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09)
지고의 경지라 할 수 있는 현경(玄境).
그것은 무(武)에 대한 깨달음이 하늘(玄)에 닿았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무를 갈고 닦는 이들이 벽을 넘어서 조화로움에 이르길 바라고 하늘에 닿기 위해 평생을 매진한다.
그러나 그 조화로움에 이르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거기서 더 높은 영역인 하늘에 닿는 자는 더더욱 드물었다.
평생을 바쳐도 일류에서 절정, 초절정의 단락을 넘어서지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었지만 그 수많은 무인 중에는 단연코 타고난 천재들이 존재했다.
당대 천지회주 비중선은 그 천재에 속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타고난 무재로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고 한 번도 깨달음의 벽에 막혀본 적이 없이 화경(化境)에 이르렀다.
[······과연. 그런 것인가.]자신의 이런 재능을 두고서 부친이 보였던 반응이었다.
무정할 정도로 모친과 자신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였지만 오히려 벽을 넘어선 그때부터 달라졌다.
그가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직접 무공 지도마저 해주었다.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보이는 부친의 관심이 처음에는 의구심으로 다가왔던 그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친의 그런 관심과 세심함이 싫지만 않았던 그는 더욱 무공에 매진하게 되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지고의 경지라 불리는 현경에 이르렀다.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현경에 이른 그날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간 위로 올라가는 길이 탄탄대로였다고는 하나 현경의 경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 역시도 벽에 부딪혀 오랫동안 정체되었었다.
그러나 그 인고를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어 벽을 부수고 현 무림에서 고작 셋밖에 이루지 못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버님! 아버님!]비중선은 부친이 이를 알게 되면 크게 기뻐하리라 여겼다.
그렇게 한달음에 달려간 그는 부푼 기대감에 차서 부친에게 이를 알렸는데,
-흠칫!
비중선은 부친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말았다.
[과연······. 과연 그렇구나.]기쁘다는 듯이 답을 하는 부친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과 얼굴은 아들을 향한 자랑스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맹수나 약탈자가 먹잇감을 바라보는 눈빛에 가까웠다.
그래. 바로 그건 탐욕(貪慾)이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상반된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감정을 부친에게서 읽게 된 그는 그날 후로 지금까지보다 더 긴 정체에 갇히게 되었다.
* * *
대재앙의 날 이후 무림은 오랫동안 정체기를 맞이했다.
구무림 시절의 무서와 상당수의 기록이 소실되었지만 남아있던 몇 안 되는 고서들을 통해 지고의 경지라 불리는 현경을 넘어서는 더 높은 경지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생사경(生死境)의 경지였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그 의지를 초월할 수만 있다면 이룰 수 있는 극(極)의 경지.]목경운의 주변으로 생겨나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기(氣)로 이루어진 세 자루의 영롱한 검(劍).
그것은 바로 무형검(無形劍)이었다.
이를 알아본 이들이 있는지 광장 아래가 크게 술렁였다.
“이럴 수가······.”
“무형검이라고?”
무형검.
오직 검극(劍極)에 이른 자만이 가능한 수법으로 단순히 검에 대한 이해만이 아닌 기에 대한 깨달음 역시도 현경의 경지를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그렇다는 건,
“새, 생사경!”
생사경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틀림없었다.
지금 목경운이 보이고 있는 저 세 자루의 무형검은 그가 생사경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꽉!
주변에서 들리는 탄성과 경악 소리에 대공자 나율량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목경운······. 네놈은 대체······.’
사고가 닫힌 것은 아니었기에 그가 자신보다 강해진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인정 속에는 아무리 무재가 뛰어나다고 해도 천지회 밖으로 나가 여러 기연을 맞이했기에 가능했던 거라 여겼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앞서 현경의 경지에 이르렀다 생각했다.
그런데 놈이 현경을 넘어서 사부님인 당대 회주조차 이르지 못한 전설이라 불리는 생사경에 이르렀다고 하니 속이 뒤집힐 만큼 화가 났다.
‘······날 가지고 논 것이냐?’
애초에 놈은 자신을 일수에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고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율량은 알 수 있었다.
이미 놈의 안중에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었음을 말이다.
‘네놈은 이 나를! 끄으으으.’
분하다.
이렇게 분한 적은 평생 처음이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호적수란 존재가 생겼다고 여겼는데, 그것은 그저 자신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공자······.’
모약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쓰라려했다.
한순간도 자신감을 잃은 적이 없었던 그 오만하기 그지없던 나의 주군 나율량이 이렇게까지 누군가로 인해 시기심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어째서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 불리던 대공자 나율량의 앞에 저런 괴물이 나타나게 된 걸까?
모약이 고개를 들어 광장의 허공에 떠있는 목경운을 바라보았다.
-슉!
목경운이 움직였다.
그가 검결지를 앞으로 뻗는 순간,
-스륵!
그의 곁에 있는 세 자루의 무형검 중 하나가 회주를 향해 쇄도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움직이는 순간 형태가 사라지며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와 대치 중인 회주에게는,
‘온다.’
자신의 가슴을 단숨에 뚫으려 하는 무형검이 정확하게 보였다.
회주가 검결지를 뻗자 그의 주변에 날개처럼 활짝 펴져 있던 열두 자루의 이기어검강 중 네 자루가 방패처럼 겹쳐지며,
-채아아아아앙!
질주해오는 무형검을 막아냈다.
-파아아앙!
그러나 그렇게 네 자루의 이기어검강을 교차해가며 무형검을 막았음에도 그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회주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갔다.
‘이 정도까지인가.’
회주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검극(劍極)이라 불리는 무형검이기에 당연히 검강을 상회하는 위력을 지녔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우웅!
‘옆!’
회주의 우측 편으로 손을 뻗자 네 자루의 이기어검강이 네 명의 고수들이 합공을 하듯이 검초를 펼치며 수십의 날카로운 궤적을 만들어냈다.
-파치치치칙!
그 궤적 사이로 푸른 불꽃이 번개처럼 튀어 오르며 무형검 한 자루가 막무가내로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틈이 없다면 강제로라도 만들겠다는 것이냐?’
-흠칫!
혀를 내두르던 회주의 눈빛이 어딘가로 향했다.
-슥!
회주가 황급히 왼손 검결지를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곁을 지키던 나머지 이기어검강 중 두 자루가 회주가 검결지를 뻗은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슈슉!
그곳에 아무도 없었는데,
-채앙!
이기어검강의 궤로 한가운데 누군가 나타나 이를 쳐냈다.
바로 목경운이었다.
무형검을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목경운은 이미 움직임에 있어서 지상과 허공과 상관없이 초고속 이동으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수준에 이르러있었고, 여기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 종적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육천(六天)의 칭호를 받은 존재이며 현경의 극(極)에 이른 대종사답게 회주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했다.
-채앙!
어느새 바로 앞까지 파고들어 직접 휘두른 무형검을 회주가 쥐고 있던 보검 숙명(宿命)으로 이를 막아낸 것도 모자라, 목경운의 등과 좌측 갈비뼈 쪽으로 이기어검강 두 자루를 쇄도시켰다.
물론,
-파차차창!
목경운은 무형검으로 보름달 형태의 궤로를 그려내는 것만으로 이기어검강 두 자루를 가볍게 튕겨내 버렸다.
그리고 여기서 모자라,
-팟!
찰나에 왼손의 검결지로 회주의 우측 어깨를 적중시키며,
-푹!
“큭.”
-챙그랑!
그가 자신의 보검인 숙명을 손에서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어깨로 파고든 예기로 인해 오른팔 전체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무뎌진 회주는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합!”
회주가 기합과 함께 목경운을 향해 검결지를 휘둘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열두 자루의 이기어검강이 일제히 날아들어 진세를 만들어 목경운의 주요 요혈들을 노려왔다.
‘십이검천진(十二劍天進) 제 3식 무궁무진(無窮無盡)!’
이기어검강들이 만들어낸 합격 검진으로 그 위력은 통상의 초식을 넘어선다.
이것으로 목경운을 패퇴시킬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적어도 그로부터 거리를 벌릴 수 있는 시간은 벌어주리라.
그런데,
-채차차차차차창!
목경운이 무형검으로 펼친 마검공(魔劍功) 제 1초식의 스물네 개의 식이 절묘한 검의 궤로를 만들어내 열두 자루의 이기어검강들의 진세를 막아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서 제 2초식이 이어지며 검세가 발산되며 이기어검강들이 맞물리는 궤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내 힘을 잃고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파차차차차창!
그로인해 심지어 절반 가까이 되는 검 자루가 부서지기마저 했다.
‘이런······.’
이렇게 산화되듯 푸른빛 강기와 검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는데, 그 사이로 목경운의 무형검이 파고들며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는 회주의,
-촥!
“끄읍!”
오른팔을 전광석화처럼 베어버렸다.
회주의 팔이 잘려나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두 사람의 신형이 육안으로 보이게 되자, 광장 아래서 탄성과 탄식이 교차했다.
‘해, 해냈어!’
‘회주의 팔을 베다니!’
탄성을 지른 이들은 목경운을 따르기로 한 지지 세력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지회의 수장이자 최고의 고수인 회주와의 대결이었기에 긴장을 금치 못하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회주의 팔이 잘려나가는 광경을 보는 순간 함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반면,
‘아아아······.’
탄식으로 가득 찬 쪽은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신구(新舊)의 하늘(天)의 칭호를 받은 무림 정점들의 대결이자, 현경의 극(極)과 생사경에 이른 최고의 경지에 이른 절대자들의 목숨을 건 경합이었다.
비록 새로운 하늘인 천마(天魔) 목경운이 생사경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회주는 오랫동안 무림의 정점으로 있었고 그 오랜 경험을 무시할 수 없기에 지켜보는 이들로서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럴 수가······.’
‘역시인가.’
경지에서 오는 그 간극.
그것은 아무리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회주라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끝내 검극인 무형검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건가?
-슥!
목경운이 승부를 마무리 지으려는 건지 회주의 목에 무형검을 겨냥했다.
그러자 다소 거칠어진 호흡으로 잘린 팔에 지혈점을 누르고 있던 회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원한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군.”
“······.”
“그분을 향한 분노가 고작 귀신 씐 육체로 하여금 이런 경지에마저 이르게 만들었나? 망령, 아니 월맥의 시초 류소월이여.”
‘!?’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천맥의 일족인 회주가 뭔가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의 입에서 설마 청령의 진짜 이름이 거론될 줄은 몰랐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