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15)
방사들의 집단인 방원육십사각 중 가장 신비롭다고 알려진 해선각(諧仙閣)의 제자 여수린이 커다란 붓 형태의 법구로 둥근 원(圓)을 그렸다.
그 순간 주홍빛 뭉게구름이 일어나며 공간이 일렁였다.
-우우우우웅!
일렁이는 공간 너머에서 한 존재와 수많은 무리의 검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서있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던 회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구, 구천무?”
노인은 현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칠천(七天)의 일인이자 영검산장의 장주인 극영검장(極靈劍匠) 구천무였다.
그럼 그 뒤에 있는 검객들은 영검산장의 무사들과 검의 성지에 머물고 있다는 식객, 아니 명성 높은 검수들이란 말인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의 등장에 대공자 나율량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삼안(三眼) 또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구천무를 바라보다 획하고 목경운을 노려보았다.
“네놈 대체?”
그런 그의 반응에 목경운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말했을 텐데. 수 싸움은 그쪽만 하는 게 아니라고.”
* * *
천지회로 복귀하기 얼마 전.
천지회 본관 제 삼 호위대주이자 목경운의 오른팔이 되기를 원하는 섭춘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구 장주와 영검산장의 무사들을 대기시킨다고요? 하나 주군. 구 장주가 함께 입성하는 것만으로 오히려 초장에 기세를 잡을 수 있습니다.]목경운의 결정에 섭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굉장한 공이었다.
목경운의 정체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곱 번째 하늘 천마(天魔)임을 드러내고, 그 산하에 같은 칠천(七天)의 일인인 영검산장의 구천무 장주가 있다는 사실을 천지회 회인들이 알게 된다면 그 위세에 굴복하는 이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작부터 기세를 잡고서 수월히 천지회 정복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주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냐?]그때 팔짱을 끼고 있던 천지회 부회주의 아들인 몽무약이 혀를 차며 그를 나무랐다.
이에 섭춘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둘을 모르다니?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냐?] [기세가 문제가 아니다. 아직 회에 입성도 하지 않았고 임무를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구천무 장주를 데려가게 된다면 들어가는 순간부터 모든 세력의 견제를 받게 될 거다. 그건 병환 중인 회주를 따르는 파벌조차 마찬가지일 거다.] [아니. 그건 그렇지만 현 무림의 정점 중 하나라는 그 위명을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 것 아니냐? 구천무 장주가 주군의 산하로 들어온 것만으로도······.] [가볍지 않으니까 그런 거다.] [피해를 줄이고 회를 고스란히 차지하려면 내부에서부터 장악해야 하는데, 구천무 장주라는 거대한 존재를 데려가는 순간 반발심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거다. 왜 주군께서 당장에 천마라는 위명을 알리지 않는지를 잘 생각해봐라.] [크흠.]이제야 뭔가 납득이 갔는지 섭춘이 입을 다물었다.
몽무약의 말대로 구천무를 데려가고 목경운의 천마로서의 위명이 알려지는 순간 경계심과 반감으로 모든 천지회인들이 하나로 결속될지도 몰랐다.
그리된다면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계획이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섭춘을 납득시킨 몽무약이 조심스레 말했다.
[한데 주군······. 구 장주와 영검산장을 전부 회의 눈을 피해 주둔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구 장주만이라도 인피면구로 변장해서 자연스럽게 입성시키면 되지 않겠습니까?]이런 몽무약의 말에 섭춘도 동의했다.
[오오. 주군. 그건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구 장주가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으면 병환 중인 회주가 아니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을 테니······.]그때 목경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구 장주는 들이지 않을 거예요.] [네?] [구 장주와 영검산장은 숨은 패로 계속 둬야 할 것 같군요. 일말의 확률이라도 알 수 없게요.] [어찌?] [저쪽도 감춰둔 패들이 있을 테니까요.] [주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회 내부에서 구 장주와 영검산장을 견제할 만큼의 회심의 패는······.] [회만이 아닌 것 같아서요.] [회만이 아니라고요?] [네.]이게 무슨 말씀이시지?
회를 상대하는데 회만이 아니라는 건 그 안에 다른 무언가라도 있다는 건가?
의아해하던 몽무약이 이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주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고심하신 혜안이 있으신 듯합니다. 하나 이번에 입성하지 못한다면 구 장주를 비롯한 영검산장은 회의 영역에 있는 모든 방어망을 뚫고 들어와야 합니다. 그건 감안하셔야······.] [입성이 꼭 있는 문으로 와야 한다는 법도 없죠.] [네? 그게 무슨?]이때는 아군인 그들도 영검산장의 장주인 구천무조차 목경운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 * *
-우우우우웅!
그들의 눈앞에 열린 주홍빛 연기의 문은 공간을 가로질렀고, 영검산장의 무사들과 검곡의 식객으로 있는 명성 높은 검수들이 통과할 수 있는 입구를 만들어냈다.
‘하? 이거였습니까? 주군, 당신이란 분은 정말······.’
본관의 한 창(窓)을 통해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몽무약이 혀를 내둘렀다.
대체 무슨 수로 영검산장을 비장의 패로 동원한다는 건지 의아해했던 그로서는 이 예상 못 한 기상천외하고 신비한 방법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르르르르!
선두에서 선 구천무를 필두로 영검산장과 검곡의 식객들이 주홍빛 연기의 문을 통과하여 천지회의 본관 광장으로 입성했다.
수백여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검의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구천무는 현 무림의 정점 중 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가진 위압감은 주변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구 장주가 어찌?”
“영검산장은 중도에 속하잖아.”
신비한 연기로 만들어진 문은 둘째치고 모두를 의구심에 사로잡히게 만든 것은 역시나 구천무의 존재였다.
칠천의 일인인 구천무가 누군가의 지시라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스릉!
자신의 보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검수들은 검을 뽑으라!”
-채채채채채채챙!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백여 명의 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검수들이 동시에 검을 뽑자 일순간 날카로운 예기가 광장 전체를 휘어 감으며 그들의 위용을 드러냈다.
구천무가 앞장서서 걸어 나가며 외쳤다.
“주군이신 천마 공의 명이다. 인두겁을 쓴 진짜 괴인들을 베어라.”
“명을 받듭니다!”
‘!!!!!!’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검수들의 목소리에 회인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칠천의 일인인 구천무의 등장에 놀란 것도 있었지만 장인으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여 정사 어디에도 아닌 중도에 속한 그와 영검산장이 대체 왜 이곳에 나타났는가 의문이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구천무가 목경운을 주군이라 칭하자 목경운 산하의 회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회인들은 일순간 전율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지, 지금 극영검장 구천무가 주군이라 했나?”
“······말도 안 돼.”
“아니? 현 무림의 정점 중 하나를 굴복시켰단 말인가?”
무림 최고수라 할 수 있는 팔성(八星)을 거뒀다고 해도 경악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넘어서 현 무림의 정점인 구천무를 수하로 거두다니 당사자의 입으로 말했는데도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
“아아아. 역시 쉽게 당해줄 남자가 아니네.”
밀회의 제 일계(一界) 춘추가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목경운을 바라보았다.
저 괴물 같은 인간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세 번째 목간이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 같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나타나며 죽었던 전황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확실히 육천, 아니 칠천(七天)이라는 위명이 주는 힘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싱겁게 끝날 줄 알았는데 상대는 정해졌네.’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시던 춘추가 움직였다.
‘저 여인인가? 풍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군.’
목경운의 전음 덕분에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구천무 역시도 진기를 끌어올리며 유일한 맞수가 될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채채채채채채챙!
허공에서 여전히 격렬하게 검을 부딪치며 한 치의 틈 없이 겨루고 있는 삼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제 일계인 춘추와 강시들로 희망을 완전히 짓밟고서 전황을 완전히 지배하려 했던 그였다.
그런데 놈도 숨겨놓은 패가 있을 줄이야.
그러나 상관없다.
무공을 익힌 자들로 만든 강시들이 무서운 이유는 일반 강시들보다 훨씬 강한 것도 강하지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기에 동귀어진의 수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숫자라면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전과를 거둘 수 있다.
‘서둘러서 이놈을 제압하고서 지휘한다면 전황은 얼마든지 압도적으로 뒤집을 수······.’
-흠칫!
그때 삼안의 이마에 나 있는 눈동자가 움직이며 어딘가를 주시했다.
그곳은 강시들이 몰려오고 있는 동남쪽 방향이었다.
그런데 그런 동남쪽 방향으로 이백여 명에 이르는 무인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섭춘과 그가 이끄는 본관 제 삼 호위대였다.
‘저놈들은?’
아니 회주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본관 호위대의 일부가 왜 저기에 가 있는 거지?
게다가 저들이 끝이 아니었다.
-다그닥! 다그닥!
어디선가 강시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용(龍)의 머리에 전신의 털이 붉고 몸은 마치 개와 소를 섞은 듯한 집채만 한 이매망량이 보였다.
그 존재는 바로 마수(魔獸) 알유였다.
-콰콰콰콰콰쾅!
맷돼지처럼 엄청난 기세로 돌진한 알유가 부딪치자 강시들의 몸이 짚 인형이라도 된 것마냥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 위력이 어찌나 센지 강시들의 몸이 꺾이거나 부서지는 것은 덤이었다.
마수(魔獸)는 괜히 마수가 아니었다.
-키리리릭!
산 것도 아닌 것들이 부수는 재미는 있구나.
마수 알유가 강시들 사이를 날뛰며 그들을 밟고 날려 보내며 진군을 방했다.
-파파팍!
물론 강시들이라고 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마수 알유의 다리와 몸에 달라붙어 날뛰는 것을 저지하려 들었다.
그러나,
-휘리리릭!
“죽은 자들이라고 하니 독기를 듬뿍 써도 노부를 원망하진 않겠구나. 허허허.”
마수 알유의 등 뒤에는 팔독사장(八毒蛇杖) 구양소가 타고 있었는데, 뱀 모양의 지팡이를 휘두르며 지독한 독기를 뿌려대자, 그것이 어찌나 강한지 닿는 족족히 강시들의 신체가 독기에 녹아내렸다.
삼안의 이마의 눈동자가 무서울 만큼 날카로워졌다.
‘저것들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변수가 있다고 한들 천지회는 오랫동안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었기에 언제든지 전황 따윈 뒤집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놈 대체 숨겨둔 패가 얼마나 있는 거지?
자신의 예측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
전황이 계획과 다르게 조금도 변화하지 않자, 심기가 불편해진 삼안이 여유가 사라지고 그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본좌를 성가시게 만드는구나. 이런다고 결과가 달라질 것 같으냐?”
“수 싸움을 하자고 했던 것 그쪽 같은데.”
“······.”
목경운의 그 말에 삼안이 세 눈동자 모두 목경운에게로 모이며 싸늘해졌다.
그런 그의 반응에 목경운이 피식거리며 비아냥거렸다.
“비용헌이든 밀회의 회주든 간에 입만 나불거리는군.”
-우득!
그 순간 삼안의 눈이 매서워졌다.
평소라면 적의 도발에 이런 식으로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에 제멋대로 나타나 먹칠을 힌 것도 모자라, 고작 백 년도 살지 못하는 필멸자가 도발하기까지 하는 모습에 일순간 분노를 금치 못했다.
류소월과 이어진 연(緣) 때문에 이를 풀어내야 하기에 치명적일 정도의 수법은 피해왔던 그였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숨만 붙여놓는 선에서······.
바로 그 찰나였다.
-흠칫!
스스로 과시한 것처럼 오랫동안 쌓아온 무(武)가 두터웠고 세월의 냉철함으로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던 그였다.
그러나 목경운의 도발에 일순간 분노에 휩싸인 삼안의 검에 찰나였지만 처음으로 미세한 틈이 생겨났다.
그 틈은 너무도 작았기에 발견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지만,
‘!!!!’
모든 신경을 이 싸움에 집중하고 있던 목경운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촥!
그 순간 목경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허공에 검은 선이 생겨났다.
역량을 한 점으로 모은 일검의 검속은 너무 빨라 어떠한 고수라고 할지라도 육안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채아아아아아앙!
그 찰나의 빈틈을 파고드는 일검을 삼안이 막아냈다.
하나 검을 휘두른 방향에서 반대에 위치에 있기에 본래라면 막아낼 수 없는 위치에 있었으나, 스스로 근육과 관절의 뼈가 끊어지는 고통을 무시하고서 가능했다.
“유일한 기회를 놓쳤구나.”
삼안이 비웃음을 흘렸다.
목경운의 시선이 자신의 뒤틀린 근육과 튀어나온 팔꿈치 뼈로 향해 있었다.
한데 이를 어쩌지?
자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기에 이런 육체라도 요력으로 신체를 단순간에 회복시킬 수 있었다.
-휘리리릭!
보아라 벌써 튀어나온 뼈가 회복되고······.
-슉!
그 순간이었다.
목경운이 요검 악즉을 놓고서 왼손 검결지로 그의 이마의 눈을 전광석화처럼 찔러왔다.
‘소용없다!’
다른 곳보다도 세 번째 눈이 당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그였다.
검결지를 쥐고 있는 목경운의 왼손 손목을 번개처럼 낚아채 붙잡고서 이를 꺾어버리려 했다.
그런데,
-콰득!
그 순간 서로의 검과 손이 견고히 붙어있는 찰나의 상황 속에서 목경운이 삼안의 목의 울대를 물어 뜯어버렸다.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