명백한 위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명은 아무렇지 않은 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것 참 무섭구만. 그래. 한데 그건 힘들 걸세. 대공자는 이쪽에 매우 중요한 존재이니 말일세.”
“그런가요? 그럼 직접 찾는 수밖에 없겠군요.”
피가 남아 있는 흔적을 본다면 그리 오래 갇혔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추적할 여지는 있었다.
굳이 이곳을 에워싸는 인원을 전부 상대할 필요도 없었고 저자만 처리하고 가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던 찰나였다.
-팍!
그때 동쪽 편 담벼락 위로 누군가가 나타나 올라섰다.
그 누군가는 날카로운 인상의 한 백발노인이었는데, 그의 손에 목덜미가 잡혀 있는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그는,
‘목유천?’
연목검장에서 자신과 함께 볼모로 잡혀온 배다른 형제인 목유천이었다.
물론 정확하게는 진짜 목경운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강제로 잡혀 왔는지 얼굴에 상처 자국들이 보였다.
-짝짝짝!
율명이 손뼉을 치며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주 제때 도착했군요.”
그 말에 백발의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목유천의 목을 짓누르며 말했다.
“고작 반 각 안에 이런 놈을 데려오라니 이 노구를 참 번거롭게 하는구나.”
“그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찌 되었든······.”
-슥! 탁!
율명이 걸터앉아 있던 기와에서 내려오더니, 목경운을 향해 이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상황은 반대가 되었군. 자네의 똑똑한 머리로 내가 무슨 말을 할지 한 번······.”
“그냥 죽이시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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