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19)
-주르륵!
어두운 대전.
석좌에 앉아 있던 그림자로 드리워진 존재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이윽고 존재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것은 두 눈만이 아닌 이마의 세 번째 눈 또한 마찬가지였다.
-콰드득!
석좌의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팔걸이가 존재의 손아귀에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존재의 세 눈동자가 노기로 물들어 있었다.
거의 똑같이 구성한 눈동자로 자신의 의식을 반쯤 이어놓았기 때문에 동귀어진을 하면서 오는 여파를 고스란히 같이 느끼고 말았다.
일순간 소멸되는 느낌.
그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존재라 할지라도 그리 달가운 느낌이 아니었다.
‘일부라 하나 힘을 이런 식으로 잃게 되다니.’
얼핏 의식을 복제하는 것은 완전한 분리된 객체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확히는 그게 아니었다.
본체와 의식을 잇고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렇기에 힘의 일부 역시 담길 수밖에 없었고, 이 복제된 의식의 눈을 잃었기에 그곳에 불어넣은 힘 또한 잃을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수라 하더니 결과에서 전혀 아니군.
의식 중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자 이마의 눈동자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다른 의식이 의사를 밝혔다.
-변수가 컸다는 건 같이 지켜봐서 알 텐데.
-어떠한 변수도 문제될 게 없다고 한 건 너다.
-쉽게 죽일 수 있었다면 백여 년 전에 그때 해결할 수 있었겠지.
-뭐?
-콰앙!
존재가 노기에 차올라 바닥에 진각을 밟았다.
그러자 바닥이 갈라지는 것도 모자라 어두운 대전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쿠르르르르!
그렇게 흔들리던 대전의 진동이 이윽고 멎자 의식 중 하나가 달래듯이 말했다.
-진정해라. 동반자.
-진정? 힘의 일부를 잃은 것도 모자라 놈의 손에 또 다시 소월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잘도 나오는군.
-완전히는 아니다.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냐?
그 물음에 의식 중 하나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놈은 간절히 우릴 찾게 될 거라고.
* * *
“이제 네게 맡기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절대적인 위엄으로 가득하던 목경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빛과 분위기가 달라졌다.
평소와 같아진 목경운이 삼안의 눈동자가 터져 그을린 잿가루가 묻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뭐지?’
목경운은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지난번에는 자신의 안에 있던 그 존재에게 몸을 완전히 통제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 좀 더 동화된 느낌에 가까웠다.
마치 또 다른 자신처럼 느껴질 만큼 의사가 일치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놈에게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던가.
[놈을 속여.]실제로 자신 안의 존재가 그 의사를 받아들여 놈을 속였다.
그리고 순순히 육신의 통제권을 돌려줬다.
대체 자신의 안에 있는 이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던 찰나에 광장 쪽에서 엄청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그것은 목경운 산하의 회인들이 함성 소리였다.
목경운이 위기에 처한 줄 알고서 적들과 싸우는 와중에도 걱정스럽게 허공을 지켜보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운무가 가시며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진 삼안(三眼), 아니 대공자 나율량의 모습을 보자 그들은 목경운이 이겼다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하?”
그런 함성 속에서 칠천(七天)의 일인이자 영검산장의 장주인 구천무와 대치해 있던 밀회의 제 일계(一界) 춘추가 다소 놀랐다는 듯한 얼굴로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본체가 아니라 해도 목간이 태공봉천식마저 펼치고도 졌다고?’
신수(神獸)에 한없이 가까운 육마(六魔) 중 하나인 시해왕(弑海王)마저도 봉인시켰던 태고의 비술인 태공봉천식(太空封舛式)이었다.
당연히 목간이 승리할 거라 예측했던 그녀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한낱 인간이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거지?
목경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묘해졌다.
-슥!
그러는데 구천무가 그녀에게 검을 겨냥하며 말했다.
“그대의 예측대로 되지 않았구려. 승패는 기울었소. 물론 계속 싸우리라 생각하지만 주군께서 합류······.”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항복.”
제 일계 춘추가 자신의 기운을 거두더니 이내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에 구천무가 미간을 찡그리며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우두머리가 패했다고는 하나 이렇게 쉽게 항복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적어도 인외의 존재들을 이끄는 만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혹은 필사적인 항전을 하리라 여겼다.
“대체 무슨 수작이오?”
“수장이 졌으니 곱게 항복한다는데 뭐가 수작이라는 거지?”
“······.”
역시 뭔가 수상하다.
일단 기문을 막고서 철저히 제압해둔 뒤에 수작을 부릴 수 없도록 해야겠다.
-중생!
-팟!
그때 목경운의 곁으로 일부 영력(靈力)을 회복한 청령이 날아올라 다가왔다.
그녀 또한 굉장히 걱정했었는지 무사한 목경운을 보자 안도의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청령.”
-네놈은 정말······.
청령이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로 뭔가를 말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한 넘치는 눈빛이 되어 목경운의 손에 안면이 붙들려 있는 나율량을 쳐다보며 물었다.
-죽인 것이냐?
“아뇨. 죽지 않았어요.”
-······설마 본좌에게 마무리를 맡겨서 원한을 풀 기회를 주려고 그러는 것이냐?
청령이 목경운이 자신을 배려한 줄 알고서 살짝 감동했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나 목경운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놈은 아니에요.”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중생 너 역시도 이놈이 비용헌이면서 그 삼안(三眼)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느냐?
“그랬는데 정확히는 진짜 의식이 아니예요.”
이에 청령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의식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진짜가 아니라면 가짜라도 된다는 것이더냐?
“가짜라기보다는 자신의 의식을 똑같이 구성시켰다고 해야 할까요?”
-의식을 똑같이 구성하다니?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자신의 의식과 힘을 세 번째 눈을 통해 옮겨놓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세 번째 눈······. 단순히 기생만 가능한 이매망량이 아니라는 것이냐?
“네, 그런 것 같아요.”
자신의 안에 있던 존재와 놈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았던 목경운이다.
그 덕분에 삼안에 대해 일부 알게 되었지만, 몇 가지 의문 또한 생기게 되었다.
워낙 추상적으로 대화를 나눴기에 알기 어려웠지만 마치 자신의 안에 있는 존재는 이 삼안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 이 삼안(三眼) 또한 분노를 토해낼 만큼 자신 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분명 죽였는데 죽이지 않은 것 같은 묘한 이질감이 이 때문이었군.] [그래.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감정 또한 탐욕이라고 할 순 있지. 하나 본좌의 것을 제멋대로 빼앗아간 주제에 네놈이 어찌 본좌에게 탐욕을 논하느냐?]이를 듣는 순간 기묘하게도 청령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청령이 생전 류소월로서 사랑했던 그 남자.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화로 인해서 청령이 이야기했던 과거가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는데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외침 소리가 들렸다.
“모, 목 공자! 도와주세요!”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외침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상처투성이가 된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천지회주의 막내 제자인 위소연의 가장 심복이자 오랜 친우인 양암곡주 기해의 첫째 여식 기옥련이었다.
뭐지?
그러고 보니 위소연을 비롯해 그녀를 따르는 대부분의 파벌들이 보이지 않았던 차였다.
한데 기옥련이 왜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거지?
의아해하는데 청령이 말했다.
-그놈은 본좌에게 넘기고 가봐라.
“나율량을요?”
-그래. 일단 놈에게 육신이 지배당했었으니 뭔가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목경운의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삼안(三眼)이 깃들었던 만큼 분명 놈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라 여기는 청령이었다.
이에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혼절해 있는 나율량을 넘겼다.
그리고는,
-탁!
가벼운 신형으로 기옥련이 있는 지상으로 착지했다.
그러자 기옥련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 제발 도와주세요. 위소연 아가씨께서 정체 모를 자들에게 납치당했어요.”
“납치?”
“네, 명도왕과 저희 아버지 양암곡주께서 그들을 상대했으나······. 흑······.”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옷에 묻은 대부분의 피는 바로 부친의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위소연을 지키려 했던 그는 적의 손에 몸이 반 토막이 나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부친의 최후를 떠올리는 바람에 슬픔이 격해져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목경운이 물었다.
“검마는 어떻게 됐지?”
목경운이 의아해하는 이유였다.
위소연에게도 그녀를 따르는 산하 파벌이 있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검의 성지인 검곡(劍谷)에서 수하로 거둔 최고의 검객 검마(劍魔) 지외를 보냈었다.
“검마?”
“지외.”
지외라는 말에 이를 알아들은 그녀였다.
스스로를 검마(劍魔)라 칭한 지외였지만 세간에는 검에 미친 광검객(狂劍客)으로 더 명성이 높았다.
“그, 그분이 공자께 저를 보냈어요.”
“지외가 보냈다고?”
“흑······. 네, 지외 공이 합류해서 명도왕과 함께 그 엄청난 거구의 사내와 싸웠지만 너무 강해요.”
명도왕 손윤도 굉장한 거구였지만 그보다도 큰 사내였다.
오왕의 일인과 간부인 부친, 대단주 급의 초절정의 고수들이 나섰기에 당연히 어떻게든 제압되리라 여겼는데, 오히려 그들을 훨씬 압도할 만큼 엄청난 괴물이었다.
이에 뒤늦게 합류해서 그들을 도왔던 지외가 황급히 그녀를 목경운에게로 보낸 것이었다.
‘어째서지?’
찰나에 목경운은 의구심이 생겼다.
놈들이 필사적으로 청령을 노리는 것이라면 삼안(三眼)이 비용헌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소연이 비록 청령과 쌍둥이 자매라고 해도 믿을 만큼 쏙 빼닮았다고 해도 엄밀히 다른 사람이었다.
한데 어째서 그녀를 납치한 거지?
게다가 지외는 화경의 고수였고, 명도왕 손윤도 그에 육박하는 초고수였다.
그런 이들이 합공을 해도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의 전력을 이곳에 투입한 게 아니라, 고작 위소연을 납치하는 일에 쓴다고?
‘······뭔가 있다.’
목경운은 본능적으로 밀회가 위소연을 노린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모든 일에 있어서 완벽한 우연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가 어째서 청령과 빼다 닮았는지가 늘 의문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비밀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에,
“어디지?”
“제, 제가 안내할······.”
-팍!
“앗?”
“말해라.”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서 옆구리에 찬 목경운이 능공허도(凌空虛道)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파앙!
그렇게 허공을 박차며 목경운은 위소연의 장원 쪽으로 날아갔다.
본관 건물의 부서진 벽면 쪽에서 누군가 비틀거리며 걸어나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천지회주였다.
“쿨럭쿨럭······. 기어이 위소연 그 아이에게 손을 댄 건가?”
끝
ⓒ 한중월야