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12)
입꼬리가 올라가는 목경운.
얼핏 화사해 보이는 그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가져올 만큼 악의(惡意)로 가득했다.
이것은 살육(殺育)과 아비규환(阿鼻叫喚), 피(血), 그리고 고통(苦痛)······. 그 모든 것을 자행한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보는 순간 나율량은 빠르게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저 속에 들어 있는 존재가 원혼(寃魂)이라고 한다면 이런 지독한 음(陰)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기는 하나 뭔가 미묘하다.
‘원혼으로서 격이 올라간 건가?’
봉해져서 더욱 원한이 깊어졌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청령(靑靈)의 격에 이르렀을 것이다.
분명 청령의 격이라면 그럭저럭 위압감이나 경계심을 줄 수는 있다.
그런데 이 감각은 대체 뭐지?
이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백 년이라는 세월이 더욱 원한을 깊게 만들었다고 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류소월이 과연 이런 얼굴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의 감각마저 위협할 정도일 수는 없었다.
“너······.”
-솩!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기도 전이었다.
어느새 발검한 목경운의 요검 악즉이 나율량의 목을 베려 들었다.
그러나 이를 나율량이 고개를 가볍게 뒤로 젖히며 검을 피했는데, 목경운이 이를 도중에 방향을 틀어 역으로 다시 한번 목을 노렸다.
그러자,
-슥!
-파앙!
목경운의 검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이내 튕겨 나가고 말았다.
-촤르르!
목경운의 신형이 뒤로 그대로 세 보가량 밀려났다.
더 밀려날 듯한 기세였지만 도중에 발이 바닥에 박힌 것처럼 멈춰지며, 그 발바닥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졌다.
-쩌저저적!
갈라진 땅바닥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왔다.
“그 찰나에 기운을 용천혈로 흘려보내다니. 제법이군.”
나율량의 칭찬에 목경운이 가늘어진 눈매로 입을 열었다.
“······배의 식.”
목경운은 자신의 검세를 튕겨낸 이 기묘한 수법이 파사팔식(破思八式)의 일식인 배(排)의 식(式)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게 배의 식이라고?
-네.
확실했다.
파사팔식은 전조가 없이 발휘되는 기묘하기 그지없는 절학이었다.
이에 청령 역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도 그렇고 목경운이 알고 있는 배(排)의 식은 기운을 찰나에 닿기도 전에 흘려보내는 수법이다.
파사팔식이 수련을 하면 할수록 그 묘리가 더욱 깊어지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 수준에마저 이르렀을 줄이야.
-중생. 놈이 배의 식을 터득한 거라면······.
-······청령의 심장을 앗아간 그놈일 수도 있겠네요.
대재앙의 날 이후, 파사팔식을 익혔던 자는 세상에 단 세 명뿐이었다.
청령과 목경운, 그리고 바로 천맥(天脈)의 비용헌이다.
그때 나율량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행이군. 잠시 우려했지만 그건 아닌 듯하군. 그래. 배의 식이지. 이 세상에 이걸 알아볼 자는 오직 너와 나뿐이다.”
-역시 익혔어. 그래. 그렇겠지. 익히지 않았을 리가 없다.
떨림과 함께 분노로 들끓는 목소리.
그가 비용헌이라고 확신에 확신을 거듭하자 청령은 당장에라도 목각인형을 부수고 나가려고 했다.
-쩌저저저적!
-청령. 잠시······.
-저놈이 정말 세 번째 목간이고 비용헌 그놈이 맞다면 망설일 필요가 무엇이냐? 놈은 너와 본좌의 원수다.
더 이상 청령은 참지 못했다.
그녀의 하늘을 찌를 듯한 원한과 살의에 목경운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놈이 밀회의 회주 삼안(三眼)이면서 청령의 원수인 비용헌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정말로 모든 일의 원흉이라면 그녀의 말대로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콰득!
목각인형이 부서졌다.
그 순간 웃으며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려던 나율량이 멈칫했다.
-고오오오오오!
봉인이 깨지는 순간 사방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영력을 감지한 것이었다.
나율량이 이마에 달린 눈동자가 묘한 이채를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력이 느껴진다는 것은 원혼으로서의 영체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나율량이 뒷짐을 지며 여유롭게 말했다.
“격이 높다고 한들 영체를 드러내는 건 부질없는 짓일 텐데. 어떻게 그 정도로 육신을 단련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
-솨아아아아아!
그 순간이었다.
어느새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기묘한 현상에 광장에 있는 이들의 모두의 시선이 이내 위로 향했다.
그것은 눈 속에 눈이 돌출된 괴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웅성웅성!
“저 저길 봐!”
“하늘이 붉어지고 있어.”
“이게 대체?”
붉어지는 것은 하늘만이 아니었다.
-슈! 슈슈슈!
광장의 바닥에서 어느새 핏물이 샘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헛것을 보나 싶어 눈을 비벼도 바닥을 메우기 시작한 핏물들은 여전히 보였고, 심지어 피 특유의 역한 냄새마저 느껴졌다.
-스스스스!
그렇게 바닥을 메운 핏물이 하늘로 솟구치며 역우(逆雨)가 올랐다.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기이한 현상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나율량은 아니었다.
“귀의영역(鬼意領域)······. 해가 중천일 때도 펼칠 수 있는 수준이라니 본좌의 예상보다 원한이 깊었나 보군.”
이건 청령의 격만으로는 안됐다.
그 이상이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남령(藍靈)의 격에는 이르러야 하는데, 본관 광장 전체를 뒤덮을 수준인 것을 보면······.
“······자령?”
나율량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자령(紫靈)은 원혼으로서 도저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영력과 원한을 가져야만 이르는 격이었다.
인위적으로 격이 높은 원혼을 만드는 금술마저 해박할 만큼 방술에 정통한 그로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백 년의 세월로는 절대 소월은 그 격이 자령에 이를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비중선 그 아이가 그날 심장으로 만든 비급을 빼돌렸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에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한데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때였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
그의 주변에 고여있던 핏물들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찔러 들어왔다.
이에 나율량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가시들이 산화되듯이 닿기도 전에 녹아내렸다.
-스르르르르!
“이런 건 통하지 않아. 이왕 현신했으니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
-촤르르르르!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바닥의 핏물이 그의 주변을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위로 회오리 형태로 솟구쳤다.
회오리 속의 핏물들은 수백, 수천의 헤아릴 수 없는 검날이 되어 나율량의 육신을 갈아버리려고 했다.
-촤촤촤촤촤촤!
“세, 세상에······.”
“피가 어찌!”
하늘까치 치솟는 피의 회오리의 엄청난 위용에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가 놀라서 최대한 뒤로 물러날 지경이었다.
‘죽어!’
원한과 영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오직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청령이었다.
이는 월맥의 검식의 무리도 담겨 있었기에 그 내부는 피로 만들어진 절대검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녀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목경운의 검세마저 튕겨낼 정도로 파사팔식을 깨달았다면 이놈은 예전에 자신이 알던 그 비용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사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
자령의 영역에 이른 지금의 자신이라면 지고라 여겨지는 현경(玄境)의 고수마저도 상대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자. 비용헌.’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체가 부서져도 좋다.
이 자리에서 영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이놈만큼은 죽여······.
-파차차차차창!
‘!?’
이게 뭐지?
일순간 안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기운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낸 피의 회오리가 터져버렸다.
‘이건······. 요력(妖力)?’
착각이 아니라면 공력보다는 이매망량들의 기운인 요력에 가까웠다.
바로 그때였다.
뒷짐을 진 채 피 한 방울도 묻지 않은 나율량이 걸어 나오며 피식하고 웃었다.
“소용없다고 했을 텐데. 그리고 숨바꼭질이라도 원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직접 찾도록 하지.”
-휘릭!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율량의 이마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눈동자는 주변을 한 번 훑는 순간이었다.
“속에 있었군.”
그 말과 함께 나율량이 뭔가를 중얼거리며 한 손을 들어 올리며 핏물이 고여있는 바닥을 내려쳤다.
-파아아아아앙! 촤아아아아아!
손바닥을 내려치는 순간 핏물이 파도처럼 사방으로 일어났다.
그러더니 핏물 속에서 이내 누군가가 튕기듯 나오며 위로 솟구쳤다.
그건 바로 면류관을 쓰고 곰방대를 들고 있는 청령이었다.
“찾았다!”
그녀를 본 나율량은 입꼬리를 올리며 신형을 날렸다.
어찌나 빠른지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청령의 바로 앞까지 도달하려고 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채아아아앙!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그들의 주변에 있던 위로 솟구치던 피의 비가 돌풍과 함께 퍼져나가며 그사이의 공간이 진공의 상태가 되었다.
“너?”
검을 맞대고 있는 나율량이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가로막은 이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목경운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빙의를 풀고서 현신을 한 게 아니었던가?
한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가로막고 있는 목경운의 뒤편으로 분명 류소월이 보였다.
‘이게······. 대체?’
물론 빙의에서 풀렸을 때 곧바로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지배된 육체라면 단번에 혼이 정상화되긴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격이 원혼으로서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자령이 빙의했었다.
아무리 그 육신이 강하다 해도······.
‘!!!!!!’
그때 나율량의 이마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왔다.
그 눈에는 정확히 보였다.
목경운과 청령 사이에 이어져 있는 붉은 실이 말이다.
저것은,
‘연(緣)?’
찰나에 나율량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빙의된 육신의 무위가 너무 강한 것이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간혹 빙의된 상태로도 강해지는 경우가 존재했기에 이 경우는 그런 쪽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연(緣)이라고?
이건 격이 낮은 이매망량들을 식신으로 지배해야 생기는 것이 아닌가.
원혼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가능성을 타고난 존재인 인간의 혼(魂)이고 그 부정이 너무 한쪽으로만 강하여 이매망량들과는 궤를 달리하기에 식신으로 적합하지도 않고 맺어지지도 않았다.
한데 어떻게 저것이 이어져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의 목으로 목경운의 좌수에 들려 있는 요검 겁살이 날아들었다.
-촥!
이를 본 나율량이 손을 들어,
-우웅!
배의 식으로 검세를 또 다시 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목경운의 검이 배의 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검과 이어진 손에서 강한 흡착력이 느껴졌다.
‘착(着)의 식?’
서로 반대되는 힘이 상충하면서 두 힘은 그대로 상쇄되고 만 것이었다.
이에,
-채앙!
나율량이 부딪치고 있는 검에 더욱 힘을 가해 이를 밀쳐내며 자신의 신형을 뒤로 날렸다.
그를 놓칠 생각이 없기에 목경운이 신형을 날리려 하자,
-슥!
“꺼져라.”
나율량이 목경운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파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주변의 공간이 마치 압축되는 것처럼 한 점으로 몰리며 목경운의 몸이 그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공진(空鎭)의 식(息)!’
이것은 파사팔식의 또 다른 식이었다.
네 장(丈) 정도의 공간을 일순간 원하는 방향으로 눌러버리는 수법으로 파사팔식 중에서 가장 심력과 기력의 소모가 강한 수법 중 하나였다.
-주르륵!
나율량의 세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확실히 새로운 몸으로는 벅차군.’
하나 이 수법에 걸려들면 접힌 공간과 함께 어딘지 모를 곳으로 튕겨 나기에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당연히 목경운도 그렇게 되리라 여겼지만,
-촤르르르륵!
그때 펼쳐지던 공진의 식이 그대로 갑자기 겹쳐지듯이 생겨난 또 다른 공진의 식에 의해 빨려 들어갔다.
‘!?’
이를 본 나율량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져 갔다.
그의 눈동자로 청령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청령 또한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찌?
원혼이 되고 나서 육신이 있었을 때의 모든 힘을 잃었다.
그런데 순간 목경운이 위기에 처했다고 여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파사팔식의 구결이 떠올랐고 손가락을 내밀었다.
다만,
-흐윽.
일순간 엄청난 영력이 소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주변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의 귀의영역 혈계(血界)가 부서지듯이 갈라지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파스스스스!
그렇게 부서져 가는 피의 세상인 혈계의 파편 조각들 사이로 목경운과 나율량이 다시 한번 허공에서 부딪쳤다.
-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파치치치칙!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며 사방으로 돌풍과 번개와 같은 푸른 빛줄기가 뿌리처럼 퍼져나갔다.
그렇게 부딪친 상태로 나율량이 핏대가 선 눈으로 소리쳤다.
“네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그런 그의 물음에 목경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 목경운, 천마······. 다 잊어도 상관없다.”
“뭐?”
“난 널 죽일 자다.”
-차차차차차차차차차!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을 맞대고 있는 그들의 주변으로 수십 자루의 검들이 떠올라 검 끝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