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98)
-주인이여. 저 인간에게서 육마(六魔) 중 최악이라 불리는 백면왕(百面王)의 요기가 느껴진다.
‘!?’
영수 백화독곡의 진지한 경고에 대법사 명률이 미간을 찡그렸다.
백면왕이라고?
그는 문득 한동안 잊고 있던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어째서지? 어째서 굴복시킬 수 없는 거지?]대법사 명률이 의망주언(意忘主言)의 술법이 통하지 않자 실망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분의 도움과 꽤 많은 희생을 통해 겨우 제압했다.
한데 기껏 준비된 술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영수 중에서 우두머리급이라 불릴지라도 이 술법은 이와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는 영수마저 굴복시켰는데 어째서지?
의아해하는 그에게 상처투성이가 된 백화독곡이 말했다.
-그 괴물 같은 자 덕분에 굴복시켰다고는 하나 육마(六魔)는 우리와 같은 보통 영수(靈獸)들과는 완전히 격이 다른 존재다.
[일반적인 영수들에 비해 강한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 해도 굴복시킨 존재가 어찌하여 이리도 의지가 강하단 말인가?]-그들의 강함은 영수를 초월했고 한없이 신수(神獸)에 가깝다.
[신수는 실재하지 않는다.]-실재한다. 그저 그들의 힘을 세상이 견디지 못할 뿐이다.
[세상이 견디지 못해?]-신수에 이르는 시점에서 그 존재는 완전히 순리(順理)를 벗어난다.
[순리?]-이 세계를 지탱하는 것이 순리다.
[······섭리와 같은 이치인가.]-비슷하다. 다만 섭리란 이치의 영역이 아니라 원리와 법칙의 영역이다. 순리는 좀 더 흐름과도 같다.
이런 백화독곡의 말에 대법사 명률이 혀를 찼다.
영수를 굴복시켜 식신으로 만들고 방사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기에 방술로서 최고의 영역에 이르렀다고 여겼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대법사 명률이 쓰러져 있는 존재의 황금빛 갈기를 움켜쥐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식신으로 부리는 것은 불가능하겠군. 뭐 상관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것은 얼마든지 활용도가 넘치니까.]-······.
[백화독곡. 네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육마(六魔)가 있다면 말해라.]이런 그의 요구에 백화독곡이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괴물이 도왔다고는 하나 이런 요행이 또 다시 통할 것 같나?
[요행?]-사타왕(獅拕王)은 아주 오래전 백붕마왕(白鵬魔王)과의 싸움으로 약해진 상태이기에 겨우 잡을 수 있었던 거다. 하나 온전한 상태의 육마(六魔)는 완전히 다르다.
[온전한 상태의 육마?]-그래. 그들의 힘은 주인 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리고 그런 육마 내에서도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될 존재 둘이 있다.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다른 육마들 역시도 그 격이 일반적인 영수들은 감당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
너무도 진지한 경고에 대법사 명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둘은 대체 뭐지?]-대력왕(大力王)과 백면왕(百面王). 혹 그 존재들과 조우하게 된다면 만약, 혹시, 설마하는 그런 일말의 기대감은 버려라.
* * *
꽤나 오래 전에 나눴던 대화였다.
그때 이후로 더 이상 육마(六魔)라 불리는 존재들과 마주칠 기회가 없었기에 까맣게 잊고 지냈었는데 이제 떠올랐다.
금빛 털을 가진 아홉 꼬리의 대여우 이매망량. 백면왕(百面王) 금모구미(金毛九尾).
육마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대력왕(大力王)보다 더 최악이라 불리고 그 존재의 악의(惡意)는 수많은 나라와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었다고 들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은나라와 주나라다.
‘······백면왕. 금모구미호.’
목경운 저자에게서 그 존재의 요력이 느껴진다고?
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의아해하던 대법사 명률이 물었다.
“백면왕의 요력이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하면 저놈이 설마 백면왕이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다. 하나 요력의 잔향이 잔뜩 베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요력의 잔향?”
이들의 대화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아마도 금모구미호가 자신에게 주었던 꼬리로 만든 장신구를 말하는 모양이다.
영수라면 그래도 육마(六魔) 바로 아래일 텐데 저런 존재마저도 금모구미호를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저리 의식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 격이 다른 듯했다.
대법사 명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요력의 잔향이든 뭐든 간에 백면왕 자체는 아니라는 거로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주인.
“뭐?”
-······저 정도로 강하게 요력의 잔향이 베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백면왕이 소유한 존재이거나 그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해서 뭘 어쩌자는 것이냐?”
-섣불리 저 인간 놈을 건드리면 백면왕의 진노를 살 수 있다.
영수 백화독곡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법사 명률이 이내 코웃음을 쳤다.
“오히려 잘됐군.”
-잘······됐다고?
“그렇지 않아도 그분께선 더 많은 패를 필요로 하신다. 또 다른 육마(六魔)를 끌어낼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주인······. 백면왕은 완전히······.
“그만. 어차피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리고 어차피 저자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하니 식신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라.”
-······.
주인을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영수 백화독곡이 입을 다물며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아아아.’
만약 식신이 된 처지가 아니라면 이 자리를 당장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어차피 명률이 연(緣)으로 강제로 명을 내린다면 그대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데다 그가 작정하고 연을 끊어버리면 자신의 목숨마저 거둬갈 수 있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명대로 해야만 했다.
“놈을 먹어치······.”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백화독곡의 하얀 불꽃으로 일렁이는 꼬리가 채찍처럼 움직이며 무언가를 쳐냈다.
-파앙!
그와 함께 목경운이 십여 보 떨어진 곳에서 요검 악즉으로 무언가를 막은 듯 한 자세를 취한 채 착지했다.
이 모습에 대법사 명률이 속으로 혀를 찼다.
‘방심 못 할 녀석이구나.’
자신은 녀석이 움직인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공자 나율량의 말대로 정말 벽의 벽을 넘어서 육천(六天)에 버금가는 경지에 이른 게 확실한 듯했다.
그 역시도 호신을 위해 무공까지 익혔지만 무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러나,
“방신(方神)의 칭호를 받은 방사가 어떻게 싸우는지 알려주마.”
그 말과 함께 그가 왼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작게 술법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목각인형 중 하나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강한 요력이 피어오르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팍!
그 존재는 그렇게 커다란 존재는 아니었다.
마치 인간의 형태와 비슷했는데, 정확하게는 원숭이를 닮아 있었다.
이마에 두 개의 붉은 반점이 있고 몸에 꽃무늬 문양과 함께 작은 가시 같은 것이 잔뜩 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입이 양귀까지 닿을 만큼 크고 웃는 상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보자마자 청령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마수 급이나 되는 이매망량을 저렇게 봉해서 데리고 다니다니.
-······마수(魔獸)인가요?
풍기는 요력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유알(幽頞)이다.
마수魔獸) 유알(幽頞).
단훈산(丹熏山)의 북쪽 변춘산에 서식하는 이매망량으로 그 몸놀림이 너무 빨라 실체를 발견하기 힘든 존재였다.
과일이나 풀잎을 먹는 습성 때문에 다른 이매망량들과 달리 인간들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도 괜히 마수라 불리는 것이 아닌 게 풍겨 나오는 요력이 굉장했다.
한 단계 격이 높은 이매망량인 영수 백화독곡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 요력을 가진 이매망량이라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대법사 명률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자 영수 유알이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명률의 어깨에 오르더니, 이내 등에 업히듯이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팍!
이에 뭔가를 하려 한다고 여긴 목경운이 움직이려 하자,
-크워어어어어!
영수 백화독곡이 포효와 함께 목경운을 향해 입을 벌리며 불꽃을 뿜어댔다.
-화르르르르륵!
방사된 불꽃이 이내 부채꼴 형태로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목경운과 함께 그 반경을 그대로 뒤엎었다.
기세를 살려 백화독곡이 더욱 요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토해내던 불꽃이 이내 주홍빛에서 푸른빛, 그리고 하얗게 변해갔다.
불꽃의 색이 변하자 굉음과 함께 후원의 바닥이 타들어 가는 것을 넘어서 닿는 즉시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죽었나?’
하얀 불꽃을 연신 뿜어대던 백화독곡은 불꽃 속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목경운이 죽었나 싶었다.
그런데,
-촥!
그 순간 불꽃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날아온 목경운이 백화독곡의 목을 베려 했다.
-어딜!
그러나 찰나에 백화독곡이 거대한 앞발을 휘두르며 목경운을 쳐냈다.
-차앙!
물론 백화독곡의 앞발 발톱을 목경운은 악즉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거기에 실려 있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는지 앞발을 휘두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열 장 정도 거리까지 튕겨 나가자 목경운이 도중에 허공을 박차며 다시 백화독곡에게 날아가려 했다.
그러는데,
-스륵!
그런 목경운의 뒤쪽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그 존재가 목경운을 향해 두 손을 깍지 끼고서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그러나 그 기척을 읽어낸 목경운이,
-차앙!
요검 악즉을 위로 들어 올려 이를 막아냈다.
악즉의 검신으로 공격을 막아낸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공격한 존재는 대법사 명률이었는데, 그의 몸 전체로 갑주처럼 꽃무늬 형태의 갑주가 걸쳐져 있었다.
대법사 명률에게서 주력과 함께 굉장한 요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건?’
“인요일체(人妖一體).”
-파아아앙!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법사 명률의 발차기가 목경운의 안면을 전광석화처럼 노려왔다.
그것이 어찌나 빠르고 위력이 있던지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풍압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촥!
정말로 목경운의 신형이 발차기에 의해 찢겨나가고 말았다.
그런데 대법사 명률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스르륵!
그것은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수법으로 인해 남아있는 목경운의 잔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피해?’
마수 중에서 그 몸놀림이 굉장히 빠른 유알이었기에 인요일체가 되면서 그 역시도 속도가 올랐다.
그런데 목경운의 움직임을 일순간 놓쳤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그에게서 십여 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나타났다.
“잘도 피하는구나.”
“몸에 두른 것은 마수 유알인가요?”
목경운의 물음에 대법사 명률의 귀가 쫑긋거렸다.
경험 많은 방사들조차 이매망량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를 한눈에 알아보는 걸 보니 내심 방술에 대한 지식이 어지간한 방사들 이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꽤 특이하군요.”
흥미를 보이는 목경운의 말에 대법사 명률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마수 유알은 이매망량 중에서도 스스로의 몸을 변형시켜 인요일체(人妖一體)가 가능하지.”
그것 때문에 애써 변춘산까지 가서 겨우 사로잡았다.
인요일체의 수법 덕분에 알유의 몸을 갑주처럼 두르게 된 그의 육신은 주력과 요력마저 합쳐지며 벽의 벽을 넘어선 현경의 고수와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백화독곡. 백화형(白火形).”
-크워어어어어어!
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영수 백화독곡이 포효를 내지르더니, 이내 집채만 했던 몸이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범 정도의 크기가 되더니 전신이 하얀 불꽃으로 뒤덮였다.
-화르르륵!
대법사 명률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말했다.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크기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백화형으로 변한 영수 백화독곡의 요력은 더욱 응집되어 그 위력이 올라갔고 속도 또한 몇 배나 빨라진다.
“백화독곡과 나의 합공은 설령 현경의 경지에 이른 대종사라 해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이다.”
-슥!
그렇게 대법사 명률이 백화독곡과 시선을 교환하며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목경운이 갑자기 검집으로 요검 악즉을 집어넣었다.
소리에 민감한 명률은 그것을 의아해했다.
“설마 포기하는 것이냐?”
“네.”
이런 목경운의 대답에 대법사 명률이 내심 코웃음을 쳤다.
자신을 우습게 여긴 모양이다.
유알과 인요일체를 하면서 오감과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이 더욱 예민해진 그였다.
기운을 거둬들이는 것 같지만 무언가 공기가 들끓는 게 느껴진다.
아마도 방심을 유도하고서 공격하려는 모양인데 그건 눈이 보이는 자들이나 속을 법한 속임수였다.
그런데,
“적당히 힘 조절하는 건 그만두도록 하죠.”
“뭐?”
지금 무슨 헛소리를······.
-우우웅!
그 순간 사방으로 몰아치는 날카로운 예기에 대법사 명률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소름이 돋아났다.
대체 이게 뭐지?
검집으로 검을 집어넣었는데 어째서 검이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 거지?
이를 의아해하던 순간이었다.
-촥!
-크워어어어어어어!
고막이 떨어질 것만 같은 영수 백화독곡의 포효 소리가 귀를 울렸다.
‘!?’
그런데 이건 아무리 들어도 포효가 아닌 듯했다.
뭔가 고통이 섞인 비명에 가까웠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